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예술을 민중에게

독일을 대표하는 최고의 극장 폴크스뷔네(민중무대)는 통독 이전 동베를린을 대표하는 극장으로서, 동구의 연극에 늘 새바람을 일으키고 혁명처럼 문제작들을 선보였다. 폴크스뷔네가 유럽의 연극을 선도했던 이유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극장의 명성도 있었지만 폴크스뷔네의 예술의 계급 저항정신에 바탕을 뒀던 극장 운영 방식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폴크스뷔네는 1914년 노동계급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극장이다. 특히 동독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독일의 세계적인 연출가 프랑크 카스트로프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폴크스뷔네의 정신으로 다시 회생, 실험적인 작품을 여러 차례 성공시켜 극장의 문을 닫을 위기를 극복했다. 그의 선언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예술을 민중에게!”. 돈이 없어 대중이 예술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는 결국 예술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킨다고 생각했기에 최소 비용으로 폴크스뷔네의 작품을 민중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티켓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적어도 돈이 없어 보고 싶은 작품을 못 보는 상황을 없애도록 했다. 수준 높은 극장의 작품을 많은 대중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폴크스뷔네는 통독 이후에도 이런 운영 방침을 지속 운영했다. 폴크스뷔네의 영광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돌아보게 됐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공극장은 자립성을 강요받고 자본주의 경쟁의 구도 아래 최대한의 수익을 올려야 성과를 인정받는 극장과 공공 예술단체로 자리매김한다. 재정자립도가 떨어지는 극장들은 따가운 질책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재정 자립에 대한 부분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공공극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수익을 올리는 방안에 혈안이 돼 있다. 비싼 주차요금을 비롯한 식당 등 부대 상업공간을 최대한 많이 임대해 임대소득을 올리기도 하고, 대관료를 높게 책정하거나 혹은 부대사용료 항목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대관 단체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물론 방만한 운영으로 부실하게 운영되는 공공단체와 극장들은 문제다. 그러나 재정자립도만을 문제 삼고 이를 향유하는 시민들의 만족도에 대한 부분을 놓치는 게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민의 알토란같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의 극장과 단체의 경우 시민의 문화 향유 권리를 더 고려해야 할 것이고 혹시라도 소외받는 계층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들의 문화향유의 기회를 마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수준 높은 작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시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바로 공공의 극장과 단체가 해야 할 책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저변을 확대시키는 더욱 가장 올바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폴크스뷔네의 슬로건인 “예술을 민중에게”를 가슴에 새겨본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학문의 언어, 대중의 언어

드라마 제목 때문에 소셜미디어가 시끌벅적하다. ‘너에게 가는 속도 493㎞’라는 제목이 문제시됐다. ㎞는 거리의 단위이기에 속도를 의미하려면 시간을 더해줘야 한다는 게 골자. 맞는 말이다. 시속 493㎞, 493㎞/h 등으로 표기해야 정확하다. 한데 이게 오류 지적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문과가 또...’라며 비웃는 사람이 늘어가자 그를 불편해하는 분위기. 문과는 모르고 이과만 아는 내용은 아니라며. 여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한데 속도 대신 속력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고선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적인 언어 관습을 무시한 주장이니까. 물리학 정의에 따르면 속도는 속력에 방향이 더해진 것이다. 우리가 속도라고 표현하는 대부분이 엄밀히 따지면 속력. 한데 이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 고속도로에서 자기 혼자 반대 방향으로 100㎞/h로 달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물리학 정의대로면 이 또한 속도위반이다. 속력은 규정을 지켰어도 방향이 틀렸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이걸 속도위반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역주행이라고 부른다. 학문의 언어를 대중 전반에 강요하는 게 온당할까? 경제학을 전공하며 비슷한 사례를 여럿 봤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공공재다. 표준국어대사전의 공공재 항목엔 이런 예문이 있다. “에너지는 공공재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 올여름의 전기 부족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 관점에서 이는 틀린 예문이다. 경제학에선 비경합성, 비배제성 둘을 충족해야 공공재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쓴다고 해서 저 사람이 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지 않고(비경합성), 누군가가 쓰는 걸 억지로 막을 수 없어야 한다(비배제성). 에너지는 둘 다 충족하지 않는다. 전기, 가스 등은 한정된 자원을 나눠 쓰는 데다 요금 체납 시 얼마든지 끊어버릴 수 있으니까. 이를 두고 적지 않은 경제학 교수가 수업 시간에 열을 올린다. 대중은 무식하고 언론은 나태하다며.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은 ‘공중(公衆)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으로 간단히 정의하고 있고 일상에서도 그리 활용된다. 좀 넓게 확장하자면 음악의 불협화음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갈등이 심해서 화합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불협화음 심각하다’, ‘불협화음 마땅히 해소해야’처럼 표현하는 걸 종종 본다. 그러나 음악 전공자에겐 꽤 다른 온도로 읽힐지도 모른다. 불협화음 역시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고, 장르에 따라선 그걸 얼마나 영리하고 절묘하게 활용하느냐에서 실력이 판가름 나기에. 그런 음악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불협화음은 악(樂)의 일부일 뿐 악(惡)이 아니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모든 전공에 다 있기에 다들 할 말이 있을 테다. 한발 떨어져서 조망하면 자기 분야에서는 ‘그런 뜻 아니라고!’라며 으스대지만 남의 분야에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쓰는 형국. 그렇다면 조금 관대하거나 겸손해지는 게 어떨까 싶다. 틀린 부분에 대한 지적은 주고받되 특정 학문의 언어를 대중 전반에 강요하지는 말자는 뜻이다. 꼭 그러고 싶다면 대중과 동떨어져 누구도 헷갈리지 않을 언어로 대체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첼리니의 소금 그릇

