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오늘 당신의 워라밸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변함없이 길을 걷거나 차를 타거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 손에는 여지없이 휴대전화가 들려 있다. 손에 쥔 휴대전화 안에는 무엇을 보든 소비를 자극하는 이미지와 문구들이 넘쳐난다. IT를 기반으로 한 최첨단 산업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소비자의 관심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알고리즘으로 한 두 가지 검색만으로 비슷한 정보들이 떠오르고 나도 모르는 사이 데이터에 의해 나의 취향이 결정된다. 화려하거나 단순하거나 소비를 강요하는 넘치는 이미지들은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도 전에 인간으로 하여금 공감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장한다.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소비자를 끊임없이 자극해 돈을 벌어들이고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업무를 요구하며 그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 하긴 앞으로 노동자들의 업무조차 로봇으로 대체돼 인간의 노동조차 불필요한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다비드 칼리가 쓰고 클라우디아 팔마루치가 그린 책 누가 진짜 나일까?에서 주인공 자비에는 공장에서 부품의 수량을 계산하는 사람이다. 늘어나는 주문으로 그는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는 일상으로 자신의 사소한 삶조차 돌아보지 못한다. 물고기는 굶어 죽고 가족에게 안부 전화조차 할 수 없으며 친구를 만날 시간조차 없다. 고단한 삶이 싫어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 순간조차 주인공은 그가 그만두면 난감해할 고용주와 생활 형편이 어려워질 가족을 생각한다. 이미 그는 그 자신이 아니고 사회의 한 부속품으로의 삶에 익숙해져 있어 그 자신은 어디에도 없다. 자비에가 일을 그만두려고 하자 그의 고용인은 선심이라도 쓰듯이 복제인간을 만들어 그에게 새로운 삶을 권유한다. 복제인간은 그의 업무를 대신하고 그는 자신의 삶을 살지만 자비에는 어쩌면 거꾸로 내가 복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며 모든 걸 두고 어린 시절 그가 좋아했던 바다로 도망치듯 떠난다. 사람이 일하는 것과 삶의 가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의 가치는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기업의 이윤 추구만을 위한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인간적 가치를 상실하고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 주인공에게서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찾고자 만들어진 복제 인간을 통해서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를 읽을 수 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자비에는 모든 걸 버리고 어릴 적 좋아하던 바닷가에서 짭짤하거나 달콤한 크레이프를 구우면 살아가길 결심하는 선택을 한다. 결국 행복한 삶의 가치를 찾고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삶의 중심이 되어 깨어 있다면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나는 나일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나의 삶의 워라밸은 결국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지만 오늘도 많은 일하는 자들의 뒤에는 그를 바라보는 많은 기대가 그들을 노동의 현장으로 떠민다.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문화카페] 곡우에 딴 차

차를 따는 시기는 곡우(穀雨) 전후가 좋다고 한다. 곡우는 24절기의 여섯째 되는 날로 청명과 입하 사이 약력 4월20일이나 21일께, 봄비가 내려서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시기다. 이때는 한낮의 햇살이 짧아 힘세고 건강한 땅의 기운이 이파리로 밀고 나오기에 곡우 전후로 차 따는 시기를 정하고 이러한 차는 향이 아름답고 약효가 뛰어나다고 한다. 청명은 4월5일께이고 입하는 5월5일께이니 청명과 입하사이의 한 달은 곡우가 되는 기간이다. 우리나라는 이 한 달을 사이에 두고 그해 차 농사를 70% 이상 수확하는 제다원이 제주도를 비롯 해남 강진 보성 지리산 쌍계 화개 등 따뜻한 남도 일원에 분포돼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그 채취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제다 실습은 입하가 지나야만 환영받는다. 입하 지나 훌쩍 지리산 화개동을 갔다. 섬진강에서 화개동으로 들어서자 길섶에 예쁘고 향기나는 제다원 이름들이 줄을 서서 반긴다. 일면식이 없음에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단 차를 내어 대접하는 풍토가 자리 잡힌 듯 미안하고 송구할 정도로 차 인심이 넉넉하다. 하동의 오월은 온통 차의 잔치라고 할 수 있다. 차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찻자리대회가 열리고 차 겨루기대회 등 하동 야생차문화축제는 전국에서 차인들이 관심을 두고 모이는 달이다. 그러나 수준 높게 준비한 올해 아름다운 찻자리는 썰렁했다. 코로나19로 관객이 없어 둘러보는 내내 안타까웠고 주최 측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오랫동안 무거웠다. 이러한 시름을 달래준 것은 녹차로 만든 발효차로 쌍계의 녹찻잎으로 홍차를 만들고 황차 흑차 백차 청차를 만들어 특허를 낸 홍차 명장님의 차 강의였다. 밤늦도록 시음하며 감동을 연발하니 명장님 피곤도 잊고 내내 열강하셨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이파리가 작은 소엽종으로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녹차를 만들지만 차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다양한 기호에 발맞춰 발효차는 물론 가루차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화개동 어디에서나 선 채로 그 자리에서 한번 빙 둘러보면 차나무에 햇볕이 들지 않도록 채광막의 차밭이 상당히 눈에 띈다. 알아보니 예쁜 색깔의 녹차가루를 만들기 위함이고 이 가루차는 스타벅스에 들어간다고 한다. 가끔 차를 소개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이 차는 야생차로 손으로 덖은 수제품이라고 하며 재배차나 기계로 만든차에 비해 그 가격이 높음을 매우 강조한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는 야생차나 재배차는 모두 밭이나 산에서 자라기 때문에 구분을 짓는 일은 옳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야생이나 재배 모두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라지 않고 밖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또 수제차를 기계로 만든 차에 비해 월등하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옳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차를 만드는 일은 차를 우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차는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법으로 비벼냈는지 그 과정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좋은 차는 좋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도시는 물론 시골 구석구석까지 커피 소비 세계일등 한국이 돼버린 지금 몸도 마음도 편안에 들게 하는 건강한 우리의 곡우차가 결코 커피에 밀리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이 시대의 정명을 위하여

청년들이 좋아하는 TV 교양프로그램의 삼국지 조조 편에서, 이 시대는 유학(儒學)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거세된 상태라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다. 유학이 인격과 권력의 도덕화를 지향하지만, 신분사회의 산물이며 개인의 개성과 자유에 별 관심이 없고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성차(性差)를 차별로 이끌기 쉬우며 솔선수범을 부각하지만, 권위와 서열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 유학을 역성혁명의 명분으로 내건 조선의 500년 왕정이 실제 그러지 못했으며 후기에는 기득집단의 교조주의로 고착돼 근대를 지향하는 다른 학문과 사상을 억압했다. 두 외척가문의 세도정치를 야기하고 민중의 정당한 봉기를 민란으로 규정하는 틀이었다가, 결국 나라를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오류와 귀결이 유학의 그 가치 때문이었는가? 아니다. 그 가치를 정치와 일상에서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명분으로 삼고 실제로는 그 역행(逆行)과 악용(惡用)을 일삼은 위선(僞善) 세력 때문이었다. 역설이 아니면서도 역설인 이 문제가 진실이며 유학의 한계라면 한계요, 죄라면 죄다. 1910년 망국에 직면하자 막심한 피해자였는데도 오히려 역사와 민중에게 자결로 사죄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 1842-1910)와 매천(梅泉) 황현(黃玹 : 1855-1910) 등의 염치에서도 우리는 유학의 진짜 실천을 보며 감동에 젖는다. 공자는 유학 가치의 실현에서 위선을 우려하며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정명은 명분과 실제의 일치를 거듭 강조한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위치와 직능에 그 이름대로 충실해야 삶에 진정성이 있고, 국가와 가정의 안정과 발전도 기약할 수 있다는 논리며, 그 일치를 이루는 소양은 역시 인의예지신이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비리와 범죄가 연속 발생하고 있다. 제어하고 징벌하는 제도와 법이 없어서인가. 악당을 능가하는 계략으로 악당을 제압해도 악당이다. 그리하여 유학의 오랜 주장, 유학의 그 가치들이 제도와 법과 융합해 질서를 형성해야 보다 나은 인본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의 화두인 공정도 인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통합과 복지 확대도 그렇다. 왕조시대에 유학 선비들은 힘이 없었지만, 이 시대의 시민들은 권력의 폭력에도 더 이상 속수무책이 아니다. 자신의 개성과 욕망을 분출하며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 과학과 기술과 경제와 매니지먼트가 세상을 유력하게 이끄는 시대, 4차산업과 AI가 대두되는 시대일수록, 사회와 관련된 개인의 수신(修身)을 강조하면서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 휴머니티를 우리 청년들이 추구하게 하려면, 유학의 인의예지신을 그 텍스트로 제공하는 배려가 가장 적합하고 효율성도 높지 않겠는가. 다만 유학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비판되면서 인의예지신 구현도 그 조건과 의의가 조정돼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도 마르크시즘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페미니즘과 국제사회를 또 동요시키는 시오니즘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삶에 관류하는 다른 가치들과 어울리면서 일상에서 그 실천이 가능한 행동양식(樣式)들이 무엇인지, 이 시대의 유학자들과 관련 기관들이 앞으로 더 활발하게 제안을 지속하기를 기대한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ㆍ시인

