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야외음악회 그리고 아, 내 악기!

매년 여름이면 미국이나 유럽의 휴양지는 크고 작은 음악축제로 붐빈다. 전통을 자랑하는 다양한 축제는 음악애호가들을 들뜨게 한다. 연주자들은 본인들이 시즌 내내 속해 있던 도시에서 벗어나 푸른 하늘과 영롱한 별들과 머리를 가깝게 하고 짙은 숲 사이로 흐르는 냇물을 벗 삼아 연주를 하는 낭만을 즐긴다. 이런 축제는 청중들에게도 큰 격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편안한 복장으로 가족 또는 연인들이 손을 잡고 어깨를 보듬으며 야외 잔디에 돗자리를 깔고 와인과 치즈를 곁들이며 음악을 즐긴다. 연주자나 청중 모두에게 긴장과 반복적인 도시의 일상생활과 콘크리트 군단에서 탈출하여 자연과 함께 듣는 음악은 분명코 우리의 삶에 자양분이 되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다. 야외 여름축제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콘서트 홀이 일반적인 연주 홀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대형 텐트로 만들어져 있는 축제이다. 무대와 분장실 등 시설이 완벽하고 텐트 밖의 청중들은 무대를 직접 볼 수 없지만, 대형화면과 스피커로 잔디밭에 편히 앉거나 누워 텐트 안의 음악의 향연을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연주자나 청중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텐트 위를 거니는 빗소리는 연주되는 음악에 방해되지 않고 지극히 낭만적인 또 다른 악기 소리로 들린다. 두 번째, 무대는 완벽하지만, 청중들은 노출된 야외 잔디에서 감상하는 형태이다. 무대는 일회용의 조립식이 아닌 영구적이다. 무대는 천장을 갖추고 있고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벽도 갖추고 있어서 바람에 악보가 날아가는 등 연주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다. 미국의 많은 도시에는 이런 야외음악당(Amphitheater-원형극장이라고도 부른다)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런 시설들은 연주 당일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내가 음악감독으로 있던 미국의 한 오케스트라는 미국 독립기념일 연주를 준비하여 티켓은 매진되었지만, 연주 당일 내린 폭우로 연주가 취소되어 주최 측은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대비하는 손해보험도 생겼다. 야외음악회가 우리 주변에도 많아지고 있다. 내가 지휘하는 심포니 송도 야외음악회 요청을 많이 받는다. 연주자들이 청중과 접하는 다양한 형태의 콘서트를 마다할 리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무모한 야외음악회가 연주의 질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생명처럼 아끼는 악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대부분은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있는 실내에서 연주하도록 제작됐다. 전통적으로 야외에서 빈번한 연주를 하는 군악대나 마칭밴드의 금관 악기도 오랜 시간 동안 야외에 노출되면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특히 바닷가 해변은 최악이다. 바람에 날아오는 염분이 악기에 흡수되면 그 난감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현악기들과 목관 악기들은 섬세한 나무로 만들어져 수백 년에서 수십 년 동안 세밀한 관리를 받아왔다. 그런 악기들이 햇빛에 잠시라도 접촉이 되거나 가랑비라도 맞기 때문에 입는 상처는 크다. 간혹, 야외무대를 멋지게 만들었다고 초청하여 현장에 가보게 되면 천장이나 방풍벽도 없이 조명만 설치한 상태가 대부분이다. 이런 무대에서 연주하게 되면 스쳐가는 바람에도 악보는 날리고 단원들은 한 곡이 끝나면 악기를 감싸고 우는 아기 달래 듯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런 상황보다는 오히려 소란한 지하철역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연주자들은 야외음악회는 본인의 주악기가 아닌 보조악기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여러 척도 중에 이제는 수준 높은 콘서트 홀을 건설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질 좋은 야외음악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신중히 고려해 적절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것을 알리고 싶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하지(夏至)를 앞둔 단상

단상 하나 얼마 전 기차를 타고 남도를 다녀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노랗게 물든 황금빛 보리밭을 보았다. 한편에는 줄을 맞춰 모내기를 끝낸 초록빛 논도 있어 양쪽의 풍경을 번갈아 보며 풍요로움과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양력으로 6월6일이 보리를 베기를 마치고 모내기를 하는 망종(芒種)이었고 7일은 우리 민족의 4대 명절인 단오(端午)로 오랜 시간 전승되어 온 농경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단오는 큰 명절로 여겨져 여러 가지 민속이 행해지고 있다. 단오의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창포에 머리감기, 약으로 쓸 쑥과 익모초 뜯기, 절기음식인 수리취떡 만들기 등과 함께 그네타기, 활쏘기, 씨름 같은 민속놀이 등이 행해졌다. 남원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던 이팔청춘의 선남선녀인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나 뜨거운 사랑을 한 것도 단오 즈음이고, 전국의 명궁들이 모여 활쏘기를 겨루고, 천하의 소리꾼들이 모여 판소리 실력을 겨루는 유서 깊은 전주대사습놀이가 열리는 시기도 바로 단오 때다. 또한, 유네스코에 등재된 인류 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에서는 풍요와 번영을 비는 단오 굿이 며칠간 펼쳐지며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축제를 즐긴다. 이처럼 봄 농사와 모내기를 전후해서 무더운 여름을 앞두고 농부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마을의 단합과 풍요, 풍어를 기원하였으니 바로 이어지는 하지(夏至) 무렵까지 보리타작, 모내기 마무리, 하지감자 캐기, 메밀 파종 등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농번기다. 형체는 사라졌지만, 농경사회의 흔적은 지금도 면면히 전해진다. 단상 둘 필자는 며칠 전 우연하게 경기도 고양시에서 토종볍씨로 키운 모를 심는 행사를 마친 시민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한반도 최초의 재배 볍씨인 기와지 볍씨가 발견된 고양지역에서 이제는 잊힌 사라져가는 우리의 토종볍씨를 논에 모내기하고 이를 후대에 전하려는 의미 있는 행사라 생각했다. 비록 토종볍씨의 쌀 생산량이 저조하고 상품화하기 어려우며 우리의 입맛에 맞을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식물 다양성과 종자주권의 보호 그리고 전통에 담긴 의미를 오늘에 다시 되새기고자 추진한 행사라고 하기에 공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올가을 추수를 하면 토종볍씨로 키운 쌀로 막걸리를 함께 빚어 한판 잔치를 만들어 보자고 하였다. 오늘날 도시화와 산업화의 과정을 지나며 농경사회에서 중요시하던 절기와 민속의 많은 부분이 전승이 단절되고 있다. 또한, 농촌 인구의 고령화와 기계농업의 보급 등 농촌의 환경도 많이 변화했다. 그러나 이른 더위와 함께 시작된 차창 밖의 여름날의 풍경은 단지 아름다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풍요로운 수확과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려는 사람들의 수고와 땀을 흘리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장마가 시작되거나 가뭄이 오고, 태풍이 불 때마다 근심을 하며 애태우는 농부의 마음을 한 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살아왔다. 하지를 앞두고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 하나하나에 담긴 농부들과 생산자들의 땀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인문학과 어린이 박물관