벤베누토 첼리니(1500-1571)는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조각가이자 금세공사였다.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첼리니의 이름을 지금까지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소금 그릇 때문이다. 1543년에 제작된 <황금의 소금 상자>는 순금으로 조각된 소금 그릇으로 프랑스 왕에게 헌납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30㎝가 안 되는 이 금세공품은 한쪽에는 벌거벗은 바다의 신과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여인이 배치된 형태인데, 그 세부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누구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소금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한 음식물이다. 원시 수렵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야생 동물의 고기 대신 농사를 통해 생산된 곡물이 인간들의 주 식량원이 됐다. 그러나 야생동물들의 고기에는 풍부한 소금이 있었지만 곡물에는 소금이 없었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소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됐다. 특히 내륙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들에게 소금은 국가의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물품이었던 것이다. 고대 국가들의 흥망성쇠도 바로 이 소금 때문으로 소금은 최초의 국제적인 무역 상품이 됐다. 이탈리아 작은 어촌 마을인 베니스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상업 도시가 된 것도, 17세기 세계 경제를 지배한 네덜란드의 성공도 바로 이 소금 때문이었다. 또한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특성 때문에 믿음과 신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배신자 유다 옆에 소금 그릇이 엎어져 있는데, 이것은 바로 배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첼리니는 미켈란젤로의 뒤를 이은 위대한 조각가로 평가받았지만 살인, 강도, 여성 편력 등 개인의 생활사는 엉망진창이었다. 특히 말년에 그러한 내용을 솔직하게 기록한 자서전을 발간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첼리니의 자서전에 감동해 독일어로 번역을 햤고 첼리니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칭송했다. 자유분방한 그의 삶이 마치 천재의 비사회적 전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후대에 첼리니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가 제작되기도 했다. 최근에 첼리니의 소금 그릇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03년에 비엔나박물관에 전시된 소금 그릇이 도난당한 것이다. 당시 100만 유로의 현상금을 걸고 소금 그릇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는데, 2006년 비엔나 북쪽의 숲속에서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소금 그릇이 발견됐다, 이후 미술관 측이 소금 그릇을 보험에 들었는데 보험금이 대략 800억원 정도였다. 첼리니는 르네상스 전성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이전 세대가 하지 못했던 더 흥미롭고 비범한 것을 만들려고 했다. 르네상스 시대 에술가들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에서 예술가라는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정립해야 하는 부담감(-책을 많이 읽어 고전에 대한 상당한 지식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과 선배들인 중세 장인들의 방랑벽과 방탕한 생활 습관을 벗어나지 못한 애매한 상황이 바로 첼리니의 생애인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지역에서 문화공간을 운영할 때, 가장 어려운 점