[문화카페] 어머니

베토벤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아들에게 돈벌이를 시키려고 11세때부터 생계형 연주를 시켰다. 베토벤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레나 케베리히는 이런 남편으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감싸주었다. 베토벤이 인류역사에 가장 훌륭한 음악가가 된 것은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다. 22살의 모차르트는 소년 시절 천재로 인정받고 대성공을 거둔 파리에서의 화려한 복귀를 꿈꾸며 어머니 안나 마리아와 함께 파리로 향한다. 어머니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고 아들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파리에서 성인이 된 모차르트를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 빛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파리의 남루한 호텔방에서 아들은 허기에 지친 어머니를 하늘에 보낸다. 어머니는 위로의 손길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최후의 피난처이다. 내게도 그런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떠 올리고자 창가를 자주 바라보지만, 그 많은 사랑의 순간들을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다. 사랑받음이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특별한 것이 아닌 보편화 되었기 때문이다. 막내인 나의 손을 잡고 시장을 가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기억한다. 동네시장에서 콩나물 한 움큼 사서 여섯 식구가 국 끓여 먹던 시절이다. 미아리고개 넘어 삼양동 달동네에서 피아노교습소를 찾아 1시간 이상 걸어다니며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골짜기에서 우수하다고 소문난 선생님을 찾아 헤매던 어머니 덕분이었다. 첫 레슨시간에 어머니손을 잡고 산동네 길을 내려오던 1960년대의 삼양동은 익숙했던 옆집이 무허가 건물로 철거되어 하루 만에 없어지던 시절이다. 새 학년이 되면 작성하는 가족신상란에 부모님의 학력을 적는 칸이 있었다. 어머님의 학력이 국졸 (초등학교 졸업) 또는 국퇴 (초등학교 중퇴) 인지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국졸이라고 쓰는 편이 조금 나아 보여 그렇게 쓰곤 했다. 어머니가 중학교도 나오지 않은 것이 부끄러웠다. 나의 어머니는 50세에 중풍으로 쓰러진 후 기적적으로 몇 개월 후에 일어났지만, 반신불수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한쪽 몸이 점점 기울어지는 상태로 88세까지 사시면서 하루도 재활을 게을리하신 적이 없다. 불구의 몸을 철저한 관리와 운동으로 극복하시고 모든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신 위대한 챔피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어머니가 쓰러지시던 그해, 나는 군대에 입대하였다. 겉으로는 많이 울었지만 우환이 있는 집안을 떠나는 것이 조금은 다행스러웠다.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또 다른 피신이었다. 가족들이 유학에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인 찬성을 하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뿐이었다. 유학비용을 염려한 가족들의 판단을 뛰어넘는 무학력 어머님의 선택은 위대하였다 가라우, 우리 신익이래 뭐든 할 수 있지 안카써?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 개척교회 목회자의 아내로 빈궁함 속에 여섯 식구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인 달동네의 가난과 헐벗음에서 훌쩍 떠나고 싶었던 적도 많았을 것이다. 나를 품에 안아 주시던 어머님을 내가 성인이 된 후 꼭 껴안고 하룻밤도 지내지 못한 불효자이다. 어머니가 위급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여 어머니의 손을 잡았으나 그 손은 차가웠다. 오늘도 어머니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를 향한 그 사랑의 눈길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내 음악의 본질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그리움이 내 음악을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어디서도 다시 찾을 수 없다. 함신익 심포니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인생극장의 배우들

#배우1 : 필자인 나는 배우다. 정확히 말하면 배우 호소인이다. 일간지 연극담당 기자일 때 연극 출연을 꼭 하고 싶었다. 이 뜻을 기특하게 여긴 저명한 연출가가 기회를 줘서 배우가 됐다. 대학로 어느 대극장 무대서 데뷔했다. 쟁쟁한 출연진 틈에 끼어 기자 역을 열연했다. 분장을 하고 배우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정이 복받쳤다. 이후 순정한 연극 사랑이 짙어졌다. #배우2 : 변호사 선배도 배우다. 첫 출연이 아직까지 마지막인 나와 달리 꽤 이름 있는 연극과 영화에 수차례 출연한 베테랑이다. 주연급도 있지만 대부분 단역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광역시 연극에 아역 출연이 계기가 돼 연기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섭외가 뜸한 요즘도 언젠가 불러줄 날을 고대하고 있는 준비된 프로다. 그 뜸한 이유를 묻고 놀리면 몸값이 오른 탓이라고 응수한다. #배우3 : 다음은 진짜 배우 이야기다. 아무리 단역이라도 배우1과 2의 연기가 가짜일 리 없다. 여기서 진짜라 함은 참을 뜻한다. 참 배우, 배우다운 배우. 어느 작품이든 역할과 직분에 빈틈이 없는 배우를 나는 참 배우라고 부른다. 올해 여든이 된 배우 박정자는 참 배우다. 지난주 막 오른 팔순 기념 공연 해롤드와 모드는 그 증거물이다. 극 중 19세 청년과 교감하는 박정자는 사뿐사뿐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는 진짜 배우다. 한자로 배우(俳優)의 배자는 사람이 아니다는 의미. 사람이 아니면 신이어야 한다. 연기의 신이 있다면, 연극에서 훌륭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는 신이 아닐까? 배역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페르소나(persona, 가면을 쓴 인격)는 인간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배우4 : 배우 윤여정. TV 브라운관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영화 미나리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5천년 한민족 역사의 첫 오스카상의 주인공. 칸느베니스베를린 등 명성 있는 유럽 대안 영화제가 있다 해도, 할리우드 아카데미 영화상은 주류 영화의 정상이다. 여기서 다른 부문이 아닌, 연기상을 탄 것은 가문의 영광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세계의 배우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국격의 차원을 높인 쾌거로 나는 본다. #배우5? : 다섯 번째 이 자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당신, 여러분이다. 우리의 일상은 배우의 삶이나 다름없다. 나를 감추고 상황에 따라 연기해야 하는 배우의 그것. 연기법으로 메소드 연기라는 게 있다. 의사면 의사, 기자면 기자 등 어떤 배역의 정형성에 몰입해 최대한 사실감(리얼리티)을 끌어내는 연기법.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메소드 연기의 현장이다. 리얼해야 덜 까이는 냉혹한 현장. 셰익스피어는 세상은 무대요, 인생은 연극이라고 했으니, 따지고 보면 배우로 살다가는 게 우리의 일생이다. 주연이냐 조연이냐는 그 사람의 몫. 보통 사람들은 조연보다 주연으로 살고 싶지만, 그 또한 허망한 일이다. 조연도 됐다가 주연도 되는 게 인생이다. 오스카상 조연상이 주연상과 다를 게 뭐람! 그때그때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올인하면 인생극장의 명배우가 될 수 있다. 윤여정의 오스카상이 우리에게 준 선물 같은 교훈이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카페] ‘걷다 보면’ 보이는 세상