쉽고 편리한 기계적 사물에 익숙해진 생활의 여유는 소비생활에 주목되고 물질적인 풍요와 함께 누리게 된 첨단 기술의 발달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이다. 정작 문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생활은 특급열차를 탄 것 같이 분주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 삶의 질은 저하되고 인성을 잃은 사회적 혼란은 야기 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문화향유와 사회적 안녕을 기대하면서 문화기반시설의 체험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의 인문학적 사고를 지향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 지원체계를 마련하였다. 학교 밖 교육에서 기대되는 성장기 학생들의 인문학적 교육은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가치관을 탐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지속하여온 온고지신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인문학에서의 역사는 시간의 축으로 판단된 집단적 인류변화에 대한 기록이나 유적, 유물과 같은 문화유산을 통해서 객관적인 우리의 자화상을 찾게 된다. 예술은 삶의 이상과 경험을 토대로 하는 창조활동으로 미술이나, 음악, 무용, 연극 등으로 표현되는 감성을 통해서 자신을 경험하게 하고 자아 성숙의 기회를 얻게 한다. 문학은 세상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주제가 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하면서 삶의 여유를 만들고, 인간의 경험을 다룬 투명하고 체계적인 철학의 진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고 자아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길 위의 인문학이나 꿈의 학교와 같은 박물관에서의 체험교육프로그램은 주 5일제 학교 수업과 자유학기제 실시가 확대된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사고를 넓혀주기 위해 전액무료로 진행하면서 박물관이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사회적 가치관을 형성해 나아가는 성찰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물관소장품에 존재된 인간의 역사와 문학, 예술,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서 인간중심의 사회를 희망하는 길 위에 인문학 프로그램은 2013년부터 6년 동안 전국의 학생 약 80만 명 정도가 참여했고 올해도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꿈의 학교는 매주 토요일마다 2~3시간씩 초등학교 3~4학년 이상의 소수 인원에게 5월부터 10월까지 연속 진행하는 학습과정으로 학교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학교 밖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그리고 소공동체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프로그램이다. 교통의 발달은 국가 간의 빈번한 교류를 이루었고 정보통신의 증가와 함께 개체문화의 변질이 심화하면서 지역이나 민족, 국가 간의 색채도 불분명해지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문화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새로움을 창조해내기 위한 박물관의 교육은 소장품에 존재된 다양한 정보와 자료들로 구성된 전시환경에 따라 특별한 경험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여 새로운 발견을 기대하는 학교 밖 교육의 장이다. 박물관의 역사 속에 담긴 과거의 산물들과 현대생활 속으로 잊혀가는 삶의 문화가 현재의 사고로 재조명되어 미래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명작동화 어린왕자에서와 같이 아름다운 꽃동산을 보고 즐기는 것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한 방법을 찾아서 스스로 경험하고 보살펴가듯이 어린이들은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인문학적 사고를 키우기 위해 박물관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성장기 어린이들로부터 현재와 미래 우리 사회의 안녕과 사람이 중심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해 본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여자도 인간이외다

르네상스기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처럼 미술사 대가로 평가받는 여성작가들은 왜 별로 없는 것일까?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창의력이나 예술분야의 재주가 미흡했던 탓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은 1970년대 들어 린다 노클린(Linda Noclin) 등 페미니스트 미술사가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이 미술교육과 같은 제도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로부터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여성화가들에게 역사화의 근간인 누드화를 그리는 것은 금지되었고 상대적으로 열등하게 여겨진 풍경화나 정물화만을 그리도록 요구받았다. 요즘은 어떤가?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인물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큐레이터들의 경우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한다. 각 분야에 여성들의 역량이 남성들의 그것을 능가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뿌리깊은 남성중심주의적 가치관과 제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28일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탄생일이었다. 나혜석기념사업회와 나혜석생가터문화예술제추진위원회에서는 올해도 학술행사와 기념 공연 등을 통해 그녀의 삶과 예술세계를 기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나혜석은 수원출신으로 개화한 가정에서 성장하며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유학한 초기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결혼 후에는 남편을 따라 세계 여행을 하며 선진 문물을 체득했다.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화가이고 여성운동가이며 페미니스트로서의 역사적 위상을 가진다. 그녀는 일제 식민지와 가부장적 사회라는 이중적인 한계 상황 속에서 여성이기 이전에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했고, 구체적 삶을 통해 기성관념의 남루를 벗어버리고자 한 자신의 주장을 실천해간 선각자였다. 뿐만 아니라 춘원 이광수보다도 먼저 자전적 단편소설인 경희(1918)를 발표한 현대문학가이며, 군국주의 일본에 저항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녀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매우 인색했다. 정부가 정한 이달의 문화인물(2000년 2월)로 선정되기 전까지 그녀의 존재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도 못했다. 신여성으로서 자유연애와 이혼이란 그녀의 사생활을 들어 좋지 않게 평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물며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3.1운동 100주년 기념의 해와 관련된 많은 학술행사에서 그의 친일행적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지역마다 지역출신의 유명 미술인의 이름을 빌려 그 예술가의 정신을 기리고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다지는 미술상들을 가지고 있다. 양구의 박수근 미술상, 대구의 이인성 미술상, 용인의 백남준미술상 등등. 수원은 나혜석이라는 독특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의 이름을 딴 미술상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미술상 제정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전문가 간담회에서 한 전문가는 말했다. 나혜석의 정신은 지역에 국한된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되고 한국을 넘어 국제적 수준의 상으로 발전시켜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한 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가 아직도 그녀의 예술과 앞서갔던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근대적 사유의 틀 속에 꼭꼭 가두어 역사의 사각지대에 그녀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호모 페스티부스, 축제는 끝나지 않는다

최근 대학 축제들이 많이 시들해진 것 같다. 지금은 다양한 축제들이 만들어졌지만 예전에 대학 축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과거의 축제는 눈부시게 빛나는 5월에 아름답게 피어나는 대학생활의 화려한 꽃이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축제 시즌을 놓친 적이 많았다. 대학 축제를 실감할 수 있는 행사들이 매우 줄어들었고 축제다운 축제를 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에는 축제가 돌아오면 오후 강의는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벚꽃 내리는 봄날에 야외 수업하자는 학생들에게 끌려나가 강의를 해본 적이 있는데, 말들이 민들레 꽃씨처럼 허공에 산산이 흩어져 버려 당황했던 적도 있다. 요즘은 대학 축제의 라인업을 올리며 각 대학에 어떤 연예인들이 출연하는지에 관심이 쏠려있는 경우도 보인다. 대학 축제에 찾아오는 연예인들은 축하해주는 손님일 뿐이며, 대학 축제는 대학생이 주체이다. 축제는 원래 종교 제의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제의로부터 신화와 예술 및 종교 등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축제는 인간의 삶의 고유한 특징과 보편적 원형을 보여준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축제를 하는 존재이다. 호모 페스티부스(Homo Festivus)는 현대 인간의 주요 특징들을 보여준다. 축제의 어원은 일차적으로 즐거움과 밀접하다. 페스티부스(festivus)는 라틴어 페스툼(festum) 또는 페스투스(festus)에서 유래되며 즐거운, 기쁜, 유쾌한 등의 의미를 가진다. 고대 그리스의 축제에서 즐거움은 이중적이다. 신들은 인간을, 인간은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축제를 한다. 우선 신들의 즐거움을 위한 축제의 주요 원리는 경쟁이다. 니체가 그리스문화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특징으로 제시하는 것도 경쟁(agon)이다. 축제에서 경쟁을 하는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탁월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신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은 인간들이 경쟁을 통해 탁월성을 발휘하는 것이 신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종교제의에서 춤이나 시가 및 드라마 등의 경연대회를 열고, 전차경기, 레슬링, 달리기, 권투 등의 각종 운동 경기를 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들의 즐거움을 위한 축제의 원리는 위로이다. 플라톤은 축제의 기원을 인간의 비참한 삶에 대한 신들의 위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신들은 인간들이 본성적으로 고통 받도록 태어난 것을 불쌍히 여겨 인간들이 노동에서 벗어나 휴식할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삶의 영양분을 얻고 삶의 방식을 재정립할 수 있게 하려고 축제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축제는 단지 먹고 마시고 놀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활력을 찾고 삶을 재정립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축제가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와 관련하여 일시적인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욕망을 소비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얻는 현장이 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학 축제는 최소한 축제의 원형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일차적으로 대학 정신을 보여주는 학술제는 반드시 개최되어야 한다. 교수가 아닌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학문적 경연을 벌이는 제전이 활성화되도록 전통을 세울 필요가 있다. 또한 학생들이 축제를 직접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각종 문화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대학 축제 시즌에 단순한 오락기구들이나 먹거리를 파는 푸드 트럭들이 즐비하게 있는 것은 대학을 시장으로 변질시킬 뿐이다. 그렇지만 축제 현장에 선후배가 함께 자리하여 대화하며 즐기기 위한 장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축제는 만남과 소통을 통해 공동체의 갈등과 투쟁을 지양하고 상호 유대감과 연대의식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대학 축제에서도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 마련되어 대화를 통해 서로 치유하고 대학생으로서의 연대의식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축제는 끝나지 않는다. 장영란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문화카페] 칭송받지 못한 진정한 영웅들