필자는 평택시 신장동에서 지역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신장동은 ‘송탄’이라는 옛 지명으로 더 유명하다. 이곳은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K-55)가 주둔해 있는 전형적인 기지촌이다. 미군을 찾아 전 세계에서 찾아온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국적이고 색다른 풍경과 문화를 지역주민, 예술가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덜컥 문화예술공간을 열었다. 2020년부터 운영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지역에서 문화공간을 운영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다. 코로나19 발생 후 관객을 대면으로 만나기 어려운 점부터 공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비용 마련, 행정 서류처리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어려운 점이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점은 지역에서 같이 일할 ‘동료’를 만나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사람 몇 명이서 할 수가 없다. 같이 일할 기획자, 작가, 코디네이터, 활동가, 디자이너, 예술가,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동료를 지역에서는 만나기가 어렵다. 특히 신장동지역은 평택 본도심과 많이 떨어져 있고, 미군부대가 있다 보니 주변에 살고 있는 청년, 전문가 수가 현저히 적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두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모셔와야 하는데, 시간 대비 비용이 문제다. 가장 좋은 것은 지금 지역에서 만나, 장기적으로 일하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하지만 왜 우리 지역에는 문화예술 전문가를 만나기 어려울까? 평택에는 순수예술과가 있는 대학이 없다. 당연히 예술에 종사하고자 하는 이도 적고, 능력을 펼칠 무대도 적다. 인력난을 겪어 보니, 청소년·청년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으나, 관심도가 현저하게 적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지역의 청년들은 문화예술에 관심이 없을까? 평택은 매우 큰 도시지만 미술관·박물관은 없고, 문화 경험을 할 공간도 매우 적다. 평범한 사람도 1년에 한 번 마음 먹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기 어렵다. 학교에서는 예술이 단순한 그림이나 음악으로 치환되고, 부모 또한 예술을 접촉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문화예술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경험해야 하는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문화를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정해진다. 아마 이런 문제는 비단 평택시만이 겪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지역이 계속 문화소외지역으로 분류되거나, 문화예술 경험의 기회가 적은 채로 있어도 되는 것일까? 필자는 자기 집 앞에서도 다양한 문화예술의 경험이 삶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도 문화예술 경험이 늘어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요자인 주민의 역할이다. 수요자가 많아지고 요구가 많아져야 지방 정부가 움직일 수 있고, 공급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주민의 입장에서는 문화예술기회가 적은 것을 인지해야한다. 그리고 공공의 문화적 혜택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수요가 많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지역문화 공급자로서는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이 아닌 양질의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대로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지방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다. 곧 지방선거가 시작된다. 벌써부터 선거 열기가 느껴진다. 현재 각 지역의 예비 후보자들이 등록을 하고 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부디 지역의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후보자들이 입후보하길 바라본다. 특정 정치인 한 사람의 관심으로 갑자기 지역의 문화예술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여러 사람들의 힘이 모여 그 지역의 문화예술이 독특한 힘을 발휘하는 날이 오기를. 그날이 오기를. 마음깊이 기다려 본다. 이생강 협업공간 한치각 공동 대표·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일송 김동삼 선생의 지향

