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립미술관의 사업평가를 맡아 가끔 지역 소재 미술관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 지난 주말 화성시 봉담에 있는 한 미술관을 방문하였다. 작가이신 퇴임교수의 작업실 부지 일부를 미술관으로 조성한 곳으로 건축도 짜임새가 있었지만, 수준 높은 전시 또한 감동적이었다. 기획전으로 세계적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의 말년 초상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임종 2년 전부터 네덜란드 사진작가와 협업으로 그녀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사진 작품들인데 그녀가 예술가로 겪었을 숱한 풍상의 무게가 큰 울림을 주었다. 개관 4년밖에 되지 않고 도심도 아닌 곳에 있는 미술관에서 이런 전시를 관람하게 될 줄이야. 수원에서도 차로 20~30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주변에 수원대학교도 있고 융건릉도 있어 관객들이 아주 없는 외진 곳은 아니었다. 공립미술관이 없는 화성시의 유일한 미술관으로서 힘겹게 위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뮤지엄들 중에는 이곳보다도 더 열악한 오지의 공간들이 많다. 오지이다 보니 학예사 구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숙명처럼 최선을 다하는 관장님들을 만나 뵐 땐 참 감사와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공립미술관에서 미처 다 감당치 못하는 영역을 자발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독특한 전시콘텐츠를 생산하고 운영을 지속한다는 일은 미술관장의 예술적 안목과 경영철학, 그리고 사명감이 없인 불가능한 것이다.
지역의 사립 뮤지엄들의 여건과 상황들은 대동소이하다. 처음엔 관장의 열정과 사명감에서 출발하였지만, 그 운영은 그리 녹록지 않다. 뮤지엄은 건물과 일정의 소장품만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획전이나 특화된 전시프로그램을 조성하는 운영비, 전시와 교육을 전담하는 전문 인력인 큐레이터들의 인건비 등 관리운영비가 만만치 않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사업비,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게 된다. 부유한 개인들이 자신의 의지로 뮤지엄을 건립, 운영하는데 정부가 왜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립 뮤지엄은 정부나 지자체의 역량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공공적 기능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 비영리적 공공재이다. 이 때문에 국고나 공적 자금의 투입이 필요한 실정이다. 지역의 뮤지엄들은 문화유산의 생산자라는 본래 역할 이외에 지역 주민들의 귀중한 문화체험 공간이며 평생학습센터이다. 또한, 지역 커뮤니티 센터이며 높은 수준의 복지인 문화 복지의 허브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전국 1천124개 뮤지엄 중 가장 많은 194개 관을 가지고 있다. 수도권이 가지는 지정학적 이점 때문에 많은 문화적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수도권이라고 타지역보다 운영이 나은 것은 결코 아니다. 정부 지원금 중 비중이 가장 높은 큐레이터나 에튜케이터 등 전문 인력 인건비는 그 일부를 지원하는 데, 제대로 된 전문 인력 육성을 목표하기보다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머물고 있어 최저임금 수준을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그들 역시 열정페이를 요구받는 셈이다. 그나마 그들의 계약은 1년 미만이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철새처럼 다른 관의 일터를 구해 옮겨가야 한다. 근본적으로 뮤지엄 핵심인력들의 고용안정화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인데 천 개가 넘는 뮤지엄 숫자만 자랑한들 무슨 경쟁력을 가질 것인가? 정부는 한 해가 멀다 하고 뮤지엄 발전방안과 정책을 내놓지만 시원한 답은 없다. 지방정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의 뮤지엄을 활성화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본 미술관 뜰의 감나무엔 언제나처럼 감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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