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지금’은 스스로 선택하는 나의 역사

새로 나온 신간 그림책을 접할 때면 마치 새 신을 사러 가는 어린 아이의 마음처럼 마음이 설렌다. 책 표지의 질감과 이미지, 내지의 인쇄 냄새까지 음미하듯 책장을 넘기며 만나게 되는 몇 장의 그림과 글이 마음을 울릴 때면 더욱 그러하다.

크림색의 표지에 등을 진 채 서 있는 중년의 남자와 여자, 각자의 방향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포옹하고 있는 표지의 이미지는 나이 든 중년이면 설명 없이도 공감이 되는 공허가 느껴진다. <인생은 지금>의 글을 쓴 다비드 칼리는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러스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글로 독자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글쓴이의 글에 걸맞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히 단순하게 내용을 잘 풀어낸 그림 작가의 어울림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책은 은퇴 후 시간이 많이 남은 부부가 주인공이다. 그동안 바쁜 직장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했던 남자의 다양한 시도와 함께하자는 것마다 생활 속 일거리를 핑계로 자꾸 다음으로 미루는 아내의 이야기이다.

『왜 자꾸 내일이래? 인생은 오늘이야, 다 놔두고 가자. 어디로? 몰라, 그냥 숨이 찰 때까지 달려서 강물에 뛰어들자. 그리고 소리 칠 거야. 당신을 사랑한다고. 대체 왜? 일일이 이유가 필요해? 그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고. 내 인생은 이미 여기 있는 걸.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아니야. 지금도 흘러가고 있잖아. 가자! 인생은 지금이라니까.』 (중략)

나의 지금은 무엇일까? 늘 조금 있다가 라든지 다음이나 내일로 미루는 생활처럼 익숙해져 버린 습성들로 어쩌면 인생의 정해진 시간을 더욱 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 오늘이고 나중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지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 누구나 각자의 처한 상황이 다르니 누구에게는 실행하는 지금이 소중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실행을 미루고 준비하는 지금의 시간이 중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을 인식하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는 존재의 시간이 아닐까 한다. ‘지금’의 나의 선택은 자긍하는 과거가 될 수도 회한의 과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모두 나의 선택이고 겉보기엔 별반 차이도 없을 듯 보이나 그 ‘지금’이 모여 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 같은 공이지만 탱탱볼과 바람 빠진 공의 차이라고 하면 좀 과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가 빠지고 허리가 굽어도 겉만 번지르르한 바람 빠진 공보다는 저렴하지만 탱탱볼 같은 노년을 맞고 싶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용기를 내보아야겠다. 한 권의 그림책으로 노년까지 생각하니 그림책의 힘은 실로 놀랍다.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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