언제부턴지 ‘광복절(光復節)’ 명칭이 부담스러웠다. 일제 강점 35년은 우리 5천여년 유장한 민족사에서 점 하나에 불과하고, 그 전후의 자주성과 성취를 가리기도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22 <일송김동삼(一松金東三)선생기념사업회>가 오는 13일에 백범기념관에서 발족식을 개최한다며 초청장을 배부했다. 인용된 선생의 유언,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를 읽었다. 선생을 비롯해 당대 독립투사들의 막막한 운명, 그 통한과 비원을 공감하며 분노로 우울했다. 선생은 또 옥사하기 3년 전에 “내가 죽을 이곳은 풀밭이나 산중에서 죽은 무명의 동지들을 생각하면 ‘과분한 장소’”라고 탄식했다. 두 말씀의 깊고 도저한 함축에 감읍하며 무명 열사들께도 죄송했다. 1907년 이래 선생의 30여년 독립운동은 ‘무장투쟁’과 ‘민족통합’으로 요약된다. 특히 1919년에 남만 한족회 총무사장과 서로군정서(독판 이상룡)의 참모장을 역임하며 신흥학교를 신흥무관학교로 확대해, 이청천 신팔균 김경천 이범석 등이 독립전쟁의 무장으로 전환하는 계기도 마련했고, 그 전후에 김산 김원봉 강화린 등 뒷날 독립운동사에 큰 자취를 남기는 3천5백여 투사를 육성했다. 대소 무장투쟁을 촉진하는 한편, <대한통의부>(1922.8), <상해 국민대표회의>(1923.1), <정의부>(1924.12), <삼부통합 혁신의회>(1928.12), <민족유일당재만책진회>(1929.5) 등을 결성하며 민족의 독립투쟁 역량을 통합하거나 통합하는 노력에 헌신했다. 무장투쟁 내부에도 갈등과 불화가 상존했다. 좌우 갈등뿐만 아니라 학통과 반상에 따라 입장이 달랐고, 만주 거주지역의 지연과 관련 세속권력도 형성돼 있었으며, 심지어는 복벽(復〈8F9F〉)과 민주가 맞서기도 했다. 단일전열로의 통합에는 살신성인 수준의 헌신과 신뢰가 요구됐는데, 선생은 그 대의명분에 누구보다도 충실했다. 특히 참의부 신민부와의 통합에서 끝내 기득권들이 충돌하자 1911년 만주 망명 이래 피땀을 바쳐 결실한 정의부에서 탈퇴까지 했으며(1928.5), 통합 동지 김좌진 장군이 피살되면서 좌우이념이 끝내 문제돼도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민족유일당재만책진회> 중앙집행위원장 활동의 일환으로 <전만한인반제국주의대동맹창립주비회>에 집행위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1930.3) 1931년 10월5일 하얼빈에서 피체된 선생은 1937년 4월13일 경성형무소에서 60세로 순국했다. 걸출한 고승이자 『님의 침묵』의 위대한 시인인 만해 한용운은 선생의 시신을 심우장에 안치하고 영결식에서 유례없이 대성통곡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오늘 국내의 여러 분열과 남북의 갈등을 생각하면, 선생의 지향은 여전히 우리 민족에게 대의(大義)이고, 공동이념으로 필요하다. 광복절, 이 명칭 또한 남북이 서로 국체를 인정하거나 아니면 통일에 합의하는 그날 이후라야 변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종 시인·전 연성대 교수

[문화카페] 몸의 연극

연극은 더는 대중매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드라마의 영역에서는 새로운 매체에 그 위치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 문학에 종속돼 있던 연극은 드라마가 없는 새로운 방식의 연극으로서 발전하는데, 역사적 아방 가르드부터 시작된 연극의 재연극화가 고민되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매체로서는 도저히 대체 불가능한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표현방식을 고안하기 시작했고 이런 경향은 최근 더욱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연극을 ‘재발견’하고 연극에서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독창적인 표현의 잠재력을 ‘재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극만이 가능하고 다른 매체로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특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텍스트는 무대에서 생성된 여러 이미지의 기호처럼 기호화돼 표현되기 시작했다. 후설의 ‘현상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지각’의 방식은 무대에서 ‘몸’의 관심을 끌어냈다. ‘몸’은 수행성을 이끌고 ‘몸’을 통한 수행성이 새로운 연극에선 중요한 사항이 됐다. 즉흥적인 에너지의 생성은 새로운 지각방식의 퍼포먼스를 창조하게 했다. 퍼포먼스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정교한 구조로서 한정된 시공간의 연극환경에 새로운 소통의 확장을 이루어 왔다. 포스트드라마 연극의 배우는 더는 어떤 인물을 재현하거나 창조하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다만 무대 위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현존을 제공하는 인간이다. 수행성의 의미에서 연극은 관객의 새로운 지각방식을 연구하고 나아가 공연의 물질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공연은 결과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창작행위의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이제 연극은 재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모든 대상의 현상적 물질성을 부각시키고 가시적인 무의미성을 강조한다. 이제 몸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의 대상인 것이다. 미디어의 결합은 공연예술에서 다양한 실험으로 이루어졌는데 매체와 매체를 결합해서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균열을 만들어 냈다. 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연극성에 대한 실험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현대연극에서 텍스트는 그 힘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드라마가 절대적인 연극성이라고 여겨왔던 믿음은 새로운 형태의 체험이 연극성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관객을 감상적인 범주의 객체로 위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주체로서 지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예술이 오늘날 연극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관객은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연극에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권리와 책임을 주장할 수 있는 시민이 중심이 되는 시민 중심 사회를 만들어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연극은 관객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사유하거나 혹은 근본적인 문제에 성찰하는 기회를 공연이 제공해야 한다. ‘어떻게 우리의 관객을 사유하게 할 것인가?’ 그러면서 ‘어떻게 감동하게 할 것인가?’ 나아가 ‘감성의 부분과 이성의 부분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사유해 본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예능보다 재미있는 다큐

