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에서 책을 살 때엔 늘 책 그 이상의 무언가가 덤으로 따라온다. 그 무언가는 책을 사는 순간보다도 책이 집의 서가에 꽂혀 있을 때 더 진가를 발한다. 온라인서점에서 산 책들을 볼 때는 없었던, 책을 둘러싼 공간의 이야기를 하나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살 때 나눴던 책방주인과의 대화, 책방의 풍경, 소리 등이 그 책에는 담겨 있다. 책방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 함께 이어지며 그 책은 온라인서점에서 배달된 책들 사이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더 특별한 책이 되어간다. 동네책방에 대한 이러한 경험이 마치 새로운 문화체험처럼 이야기되는 이유는 지역사회에서 작은 책방을 만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변화’이기 때문이다.
활자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책을 팔고 사는 책방이야 과거부터 있었겠지만, 근대적인 모습을 갖춘 최초의 서점은 1880년대 말에 세워진 ‘회동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사와 서점, 문구점을 겸했던 회동서관에서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광수의 <무정>을 출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불안정한 상황에 처했던 출판문화는 70년대에 들어 경제개발과 함께 조금씩 꽃을 피웠고, 8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 도시에는 대형서점이 중심가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더불어 성장했던 중소서점들은 1997년에 무차별적 할인을 단행하는 온라인서점의 등장으로 점점 사라진다. 그러나 2014년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서 동네책방들이 하나둘씩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때 등장한 동네책방의 모습은 참고서를 주로 팔던 과거의 작은 서점과는 다르게 개성이 넘치고 색깔이 다양해졌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제주도에서 눈길을 끄는 투어 중 하나가 <제주책방여행>이다. 2박3일의 일정으로 제주에 있는 작은 책방들을 여행하며 제주를 색다르게 만나는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 수려한 자연풍광과 테마 박물관들이 즐비한 제주에서 관광객들이 작은 책방을 찾으며 제주의 색과 향기를 만나고 있다는 점이 새롭다. 그러나 지역의 책방들을 찾아 그 공간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이 여행을 통해 관광객들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제주를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다. 과거에는 속초를 떠올리며 바다와 설악산을 여행지로 생각했다면, 요즘은 그곳에 있는 책방들을 함께 떠올리는 식이다. 관광지를 방문하고 향토 음식을 먹으며 다니는 여행이 도시의 외면을 만나고 오는 것이라면 책방을 통해 이어가는 여행은 그 지역의 내면을 마주하고 오는 것만 같다. 그러한 느낌은 동네에 있는 작은 책방을 방문했을 때보다 더 두드러지게 다가온다.
정갈하고 자그마한 동네책방에서 책방주인이 선별한 책들을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고를 때에는 마치 정성껏 마련한 개인 서재를 탐닉하는 것만 같다. 그곳에서 그렇게 골라온 책들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현실과 여행지를 이어주는 강력한 힘을 가진 기념품이 되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으나 여건이 허락되지 않을 때도 가까이 있는 동네책방은 대안이 되어준다. 저마다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독특한 자기 색을 가진 동네책방들은 그 자체로 일상을 여행으로 변화시켜주는 하나의 문화특구이기 때문이다. 동네책방은 책방주인의 성향에 따른 책 큐레이션이 기본이다. 단순히 책의 진열이 아니라, 서점마다 독자에게 책을 건네주는 방식이 독특하고 흥미롭다. 일례를 들면, 전주의 동네책방 ‘잘익은언어들’에는 책을 포장해서 진열해 놓는 코너가 있다. 독자들은 제목도 모르고 지은이도 모르지만, 책방주인이 책 속에서 골라 겉포장에 써놓은 책 속 문장을 보고 책을 산다. 어떤 책이 들어 있을까? 궁금하고 발췌한 글을 음미하며 여행의 시간을 이어간다. 일상을 여행으로, 또 떠나온 여행을 일상에서 다시 느끼는 경험, 동네책방에 가면 알게 된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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