추위로 인해 빨랐던 걸음들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다소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바뀌고 두터운 외투도 벗어 버리는 봄이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 일상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스크에 가려 좋은지 싫은지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금지되고 마주앉아 차 한 잔 나누기도 조심스러워 사람 간의 사이는 멀어져 소통하기 더욱 어려워져간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상념이 고개를 들고 눈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공감의 시간이 줄어드니 사람 간에서 느낄 수 있는 온기와 위로는 얻기 어려워 정서는 더욱 메말라가는 듯하다. 이럴 때 훌훌 털고 일어나 걸어보자. 걷다 보면 늘 다니던 골목길 언저리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났던 구멍가게 알바생의 잰 손놀림도 보이고 그 옆집 세탁소 아저씨의 뒷모습도 보인다. 골목 중간쯤 보호자를 따라 산책 나온 강아지의 볼일 보는 모습도 보이고 문 닫은 김밥집 주인의 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발길이 가는 데로 천천히 길을 걷다 보면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도 떠오른다. 늘 걸었던 길을 천천히 살피며 걷거나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데로 걷다 보면 의외의 장소를 알게 돼 놀라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과거 기억들과 교차하며 부끄러움에 괜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마음에 괜히 뒤돌아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발견과 기억의 연상은 새로운 사유의 시간이 된다. 걷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장소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파악하는 것은 새로운 기록의 파편이 되며 잊고 지냈던 정서에 자극되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사유들을 두루 살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는 일이기도하다. 사르락 사르락 바람이 불어. 길을 따라 걸어 볼까?로 시작되는 이윤희 작가의 걷다 보면 그림책은 걷다가 발견되는 길거리 바닥의 이미지들이다. 사슴의 모양을 닮은 바닥의 보도블록, 차량 유도를 위해 세워놓은 고깔은 놀이로 변환되고 칠에 벗겨진 건널목 표시는 쥐처럼 보이 기도하고 새끼오리처럼 보이기도 하며 비에 젖은 도로는 흡사 거대한 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릿한 걷기를 통해 보이고 발견되는 것들은 의외의 기쁨을 주며 실리를 따지지 않아 어쩌면 순수로 가는 길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들이 얼마나 많은지. 천천히 걷다 보면 알게 되는 새로운 발견과 성찰의 시간은 스스로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고 조금 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들이다. 걷기를 통해 얻게 되는 소확행이다.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문화카페] 사월은 잔인한 달

그럼에도, 사월은 또 왔다. 반듯하게 쭈욱 뻗은 길가로 노오란 개나리 자지러지고 벚꽃 잠시 눈부시게 휘날리더니 비 온 뒤 이제 철쭉 진달래, 튤립, 할미꽃 그야말로 만화방창이다. 오래된 집들이 꽃 속으로 묻혀 들어가 얼얼한 겨울도 화사한 봄도 꽃 잔치에 잠시 주춤거린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은 어김없이 풀들이 수북하게 올라오고 질경이, 민들레, 제비꽃들과 함께 피고지고 지고피는 사월은 잔인하게 무쌍하다. 사월 들어서면서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따뜻한 하오의 햇살을 등지고 쭈그려 앉아 풀을 뽑는다. 하얗고 가느다란 실뿌리가 보드라운 흙 속에서 쑥 길게 뽑혀 나온다. 비 온 다음날은 유독 촉촉한 흙을 털어내며 미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풀들을 한쪽으로 모으며 읊조린다. 그래 봄이어서 너희 세상구경 좀 하겠다고 안간힘 쓰며 비틀고 나오는데 머리채 돌리며 뿌리까지 뽑아 내던져 미안하구나. 그렇지만 너희들 도리 없이 뽑혀 나와 봄볕에 말라가면서도 내내 씨앗을 봄바람에 흩날리고 있잖니. 사월의 안산은 큰 행사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내 일터가 단원고와 걸어서 10여분 거리여서 그런지 조금은 조용하고 조심스럽다. 나만 그러나 하고 주위를 살펴보면 누구랄 것 없이 해마다 이때 쯤은 비슷한 분위기임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사월엔 노오란 저고리와 화려한 옷을 입기가 괜스레 민구하다. 416 기억식에서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한 여성이 7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친구 이름 하나하나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면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눈시울을 적신다. 일 년이 지났어도 지칠 줄 모르는 코로나는 우리네 일상을 계속하여 힘들게 하고 우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살아내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하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일상이 지금은 수시로 조율되고 있으니 학교교육의 추억은 더욱 멀어만 간다. 심지어 올해 입학한 유치원생은 학원운행 버스에 오르면 곧바로 벨트를 매는 전년도 원생들과 현저히 다르다고 사회적응 첫 단추도 익히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사월의 라일락은 향기를 바람에 날리어 곤혹스럽게 하고 꽃피고 난 뒤 무성하게 잎 키우는 목련 그리고 키 큰 살구나무 아래에 심을 꽃씨가 왔다. 방풍, 백도라지, 당귀, 금잔디, 백일홍, 허브 분꽃, 양귀비, 천일홍, 더덕 등 약재에 가까운 씨앗을 동생은 넉넉히 주고 갔다. 시골에서 자란 덕을 야무지게 실천하는 바람에 올여름은 행복예절관이 색다른 꽃들로 한껏 건강해질 태세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사월만 되면 어김없이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948년 노벨문학상)의 황무지를 떠올린다. 제주 43사건, 419혁명, 416 세월호 참사 등은 엘리엇의 황무지와 수많은 생명을 잃은 사월과 겹쳐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죽은 땅에서 수많은 생명이 단단한 뿌리로 내려 밀고 올라와 온 누리에 향기로 꽃 피울 때 사월은 진정 가장 잔인한 달이 되지 않을까. 꽃씨가 자리 잡을 곳을 골라 약간의 흙을 파고 거기 사월의 꽃씨를 후북하게 심어야겠다. 그 위로 봄비는 토닥이며 내릴 것이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선국후당