잘 정리된 잔디축구장에서 수십 대가 넘는 중계카메라의 초점이 되어 온 힘을 다해 뛰고 있는 22명의 선수가 있다. 더불어, 명품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사이드라인에서 특유의 캐릭터를 마음껏 드러내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감독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레모니도 선수들의 득점장면 이상으로 인상적이다. 반면, 카메라 한 대 없는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발목 보호를 위해 테이핑을 하거나 부상선수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땀 흘리는 재활 트레이너들이 있다. 예수를 따랐던 여인 중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가 있었다. 예수가 그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는 예수의 강론을 들으며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일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까이 있는 예수를 만나고 그의 말씀을 듣고 싶지만,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향해 팔을 걷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를 희생한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라이언 킹을 관람했다. 무대의 조명이 비치지 않는 양쪽의 작은 발코니에서 간헐적으로 북을 치는 두 명의 연주자들을 발견하고 과연 이들이 어떤 자세로 연주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기로 했다. 무대 위의 화려한 배우들에 비해 아무런 조명이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그들의 연주는 한순간도 온몸과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페라 극장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출연자들이 있다. 주역 및 조역가수들, 발레단, 그리고 합창단 등이 있다. 또한, 무대 위는 아니지만, pit-피트 (무대 앞에 위치하고 있는 큰 구덩이)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오페라의 오케스트라는 청중들의 시야에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이들이 없다면 오페라는 존재할 수 없다. 교향악단 연주를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필요하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하도록 묵묵히 도와주는 무대 뒤의 스태프들은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들은 연주자들보다 훨씬 이른 시간 콘서트홀에 나타나 준비를 하고 연주를 마친 후에도 마무리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오케스트라에는 많은 악기가 다양한 기능으로 연주에 참여한다. 통상적으로 80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감동을 주는 연주라는 목표를 지니고 무대 위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역할은 현저하게 다르다. 바이올린은 연주 초입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쉬지 않고 꽉 채워진 악보의 많은 음표를 연주한다. 반면, 타악기 또는 금관악기 들은 연주하는 음표보다 쉼표가 더 많은 경우가 많다. 그들의 악보는 검은색보다 흰색의 공간이 눈에 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은 4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타악기들은 앞의 3개 악장에서는 아무런 음표도 없고 4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만 연주한다. 브람스의 4번 교향곡에서도 트롬본들은 마지막 악장인 4악장에서만 연주하도록 작곡되었다. 그래서 우스갯말로 바이올린은 한 음표당 백 원이면 타악기는 십만 원이라고 하기도 한다. 세계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경험 중 또렷이 기억나는 연주자가 있다. 한 시간 길이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동안 단지 다섯 개 정도의 음표를 연주하는 독일의 심벌즈 연주자였다. 실제 소리를 내는 시간은 몇 초에 불과하지만, 동료들이 연주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 어떤 연주자보다 무대에서 흐르는 음악을 깊이 느끼며 즐기는 것을 나를 비롯한 모든 청중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Unsung Hero 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뒷전에서 나를 내세우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꺼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동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아가 그들의 스타 됨을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우리 주위에 혹시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을 떠올리며

축제의 달이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있는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다양한 가족 모임과 축하로 서민들의 지갑은 가벼워지지만 그래도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 여행과 외출, 선물 등으로 감사함과 사랑을 표시한다. 사실 위에 언급한 날들이 일년에 하루만 소중하게 기념해야 할 날은 아니며 오히려 365일 늘 기억해야 할 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시키고 가르치신 부모님과 스승에 감사하며 기억하는 것은 한국적 미덕이라 생각한다. 스승의 날을 5월15일로 한 까닭은 한글을 창제해 만 백성 누구나가 자신의 뜻을 밝히고 서로가 소통할 수 있도록 한 겨레의 스승이신 세종대왕의 어진 정신을 기념하는 데 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신으로 백성들의 삶을 늘 살피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은 지금도 많은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이 본받아야할 마땅한 자세라 생각한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에 버금가는 스승의 가르침은 평생을 살아가며 큰 의지가 되고 지침이 되기에 우리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하며 존경의 예를 표하였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권위는 예전만 못하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기엔 큰 아쉬움이 남는다. 핵가족화, 사교육 시장의 성장, 출산율 하락 등으로 사회와 교육환경의 변화 속에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 또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세종대왕의 소통의 리더십을 통해 스승과 지도자의 역할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세종대왕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개국한 지 얼마 안 된 조선의 기틀을 다진 왕이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이런 정책의 집행에 있어 본인의 의지를 군왕의 권위로 해결하기보다는 신하들과의 대화 그리고 설득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낸 후에 집행하였다. 소통을 통한 설득과 화합은 오늘날에도 조직 상하 간은 물론이고 사제 간에도 필요하다. 다음은 배려와 인권에 대한 각성이다. 세종대왕은 세자도 아니었고, 왕위 계승 서열도 낮은 셋째 아드님이셨다. 그러나 별도의 왕세자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임금이 되셔서는 누구보다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 개선을 이뤄내셨다. 이는 임금이 되시기 전 지금의 서촌지역에 사시며 수시로 백성들의 삶을 살필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궁궐에만 머무는 세자가 아닌 백성들의 삶을 바로 곁에서 볼 수 있었던 충녕대군 시절의 경험은 훗날 세종대왕에게 큰 경험과 산 공부가 되었다. 세종대왕의 인권의식은 오늘날에 비교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선진적인 사례였다. 노비라 할지라도 출산 휴가는 7일을 보장할 것을 지시해 산모의 인권을 보호해 주셨으며, 장애인이라도 실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했으니 앞 못 보는 맹인들로 구성된 관현맹인연주단을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소질을 개발하고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관행과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정책을 통해 세종대왕은 문치의 기틀을 세우고 500년 조선왕조 최고의 문화융성을 이룰 수 있었다. 세종대왕의 이런 대화와 소통의 리더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때론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신하까지도 포용하는 모습에서 세종대왕의 도량을 느낄 수 있다. 경기도 여주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英陵)이 있다. 해마다 5월15일에는 문화재청 주최로 세종대왕 탄신 숭모제전이 열리고 있으며 올해는 세종대왕 탄신 622주년이라고 한다. 비록 평일이라 참관이나 방문이 힘들더라도 스승의 날을 전후로 세종대왕의 유적을 찾아 세종대왕의 애민의 정신과 업적 그리고 리더십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공예와 전승공예대전