재미의 커트라인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예전엔 그럭저럭 웃고 즐겼던 영상과 농담에 지금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시간이 흐르며 과거의 웃음 포인트가 부적절하고 구태의연해진 탓도 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뭐가 됐든 예전보다 훨씬 강하고 빠르고 확실한 걸 원한다. 어설픈 재미보단 차라리 노잼이 낫다. 그러면 노잼이라고 비웃으며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치어: 승리를 위하여>는 이런 트렌드에 정확히 부합하는 콘텐츠다. 다큐의 방법론을 취하고 있지만 그 어떤 예능보다 재미있다. 담긴 모든 이야기가 실화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대중이 현대 엔터테인먼트에 기대하는 요소를 두루 담아낸 수작. 에미상 3개 부문 수상에 걸맞은 완성도. 소재 선정부터 영리하다. 미국 대중문화의 꽃이라고 불리는 치어리더. 언뜻 생각하기에 이들은 주연보다 조연에 가까운 존재다. 경기장의 선수를 응원하는 게 목적이니까. 실제로 치어리더라는 표현은 경기장 밖에서 응원이나 하는 이 같은 격하 의미로 사용될 때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 다큐를 보고 나면 그런 말은 쏙 들어간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도전하는 대학생 청춘들을 보면 어느덧 그들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의아해하는 이를 위해 말해두자면 여기 담긴 치어리딩은 우리가 야구장, 농구장 등지에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춤추고 흥을 돋우는 걸 넘어서 곡예 수준으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땅을 가로지른다. 남녀가 어우러져 펼치는 종합 체조로서 화려하고 아찔한 연기의 반복. 영상으로 보면 박진감과 스릴이 가득한데 이 역시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소재 선정의 승리. 대단한 육체적 능력과 매력을 가졌지만 그들 모두는 덜 여문 채 미래를 불안해하는 보통의 20대.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며 경쟁하고 화합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인간의 한계와 의지를 묻게 된다. 아울러 다양한 배경, 개성, 가치관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이끄는 리더십의 중요성과 덕목도 되새기게 된다. 다큐 본연의 목적을 너끈히 수행하는 가운데 예능 이상의 재미까지 담아냈다. 치어리딩 경기와 훈련은 역동적이고 화끈하게, 각자의 삶과 일상은 사려 깊게 접근한 덕분에 재미와 감동이 쉴 새 없이 교차한다. 자극적으로 편집된 짧은 영상 외엔 도통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 뭘 봐도 작품성과 진정성을 피곤할 정도로 따지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것. 여기 담긴 게 그들 삶의 전부일 리는 없다. 시즌1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어 전국구 스타 반열에 오른 선수 한 명이 이후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구속돼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시청자는 물론 제작자, 동료, 감독까지 죄다 충격에 휩싸인 스캔들. 그동안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완벽하게 숨기고 산 것이다. 시즌2에선 이 내용까지 다룬다. 결과적으로 이 또한 작품의 메시지 중 하나가 되고야 말았다. 다들 어느 정도는 연기하며 산다는 것. 물론 그게 추악한 범죄여선 곤란하지만.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악마의 술 ‘압생트’

