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고독’ 연주자의 외로운 여행

한국사람들은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빡빡한 일정 속에도 원근각처를 찾아 즐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연휴기간에는 평소보다 몇 배 걸리는 고속도로에서의 거칠고 도전적인 여정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들뜬 마음으로 출발하는 것은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휴가기간을 이용하여 세계각지로 여행하는 개척자 정신을 발휘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한국관광객을 만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오랜 비행시간, 생각만 해도 피곤이 몰려오는 시차, 공항에서의 지루한 의례적 통과절차와 그 후의 더 긴 기다림에도 여행용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넘친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니 좋으시죠?”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연주자로서 많은 도시를 여행하였다. 그러나 질문하는 분들이 생각하는 ‘여행’과 연주자들의 그것은 크게 다르다. 일반적인 개념의 여행은 ‘새로운 곳 또는 편안한 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이라면 연주여행은 ‘장소에 차별 없이 청중에게 만족할 만한 연주를 하는 것’이 목적이며 보상이다.

미국의 한 오케스트라가 14일간의 일정으로 아시아 순회연주를 한다. 그 중 12일 동안 12개의 도시에서 연주한다. 이동시간을 빼면 하루도 연주를 거르는 날이 없는 셈이다. 중국의 한 오케스트라가 미국의 동부를 순회하는 일정을 보니 23일 동안 20개가 넘는 도시에서 연주하는 강행군이다. 이들에게는 관광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럽다. 전문연주단체 또는 연주자들의 ‘연주여행’을 들여다보면 무대에서의 화려한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숨 막히는 이동의 적응과 이를 뒷받침하는 강인한 체력이 필수조건이다.

지난주 사천성의 청두에서 사천성 심포니를 객원지휘 하였다.

통상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객원지휘자의 한 주간의 일정을 충실하게 이행하였다. 일요일 늦은 밤 공항에 도착하여 호텔로 향한다.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온종일 연습을 한다. 연습 후 간단한 식사를 호텔로 돌아와 나 홀로 만의 식사를 한다. 저녁 시간에는 스트레칭 또는 산책으로 몸을 푼 후 악보를 보며 오늘의 연습을 분석하고 내일 연습을 준비한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의 연습기간을 거친 후 금요일 저녁 연주를 한다. 이튿날 아침 일찍 공항에 나가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연주를 준비하는 기간에 관광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상의 연주’를 위해 모든 체력과 신경을 비축한다. 연주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하며 집중력을 모은다.

연주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고독과 외로움’은 나의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다. 관광지로 가득한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를 마음껏 다녔지만, 전문연주자의 외로운 일상의 연속이었음을 인지한다. 과연 무엇으로 이런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 라고 자문해본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인간이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라고 하였다. 시인 황동규는 ‘홀로움’이라는 단어로 우리를 위로한다. 이 단어의 의미는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이다. 외로움이 없었다면 온 인류를 형제로 바라보는 눈을 가진 베토벤의 ‘합창교항곡’과 처절하게 상처받은 영혼을 보석처럼 맑게 해주는 말러의 교향곡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직 연주회를 위한 여행이 가슴에 떨림으로 남아있음은 이 외로움과 고독이 내 음악에 양분이 되어 주기 때문이리라.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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