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임에 승리하기 위한 축구팀들의 철저하고 과학적인 팀훈련은 이를 참관하는 이들도 땀을 흘리게 한다. 오케스트라의 훈련도 마찬가지다. 지휘자는 축구팀의 감독과 동일한 임무를 수행한다. 훈련과정에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최단시간 내에 긍정적인 방법으로 고쳐 나가는 것이 축구감독 그리고 지휘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Conductor’는 지휘자라는 뜻 외에도 버스나 기차의 안내원 또는 여행가이드를 의미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은 여러 가지로 세분되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상의 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최우선 임무이다. 수많은 음악가와 함께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맡게 되는 안내원 역할은 쉽지 않다. 극심한 긴장이 흐르고 진지한 분위기의 연속인 오케스트라 가이드의 일상생활을 일반인들은 상상하기에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휘자의 자격요건 중 우수한 리허설 테크닉(rehearsal technique) 은 필수요건이다. 필자의 20여 년 지휘교수 활동에서 제자들에게 핵심적으로 강조한 부분이 ‘연습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였다. 지휘과 입학을 위한 오디션, 지휘콩쿠르, 전문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영입을 위한 오디션 등에서도 ‘효과적인 연습’을 우선으로 심사한다.
예술에 대한 본질은 21세기 산업혁명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직면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것에 습관화 되어 있고 이전보다 한 템포 빠른 새로운 문명을 찾아 나선다. 그럼에도, 바흐,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본질은 살아있다. 그들의 음악은 로봇이 아닌 인간들의 숨결로 감싸주어야 비로소 완성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숨결은 끊임없는 인간들의 연습이다.
블라드미르 호로비츠(1904~1989)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신의 경지에 도달한 범접하기 어려운 음악가에게도 처절한 연습이 생활의 큰 부분이었다. 과연 호로비츠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을까? 그의 대답은 짧고 단순하였다.
“천천히 그러나 충분한 감성으로 연습하세요.”였다.
효과적인 연습방법에 확신이 부족한 음악도들에게 호로비츠의 연습방법을 추천한다. 조급한 속성적 해결보다는 차곡차곡 인내심을 갖고 한 음, 한 마디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 온전한 음악의 접근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다 보면 음정과 리듬, 템포와 컬러, 스타일과 밸런스 등이 서로 어긋날 때 가 많다. 이럴 때는 느린 템포와 작은 소리로 그러나 충분한 음악적 감성을 갖고 해결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이런 과정에서 본인의 소리는 물론 다른 악기의 소리를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들을 수 있게 된다. 이웃과 타인의 소리에 나의 소리를 합쳐가다 보면 자연스레 이상적인 화음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스키장에서 리프트를 타고 산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멀리 보이는 산의 정상과 맑은 하늘은 물론 계곡의 섬세한 라인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스키를 타며 빠르게 하강할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전경이다. 시속 120km 이상으로 달리고 싶은 욕망의 동해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같은 구간을 천천히 달려보자. 빠르게 달릴 때 마주할 수 없었던 기묘한 산과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지휘자이다.
2021년 신축년 흰 소띠의 해에는 Vivace(아주 빠르게)의 생활패턴에서 벗어나 Adagio(느린 속도로)로 그러나 충분한 감성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며 여유를 갖는 가이드가 되는 것은 어떨까?
함신익 심포니송 예술감독, 전 예일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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