인상주의 미술은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현대미술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과 강렬한 색채를 통해 화면을 요동치게 만들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난해한 화풍 때문에 대중들이 거부감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에드거 드가(1834~1917)는 인상주의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그는 추상적인 방식보다는 사실주의를 선호했다. 드가의 그림 중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1876)>이라는 그림이 유명하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의 카페에 있는 두 남녀를 그린 작품이다. 화면에서 두 인물은 각각 앞을 보고 있고 그 앞에는 술병과 잔이 놓여져 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어색함이 느껴진다. 마치 현재의 그림이 더 큰 그림의 일부분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잘라내기 기법으로 말없이 앞을 응시하는 두 남녀의 소외감과 고립감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이 그림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소재와 인상주의 화풍이 절묘하게 맞아들어간 드가의 역작으로 평가받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은 당시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엽까지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술인 압생트(Absinthe)라는 술이다. 압생트는 허브를 갈아 증류시킨 술로 도수가 40~80도가 넘는 독주인데 에메랄드 빛 녹색이 특징으로, 그 색깔 때문에 녹색 요정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이 별칭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압생트 술을 마시면 헛것이 보이는 환각 체험을 하기 때문이었다, 압생트가 처음 나왔을 때는 가격이 비싸 부르주아들이 주로 마셨지만, 이후 가격이 하락하면서 1870년경에는 모든 계층이 마시는 국민 술이 됐다. 당시 파리는 산업혁명을 통해 겉으로는 풍요로운 것처럼 보였지만 그 풍요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또한 프랑스의 개방적인 문화정책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보헤미안)이 파리로 몰려들었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고단한 삶을 잊기 위해 녹색 요정에 몸을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 고흐가 압생트를 너무 많이 마셔 정신착란에 빠졌다는 주장이 있는 것처럼, 압생트는 독성 때문에 20세기 초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이것은 중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불순물을 섞어 제조한 일부 불량 압생트 업자들 때문이었다. 19세기 말의 세기말적 불안은 당시 전 유럽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 불안과 공포는 역으로 현대미술의 촉매제가 됐지만, 고단한 현실에 몸과 마음이 지친 예술가들은 악마의 술 압생트가 들려주는 달콤한 노래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세련된 예술가 정책을 말하는 문화 대통령을 바란다

2011년 1월. 문 밖에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남는 밥과 김치가 있으면 문 좀 두드려 달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인 고(故)최고은 씨는 사체로 발견됐다. 생활고로 죽음을 맞았다는 이 예술가의 이야기는 매일 뉴스에 대서특필 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한 부류는 이렇게 슬픈 죽음이 있냐고 애도하고 다른 한 부류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을 벌지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모든 예술가가 매일 전시가 있고, 공연이 있진 않아서 그것만으로 온전히 생계를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작품 발표를 하기까지는 순수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가, 발표를 한다. 그런데 이 작품 발표라는 것이 꼭 돈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운이 좋아서 공공기관의 후원으로 장소 협찬이나 작품 제작비를 받을 수는 있지만, 예술가의 사적비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필요한 경비만 지원이 된다. 그렇다면 이 예술가는 작가로서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정규직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기도 한다. 아르바이트도 정해진 시간에 맞추고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채용이 되는데,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 때문에 수시로 다양한 약속과 사건이 발생해 이마저도 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보니 예술가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한 소위 일거리를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이 일거리는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언제 나에게 일을 줄지 모르는 희망 고문 수준에 가깝다. 이런 연유로, 한 예술가의 죽음 이후에 정부 차원에서 예술가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해 말 고(故)최고은 법(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고, 예술인 복지 재단이 설립됐다. 올해까지 11년 동안 시행돼 왔지만 현재까지도 예술인복지법에 대한 의문이 많다. 첫 번째 난관은 누구를 지원할 것인가?였다. 이 법은 예술가들의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입장인데, 예술가들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규정해야 하는지 논의가 일었다. 국가기관에서는 가장 손쉬운 신청-증명이란 방법을 택했다. 예술가가 예술 활동 인정 신청을 하면, 예술인 복지 재단이 그것을 검증하고,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시스템이다. 공공기관에서 하는 사업에 응모하거나, 실행하려면 이제 예술인증명이 필수가 됐다. 현재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이어 나가는 것보다, 이 예술인 증명을 받는 것이 더 큰 과제가 되어버렸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이 예술인 증명을 통해서 고용보험도 늘려가고, 사회안전망 구축을 이루어 나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행정 시스템 안에서만 진행 중이다. 획기적인 변화 방법 이외에 어떻게 굶어 죽는 이들을 살릴 수 있을까? 3월9일은 앞으로의 5년을 결정하는 중요한 날이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난감한 부분이 많았다. 우리 삶에서 왜 예술이 중요한지, 대한민국에서 지역 불균형 없이 문화예술을 즐길 방법을 말하는 대통령 후보가 없을지. 이번 후보들의 공약집을 살펴보면 예술가와 예술 분야에 관한 정책도 별로 없을뿐더러, 예술가를 덮어놓고 불쌍한 사람으로 상정하고 단순한 복지, 묻지 마 퍼주기 정책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예술 분야만 그렇겠냐만은 좀 더 세부적인 대상에게 어떤 연유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통해서 삶의 질을 상승시킬 수 있을지, 정치로 해결하는 대통령이 나와 주길 바란다. 이생강 협업공간 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103년 전 곤궁한 희망의 봄날

