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회나 회식을 알리는 연락이 잦아지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감사함과 축하를 전해야 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관행이 되었다.
모처럼 만나는 사람들이다 보니 기름진 음식과 함께 술도 마시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띄우고 주도하는 사람도 있으니 간혹 우리는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고 불러주며, 기꺼이 이들의 주도하에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풍류(風流)와 유흥(遊興)은 다른 것이니 유흥이 오락과 놀이로서 단순하게 즐겁게 노는 것이라면, 풍류는 속된 일을 떠나 풍치(風致) 또는 운치(韻致)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을 의미한다. 또한, 풍류란 자연을 가까이하는 것, 멋이 있는 것, 음악을 아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여유, 자유분방함, 즐거운 것 등 많은 뜻을 내포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시서화(詩書畵)와 가무악(歌舞樂)에 대한 예술적 조예를 바탕으로 인문학적인 이해와 성찰까지 아우르는 것이 진정한 풍류이며 이렇게 풍류를 즐기는 사람을 풍류객이라 부른다. 즉 풍류는 유흥과는 다른 수준 높은 예술과 정신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니 옛 선비들의 풍류는 그 자체가 수양의 방편이기도 했다.
주 52시간 근무의 확대와 ‘워라벨’과 ‘소확행’을 중시하는 트랜드에 맞추어 최근의 송년 모임이나 직장인의 회식문화도 바뀌고 있다. 식사와 2차로 이어지는 획일적이며 구태의연한 회식보다는 편안하게 즐기는 방향으로 회식문화가 바뀌고 있다. 이제 식사와 2차 노래방을 고집한다면 당신은 ‘꼰대’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2030의 젊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71%는 회식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회식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귀가 시간이 늦어져서’였다. ‘자리가 불편해서’, ‘재미가 없어서’, ‘자율적인 참여 분위기가 아니므로’ 등이 뒤를 이었다.
또한, 직장인 87%는 먹고 마시는 회식보다는 편안하고 재미있는 회식을 선호했다. 젊은 직장인이 불편해하지 않고 재미를 느끼는 회식은 ‘문화 회식’(23%)과 ‘힐링 회식’(21%)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문화 회식의 경우 뮤지컬연극영화전시회 관람 등을 즐기고, 힐링 회식은 심리치료테라피마사지 등을 받으면서 ‘평소와 달리 나를 돌보고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색 회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실내·외 스포츠를 즐기는 ‘레포츠 회식’(16%), 보드게임, PC방, 오락실 등 ‘게임 회식’(12%), 공방, 퍼스널 컬러 테스트 등 ‘체험 회식’(10%) 등에 관심을 보였다.
이제 획일적이며 즐겁지 않고, 생산성을 저해하는 회식보다 조직원들이 선호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송년회식의 방향도 바뀌어야겠다. 조직원의 여론을 수렴하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주도하며 준비하고 진행하는 방향으로 회식문화를 바꾼다면 만족도 또한 높아질 것이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로서 예술적인 만족감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문화회식이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예술과 함께하는 회식을 통해 예술가를 응원하고 예술적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단순한 유흥(遊興)이 아닌 유흥(幽興, 그윽한 흥취)이 가득한 회식이라면 그 또한 도심 속의 풍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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