이해(理解)와 기호(嗜好)

박동수 의왕미술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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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잭슨폴록의 그림이 지금까지 회화사상 최고가였던 클림트의 그림을 제치고 우리 돈으로 1천330억원에 팔렸다. 폴록의 그림은 몇가지 색의 액체상태 물감을 캔버스에 장난치듯 줄줄 뿌린 그림이다. 미술용어로 드리핑 기법이다. “아니 저런 그림이 그렇게 비싸다니! 내가 뿌려도 저 정도 아니 더 멋지게 뿌릴 수 있을텐데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란 생각이 들 것이다.

필자는 이 질문의 답으로 종종 이렇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평화를 사랑합시다’란 문구를 길가는 어떤 사람이 외친 것과 인류를 위해 헌신한 휴머니스트가 외친 것을 비교한다면 받아들여지는 감도가 같을까? 매우 다를 것이다. 더구나 참혹하게 인권이 유린되는 큰 사건이 지구촌을 휩쓰는 상황에서 인류가 존경하는 대표적 휴머니스트가 평화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면 더욱 절실한 감동으로 받아들여진다.

폴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가이다. 그의 드리핑 기법은 시대적 정신문화를 대변한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영향을 잇는다.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기법은 자동기술법이다. 글자 그대로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이성의 통제없이 그저 흘러나오는 대로 기술하는 것이다. 역사 이래 이성과 의식을 신봉해오던 인류가 재1~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상황을 겪으면서 비이성·비합리·무의식 영역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개인도 역시 참기 힘든 비극적 상황을 겪는다면 자신의 존재나 주변의 대상들이 다른 각도로 보인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평범한 것들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폴록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작가이다. 그의 그림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그저 인간의 비이성적 심연을 막힘없이 흘려 내보내는 추상표현주의의 액션페인팅이다. 우리는 누구나 모두 폴록의 그림에 감동을 느끼고 좋아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멋진 풍경화나 정물화만이 진정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폴록의 그림과 같은 현대미술 작품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도외시해서도 안된다. 즉, 예술작품에 대한 기호는 자신의 고유한 권리이지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역시 하나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가 기호로 이어진다면 더욱 다행이다.

/박동수 의왕미술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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