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금의 물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물 분자가 들어 있다. 그런데 그 물 분자들은 모두 같은 것일까. 엄밀하게 말해서 모두 똑같지는 않다. 산소와 수소는 각각 여러 개의 동위원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자들에 의하면 자연 상태에서 물 분자의 종류는 정확히 18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물을 구분해서 골라 먹을 필요는 없다. 이런 18가지의 물이 모두 섞여서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이 그러한 미세한 차이 정도는 구분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서로 같고 다른 것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세계다. 그것을 나누고 구분하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에 도달했을 때 뿐이다. 과학의 발전이라는 것은, 어제까지 같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오늘은 같지 않다고 새롭게 인식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00년 전에는 모두 밤하늘의 별로만 불리던 천체가 오늘은 얼마나 다양한 이름들로 구분되고 있는가.
인간의 세상이라고 다를 리 없다. 아마도 아득히 먼 인류 역사의 초기쯤에는 모두 다 같은 인간으로 출발했을 터이지만 서로 다른 개성의 분류(分流)를 끝도 없이 확장해간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인간의 역사다. 2500여년 전, 공자는 갑남을녀의 인간군(人間群)에서 화이부동이란 말로 군자(君子)를 구분해냈다. 어우러져 살지만 자신만의 지조를 잃지는 않는 줏대 있는 인간쯤으로 새긴다. 함께 몰려다니기는 하되 더불어 살줄 모르는 인간을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해서 소인(小人)으로 나누기도 했다.
물론 이 문구에 대해 서로 다른 여러 철학적인 해(解)가 있는 것을 안다. 다만, 이 말씀 덕분에, 이 시대가 찾는 것은 ‘서로 다름’의 구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자연을 닮은 조화 -부동이화의 지혜가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상념에 빠진다. 아무리 개성과 소신, 주의와 주장이 지상(至上)의 가치로 존중되는 세상이라고 해도, 내 앞과 뒤, 양옆에 머물러 주는 ‘그들’이 없이는 도무지 살아갈 자신이 서질 않아서이다.
하석용 인천시민회의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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