4ㆍ7 재보선 이튿날 새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에 인사하고 협조를 요청하자 시의회 의장이 원칙 있는 시정에는 협조하겠으나 정무 관련 선당후사 입장을 양해하라는 취지로 대답했다. 先黨後私, 즉, 의회활동에서 소속한 당의 당론을 우선하며 새 시장의 어떤 시정 요청은 사사(私事)로 간주하며 제동하겠다는 뜻이다. 그 이튿날 시의회는 새 시장의 과거 시정을 실패로 규정하고, 의장은 시 공무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차후 임기 1년3개월을 굳이 강조했다. 우리 민족은 지난 100여년 역사에서 좌우와 노선의 갈등을 지겹게 겪었고,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념은 이상을 지향하지만, 편향성과 독선이 착종돼 있다. 그 충돌이 야기한 희생과 비극을 상기하면 막대한 질량에 통렬한 회한도 무색하다. 일제에 맞서자며 만장 파란을 무릅쓰고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우자말자 지사들은 분열했고, 만주의 호랑이 일송(一松) 김동삼의 독립운동은 좌우통합에 그 귀중한 성력의 과반 이상이 소모됐다. 하나가 돼도 투쟁이 어렵지 않느냐는 일송의 호소에, 좌우는 때로 단합을 표방했으나 결국 도로에 가까운 분열이 연속됐고, 청산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은 남은 포부가 일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희생됐다. 식민지배가 정착돼가는 국내에서도 우국지사들은 분열해 백안시했으며, 해방 공간에서 갈등이 심각하게 악화되면서 마침내 처참한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남북은 책략을 거듭하며 분단을 고착했다. 90년대에 세계의 시세와 달리 남은 여전히 그 아류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질시했고, 북은 오히려 체제를 강화하고 이후 이데올로기의 적대성 고양을 지속하면서 핵개발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4ㆍ7 재보선에서도 그러했지만 언제부턴가 정쟁이라 하기엔 고약하고 혼탁한 대립 양상에 거듭 낙심했다. 이념도 권력 쟁취의 명분으로 변질됐고, 지적 취향의 신념화에 콤플렉스마저 개입된 일종의 게임콘텐츠로 전락하지 않았나 의심도 든다.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우리의 공화를 저해하는 아류 이데올로기를 청산해야 한다. 강성 지지층의 절제나 여야의 절충이 어렵다면 그 악순환을 제지하고자 중도세력의 확산과 진영 견제가 요청된다. 지난 100여년 폐단의 잔영과 관성에서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길에 국운을 올려놓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난 보선에서 발현된 2030 MZ세대의 표심 경향에서 다행히 탈이데올로기의 모습을 보았다. 이 세대의 표심에는, 리얼리티가 취약한 관념에 교착돼 자파의 이해를 따지는 피아 구분 성향이 없다. 여야가 벌이는 행태를 관찰하며 시비와 효용을 따져 주권을 행사하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표심.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는 이 세대가 표출한 민주의식과 권력생성 태세를 지지하며, 부디 흔들리지 말고 이 땅에 관행으로 정착시키기를 기원한다. 정치인다운 정치인을 선별해 그들이 선국후당(先國後黨)에 종사하게 해야 할 것이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문화카페] A군에게

몇 주 전,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자네의 고민을 나누어 준 것에 감사하네. 자네가 넘을 수 없는 현실의 험난한 벽이 내 근처에 가깝게 스며들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네. 경쟁을 뚫고 명문음대에 진학하기까지 자네가 쏟아낸 땀은 어떤 분야보다 진했던 것을 알고 있네. 한 두 평의 좁은 연습실이 자네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었지. 혹독한 연습으로 손가락에 피가 맺히고 터지는 맹렬함을 키워온 자네의 기량이 자랑스럽네. 대학졸업 후, 유학생활은 자네의 젊은 에너지를 맘껏 발산한 시간이었지. 낯선 이국 땅에서 연습실 확보를 위해 잠을 설치며 새벽을 기다려 확보한 연습실에서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수위에게 쫓겨나온 날들이 1년에 360일은 넘었지.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어 있던 시간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넓은 바다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겠지? 퇴임을 앞둔 아버지가 어렵게 마련한 시골의 작은 아파트를 팔고 퇴직연금도 해지하여 유학자금을 보내주신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기에 그 흔한 햄버거 하나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었겠지. 그때의 눈물은 그리움과 서러움이 만들어낸 한 편의 시가 되어 이제 가슴에 담아 두었겠지. A군, 한국에서의 16년 학업생활 그리고 7년여의 유학생활 거의 25여 년의 청춘을 악기에 매달려 온 것은 음악 없이 살아가는 것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가장 큰 요인이며 이런 수련과정을 거치면 스승과 선배들이 누리는 윤택한 보상이 따라온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왜 이리 더딘지 혹시 하늘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닌가 창밖을 내다보며 비행기 안에서 뛰고 싶던 심정이었지. 금의환향,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도착하였지만 안정된 생계를 보장하며 자네를 환영하는 단체는 없고 그나마 유일한 생활의 보루인 프리랜서 활동도 우환 코로나로 꽉 막혀버려 신세 진 분들께 면목이 없어 최근에는 연락도 제대로 못 하고 있겠지. A군, 자네가 남기고 간 고민의 숙제를 떠올리며 기성세대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네. 무능함, 미안함, 부끄러움, 동정 등 뒤섞인 한탄의 진동이 조석으로 나를 흔들고 있네. 30여 년 전, 전문연주자의 길에 뛰어든 나와 현재 자네가 마주하는 현실의 차이는 크지 않네. 30여 년간의 학생생활을 통해 착실하게 준비된 나에게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이 사회는 적절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지. 솔직히, 환갑이 넘은 오늘도 연주자로서 나를 알리기 위한 프로모션을 하루도 게을리한 적이 없네. 예술가, 특히 연주자로 살아가는 길은 평생을 험하고 거친 광야를 지나는 수도자와 같은 것일세.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나를 강하게 채찍질한 것은 열정이었네. 열정은 남이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샘에서 만들어져 분출되는 것이네. 열정은 긴 숨으로 참고 견디는 인내가 있어야 오래도록 꽃 피울 수 있네. 덧붙이면, 노력은 진정한 나의 실력을 발굴해 내는 열정의 핵심적인 부분일세. 이 고난의 흐름을 새로운 자기발전의 시간으로 만드는 지혜를 기대하고 싶네. 그때 새벽공기를 헤치고 연습실에 들어서며 뜨겁고 떨리는 가슴으로 악기를 보듬던 감격의 추억을 다시 꺼내 주기 바라네. 지금 겪는 고통의 시간이 견고한 창조의 시간으로 변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네. 예술의 진가를 깊고 넓게 발굴하여 이전보다 더 존경받는 연주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이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그 극장에 가고 싶다

내가 맡은 재단의 극장 규모는 대단할 정도다. 일산 아람누리에는 대극장과 콘서트홀, 소극장인 새라새극장이 있다. 덕양구에 있는 어울림누리에는 대극장과 소극장 별모래극장이 있다. 양 누리에 하나씩 있는 야외극장을 포함하면 객석 수가 엄청나다. 총 7천 석 정도다. 한 기관이 운영하는 객석 규모로 치면 전국 제일이 아닐까 싶다. 숫자와 규모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다. 콘텐츠의 질도 중요하지만, 공간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못지않게 양도 무시하지 못한다. 다양한 콘텐츠로 공연장을 채우는 방법은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활발한 기획으로 양질의 작품을 골라 연간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우수한 작품을 초청하거나 제작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이런 프로그램 구성을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연간 단위로 상설, 정례화하는 것을 시즌제라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대관이다. 자체 기획 외에 외부의 기획사나 제작사 등에 공간을 빌려주는 것이다. 모든 공연장이 두 방식을 다 택하는 것은 아니다. 대관만 하는 공연장도 있는데 공공극장보다 주로 민간에 많다. 따라서 어느 공연장이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관객에게 어필하는 승부처는 바로 기획이다. 요새 웬만한 공연장에서는 기획 프로그램의 충실도가 공연장 브랜드에 직결된다는 생각에 시즌제를 택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시즌 개막 전 프로그램을 미리 확정하여 알려주고, 다양한 할인 패키지 상품을 내놓는 일은 시즌제의 큰 장점이다. 한국 공연장 시즌제의 종가는 어디일까? 눈에 띈 성과로 종가임을 입증한 곳은 LG아트센터이다. 2000년 문을 열면서 시즌제를 선보인 LG아트센터는 이를 통해 개관 초기 명실상부한 최고 공연장의 이미지를 굳혔다. 이후 여러 극장이 앞서거니 뒤를 따랐고, 우리 재단도 지난해부터 아트시그널!고양이라는 이름의 시즌제를 내세웠다. 개막 직후 터진 코로나19로 그 진가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해 아쉬웠지만, 곧 4월 시즌을 활짝 열면서 고양발 아트시그널을 발신한다. 나는 공연장을 미디어로 본다. 공연장은 공급자와 수용자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며, 그 공연장의 프로그램은 중요한 메시지다. 기획자의 정성이 담긴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그 공연장의 품격과 성격을 담은 메시지라는 이야기다. 시즌제는 개별 메시지의 묶음이다. 시즌제의 평판과 역사가 쌓여 공연장은 견고한 미디어이자 브랜드가 된다.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서 모든 공연장이 생존 방식을 놓고 고민이 깊다. 이런 때 의기소침하지 않고 오히려 공격적으로 공연장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는 곳이 있다. 2018년 인천 송도에 문을 연 아트센터인천의 활약이 돋보인다. 최근 시즌 프로그램을 보면, 정통 클래식 콘서트홀의 특성을 살려 오로지 프로그램의 질로서 정체성을 다지는 노력이 잘 드러난다. 바다에 연한 아름다운 입지는 음악당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다. 이렇듯 가보고 싶은 요소가 많은 공연장은 그만큼 성공 가능성도 크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카페] ‘지금’은 스스로 선택하는 나의 역사