공예의 역사성이나 골동적인 가치는 물론 조상들의 지혜와 기능의 소중함이 무뎌져 가는 시대이지만 공예는 일상생활의 편리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창조되는 인간의 창작활동이다. 민족의 문화를 계승해 나가기 위한 전통공예활동은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국가 무형문화재나 지방 지정문화재제도에 의해서 이수(履修)나 전수(傳授)방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공예명장(名匠)은 기능인의 인성(人性)을 토대로 한 공예기능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현대미술에서의 공예교육 전공자들은 작품전시나 아트페어와 같은 국내외의 창작활동에 자유롭게 도전하고 있지만 대중들이 즐기는 다양한 취미공예활동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유행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거나 생활에 활력을 주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청주, 전주, 북촌 등에서 공동체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장인들의 거주지에 따라 소규모의 공방들이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예: 강화화문석, 원주옻칠, 한산모시, 전주한지, 통영나전칠기, 남원목기, 이천과 광주는 도자기, 안성유기 등) 지역적인 특색을 나타내는 공예활동은 전통공예와 현대공예를 구분하지 않고 국제공예비엔날레를 유치해온 청주는 공예중심도시로 알려져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참여도가 높으며 전주는 관광객이 오가는 전주한옥마을에 생활 공예가들이 모여 다양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북촌은 600년 선조의 숨결이 살아있는 양반 촌을 기점으로 역사적인 공간에서 전통공예인들의 공동체 활동으로 북촌 한옥마을의 품격과 지역성을 차별화하고 있다. 학교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전통공예는 체계적인 교육이나 자료정리보다는 대부분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면서 장인들은 숨은 노력으로 연마된 기능을 인정받기 위해 정통성 있는 전승공예대전에 도전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국가공예공모전 전승공예대전은 전통재료의 이해와 재료가공과 기능과 예술적인 완성도에 따라서 드러나는 한국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공예대전이다. 출품된 우수공예작품들을 통해서 기량이 뛰어난 장인들을 발굴하고 미래의 공예문화를 기대하기 위하여 ㈔국가 무형문화재 기능협회 운영위원회는 공예의 종류별로 문화계 인사나 학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을 초빙해서 2차에 걸친 엄중한 심사로 시상을 가리게 된다. 2018년 제43회 전승공예대전에서도 12분과로 나누어진 종목을 심사하기위한 심사위원(1차 32명. 2차 35명)의 엄격한 심사를 거쳤기에 웬만한 실력으로는 입선도 어려운 경연장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수상작품이 선택되어야 하지만 더러는 행사의 품격을 뒤로한 심사위원으로 인해 누가 봐도 인정하기 어려운 수상작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그랬듯이 심사의 문제점을 지적해봐야 시샘으로 인정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이해시키고 달래보려는 운영방식으로 더 이상 전승공예대전의 품격을 실추시키는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취미공예나 현대공예와는 달리 전승공예대전에서의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은 국가의 문화정체성을 이어나가기 위한 책임감을 인지해야하며 심사위원은 크고 작은 상을 기대하는 전통공예작가들이 우리의 공예문화를 지켜나가는데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는 상이 시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문화유산 보존관리와 기업의 기부문화

지난 4월15일 프랑스는 물론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마에 휩싸였다. 1345년 완공되어 2차 대전 전쟁 중에도 파괴된 적이 없는 성당이다. 화재 발생 1시간 만에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첨탑이 꺾여버린 대성당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심정은 2008년 숭례문 화재 장면을 망연자실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불이 삽시간에 번진 이유는 고딕건축의 특성상 아치형 지붕 내부에 조성된 다량의 떡갈나무 목재 구조물 때문이라 한다. 다행히 중요한 스테인드글라스인 장미의 창이나 성 루이의 튜닉, 가시면류관 등 중요한 유물들은 안전하다니 천만다행이다. 초기 대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성당 전체를 잃을 수 있었겠지만 재난에 대비한 철저한 매뉴얼을 가진 결과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건립 이후 오늘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16세기에는 건물이 우상 숭배적 형상들로 장식되어 있다는 이유로 위그노들에 의해 조각상이 파괴된 적도 있고, 프랑스 대혁명 기에는 서쪽 파사드에 조성되어 있는 구약시대의 왕들의 석조상들이 정치적 이유로 파손되기도 했다. 1991년부터 파리의 공기오염으로부터 변색된 건물의 외부와 내부를 대대적으로 보수하기 시작하였다. 보수는 총 1억 유로가 소요되는 대형 프로젝트인데 이번 화재 역시 이 보수공사 중에 일어난 것이다. 이 보수작업의 특이한 점은 원형대로의 보존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발전된 공법이나 시스템을 활용하여 늘 새로운 기법으로 보수 관리해 가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부러진 첨탑의 경우도 세계적 공모를 통해 신소재와 신공법으로 보수한다고 한다. 프랑스 정부는 5년 이내 성당을 재건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의 빠른 대처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보수를 위해 재벌 기업들의 기부 러시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구찌와 이브 생로랑 등 명품 패션 브랜드를 거느린 케링 그룹은 화재 하루 만에 1억유로(약 1천280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 역시 2억유로를, 정유사 토탈과 화장품 기업 로레알도 1억유로를 기부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정치적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노랑조끼들의 경우 이러한 재벌들의 기부에 대해 빈곤층을 위한 기부는 외면한 기업 홍보와 효율적인 세액 공제의 수단이라 비판하고 있다. 사회전체가 참여하는 관심과 기부의 양태는 2008년 숭례문 화재 때의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숭례문 재건에는 기업이 현금을 기부한 적은 없다. 모든 경비를 국고로 충당했고 일부 기부 기업들은 기와 제작 등 현물기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이는 문화유산의 관리가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며, 기부금품모집규제법에 의해 기업의 기부가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는 물론 미래의 문화유산이 될 미술관이나 박물관 소장품 구입예산은 엄청난 재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국가가 모두 감당할 수 없다. 기업이나 자산가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기부제도를 활성화하고, 문화기부에 따른 세제혜택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법제화가 강구되어야 한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대학의 봄날은 다시 온다

대학의 봄날은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낯선 정적에 휩싸여 있다. 강의실을 처음 들어서면 신입생들의 표정은 너무나 들떠 있고 가벼운데도 참을 수 없는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학생들은 아직 나른하고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너무 기나긴 수험생활로 지쳐 있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이제 정말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데 여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상하게도 대학생들이 서투를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당연히 대학생이니 모든 것을 알아서 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신입생들이 분명히 잠재력은 있는데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단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풀어내는 방법을 약간만 예시해주어도 예상치 못한 훌륭한 결과물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대학의 교육은 영혼의 밭에 일종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씨앗이 싹터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영혼에 뿌려진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지를 보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인내심이 필요하다.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가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의 영혼에 작은 꽃이 피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교육은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하데스(hades)에 씨앗을 감춰둔 것과 같다. 비록 어둠 속에 있지만 그것은 빛 나고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차갑고 딱딱한 대지를 뚫고 뻗어나가 또 다른 씨앗을 맺을 것이다. 플라톤의 비유에서 현명한 농부는 한여름의 아도니스의 정원에 씨를 뿌리고 여드레가 지나 정원이 화사하게 바뀌는 것을 바라고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축제를 위한 일에 불과하며 며칠이 지나지 않아 뜨거운 태양 아래 시들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가 진정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농사 기술을 사용해 씨를 적절한 곳에 뿌리고 여덟 달이 지나 결실을 맺게 하는 것이다. 현명한 농부가 인내심을 갖고 씨를 뿌리고 돌보듯이 교양교육에서는 기다림의 미학을 갖춰야 한다. 대학 교양교육의 결과는 바로 눈앞에서 아름답고 화려하게 펼쳐지며 감탄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대학들에서 전통적 교양과목들이나 비인기 전공과목들을 통폐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학은 시장논리에 따라 학생들이 선호하지 않는 과목이나 전공을 과감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을 오히려 미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한여름의 아도니스 정원처럼 잠시 화려하게 피어났다 시들어버리는 과목이나 전공을 설치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성과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대학들이 기존에 방만하게 운영되던 교양교육의 과목들을 정비해서 학생들의 기초 역량을 강화시키는 전통적인 인문강좌로 재편하는 작업도 많이 진행되어 정착되어 가고 있다. 현대에서 교양교육은 시민교육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교육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만드는 필요조건이라고 한다. 인간의 삶은 노동과 여가로 되어 있다고 한다. 노동은 여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노동을 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너무나 많이 배워왔다. 그렇다면 노동을 하지 않는 여가(schole)의 시간을 위해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가는 단순히 휴식을 하거나 놀이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기 위해 필요하다. 진정으로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혼의 훈련은 시민교육의 일환인 교양교육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문화카페] 바다를 사랑한 작곡가

