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행궁은 정조가 세웠으나 화령전은 순조가 세운 정조(正祖)의 영전(影殿)이다.화령전은 1800년 6월28일 정조 서거 이후, 순조 원년 4월29일 완공해 정조 어진을 봉안했다. 순조 4년에는 화령전에 응당 행해야 할 절목인 화령전응행절목(華寧殿應行節目)을 개정해 수원 유수로 하여금 사맹삭과 탄신제, 납향제를 정기제향으로, 그리고 고유제, 이안제, 환안제를 부정기 제향으로 올리도록 한 곳이다. 화령전은 1963년에 사적 115호 지정됐는데 2019년 8월29일 문화재청에서 운한각복도각이안청을 보물 2035호로 지정했다. 그 이유는 당대의 궁궐건축기술이 적용돼 그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의미에서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성행궁에 가서 봉수당 지나 낙남헌을 가면 화령전이 보인다. 직접 보면 왜 보물이 됐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행궁은 일제 피압박 피해로 그 모습을 모두 잃었다가 2003년 복원을해 원형에 가깝게 완성했으나 그때의 건축물은 아니다. 그러나 화령전은 220년 전 그대로의 모습이 잘 유지돼 있다. 조선시대 궁 안에는 선원전과 영희전이 있었다. 영희전은 조선시대 여섯 임금의 어진(태조, 세조, 원종, 숙종, 영조, 순조)을 봉안한 전각으로 해마다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에 제향을 올렸으며, 선원전은 숙종, 영조, 정조, 순조, 익종, 헌종의 어진을 봉안하고 왕이 친히 삭망에 분향배례하며 각 임금의 탄신일에는 다례(茶禮)를 지냈다. 그러나 이제 명절다례를 올리던 영희전도 없어지고 임금의 탄신일에 다례를 올리던 선원전은 궁내의 유물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고 있을 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원화성 화령전은 정조어진이 모셔져 있다. 거기에다가 화령전은 순조 재위 34년 기간에 열 번의 행차와 친제가 있었다. 수원은 정조의 도시요 효의 도시라고 수원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도시 자체가 증명하고 있는 사대문과 성곽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능행차, 혜경궁의 진찬연, 무예24기, 과거별시 등은 실로 엄청난 역사의 도시가 되고 해마다 수원화성문화제는 정조대왕을 기리는 잔칫날이 된다. 수원은 정조임금님을 보유한 도시. 임금님이 모셔진 화령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부각될 음식, 복식, 의례, 무예, 음악, 궁중무용, 과거시험 재연 이 모든 국보적 종합예술을 어느 마을 어느 도시에서 볼 수 있겠는가. 실로 무서운 도시요 미래가치를 가장 보장받을 도시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우리는 아침에 집 나설 때 부모님께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한다. 수원화성문화제를 시작하면서 먼저 화령전에 고하는 의식은 왜 안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고유제가 어디 예산이 있어서 하고 없어서 안 해야 될 일인가. 보물이 된 화령전에 잔치가 끝나도 차 한잔 물 한 모금 올리지 않는 것은 효의 도시라 할 수 없다. 화령전을 패스한 축제는 축제라 할 수 없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오피니언
강성금
2021-07-07 2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