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찬 서리 내릴 무렵 들녘을 나서면 어느 꽃들보다도 순수하고 은은한 향기로 낮은 곳에 무리지어 있는 들국화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들국화는 전국 산야에 지천으로 분포된 가을꽃으로 어떤 특정한 식물의 이름이 아니라 국화과에 속하는 산국이나 감국, 쑥부쟁이, 벌개미취, 구절초 등을 뭉뚱그려 부르는 ‘들에 피는 국화’란 뜻이다. 이중 으뜸은 구절초이며 여러해살이 풀로 다른 꽃과는 달리 흰색이지만 더러 붉은빛을 띠기도 하며 쑥부쟁이처럼 가지를 많이 치지 않고 대개 높은 산간지대 능선부근에서 군락으로 자란다. 구절초는 만주, 몽골, 일본 등 동북아에만 분포하며 청초하고 그윽한 향기가 있어 최근 화단조경, 관상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구절초는 변이가 심해 잎 모양이 다양하며 꽃 지름이 8㎝에 이를 정도로 큰 것도 있고 잎이 두꺼우며 윤이 나는 것도 있다. 이런 특징들에 의해 산구절초, 한라구절초, 바위구절초, 큰구절초, 가는잎구절초 등으로 나눠져 불리기도 한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조금 모자란 여인으로 등장, 강원도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하며 순정 이미지를 각인시켰던 여배우 머리에 꼽혔던 꽃이 바로 구절초이다. 오래 전 작고한 박용래 시인은 구절초를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이라고 노래했다. 구절초는 예로부터 우리 몸을 덥혀주는 기능이 있어 줄기와 잎을 말려 손발이 차거나 산후 냉기가 있을 때 달여 마시는 상비약으로 써왔다. 생리불순이나 불임증 등도 다스리고 소화가 되지 않는 경우 식후에 뜨겁게 마시면 금새 속이 편안해진다. 5월 단오에 줄기가 5마디가 되고 음력 9월9일 아홉마디가 되며 이때 채취해야 좋은 약이 된다. 조상들은 싹이 올라오면 나물로 먹었고 잎은 백설기를 찔 때 떡 위에 얹어 방향물질로 하여금 세균번식을 억제하도록 해 며칠씩 두고 먹어도 부패하지 않았다. 화성 서신면 인근 바닷가에 국화도라는 섬이 있다. 이곳을 오가는 배가 전곡항에서 출발하고 도착한다. 내년부터 국화도 가는 길과 작은 섬에 연차적으로 들국화를 심어 잠시라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서해포구를 찾는 도시민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도록 꽃길·꽃동산이 조성된다. 국화도 가는 길에 아름다운 들국화가 무더기로 피어난다면 화성의 가을 풍경은 더욱 맑고 아름다워지리라.
/김경배 화성시농업기술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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