바다로 가자. 수락산 계곡에 얼었던 실개천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 어두운 마음까지 맑게 해준다. 개천들이 합쳐진 강물은 슬픔과 그리움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강물이 모여 만나는 바다는 수많은 화가들과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 그리고 상상의 동력이 된다. 바다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특히 파도치는 겨울에 심해로 가면 두려움을 넘어 존경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바다는 침묵의 세계이며 생명의 원천이다. 바다는 비옥한 공간이다. 자연의 어머니요 태초의 모습을 지키는 모성애이며 변신의 제왕이다. 바다의 소리는 자연의 바탕음이며 성스러운 굉음을 포효한다. 한마디로 바다는 교향시이다. 작곡가들은 자연을 주제로 하여 음악을 만드는 것을 즐겼다. 비치보이스의 서핑 유 에스 에이와 비틀즈의 Yellow Submarine 노란 잠수함의 팝송도 익숙한 멜로디이다. 클래식 음악역사에도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작곡가들이 거대한 바다를 오선지에 옮겨놓았다. 독일출신의 작곡가 바그너(1813-1883) 는 20대 시절에 배를 타고 영국으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 공포에 떤 적이 있다. 세 번이나 침몰 직전까지 갔었다. 이 경험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오페라 전체에 광풍으로 표현되고 있다. 셰익스피어 희곡 템페스트의 폭풍장면은 차이코프스키(1840-1893) 의 환상서곡 템페스트의 시초가 된다. 18세 때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사관후보생으로 세계를 항해하며 바다에 깊은 관심을 가진 러시아의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1844-1908) 는 원초적인 화음을 화려하게 승화시키고 바다를 역동성 가득하게 담은 셰헤라제드를 작곡하였다.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1862-1918)는 교향시 바다를 작곡하였다. 드뷔시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판화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를 통해 바다를 새로운 각도에서 경험하며 놀랄만한 영감을 얻게 된다. 이 곡은 서양음악의 역사를 바꿔 놓은 대곡이 되었다. 영국의 작곡가 본 윌리암스 (1872-1958)는 바다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제목과 달리 교향곡이라기보다는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펼치는 광대한 대서사적 오라토리오로 분류할 수 있다. 또 다른 영국출신 작곡가 브리튼(1913-1976) 의 오페라 피터 그라임즈 중의 4개의 바다간주곡은 새벽부터 꿈틀 되는 바다의 변화를 자세히 서술한다. 바다에 비취는 달빛도 상세히 서정적으로 표현된다. 브리튼은 이 곡의 마지막 부분을 분노가득한 폭풍이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불안하고 무시무시한 바다의 이미지를 광기 넘치게 묘사하고 있다. 수락산 계곡에서 박목월의 4월의 노래에 나오는 구절을 음미한다. 아!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무지개가 가득한 수평선도 바라보고 싶다. 산에서 내려와 이제 바다로 가서 봄을 만나자 그리고 느끼자. 힘들고 지친 우리의 겨울을 미련없이 보내고 희망과 열정이 넘치는 봄을 맞자. 세상은 아직 너무 아름답다. 우리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감사하며 행복해하자!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배려와 절제가 있는 봄 나들이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 오며 화려한 봄꽃들이 만개해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함께 마음의 여유를 선물하고 있다. 옛 사람들 또한 만물이 소생하는 본격적인 봄을 맞이하여 야외로 나들이를 했으니 음력 삼월 삼일을 삼짇날이라 하였으며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날 들판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새 풀을 밟으며 봄을 즐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삼짇날의 대표적인 민속으로는 남자들은 활터에 모여 활을 쏘며 호연지기를 겨루는 궁술회를 즐겼고 부녀자들은 진달래꽃을 꺾어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참기름을 발라가면서, 둥글게 지져 먹는 화전(花煎)놀이를 즐겼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전라북도 태인(泰仁)에 은거한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은 만인 성종 연간에 그곳의 봄 경치를 읊은 가사 상춘곡(賞春曲)을 통해 봄 경치를 읊으며 자연 속의 여유와 풍류를 노래했다. 현대어로 옮긴 시를 통해 잠시 예 사람의 정취를 느껴보았으면 한다. 세상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이 나의 생활이 어떠한가. 옛 사람들의 운치 있는 생활을 내가 미칠까 못미칠까? 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서 나만한 사람이 많건마는 왜 그들은 자연에 묻혀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 것인가? 몇 간쯤 되는 초가집을 맑은 시냇물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구나! 엊그제 겨울이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저녁 햇빛 속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들과 아름다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 조물주의 신비스러운 솜씨가 사물마다 야단스럽구나! 수풀에서 우는 새는 봄 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하여 소리마다 아양을 떠는 모습이로다. 자연과 내가 한 몸이거니 흥겨움이야 다르겠는가? 사립문 주변을 걷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 천천히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산 속의 하루가 적적한데, 한가로운 가운데 참된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없이 혼자로구나. 여보게 이웃 사람들이여, 산수 구경을 가자꾸나. 산책은 오늘 하고 냇물에서 목욕하는 것은 내일 하세. 아침에 산나물을 캐고 저녁에 낚시질을 하세. (정극인의 상춘곡 중)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하며 유유자적 봄을 즐기는 소박한 삶의 정취가 느껴지는 시였다. 경기도와 중부지방에서도 다양한 봄꽃 축제가 열리기에 몇 곳을 소개해본다. 4월 초 양평에서는 산수유한우축제가 있고, 중순에는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축제가 있으며, 하순에는 군포시 산본 철쭉동산에서 철쭉축제가 있다. 또한 고양 호수공원 일원에서는 고양 국제 꽃 박람회가 5월까지 열리고,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에서도 봄나들이 봄꽃축제가 개최된다. 말 그대로 백화가 만발하는 봄을 맞이하여 많은 시민들이 나들이를 떠나기 전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먼저 꽃을 함부로 따지 않고 꽃밭을 훼손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버렸으면 한다. 또 공공시설에서 질서를 지키지 못하거나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수준 높은 시민의식으로 배려와 자제를 통해 즐거운 봄나들이가 되었으면 한다. 한덕택 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축제가 된 강릉의 커피문화