새로 나온 신간 그림책을 접할 때면 마치 새 신을 사러 가는 어린 아이의 마음처럼 마음이 설렌다. 책 표지의 질감과 이미지, 내지의 인쇄 냄새까지 음미하듯 책장을 넘기며 만나게 되는 몇 장의 그림과 글이 마음을 울릴 때면 더욱 그러하다. 크림색의 표지에 등을 진 채 서 있는 중년의 남자와 여자, 각자의 방향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포옹하고 있는 표지의 이미지는 나이 든 중년이면 설명 없이도 공감이 되는 공허가 느껴진다. 인생은 지금의 글을 쓴 다비드 칼리는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러스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글로 독자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글쓴이의 글에 걸맞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히 단순하게 내용을 잘 풀어낸 그림 작가의 어울림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책은 은퇴 후 시간이 많이 남은 부부가 주인공이다. 그동안 바쁜 직장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했던 남자의 다양한 시도와 함께하자는 것마다 생활 속 일거리를 핑계로 자꾸 다음으로 미루는 아내의 이야기이다. 『왜 자꾸 내일이래? 인생은 오늘이야, 다 놔두고 가자. 어디로? 몰라, 그냥 숨이 찰 때까지 달려서 강물에 뛰어들자. 그리고 소리 칠 거야. 당신을 사랑한다고. 대체 왜? 일일이 이유가 필요해? 그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고. 내 인생은 이미 여기 있는 걸.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아니야. 지금도 흘러가고 있잖아. 가자! 인생은 지금이라니까.』 (중략) 나의 지금은 무엇일까? 늘 조금 있다가 라든지 다음이나 내일로 미루는 생활처럼 익숙해져 버린 습성들로 어쩌면 인생의 정해진 시간을 더욱 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 오늘이고 나중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지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 누구나 각자의 처한 상황이 다르니 누구에게는 실행하는 지금이 소중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실행을 미루고 준비하는 지금의 시간이 중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을 인식하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는 존재의 시간이 아닐까 한다. 지금의 나의 선택은 자긍하는 과거가 될 수도 회한의 과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모두 나의 선택이고 겉보기엔 별반 차이도 없을 듯 보이나 그 지금이 모여 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 같은 공이지만 탱탱볼과 바람 빠진 공의 차이라고 하면 좀 과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가 빠지고 허리가 굽어도 겉만 번지르르한 바람 빠진 공보다는 저렴하지만 탱탱볼 같은 노년을 맞고 싶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용기를 내보아야겠다. 한 권의 그림책으로 노년까지 생각하니 그림책의 힘은 실로 놀랍다.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문화카페] ‘5049’ 정조의 리더십

시간을 정해 놓고 책을 읽기로 했다. 시대별로 분류한 대표시집을 읽기도 하고 차에 관한 신간과 고전은 물론 동양신화나 역사서도 의견 모아 선별해 읽었다. 한 사람이 소리 내어 서너 쪽 또는 한 소절을 읽으면 다음 사람이 이어서 읽는 방식으로 서로 돌아가며 읽는다.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차를 한 잔씩 마시며 느낌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초등학생처럼 소리 내어 읽기가 어색하고 쑥스러워 서로 안 읽으려고 했다. 그래서 가끔 호흡조절도 한다. 이를테면 사자소학을 읽고 쓴다거나 읽고 쓰는 다신전(茶神傳)을 다 쓰고 나면 표지를 붙여 한 권의 책으로 묶는다. 그날은 나이를 어디에 두었는지 애들보다 더 좋아라한다. 이 옹기종기 책 읽는 모임은 처음에는 열명이 넘었으나 십 년 세월 가다 보니 이제 오롯이 다섯만 남아 매주 월요일 저녁 신앙처럼 모인다. 옹기종기 모임에서 올해 첫 번째 선택한 책은 5049 리더라면 정조처럼으로 정했다. 절반쯤 읽은 후 저자를 초대해 작가와의 대화를 가졌다. 이 책을 쓴 한신대학교 김준혁 교수는 3년 전 장용영을 펴낼 때 무예통지의 서문에 있는 즐풍목우(櫛風沐雨)-바람으로 머리 빗고 빗물로 목욕하라-는 대목을 책 표지에 올렸다. 정조가 만든 조선 최강의 군대 장용영 군사들의 훈련을 강하게 시키라는 지시가 이 두 문장에 압축돼 장용영 하면 즐풍목우를 떠오르게 한다. 이번 리더라면 정조처럼 표지에는 정조대왕의 숨겨진 리더십코드 5049가 눈에 띈다. 조선 정조의 생애와 국가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49가지로 정리한 김 교수의 책을 굳이 다 읽지 않아도 5049, 이 네 숫자만으로도 그 의미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조는 조선 역사상 특별한 신궁(神弓)으로 50발을 쏘면 49발을 명중시키고 마지막 한 발은 허공으로 날려 보냈는데 정조는 이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 가득 차면 오만해지기 쉬우므로 스스로 겸손해지는 활쏘기를 보여주었다. 정조는 덕(德)있고 올바른 신하들과 연대하기 위해 활쏘기를 했는데 활쏘기를 하다 보면 조급해하는 사람, 버럭 화를 내는 사람, 조용히 잘 인내하는 사람, 남을 배려하는 사람 등 타고난 본성을 감출 수 없어서 활쏘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성정이나 심성을 확인할 수 있어 참된 신하를 확인했다고 한다. 활쏘기 하나만으로도 사람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겸손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스함을 보여주는 리더의 덕목에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감동을 주는가. 차 한 잔을 우려내는 시간은 약 5~6분이 소요된다. 그 5~6분은 기거동작과 물 따르는 소리, 호흡 간의 바람 등으로 차를 우리는 사람의 심성이 그대로 전달된다. 그러므로 책읽기 전에는 차를 먼저 우리도록 한다.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그리해 자신도 그리 썩 자연스럽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작은 실수까지 보도록 한다. 정조의 5049를 생각하게 한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아이러니

