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베토벤 250주년

늦은 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을 깨워 피아노로 끌고 간다. 함께 들이닥친 아버지의 친구들도 취한 상태이다. 9살 소년은 그들을 위해 연주를 시작한다. 한 음 틀릴 때마다 내리치는 아버지의 주먹이 소년이 받는 유일한 보상이다. 11살 때부터는 오르간 주자로 가계를 책임지며 전문연주자로 나선다. 13살 때는 아버지가 죽을 지경에 이르는 폭행을 한다. 17살 때,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소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유소년 시기를 보낸다.

음악의 삼위일체라고 불리는 바흐,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을 비교할 때 바흐와 모차르트는 신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악보로 신속하게 옮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원본 악보를 보면 별다른 수정 없이 깨끗하게 남아있다. 신이 그들에게만 선물한 악상을 무리 없이 써 내려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베토벤의 자필 악보에는 지저분하게 지운 잉크 자국 위에 또 고치고, 그 위를 다시 고치는 험난한 작업을 반복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 음 그리고 한 음절을 만들기 위해 격렬하게 씨름한 전쟁터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베토벤은 인류 역사를 통해 이전에 없었던 빛깔로 옷 입혀 기적의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신이 내린 재능보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불굴의 집념을 불태운 베토벤의 음악에는 인간의 땀 냄새가 악보 전체에 흥건히 베어져 있다.

베토벤은 세계사적 음악의 흐름을 혼자의 힘으로 바꾸었다. 고전파 시대의 편안함에 취해 있던 정체 상태의 음악을 새로운 낭만파 시대로 끌어올린 혁명가였다. 그는 참된 휴머니스트였다. 나폴레옹 중심의 프랑스혁명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베토벤은 혁명 이후 스스로 황제에 즉위한 그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고자 작곡 중이던 교향곡 3번 ‘영웅’의 악보표지를 난폭하게 찢어버렸다. 당시의 작곡가들이 작곡하던 주요 이유는 왕 또는 부호 군주 등 후원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3번 교향곡 ‘영웅’의 초연 후 쏟아진 셀 수 없는 혹평에도 베토벤은 단 한 줄도 수정하지 않았다. 후세에 평가될 작품의 가치를 예견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진실은 삶 속에 가득한 그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그는 본인의 예술적 그리고 지적 존재를 증명하려고 끝까지 싸웠으며 인류가 어떤 표현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었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었던 진실들을 음악을 통해 마음껏 표현하게 해주었다. 법규와 관행 그리고 귀족 중심의 폐쇄된 사회로부터 자유를 주었다. 올바르지 못한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적 표현에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 이익을 위해서라도 진리를 배반하지 않았다.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 없이 그런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을 연주하며 늘 떠오르는 질문이다. ‘베토벤’이라는 단어 자체로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음은 진정한 축복이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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