강원도는 50.7%의 산야지대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령(嶺)과 계곡이 있고 강릉과 철원, 춘천, 원주와 같은 평야지대에서는 일 년 내내 자연과 지역문화와 아름다운 환경을 이용한 30여 가지 축제가 열리면서 4년 연속 1억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모이는 축제도시가 되었다. 특히 강릉은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경관과 깨끗한 물로 인해 차 문화 발상지인 화랑의 다도유적 한송 정이 경남의 김해시와 하동군과 함께 3대 차(茶)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1997년부터 헌 다례 및 들차회 행사를 개최하여 크고 작은 카페들이 강릉에 모여들면서 카페골목이 형성되었고 카페거리엔 다도인(茶道人)과 바리스타가 웰컴 차를 대접하는 이색 찻집이 자리하게 되어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도 많은 활약을 한 곳이다. 2001년 강릉에서 처음 커피를 시작한 보헤미안은 대학에 바리스타과정을 개설하고 커피를 교육적으로 접근하여 정통성 있는 바리스타를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다음해에 시작된 테라로사는 로스팅 공장을 운영해가며 커피를 산업화해서 널리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커피전문점으로 시작된 커피쿠퍼는 커피 박물관을 개관하고 처음으로 커피묘목을 재배해가며 크고 작은 지역행사를 만들어서 커피와 박물관의 문화를 접목한 차별된 운영방식으로 사업을 성장시켰다. 커피쿠퍼와 카페운영자들은 커피 애호가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 급속히 성장해온 커피문화를 강릉의 가을 축제(2009년부터)로 즐기고 있다. 이는 강릉에서 공동체 활동을 다져온 3대 바리스타의 역량이 이미 자원화된 커피를 교육과 산업과 문화로 이끌어내면서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인식한 道와 市의 충분한 지원을 받아가며 官과 民이 화합한 축제이다. 축제의 장은 세계유명바리스타의 우수한 핸드 드립커피를 즐기면서 배우고 바리스타 세미나와 커피 어워드 행사 등에 참여하는 젊은 세대의 감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문화행사로 진행된다. 커피는 을미사변(1895)당시 외국공관으로부터 처음 들어왔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해방 이후 인스턴트커피 다방이 유행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기호식품이다. 1970년대 국내에서 인스턴트커피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배합된 믹스커피가 한창 유행하였고 1990대 들어서 원두커피의 소비가 급상승하고 외국계커피회사가 들어오면서 국내의 테이크아웃커피점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2018년 국내 커피시장 규모가 10조원을 돌파했다는 기록과 함께 한국인 1인당 연간 커피소비량이 500잔이 넘는 오늘날의 커피문화로 본다면 일찍이 커피축제의 성공은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비콕스(Harvey Cox)는 인간의 이성적 사고가 축제의 감성적인 욕망을 경험하면서 문화가 발달되는 것이라 했듯이 축제는 공연과 전시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오감을 경험할 수 있는 재미와 감동으로 참여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축제가 외부전문가초청이나 마을 공동체의 공연예술과 지역특산품을 알리는 전시와 연계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소통을 강조하는 이벤트를 만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듯이 커피축제에 참여한 관광객들은 박물관관람객으로도 참여되어 예상치 못한 관람료 수입으로 박물관운영과 지역문화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강릉에서 커피와 같은 외래문화가 타문화에 전용된 역사(시간)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축제로 자리하게 된 것은 급증한 커피애호가들의 기호에 따른 시대적 요구에 따라 관과 민의 협력이 있었고 지역의 환경과 교통의 편리함에 힘입어 우리의 정서로 재해석된 교육과 정보와 재미와 감동으로 참여되기 때문이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현대미술 정말 어려운가?

사물은 바라보는 시점(視點)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르게 보인다. 가까운 곳의 작은 사물이 먼 곳의 큰 사물보다 크게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보기 방식을 최초로 발명하여 활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이다. 이것은 3차원을 2차원으로 옮기는 창의적 기법으로 당대 최고의 건축가 부르넬레스키가 발명했다 한다. 화가들은 원근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수준 높은 화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모두 완벽한 원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원근법을 적용한 모든 그림에는 소실점이 있어 먼 곳의 사물들은 화면에서 사라진다. 투시원근법의 전통은 서양의 합리주의와 과학의 산물로서 20세기 초까지 서양미술을 관통하는 중심 원리였다. 뿐만 아니라 서양의 근대를 지탱해온 시각 원리였다. 서구문화를 기반으로 교육받은 우리 역시 투시원근법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동양의 그림들은 서양과 달라서 먼 곳의 사물을 가까운 곳의 그것보다 더 크게 그리기도 하고 중요한 사물들을 크게 그리는 등 서양의 원근법과는 다른 시각을 구현해내고 있다. 물론 중세의 서구 미술 역시 중요한 존재를 크게 강조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같은 지역이라도 문화적 차이에 따라 보는 방식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르네상스 이후의 미술은 원근법뿐만 아니라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을 구별하는 명암법과 입체법이 사물의 사실적 재현 효과를 극대화했다. 20세기 말 나타난 현대미술은 일반인들에게는 무척 난해하게 여겨진다. 대부분 작품들에는 구체적인 형상이 화면에서 사라지면서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추상미술로 불리는 이러한 미술들은 결국 문화적 인식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하나의 시점으로부터 다양한 시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으로의 변화이다. 또 그 시각의 결과물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이것이 추상미술을 탄생케 한 입체파의 시각이다. 결국 눈에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사물의 형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객관적 보기로부터 주관적 보기로 옮겨간 것이다. 주관적 보기는 사물을 보되 느낌에 따라 형태를 왜곡시켜 보거나 외형보다는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 요소인 선, 색, 면만으로 보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음악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려는 태도로 진화했다. 결국 관람자들은 작가의 주관적 보기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작품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많은 관람객들에게 미술작품은 난수표와 같은 존재가 되어 현대미술을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은 정말 어려운 것인가? 21세기 작가들은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촉각과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에 의존하면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미술의 영역이 엄청나게 확대됐다. 그들은 단순한 시각적 보기에서 벗어나 사물을 인식하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예술작품은 아름다워야 하고 작가가 직접 그리거나 만들어야 한다는 인습을 탈피하여 기성품을 예술로 주장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추함을 미술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들은 근대 투시원근법이나 추상미술의 시각적 원리를 넘어선다. 사물이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려 하기 때문인데 이 관점들은 보는 이에 따라 작가와 공유점을 가지기도 하지만 전혀 새롭게 이해되기도 한다. 따라서 관람은 그 관점을 찾아내고 자신의 관점과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개입으로 충분하다. 현대미술은 관람자에게 열려 있고 그들이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상상하고 관점들의 접점을 제공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분노사회와 이성의 역할

현대 한국사회에는 분노가 차고 넘친다. 흔히 말하는 분노조절장애는 특별한 종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 자신조차 스스로 의심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 할 수 있는 대중음식점이나 유흥점이나 또는 길거리 등에서 잔뜩 화가 나서 얼굴을 찌푸리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발견한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로 인한 피해의식과 상대적 박탈감이 극단적으로 흘러가면서 타자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분노의 치유를 위해서는 분노의 원인과 대상을 스스로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먼저 분노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마땅히 분노할만한 일인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의 원인으로 적절한 근거나 이유 없이 부당하게 당한 경멸이나 모욕 및 무시 등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분노의 대상에 대해 마땅히 분노할만한 대상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분노의 주체는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이나 호의를 베풀었는데 보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노한다. 나아가 우리의 불행을 기뻐하는 사람이나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분노한다. 분노의 대상을 적절하게 판단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에게도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심지어 불특정한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분노를 표출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폭력 행위나 범죄를 야기하기도 한다. 분노가 이성에 의해 통제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 때문에 트로이전쟁 9년 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했다. 그러나 아가멤논을 치기 위해 칼을 뽑아들기 직전에 이성의 힘을 발휘하여 분노를 억누르고 그리스 진영에 닥칠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보통 인간의 능력으로는 분노를 극복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수많은 그리스군사들을 죽음의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나아가 분노는 복수와 원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에서 이아손이 아르고호의 모험을 통해 황금양피를 찾아 귀향하는데 너무 많은 희생을 했던 메데이아는 남편이 자신을 배신하고 코린토스 공주와 결혼을 추진하자 배신감에 치를 떨며 분노한다. 그녀는 분노로 인해 미칠 듯했지만 냉정하게 이아손이 가장 큰 불행의 늪에 빠지도록 그의 자식까지 살해한다. 메데이아는 분노에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이성을 도구로 사용하여 끔찍한 복수를 한 것이다. 분노는 일단 일어나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분노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까? 세네카는 분노를 아예 악덕으로 규정한다. 분노는 이성을 내동댕이치며 광포하고 역병처럼 파괴적이다. 그래서 스스로 끊임없이 감시하여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에 중용의 원리를 적용하여 적절한 분노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나치게 분노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너무 분노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한다. 그렇지만 분노를 적절하게 하기 위해선 우리의 이성을 매우 탁월하게 발휘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일으키는 분노의 다양한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분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타자와 공감하며 배려하는 능력을 함양시킴으로써 더욱 강화될 수 있다. 분노의 시대에 이성은 더욱 자신의 역할을 해야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폭력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문화카페] 때로는 슬픈노래가 좋아요