특히 정부와 국회의 일 처리에서 추진 과정이 공정하지 않거나 절차가 생략되면 그 결과가 아름답지 않다. 어떠한 명분에도 공공의 의혹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나 균형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공화의 원칙을 깼다는 의미까지 가중된다. 혜택을 누리는 쪽은 내심 부끄럽고 그렇지 않은 쪽은 억하심정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정서는 결국 국가의 분열을 조장하며 통합을 방해하는 저변이 된다. 민주주의 이념은 대체로 공정하지 않은 과정을 문제시한 서민들의 오랜 원념(怨念)에서 비롯되었으며, 근대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되었다. 영국의 의회가 1689년에 권리장전을 분출시킨 동기도 그렇고, 1894년 동학 봉기의 요인도 그러하였다. 새삼스럽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명분이었던 반칙과 특권 배제에도 공정한 과정이 선명하게 강조되어 있었고, 지난 촛불사태 때도 문제 되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이 슬로건에서 기회와 결과도 역사의 연속에서 또 하나의 과정들이기에 공정은 그 요체이다. 그런데 의외에도 그렇게 현재 정부가 들어선 이래 조국사태, 월성원전 사건, 공수처법안, 검찰총장징계사건, 불법출국금지사건에 이어 최근의 검사장인사와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이 모두 그 과정이 문제 되어 우리는 복잡하고 격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은 공정한 과정을 거쳐 결정한 정책을 공정하지 않은 과정으로 번복한 사안이다. 더 치열한 정쟁과 감투 의지가 증폭되고 있고 4.7보선도 다가오는 이 즈음, 이럴수록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한 가치는 바로 공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사실 어느 쪽을 지지하든 않든 여야가 시시한 정략을 배제하고 사안마다 공정한 과정을 투명하게 이행하기를, 특히 관련 편향성 폭력성 비방을 현출하지 말기를 바란다. 자파 위로에 일단 쓸모가 있겠으나 그것들은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여 우리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 협잡에 불과하고 결국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지난 시절 여러 풍파를 거친 이 시대의 정치인이라면 여야 막론하고 마땅히 바로 처신하며 우선 당장의 훼예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공정을 구현해야 응분의 역사의식이 있다고 할 것이다. 18세기 전반에 사환한 용와(慵窩) 류승현(1680-1746)은 공정을 견지한 인물이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그의 훈도를 받은 아우 류관현(1692-1764)과 재종질 류정원(1702-1761)의 사행을 목민의 모범 사례로 제시하였다. 류관현은 3회, 류정원은 12회. 일찍이 류승현을 알아본 제산(霽山) 김성탁(1684-1747)은 아들 김낙행(1708-1776)이 그가 혹 재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될 수 있다고 하고, 그 이유로 그는 공평하다고 하였다. 공정은 시대를 초월하여 공인의 주요 덕목일 뿐만 아니라 탕평이 요구될 만큼 당쟁이 고착되었던 분열과 편향의 시기가 그 배경이었기에 김성탁의 언급은 오늘에도 그 내포와 외연이 깊고 넓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류승현의 지취와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시 「종죽(種竹)」을 이 기회에 음미해보자. 북쪽 울타리엔 붉은 복사꽃(北籬桃花紅)/남쪽 울타리엔 하얀 오얏꽃(南籬李花白)/꽃들 사이에 대나무 심자(中間種此君)/복사꽃 오얏꽃이 무색해지네(桃李失顔色).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문화카페] 귀국연주회

1970년대와 80년대 시절, 김포공항은 유학파들의 출국과 귀국을 위해 모인 환송환영인파로 늘 시끌벅적했다. 유학과정에서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의 여부는 일단 제쳐 두고 훈장을 가슴에 달은 전승장군의 금의환향 같은 기개가 하늘을 향한다. 이어서, 휘황찬란하게 귀국연주회를 선전하는 것을 봤다.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환상에서 살던 시절이다. 진정한 실력의 향상과 독특한 학문의 획득을 위한 원천적 목표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학위를 따서 귀국 비행기를 타는 것을 목표로 했던 시절의 얘기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 대학교수 등의 자리를 확보하고 지금까지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있다. 유학을 다녀온 연주자들의 수가 손으로 셀 정도로 희귀한 시대의 해프닝이지만 아직도 그런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 연주를 위해 들른 서울의 주요 콘서트홀에는 귀국연주회라는 이름의 연주를 알리는 전단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외국여행이 외딴 시골을 방문하는 것보다 용이한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으며 미국의 일부 음대들의 운영이 한국에서 온 유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유학=특권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귀국연주회=교수자리 확보를 위한 시발점이라는 희귀한 현상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학을 다녀온 귀국연주회를 위한 기획사의 콘서트홀 확보와 홍보는 뜨겁다. 유학은 지식과 전문성을 추가로 얻기 위한 과정이다. 연주자들에게는 연주가 생활화돼야 한다. 귀국연주회 이후 새로운 연주를 위해 애쓰는 음악가들이 있는 반면, 우여곡절 끝에 귀국연주회를 마치고 이어지는 연주회를 찾아볼 수 없는 음악가도 있다. 원하는 교수자리를 얻은 후 학생들이 본받을 만한 연주를 지속적으로 해 자기개발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 음악가의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연주와는 거리가 먼 활동을 하는 연주자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연주회는 반드시 화려한 드레스를 맞춰 입고 꽤 비싼 미용실에서 머리를 꾸민 후 지역에서 가장 알려진 콘서트홀에서 화려하게 축하받으며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귀국연주회를 준비하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권면하고 싶다. 연주자들은 자기 개발을 위해 잠시도 열정의 숨을 멈출 수 없음이 진실이라면 진정한 연주는 동네마을회관에서, 아주 외딴 시골 교회에서, 산속 깊은 사찰에서, 작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소박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이뤄 질 수 있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연주에 꼭 오고 싶은 청중을 정성껏 모시고 꾸준히 그리고 자주 연주하는 것이 연주자의 사명이다. 이제부터 귀국연주회라는 용어에서 귀국을 빼자. 연주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주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아파트 역사박물관은 어떨까?

소위 아파트공화국이란 말이 허튼소리가 아닐 정도로 우리의 삶은 아파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전국 주택에서 아파트 비율은 2019년 기준 62.3%로, 단독주택 21.6%의 3배 가까이 된다. 요새 천정부지로 치솟은 아파트 값 급등 요인으로 많은 전문가가 공급부족을 꼽는 걸 보면, 아파트 수요는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전국 주택 중 아파트 비율이 70%를 넘는 일은 시간문제일 것 같다. 촌놈인 나는 1970년대 중반 첫 서울 구경에서 아파트를 역시 처음 봤다.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와 아스팔트를 예닐곱 시간 달려 용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차창 너머로 그 인근 한강변에 나란히 서 있는 아파트를 신기하게 바라본 기억이 생생하다. 세련된 도회지 가정의 내실 모습이 아파트 창을 통해 살짝살짝 드러났다. 기와집 몇 채뿐, 대부분이 낡고 허름한 초가집이었던 우리 시골동네 풍경과 비교하면 이것은 별천지의 주거공간이었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며 그때 품었던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 아파트가 이젠 전 국민 대다수가 먹고 자고, 쉬는 일반적인 주거형태가 됐다. 아직도 선호도가 식지 않는 걸 보면, 아파트는 그간 크나큰 발전을 이끈 한국 주거문화의 상징임이 틀림없다. 한국 아파트 역사의 연원을 따져보면, 그 기점은 1930년대라고 한다. 지금도 주민들이 사는 서울 충정로아파트로 일제 강점기 유산이긴 하지만 그 역사성은 무시할 수 없다. 20세기 세계 건축혁명을 이끈 시멘트가 건축자재로 보편화하면서 일찍이 서울에도 고층의 주거공간이 등장한 것이다. 시멘트의 가치를 높이 사, 이를 건축에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실제 혁신적인 공동주택에 적용한 이가 현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이다. 제2차 대전 후 주택난 해소를 위해 그가 프랑스 마르세유에 선보인 집합주택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은 논란 여부를 떠나 오늘날 혁신적 아파트 개념의 선구로 꼽는다. 명칭에 차이가 있을 뿐, 세계 어느 나라든 공동주택의 대명사로 통하는 아파트는 1990년대 초 제1기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며 대중적인 한국의 주거공간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일산을 품고 있는 고양시도 그 신도시 5곳 중 한 곳. 당시 서울 생활권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던 고양시는 이제 인구 100만명을 훌쩍 넘긴 특례시로서 자급도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몇 년 내 제3기 창릉신도시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걸 보면, 아파트는 오늘날 고양시를 키운 동력이자 삶이고 문화인 셈이다. 한국 아파트 발전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하여 이참에 고양시에 제안하고 싶은 바가 있는데, 자급도시의 미래 자산으로 아파트역사문화박물관을 세우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한국 아파트의 역사부터 신도시의 형성, 그로 인한 도시와 농촌의 변화상, 사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의 양상, 미래의 도시와 주거문화 등을 전시하고 연구하며 설계하는 심장 말이다. 예의 박물관이 들어선다면 한국의 대표적 주거공간인 아파트를 통해 현재와 과거, 미래를 잇는 독특한 형태의 첫 박물관으로 길이 남아 고양의 미래유산이 되지 않을까.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카페] 전쟁은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 간다

