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빈센트, 안녕하신가요?

빈센트 반 고흐의 생을 다룬 영화가 최근 개봉됐다. 미국 신표현주의의 스타작가 줄리앙 슈나벨이 감독을 맡은 <반 고흐, 영원의 문에서>가 그것이다. 슈나벨은 일찍 세상을 뜬 동료 화가, 장 마이클 바스키아의 삶을 그린 <바스키아>(1996)로 영화에 입문했다. 그는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이 영화에서 고흐 역을 맡은 윌렘 대포에게 제75회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고흐의 생을 다룬 영화는 <러빙 빈센트>등 몇 편이 제작된 바 있고, 반전 가수 돈 맥그린(Don Mclean)의 팝송 <빈센트>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 우리에게 고흐는 생전 단 한 점밖에 작품을 팔지 못했던 무명작가로,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르기도 하는 등 광기와 정신병에 시달리다 37세 젊은 나이에 스스로 권총으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천재 예술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 중 많은 부분은 신화적으로 가공됐으며 실제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었다는 최근의 연구도 있다.

이번 영화는 고흐가 말년을 보낸 남프랑스의 아를르(Arles)와 생 레미(Saint-Rmy) 수도원에서의 요양 시절의 2년간(1888~1890)을 다루면서 이러한 신화를 걷어내고 고흐의 순수한 인간적 면모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는 생전 무명과 빈곤의 삶을 살았지만, 사후 100년이 지난 시점에선 미화 1억 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작품들을 남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됐다.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연간 19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방문하는 세계적 미술관이 됐다. 또한,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개발한 문화상품은 수백 종에 달하고 있어 그의 작품들이 가지는 부가가치는 천문학적 숫자에 이른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작가가 되기 전 목사수업을 위해 벨기에 보리나쥬라는 오지의 탄광촌에서 선교사로 일했다. 그의 신앙적 열정은 탄광촌의 빈민들에게 자신의 숙소를 내주고 허름한 창고에서 생활하거나 그들의 생활비를 부담하며 헌신하는 삶으로 구현됐다. 극단적 희생을 보인 이웃사랑의 실천은 결국 지역 교회로부터 ‘신권의 존엄성을 해친 것’으로 간주돼 목회중단을 통고받게 된다. 목회 포기라는 큰 좌절을 경험한 후 늦은 나이에 그는 화가가 되어 종교를 대신할 구원의 빛을 그림에서 얻게 된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 역시 동료작가나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그를 깊은 고독과 정신적 장애로 몰아넣었다. 함께 새로운 환경 아를르로 이주했던 고갱과의 트러블은 급기야 그와의 결별을 불러온다. 결별에 대한 심각한 실의와 좌절은 자신의 귀를 자르는 극단적 자해소동을 낳기도 한다. 영화는 말년의 그가 깊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남불의 건강한 자연풍경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자 노력한 정상인으로서의 예술가였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흐는 자신의 광기나 정신질환을 관찰하여 요양원에서의 퇴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제에게 말한다. 하느님이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화가로 만든 것 같다’라고.

예술가 중에는 운 좋게 당대에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대를 앞선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다 사후인정을 받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이러한 작가를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 숨겨져 있던 멋진 작가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그들의 소명이고 기쁨이다. 우리 시대 고흐가 기다렸던 진정한 ‘미래의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지나친 열정이 광기로 몰이해 되는 상황에서 오늘도 고흐처럼 자신의 열정 때문에 좌절하고 고뇌하면서도 묵묵히 미래에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들을 기다리며 작업에 매진하는 미의 사도들은 또 얼마나 될까? 오늘의 고흐를 만나 행복하고 싶다. 빈센트, 안녕하신가요?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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