1975년 유승엽은 슬픈노래는 싫어요.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요 로 가수 데뷔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 노래도 결국은 슬픔을 잊으려고 몸부림치는 행위의 일부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지막이 노래한다. 아파트입구에서, 사무실에서, 주차장에서 잠시도 노래를 멈추는 일이 없다. 누군가가 들어주기를 바라며 부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연히 노래를 들으신 계단을 청소하시는 분은 선생님은 늘 좋은 일이 있나 봐요?라고 하신다. 이분처럼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야 노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방방곡곡에 노래하는 그룹들이 많다. 어린이, 청소년, 어머니, 아버지, 남성, 여성, 혼성 등 나눌 수 있는 모든 카테고리에서 무수한 합창단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때때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를 찾다 보면 주최측은 성악가의 동반을 강하게 원한다. 노래하는 연주자와 청중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이처럼 음악은 오로지 행복한 순간을 위해 또는 즐거움을 고취시키기 위한 보조도구에 불과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곡가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음악에는 밝은 분위기의 장조(major)와 우울하고 슬픈 분위기의 단조(minor)로 구분된다. 조성의 선택은 작곡가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18세기 작곡가 모차르트(1756-1791)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총 18곡인데 그 중 16개가 장조이고 2개만이 단조이다. 모차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작곡한 것이 8번 소나타는 가 단조이다. 동시대의 작곡가 베토벤(1770-1827)의 9개의 교향곡 중 가장 알려진 것은 제5번 운명 다 단조 와 제9번 합창 라 단조이며 나머지는 모두 장조이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앞서간 하이든((1732-1809) 은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밝은 교향곡을 남겼지만 교향곡 44번 슬픔과 45번 고별의 조성에는 단조를 선택하였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6개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제3번 교향곡을 제외한 5개의 교향곡이 모두 단조로 작곡되었다. 계단에서 청소를 하시는 그 분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저요? 슬퍼서 노래합니다. 그 분이 들었던 나의 노래는 보고 싶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른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의 1악장이었다. 작곡가가 처절한 심정으로 빚은 선율을 나의 것으로 만든 것이었다. 지우고 싶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부끄러운 순간들이 뇌리를 스칠 때 평소보다 빠른 템포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노래한다. 진정으로 나의 가슴에서 거칠게 진동하는 베토벤의 강렬한 주제가 아니면 그 순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병약한 아내를 향한 아련한 애틋함은 브람스의 교향곡 4번 마단조의 2악장 선율을 포근하게 노래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볼 수 없는 딸에 대한 그리움은 딸이 어릴 적 함께 불렀던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4악장의 주선율을 빌려 노래한다. 작곡가들의 창작효과가 극대화된 시점은 어머니를 잃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쓰라린 헤어짐 후, 극심한 혹평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처절한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시간 등이었다. 이런 순간들은 대체적으로 단조로 만들어진다. 슬픈 심정을 노래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한층 더 윤택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슬픔이 주변을 맴 돌 때 조용히 그리고 포근하게 노래하자! 그리고 잊지 말자. 진정한 음악의 가치는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상처받은 영혼을 쓰다듬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경기도의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가

올해는 31만세운동 100주년인 동시에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일제에 국권을 침탈당한 것에 반발한 조선 백성들은 전국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으며 경기도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한 31만세운동은 경기도 지역으로 확산되어 그해 5월 말까지 경기도내 25개 지역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이때 집회 횟수는 303회, 참가인원은 6만 8천100명에 이르렀다. 격렬했던 시위의 양상만큼 일제의 탄압도 잔혹해서 사망자가 1천469명, 부상자 2천677명, 당시 체포됐던 인원은 4천220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경기도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3일 개성, 7일 시흥, 10일 양평, 11일 안성, 14일 양주, 22일 김포, 23일 고양 수원, 24일 부천 장단, 31일 이천, 4월 1일 여주 등 도내 22개 시군이 참여해 4월23일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제암리교회 사건은 당시에 일어난 일본의 만행과 민족 수난의 대표적 사건으로, 4월15일 일본군은 시위에 적극적이었던 제암리에 출동해 주민들을 교회에 모이게 한 후 석유를 뿌려 불을 지르고 교회에 총을 난사해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다. 이런 일제의 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의 백성들은 다양한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으며, 많은 경기도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들 일제의 폭정에 항거하였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안재형, 여운형, 조소앙, 엄항섭 선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평택 출신의 민세(民世) 안재형은 일본유학파로 상해로 망명하여, 이회영(李會榮)신채호(申采浩) 등이 조직한 동제사(同濟社와 비밀결사인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상해 임시정부의 연통부(聯統府) 역할을 수행하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양평 출신의 몽양(夢陽) 여운형은 상해임시정부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후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으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신문이 폐간되어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1944년 8월 독립운동과 국가 건설을 위하여 조선건국동맹(朝鮮建國同盟)을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도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파주 출신의 용은(鏞殷) 조소앙은 일본 유학 후 교편생활을 하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 겸 외무부장을 역임했다. 임시정부의 내분을 수습하려고 김구(金九)안창호(安昌浩) 등과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결성하였으며 1948년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김구 등과 남북협상에 참가하였다. 여주 출신의 일파(一波) 엄항섭은 일찍이 보성법률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몸담게 된다. 임시정부가 분열되고 와해의 위기가 올 때마다 다양한 독립운동 세력을 모으고 정당운동과 광복군 설립의 실무를 담당했으며 김구 선생이 가장 믿고 함께한 동지였다. 경기도에서는 이처럼 불길 같은 만세운동과, 헌신적인 독립운동가들이 앞장서서 국권회복과 독립에 이바지하였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였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다. 36년이란 짧지 않은 일제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고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선열들의 뜻을 이어받아 경기도와 경기도민이 남북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에 기여하여 그분들이 이루지 못한 유업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한덕택남산골 한옥마을 예술감독

[문화카페] 지역사회의 플랫폼

서울역 플랫폼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경제, 교육, 문화생태계를 진화시키듯이 오늘날의 플랫폼은 고립화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 되고 있다. 16C에 생성된 플랫폼 용어는 일상생활이나 예술,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편적인 개념으로 확대됐고 20C ~ 21C들어서는 모듈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창조성을 가진 수많은 가치를 결합하여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시대가 됐다. 플랫폼이 일반화되면서 각 문화단체에서도 단순히 물건을 사고팔았던 과거의 비즈니스형태를 벗어나고자 공급자와 수요자와 관계자들이 모여 새로운 비즈니스 형태를 창출해내고 있다. 서울 마을예술 창작 소 중 홍제동의 좁은 골목 안에서는 건강한 예술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마을공동체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홍제동의 옛집들이 중심 무대로 활용되면서 주민과 이웃에 입주한 작가들은 지역의 자원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주인이며 관객이 된 마을주민들은 골목길에서 무용수가 춤을 추고 음악가가 연주하고, 아티스트의 전시를 구경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해가며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마을의 사랑방이 된 작은 거실에서는 다양한 공방이 운영되고 만들어진 소품판매로 수익을 창출하고, 지식 나눔을 위한 교육장소로도 이용되는 제한된 공간이지만 공간을 초월한 플랫폼활동으로 마을공동체의 미래적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영등포의 달 시장은 서울시로부터 수탁된 대학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청소년들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창의적 공간이다. 이웃과 마을의 의미가 살아져가는 현대인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 나 홀로 시대를 벗어난 공동체 활동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모은다. 달 시장을 열어 정보교류의 장을 만들고 새로운 에너지 소생을 위한 축제 속에서 생산과 소비활동을 촉진하고, 학생들의 춤과 노래로 낯선 이웃들과 소통해가며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 인간의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생태적 플랫폼이 운영되는 것과 같이 크고 작은 문화기관들이 플랫폼활동에 집중되고 있다. 2017년 경기도내 공사립 박물관미술관 100여 개관 이상이 참여하여 시작된 경기도 플랫폼지원 사업은 경기도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해서 지역의 문화기반시설과 주민이 함께하는 시설별, 지역별 연계프로그램으로 3년째 진행되고 있다. 박물관, 미술관, 문학관, 역사사료관 등의 독창적인 문화와 지역의 생태자원과 지역민이 함께하면서 예술가와의 만남, 특별전시와 공연관람, 교육체험, 실기체험, 전통과 현대 문화, 운동, 문학 등의 프로그램으로 각 시군은 물론 벽지의 도민들에게도 다양한 문화혜택을 유도하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와 기획프로그램으로 세대별 수준에 맞는 교향악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지역작가초대전과 참여프로그램, 일상적 관심에서 밀린 전통공예 과정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고 사용해보고, 4차 산업 시대에 적응되는 DR. AR 프로그램도 즐기게 된다. 지역공동체가 참여한 마을 장터에서는 박물관의 문화와 함께 소비와 소득이 창출되는 먹거리와 만들기 체험이 있고, 도심과 접근성이 떨어진 곳에서는 농가의 소득 작물과 연계된 학생들의 농촌체험으로 지역의 부가가치는 물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이 경기지역 방방곡곡에서 활동된 플랫폼 관리자들은 환경변화에 대응되는 기관의 문화자원으로 지역민의 참여방법을 유도하고 참여도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기대하듯이 지역공동체의 많은 인파 속에서 나누고 공유하고 경험해가면서 지역사회의 미래적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하기 바란다. 전성임 경기도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가마쿠라와 스토리텔링

