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어린이의 합성어인 ‘어른이’라는 말이 흔치 않게 보인다. 공중파 TV 프로그램 이름에도 쓰이니 말이다. 출판계에서 어른이들이 많이 보이는 장르 중 하나는 그림책일 것이다. 그림책 세계에서는 0세에서 100세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독자층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서로에게 여백을 주며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장르로 대부분 40페이지 내외의 구성을 갖춘다. 때론 글이 아예 없이 그림만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 본위의 책인 것이다. 그랬기에 글자를 익히지 못했거나 서툰 아이들이 즐겨 보게 되는 책으로 그림책이 받아들여졌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대형서점 역시 유아 섹션에 그림책을 분류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여겨졌던 그림책이 근래에 어른으로 독자층이 확산되고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다 그 그림책에 마음을 훅 빼앗긴 엄마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고 자란 90년대생이 성인이 된 이유도 있을 것이며, 이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럼 어른들은 왜 그림책에 빠지는 걸까?
그림책은 함께 읽기에도 부담이 없는 분량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 모임에 그림책을 가져가서 읽어주는 분이 있다. 아이, 남편, 연예인 이야기를 주로 나누던 친구들한테 자신에게 울림을 주었던 그림책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처음엔 의아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다음 그림책을 기대하고 또 자신들이 다른 그림책을 소개하게도 되었다. 덕분에 책과 함께 일상과 ‘나’를 이야기하는 모임이 되어갔고, 은근히 생겨나곤 했던 모임의 피로가 보람과 충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십 분이면 모두 함께 한 권의 책을 읽고 교감할 수 있는 것, 그 또한 그림책의 매력이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뭐 그리 대단한 게 있어서 어른들이 마음을 빼앗긴단 말인가? 궁금하다면 그림책을 한 권 읽어보시라. 십 분이면 된다.
그림책카페를 운영하시는 어느 분은 그곳을 방문하시는 손님께 그림책을 읽어드리곤 한다. 그러던 중,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러 온 40대 중반의 남자분께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반응이 어땠을까? 그는 삶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자체가 첫 경험이었고, 그게 이렇게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림책이 이런 책이었느냐며 놀라워했다. 활자에 익숙한 어른들은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글을 먼저 받아들인다. 반면 다른 사람이 읽어주면 청각으로 내용을 소화하고 시각은 자연스럽게 그림에 더욱 더 머물게 된다. 그림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책을 받아들이는 폭과 깊이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40대 중반의 남성분은 자신이 속한 업무커뮤니티에 매주 두세 권의 그림책을 꾸준히 소개하는 그림책 전도사가 되었다. 일에 지친 동료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쉼표와 감성 수분을 분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의 멤버들이 그림책카페를 찾는 것으로 그의 활동이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책으로 어떻게 쉼표와 감성 수분을 분사 받느냐고? 궁금하다면 그림책을 한 권 읽어보시라.
그림책은 내면의 어린 나를 마주하게 하게도 하고, 어른이 된 나를 다독이기도 하며 어른들의 세계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아이들만 볼 것 같은 그림책이 어찌 그런 일을 해내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한결같다. 궁금하다면 그림책을 한 권 읽어보시라.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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