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피아노를 배울 때 초보자들의 교본인 바이엘을 치며 눈물을 펑펑 쏟은 적이 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싫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이런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행복함에 젖은 감동이 넘쳤던 그 순간의 기억이 또렷하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연주하게 됐다. 연주 끝 부분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2004년 대전시향 미국투어의 첫 연주장소인 시애틀의 베나로야 콘서트홀 무대에서 붉게 상기된 단원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 있음을 숨기려 애썼다. 세계최고의 음향을 가진 콘서트 홀에서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본인들의 소리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이런 감동의 음악이 녹아 흘러나오는 뭉클한 순간은 삶의 귀한 페이지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각고의 노력을 거친 연주자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북받쳐 오르는 기쁨, 가누기 힘든 슬픔, 절망의 터널 중간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무력함, 가슴을 저미는 외로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움 등 연주자가 음악을 통해 생성된 감정을 무대에서 청중에게 전달하는 감정이입(感情移入)의 특권이다.
짧게는 5분 이내 길게는 4시간이 넘는 길이의 작품을 준비하여 무대에 올라 연주하는 음악가들이 연주하며 집중하는 것은 무엇일까.
청중과의 소통이다. 악보를 읽어가는 정도는 청중을 감동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연주행위는 한 폭의 캔버스를 새롭고 아름답게 채워가는 화가의 창조적인 작업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외부적 영감 외에도 개인의 감정이 고임돌임은 분명하다.
음대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들의 진로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지휘과 출신의 제자 중에서 주류무대에서 활동하는 제자들은 학생 시절부터 감정이입이라는 특별한 부분이 탁월하였다. 함께 연주한 기악, 성악, 작곡가 중 청중과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개성 있게 표출하는 탤런트를 보유한 음악가와의 관계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으며 그들과의 연주는 놀랄 만큼 성공적이다.
반면,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연주하는 연주가들도 많다. 수업에서 또는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 중 그들과 토론하는 기회가 많다. 그들이 소유한 내면의 에너지와 깊고 풍부한 지식에 놀랍다. 그러나 그들의 연주는 내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보면 특유의 역사에 따라 풍기는 감정표현의 차이가 크다. 풍성하고 성공적인 운영과 콘서트 홀에 가득 찬 열광적인 청중을 가진 오케스트라들은 단원들의 표정이 진지하고 연주 내내 뿜어내는 자신만만한 자세에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청중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의지가 넘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술가들이 종종 착각하는 것은 자신들이 청중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존경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는 것이다 (You have to earn the respect).
요즘 같이 앞뒤가 두꺼운 철문으로 견고하게 봉쇄된 성 안에 고립된 듯한 갑갑한 예술계의 현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럼에도, 지나온 역사를 통해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위기 후에는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 출발점으로 돌아가 예술의 본질에 옷깃을 여미고 초심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작곡가의 의도를 진실되게 파악하여 철저하고 완벽한 준비를 하며 그것을 감동적으로 청중에게 바치는 소통에 충실하는 것이 연주자들의 사명이다. 청중들은 바이엘 교본의 음표를 읽어가는 음악보다 스스로 감동에 흠뻑 젖어 있는 연주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기 위해 콘서트 홀을 찾는 것이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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