도쿄 여행자 중 인근의 가마쿠라(鎌倉)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마쿠라는 도쿄 남서쪽의 해안 지역으로 역사적으로는 일본 막부정치의 발원지여서 많은 신사와 사찰을 가진 관광. 휴양도시이다. 또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가마쿠라 대불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츠(是枝裕和) 감독이 만든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2015년 국내에서도 개봉된 이 영화는 15년 전 바람나 집을 나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그간 모르고 지냈던 이복 여동생을 만난 세 자매가 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동고동락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을 사랑으로 치유해가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주로 가족을 소재로 삼는 감독 특유의 감성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소환하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관광객들은 에노선이란 시골 기차를 타고 영화의 배경이 된 이곳저곳을 찾아 나선다. 주인공들이 단골로 가던 요시노 식당에서의 쉬라스동(찐 잔멸치 덮밥)을 먹어보기도 하고, 네 자매가 아버지를 추억하며 함께 올랐던 기누바이산을 찾아 오르기도 하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해변을 거닐기도 하면서 영화가 보여준 삶의 의미들을 반추한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만화가인 이노우에 다케이코(井上雄彦)의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첫 장면의 배경인 가마쿠라고등학교앞 역 건널목은 강백호의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유명한 포토존으로 관광객들의 성지가 되었다. 이런저런 연유로 카마쿠라 여행의 필수 수단인 전차 에노덴은 비수기에도 국내외 관광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조용한 시골마을은 활기가 넘친다. 이곳은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바닷가 시골마을에 불과하다. 조금 색다른 풍경이 있다면 에노시마라는 섬이 있어 밋밋한 해변 풍경에 변화를 주고 있을 뿐. 하지만 장소에 이야기가 결부되면서 장소의 가치와 의미는 전혀 달라졌다. 우리의 도시재생이니 마을 만들기가 하나의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최근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정책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한 정치인이 목포의 쇠락한 거리를 전통 문화적 요소를 도입하여 재생시키고자 한 사건을 계기로 도시재생은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 개념은 2.3차 산업 쇠퇴의 여파로 인구가 빠져나가 쇠락해진 원도심 지역을 살리기 위해 개발보다는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시도이다. 이를 위해 원도심 특색을 살린 문화공간 조성이나 벽화제작, 공공조형물의 구축 등의 정책을 추구한다. 과거와 달리 개발논리에 급급하지 않고 기존의 여건을 최대한 유지하며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정책적 변화는 바람직한 방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조차도 유형화되고 획일화될 수 있는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이러한 정책이 자칫 유사한 벽화마을을 양산해내거나 커피숍만 늘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는 생물체와 같이 쉼 없이 변화하는 것이어서 작위적으로 급격하게 무엇인가를 조성하려 할 때 늘 기형이 탄생한다.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중시하여 정책은 그 삶이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의미를 가지도록 조력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물리적인 환경변화나 작위적인 공간의 조성은 단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본래의 공간이 가진 정신적 가치를 높일 수는 없다. 물리적 개발보다는 장소와 공간에 스토리를 덧입히는 작업이 몇 십 배의 효과를 가진다. 우리의 도시재생이나 마을 만들기의 전략을 물리적 조성에서 스토리를 결부시킨 의미의 구축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가 사는 마을에 작은 이야기들을 개발해 내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결여된 가마쿠라(鎌倉)였다면 그곳은 여전히 무명의 바닷가 시골마을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사업소장

[문화카페] 기억의 산물로서 박물관과 상처 입은 영웅

지난주에 남해로 답사를 다녀왔다. 겨울 방학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막상 답사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전날까지도 계속 망설이며 고민했다. 사실 나는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시간에 맡긴다. 시간이 흔들리는 마음을 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적절한 순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면 처음 그 순간 정한 것을 번복하지 않는다. 모든 망설임은 끝이 있고 나는 이제 답사를 가야 한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그냥 모든 것들을 한순간 멈춰버리고 급히 몇 가지만 챙겨서 떠났다. 사실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을 간다는 것만 기억났다. 나는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강진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지금 하지 않으면 못한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언제 지금 이 순간이 멈추고 미래에 다가올 지금들이 사라질지 모른다. 첫날 오후에 강진에 도착해서 보니 다산초당과 다산박물관을 돌아보는 일정이 준비되어 있었고, 다음 날 통영에 있는 윤이상 기념관과 박경리 기념관을 들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 와서 보니 다산의 경우는 박물관이지만, 윤이상과 박경리의 경우는 기념관이었다. 솔직히 당시에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의 차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모두 특정 인물에 초점을 두고 있어 유사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는데 모두 기억과 연관된다. 박물관(Museum)은 어원적으로 뮤즈의 집(Museion)이다. 뮤즈들은 그리스어로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무사 여신들(Musai)이며 기억의 여신 므네모쉬네(Mnemosyne)의 딸들이다. 기념관(Memorial)도 기억을 의미하는 므네메(Mneme)에서 유래되었다.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모두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과 관련된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의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답사에서 우연히 연속적으로 만나게 된 정약용, 윤이상, 그리고 박경리를 기억하면서 문득 아주 평범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사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났던 것을 대상으로 삼지만 실제로는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억의 대상은 과거에 있지만, 기억의 주체는 현재에 있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이번에 박물관과 기념관에서 만난 위인들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했다. 과거에 그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자로서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인생의 여정에서 만난 또 다른 나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만든 놀라운 업적이 아니라 그들이 겪은 삶의 고난과 역경이 내 마음에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삶의 서사를 보며 연민과 공포를 느끼면서 나의 고통을 치유하는 경험을 했다. 세네카는 왜 선한 사람들에게 많은 불행이 닥치는 것처럼 보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엄밀히 선한 사람들에게 불운이 닥칠 수는 없다고 한다. 선한 사람들에게 닥치는 고난과 역경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다. 그것은 선한 사람들을 시험하고 단련시키기 때문이다. 세네카는 오히려 운명과 싸우며 우리 자신을 강하게 만들라고 한다. 우리 자신이 위대한 사람인지는 운명의 여신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내가 박물관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단순히 놀라운 업적 때문에 위인들이 아니라 불굴의 정신 때문에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그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보다 더 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이다. 나는 살아가면서 내게만 일어났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불운들에 대해 항상 반추해 보았다. 내게는 힘든 기억들이지만 나를 혹독하게 단련시켰고 작은 것에서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했다. 나는 박물관에서 수많은 고난들을 견디었던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위로를 받고, 그 잔인하고 척박한 삶 속에서도 꽃피어낸 작품들에 감동을 받았다. 박물관이 우리의 서사적 상상력을 통해 공감받고 치유되는 공간으로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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