그림책 전쟁은 일러스트레이터 안드레 레트리아가 글이 없는 그림책으로 기획하였지만 기자이자 시인, 극작가인 아버지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3년 동안 수정하며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다. 시종일관 흙빛이 감도는 배경과 검은 색의 붓 선들, 스멀스멀 소리도 없이 좁혀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와 거미 떼, 어두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떼.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불길하고 우울한 감정에 휩싸인다. 전쟁은 빠르게 퍼지는 질병처럼 일상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라고 서술된 텍스트는 보는 이에게 다가올 공포에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직격탄을 날린다. 아무도 없는 황량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 구석진 방 어둠 속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다. 흐트러짐 없이 각이 잡힌 군복을 입은 병사는 깊은 수심에 잠겨 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위기의 조국일까? 아니면 인간 탐욕의 시작일까? 하지만 독자의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전쟁은 어떤 이야기도 용납하지 않는다 는 글과 함께 책들을 산처럼 높이 쌓아 놓고 불을 지르는 이미지에서 정의와 앎에 대한 침묵이 강요되며 절망을 경험한다. 많은 물건 중에 책을 태우는 장면은 단순한 책이 아닌 지성과 깨우침이란 것을 알기에 총칼보다 무서운 보이지 않는 힘이 책에 있음을 다시 느끼게 된다. 전쟁은 끔찍한 결과를 예상하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와 이념, 일상처럼 굳어진 관습과 잘못된 전통 때문에 사람들은 생명을 죽음과 맞바꾼다. 이 책에는 엄청난 폭등이나 저항, 극적인 파괴나 참혹한 장면은 없다. 하지만 시종일관 무겁게 내리누르는 보이지 않는 무게감으로 책을 보는 내내 전쟁의 공포와 아울러 평화와 공존의 소중함을 함께 느낀다. 다소 무겁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인간이 저지르는 최악의 행위를 작가는 담담하게 그러나 깊이 사색하며 감성적으로 서술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좋은 그림책이다. 전쟁은 무기를 들고 상대를 공격하는 물리적 전쟁도 있지만, 요즘처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경제 위기와 같은 현실적인 삶과의 전쟁도 있을 것이다. 공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치지 않는 극복과 유연한 대처가 어려운 상황과의 전쟁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문화카페] 겨울방학 예절학당

작년 이맘때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대 유행병이 시작됐다. 처음엔 눈을 떴다가 감을 때까지 연신 신문 방송에 귀를 세우고 정보를 살피며 관망했다. 에이 이러다가 나아지겠지. 여느 해처럼 온 산이 초록으로 물밀듯이 들이닥치다가 어김없이 봄다운 봄 으스대기도 전에 스르르 여름으로 밀려나겠지. 설 명절 지나 겨울방학 예절학당은 그 해 첫 수업으로 또 시작되고 다시금 설레는 마음으로 일 년 동안 부쩍 키가 자란 아이들을 나는 곧 보게 될 거야. 겨울방학 예절학당은 겨울 냄새가 나야 하므로 개강 첫날에는 먼저 두툼한 오버를 벗고 한복을 입게 한다. 남자아이는(8세~12세) 바지저고리 위에 금박전복을 입혀 복건을 씌우고 여자아이는 다홍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힌다. 아이들은 물론 치렁한 옷고름을 만지작이며 낯설어한다. 걷거나 앉을 때는 더욱 불편해한다. 설날 곱게 세배하여 세뱃돈 받는 상상으로 절 배우게 하고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뜻의 길고 흰 가래떡을 떡국으로 만들어 먹는 우리의 전통 음식과 유래를 이야기한다. 나흘간의 학당 고정 프로그램인 사자소학은 매일 한 시간씩 소리 내어 따라 읽고 쓰게 한다. 학당의 맥락으로 보면 바른 마음가짐 바른 몸가짐(九思九容)은 물론 부모님께 효도하는 효행편과 친구 사귀기(朋友) 또는 형제간의 우애(兄友弟恭) 등은 인성 예절의 기본이긴 하나 현실적으로 매우 곤란한 경우에 빠지기도 한다. 우선 양친이 안 계신 한 부모 아이도 있고 형제자매가 없어 우애와 질서를 설명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그래서 나만 잘하는 것보다 더불어 잘하는 것을 놀이에서 배우도록 한다. 하루는 윷놀이 또 하루는 사방치기 그리고 팽이치기 구슬치기 복조리 만들기 할 때는 그야말로 장날 같다. 우리의 전래놀이는 애들만이 아니라 어른도 좋아한다. 소리 지르며 땀 흘리며 손뼉치며 깔깔댄다. 시간이 언제 간지도 모른다. 입교 때 옷에다 이름표를 달아줄 때는 머쓱해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는데 수업을 마칠 때는 가지런히 옷을 정리하여 걸어두고 공손하게 인사한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친구, 오빠, 동생이 된다. 실로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맑음을 바라보는 쪽은 더욱 감동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밥상 앞에서는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다 먹은 후에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를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다례체험 시간에는 차를 마시기 전에 반드시 잘 마시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도록 한다. 학당의 마지막 날은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는데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고운 습관 길들이기로 학당의 목적사업이 달성되는 순간이다. 올핸 30% 입교할 수 있는 대면수업과 비대면 수업으로 준비하고 있다. 곱고 예쁜 아이들과의 올 첫 프로그램에 다소 설렌다. 강성금 안산시 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사과

우리는 삶에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가 불가능하고, 나와 남의 사과(謝過)를 보고 듣기는 참 어렵다. 잘못의 지속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며, 갈등과 원념(怨念)이 발생한다. 인간은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자기기속(自己羈束)의 취지에서도 법을 제정했나 보다. 근년 들어 우리 사회에서 법치의 비중이 늘어나고, 정치의 사법화란 시사용어가 그 현상을 대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주 공화체제를 지탱하는 기초인 법치가 공격받거나 사법의 정치화도 운위되면서 우리를 무척 불편하게 한다. 사과가 드문 부조리는 이해와 체면에 우리가 민감하고,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낫다고 자위하거나,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기만으로 죄책을 희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는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라고 잘못을 규정하며, 잘못이 있다면 즉시 바로잡기를 조금도 꺼리지 말아야 한다(過則勿憚改)고 당부했다. 인간의 한계를 양해하고 나아가 도덕의지를 신뢰하며 잘못 시정은 물론 삶의 진정성까지 회복하라는 위대한 통찰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권장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1일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인이 사건 재발방지대책 질문에 답변하였는데 정쟁이라 하기 어려운 심상찮은 논란이 일어났다. 청와대 대변인은 현재 입양 확정 전 양부모 동의하에 관례로 활용하고 있는 사전위탁보호 제도 등을 보완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해당 대책은 대체로 입양 이후를 조건으로 하였기에 논란이 계속 될 수밖에 없었다. 국정 관련 최고 공인의 발언에 그런 물의가 빚어지면 즉각 사과하고 바로 잡는 조치가 뒤따랐어야 마땅하였다. 사과가 없었기에 아무리 취지를 강조해도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며 불신을 증폭시켰다고 하겠다. 지난 22일 한 유명한 여권 인사가 작년에 제기했던 검찰의 계좌 사찰 주장을 사과했다. 그 발언은 수차 반복됐고 채널 A 기자사건에도 의혹을 가중했으며, 여당의 수석대변인이 기정사실화해 검찰을 비난하여 파문이 컸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이 기회에 사법과 무관한 작년의 다른 잘못들도 거론하며 사과한다면, 사과 관련여러 의문과 불만을 불식하는 진정성이 부각되며 우리의 소통과 통합에 작은 계기로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공당을 대표하여 발언한 그 당직자도 국민에게 마땅히 사과하여야 적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과 발언에서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다는 회오(悔悟)도 두루 주목했으면 한다. 사과에는 관조의 정서가 필요하다. 임란 시기 구국 영웅 서애 유성룡 선생의 성찰 시 「차회암선생운(次晦庵先生韻)」 기삼(其三)을 읽고 싶다. 달이 뜨자 뭇 움직임 그치고/ 밤바람 쐰 샘은 찬 기운 어린 우물/ 내 마음 마침 아무 일 없어/ 청명한 이 야경 못내 사랑하고/ 거문고 타니 도 닦는 뜻 깊어지는데/ 벗 그리니 산하가 멀리 막혀있구나/ 오래 전부터 부끄러워하였던 공명/ 구차히 얻기는 내 바람이 아니라네(月出群動息/ 風泉落寒井/ 吾心適無事/ 愛此淸夜景/ 彈琴道意長/ 憶友山河永/ 功名久已慙/ 苟得非吾幸)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문화카페] 천천히 그러나 충분한 감성을 가지고

