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아이러니

특히 정부와 국회의 일 처리에서 추진 과정이 공정하지 않거나 절차가 생략되면 그 결과가 아름답지 않다. 어떠한 명분에도 공공의 의혹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나 균형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공화의 원칙을 깼다는 의미까지 가중된다.

혜택을 누리는 쪽은 내심 부끄럽고 그렇지 않은 쪽은 억하심정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정서는 결국 국가의 분열을 조장하며 통합을 방해하는 저변이 된다. 민주주의 이념은 대체로 공정하지 않은 과정을 문제시한 서민들의 오랜 ‘원념(怨念)’에서 비롯되었으며, 근대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되었다. 영국의 의회가 1689년에 권리장전을 분출시킨 동기도 그렇고, 1894년 동학 봉기의 요인도 그러하였다.

새삼스럽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명분이었던 반칙과 특권 배제에도 공정한 과정이 선명하게 강조되어 있었고, 지난 촛불사태 때도 문제 되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이 슬로건에서 기회와 결과도 역사의 연속에서 또 하나의 과정들이기에 공정은 그 요체이다.

그런데 의외에도 그렇게 현재 정부가 들어선 이래 조국사태, 월성원전 사건, 공수처법안, 검찰총장징계사건, 불법출국금지사건에 이어 최근의 검사장인사와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이 모두 그 과정이 문제 되어 우리는 복잡하고 격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은 공정한 과정을 거쳐 결정한 정책을 공정하지 않은 과정으로 번복한 사안이다.

더 치열한 정쟁과 감투 의지가 증폭되고 있고 4.7보선도 다가오는 이 즈음, 이럴수록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한 가치는 바로 공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사실 어느 쪽을 지지하든 않든 여야가 시시한 정략을 배제하고 사안마다 공정한 과정을 투명하게 이행하기를, 특히 관련 편향성 폭력성 비방을 현출하지 말기를 바란다. 자파 위로에 일단 쓸모가 있겠으나 그것들은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여 우리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 협잡에 불과하고 결국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지난 시절 여러 풍파를 거친 이 시대의 정치인이라면 여야 막론하고 마땅히 바로 처신하며 우선 당장의 훼예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공정을 구현해야 응분의 역사의식이 있다고 할 것이다.

18세기 전반에 사환한 용와(慵窩) 류승현(1680-1746)은 공정을 견지한 인물이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그의 훈도를 받은 아우 류관현(1692-1764)과 재종질 류정원(1702-1761)의 사행을 목민의 모범 사례로 제시하였다.

류관현은 3회, 류정원은 12회. 일찍이 류승현을 알아본 제산(霽山) 김성탁(1684-1747)은 아들 김낙행(1708-1776)이 그가 혹 재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될 수 있다”고 하고, 그 이유로 “그는 공평하다”고 하였다. 공정은 시대를 초월하여 공인의 주요 덕목일 뿐만 아니라 탕평이 요구될 만큼 당쟁이 고착되었던 분열과 편향의 시기가 그 배경이었기에 김성탁의 언급은 오늘에도 그 내포와 외연이 깊고 넓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류승현의 지취와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시 「종죽(種竹)」을 이 기회에 음미해보자. “북쪽 울타리엔 붉은 복사꽃(北籬桃花紅)/남쪽 울타리엔 하얀 오얏꽃(南籬李花白)/꽃들 사이에 대나무 심자(中間種此君)/복사꽃 오얏꽃이 무색해지네(桃李失顔色)”.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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