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에 제작된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Dinner Party)는 페미니즘 미술 역사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설치작업으로 400여명의 여성이 동원돼 5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삼각형의 금색 도자타일 바닥 위에 삼각형의 식탁이 놓여진 형태다. 바닥에는 역사 속의 중요한 인물 여성 999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식탁의 각 변에 13개씩 모두 39개의 자리가 놓여져있다. 저녁 만찬에 초대받은 39명은 여신, 통치자, 과학자, 작곡가, 혁명가들로, 고대이집트의 하트셉수트 여왕,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법정에 선 아르테미지아 그리고 1979년 당시 유일한 실존 인물인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 여성작가 조지아 오키프 등이었다. 또 디너 파티는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의미하는데, 삼각형은 여성의 기호(음부)인 동시에 삼위일체의 상징이다. 각 자리에는 수를 놓은 식탁보, 도금한 술잔, 나이프, 포크, 스푼이 차례로 놓여져 있는데, 특히 접시에 그려진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그림은 전시 기간 중에 계속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주디 시카고는 미국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로 주로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편견을 비판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디너 파티는 그러한 주디 시카고의 역량이 총집결된 작품이다.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페미니즘은 여성의 참정권, 교육받을 권리, 남성과의 동등한 지위를 외치며 유럽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이후 20세기 중반부터 젠더(Gender) 등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으로 발전했다. 페미니즘 미술은 미술사에서 소외된 여성 미술인들을 조망하는 것으로 시작해 문화 전체적인 차원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페미니즘이 정치적인 이슈가 중심이었다면, 미국에서의 페미니즘은 변형돼 문화 전반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고유의 음식보다는 각국의 음식들이 혼합돼 미국화됐다. 미국 현대미술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중반 전쟁과 기아를 피해 많은 예술가들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그들 대부분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당시 뉴욕은 떠오르는 세계 무역 금융의 중심지로 각종 첨단 매체가 등장하는 곳이었고, 다양한 담론이 생산되는 장소였다. 미국 현대미술도 미국의 음식처럼 유럽 현대미술을 이식 받았지만 떠오르는 미국과 함께 전혀 다른 스타일의 현대미술이 발전했고, 자본주의와 결합되면서 미국의 현대미술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미국의 페미니즘 미술은 그러한 미국현대 미술의 중심 사조였다. 페미니즘 미술은, 1970년대 당시 미국의 주류 사회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반전운동, 히피문화와 공유되면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생산했다. 최근 한국 정치와 사회문화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뜨겁다. 특히 20대를 겨냥한 다양한 공약들이 판을 치는데, 페미니즘 운동의 시작은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항의였고, 시간의 경과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면서 문화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갑작스럽게 제도와 규정이 변경된다고 해서 세대와 성차별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데, 정치권의 공약도 그러한 세밀한 부분에 신경을 써야 될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오피니언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2022-01-05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