한 게임에 승리하기 위한 축구팀들의 철저하고 과학적인 팀훈련은 이를 참관하는 이들도 땀을 흘리게 한다. 오케스트라의 훈련도 마찬가지다. 지휘자는 축구팀의 감독과 동일한 임무를 수행한다. 훈련과정에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최단시간 내에 긍정적인 방법으로 고쳐 나가는 것이 축구감독 그리고 지휘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Conductor는 지휘자라는 뜻 외에도 버스나 기차의 안내원 또는 여행가이드를 의미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은 여러 가지로 세분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상의 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최우선 임무이다. 수많은 음악가와 함께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맡게 되는 안내원 역할은 쉽지 않다. 극심한 긴장이 흐르고 진지한 분위기의 연속인 오케스트라 가이드의 일상생활을 일반인들은 상상하기에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휘자의 자격요건 중 우수한 리허설 테크닉(rehearsal technique) 은 필수요건이다. 필자의 20여 년 지휘교수 활동에서 제자들에게 핵심적으로 강조한 부분이 연습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였다. 지휘과 입학을 위한 오디션, 지휘콩쿠르, 전문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영입을 위한 오디션 등에서도 효과적인 연습을 우선으로 심사한다. 예술에 대한 본질은 21세기 산업혁명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직면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것에 습관화 되어 있고 이전보다 한 템포 빠른 새로운 문명을 찾아 나선다. 그럼에도, 바흐,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본질은 살아있다. 그들의 음악은 로봇이 아닌 인간들의 숨결로 감싸주어야 비로소 완성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숨결은 끊임없는 인간들의 연습이다. 블라드미르 호로비츠(1904~1989)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신의 경지에 도달한 범접하기 어려운 음악가에게도 처절한 연습이 생활의 큰 부분이었다. 과연 호로비츠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을까? 그의 대답은 짧고 단순하였다. 천천히 그러나 충분한 감성으로 연습하세요.였다. 효과적인 연습방법에 확신이 부족한 음악도들에게 호로비츠의 연습방법을 추천한다. 조급한 속성적 해결보다는 차곡차곡 인내심을 갖고 한 음, 한 마디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 온전한 음악의 접근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다 보면 음정과 리듬, 템포와 컬러, 스타일과 밸런스 등이 서로 어긋날 때 가 많다. 이럴 때는 느린 템포와 작은 소리로 그러나 충분한 음악적 감성을 갖고 해결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이런 과정에서 본인의 소리는 물론 다른 악기의 소리를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들을 수 있게 된다. 이웃과 타인의 소리에 나의 소리를 합쳐가다 보면 자연스레 이상적인 화음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스키장에서 리프트를 타고 산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멀리 보이는 산의 정상과 맑은 하늘은 물론 계곡의 섬세한 라인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스키를 타며 빠르게 하강할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전경이다. 시속 120km 이상으로 달리고 싶은 욕망의 동해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같은 구간을 천천히 달려보자. 빠르게 달릴 때 마주할 수 없었던 기묘한 산과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지휘자이다. 2021년 신축년 흰 소띠의 해에는 Vivace(아주 빠르게)의 생활패턴에서 벗어나 Adagio(느린 속도로)로 그러나 충분한 감성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며 여유를 갖는 가이드가 되는 것은 어떨까? 함신익 심포니송 예술감독, 전 예일대 음대 교수

[문화카페] 도시를 살리는 건축

한강을 끼고 출퇴근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를 체감하는 일이다. 영하 10도 이상 한파가 지속된 요즘, 어느 지점 불문하고 강 한가운데까지 한강이 꽁꽁 얼어붙은 건 처음 봤다. 이른 아침 행주대교를 건널 때, 동쪽에서 떠오른 태양의 높이가 계절마다 그렇게 차이 나는 줄 몰랐다. 아득하게 저만치 있던 겨울의 태양은 여름이면 벌써 중천에 가 있다. 변화는 자연의 속성만은 아니다. 주변 건축물 등 사람이 지어낸 풍경도 변화를 거듭한다. 다만 자연에 비해 그 변화가 더디나 보니 못 느낄 뿐. 아무튼 이런 연유로 나는 건축물을 생명체로 여긴다. 좀 과장하여 시멘트 덩어리인 아파트 단지를 우리는 아파트 숲이라 부른다. 무생물에도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고 싶은 우리 마음을 담은 표현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지만,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건축(디자인)의 몫이다. 얼마 전 문득, 여의도를 지나면서 풍경 변화를 실감케 하는 생경한 건축물 하나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운석처럼 없던 게 뚝 떨어져 거기에 서 있는 듯했다. 건물도 생명체란 걸 그때 더욱 실감했다. 한 때 여의도의 랜드마크였던 LG트윈타워 옆에 그보다 두 배 이상 높이로 솟아 있는 빌딩, 파크원(Parc1)이었다. 하늘 높이 걸려 있던 크레인을 보면서 뭔가 짓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 웅장한 몸뚱어리가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하늘에 닿는 집을 마천루(摩天樓)라고 한다. 한국의 맨해튼이라는 별명답게 여의도는 이 마천루가 즐비한 곳. 그중에서 이 건물이 유독 나의 눈에 띈 건 새것 때문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빗줄기 같은, 날렵한 수직 철골 기둥들이 금세 눈에 들어왔다. 수평축 중심의 주변 빌딩과 확연히 대비돼 한껏 긴장감을 높였다. 그다음 눈에 띈 건 색(色)이었다. 모서리 수직 철골 기둥들이 뿜어내는 붉은색은 강렬했다. 여의도엔 전혀 없던 색일뿐더러, 외벽에 이처럼 대담하게 붉은색을 앞세운 현대 건축물을 국내에서 본 적이 없다. 대개 낯선 것은 어색한 법이다. 처음 이 건물을 보았을 때, 나 또한 너무 생경하고 이질적이어서 솔직히 반감이 컸다. 파격이 지나친 건 아닐까?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오가며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시쳇말로 볼매가 될 줄을 몰랐다. 나중 저명한 건축학자인 이화여대 임석재 교수에게 소감을 털어놓았다. 대가의 품격이란 그런 겁니다. 파격을 보편적으로 설득하는 힘 말이지요. 임 교수의 평이었다. 파크원은 세계 건축계의 거장 리처드 로저스(88)가 설계했다. 로저스는 2007년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세계 첫 노출 구조의 건축물로 꼽히는 파리 복합문화센터 퐁피두센터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가끔 유명세는 그 작품 가치에 대한 역설적 반증이 된다. 호불호가 분명한 파크원의 붉은색도 아직 그런 세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느슨한 회색 도시에 생기와 변화를 던진 파격적인 감각은 대가의 품격으로 손색이 없다. 이처럼 건물이 생명을 얻으면 도시도 산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