31절 오후에 여주 여강(驪江) 강변을 산책하던 소설가 선배가 전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저 하늘에 우리의 보통 이성과 다르지 않은 존재가 있어 내려다 본다면, 하이고 저런 잡스러운 명분으로 개미 같은 것들이 글쎄 또 서로. 그 전장에서 폭발과 화염, 총성과 사상(死傷)이 속출하고 있다. 21세기에 일어난 20세기의 비극. 자주 독립국가의 의향을 이웃 대국이 탐탁하지 않다고 전면 침공하다니. 민간인도 가리지 않기에 범죄에 해당하는 이 국가폭력은 갈등 자체에서가 아니라 푸틴정권의 속성에서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독재 연장에 유리해지려 갈등을 부풀리며 과도한 애국주의를 짐짓 악용한 사태가 아닌가. 우리는 같은 시각으로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야기한 홍콩탄압과 서남공정 동북공정 등 이해 못할 부조리 확대의 정체를 엿볼 수 있다. 오늘 한반도의 고질인 북핵의 이면도 마찬가지다. 오는 3월9일 새 정권 수립을 앞둔 이 나라의 상황은 1950년대 자유당 시절 선거풍토보다 낫지 않다. 선출에 염치 있는 호소가 아니라 권력을 획책하는 정략과 정쟁으로 그 경계가 터질 듯 아슬아슬하다. 우리가 지겨워하고 짜증을 내도 여전히 상대의 비전을 왜곡하고 무관한 억지 비난을 부착한다. 민주주의 권력의 기본은 무엇보다 상대 배려와 공공 윤리성이 아니던가. 숱한 사연과 고통으로 민주화 장정을 거쳐 온 우리가 그 윤기(倫紀) 퇴행을 탄식해야 하다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번 대선 정국의 말미에서 우리는 모두 103년 전 곤궁한 희망의 봄날에 우리의 선조들이 생명을 걸고 절실하게 희구했던 염원을 준열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허식의 하에서 이해상반한 양 민족 간에 영원히 화동(和同)할 수 없는 원구(怨溝)를 거익심조(去益深造)하는 금래 실적을 관하라. 용명과감(勇明果敢)으로써 구오(舊誤)를 확정(廓正)하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본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함이 피차간 원화소복(遠禍召福)하는 첩경임을 명지(明知)할 것 아닌가. 잔포하고 간교한 일제에게도 이러했는데 그 간곡한 심정과 의지를 받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여야가 서로 그렇게 못 할 리가 없다. 국가의 다행 앞에서 여야의 이해란 게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지지를 달리 해도 대선 이후를 더 걱정한다. 최근에 여당은 정치개혁 통합정부를, 야당은 헌법의 공화를 준수하며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만약 새 정권이 그러지 않거나 어떤 정치세력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선 과정에서 감행한 추태까지 소급해 탄핵할 것이며, 31정신을 훼손하고 농락한 일제(日帝)와 비슷한 무리로 민주의 역사에 기록할 것이다. 김승종 시인전 연성대 교수

[문화카페] 예술의 공공성

최근 우리나라의 문화 예술이 전 세계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문화 예술이 이처럼 전 분야에 걸쳐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이런 현상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문화 예술은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파급효과도 상당해 국가가 정책적으로 육성하고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는 분야가 됐다. 한국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의 중심에 선 우리의 문화 예술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고 지금보다 더욱더 세계 시장에서 파급력을 가져가기 위해선 소수 엘리트 중심의 예술이 아닌 예술시장 저변이 확장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 문화 예술의 체질은 실상 날로 더 허약해지고 있다. 승자독식주의 시장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우수한 문화 예술이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있고, 더욱이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간 지속됨으로써 국내 시장에서 힘을 가지지 못한 예술가들의 활동은 더욱 위축돼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 예술 지원 전략도 소수 엘리트에게만 집중해 지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어서 문화 예술 현장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현장 예술인들의 창작 의지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예술의 공공성 측면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예술의 공공성이 건강하게 확장될 때 우리 예술 시장의 저변도 자연스레 확대될 수 있고 예술이 대중의 삶에 깊이 연결돼 건강한 시민 의식을 고취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공공성을 담당해야 할 일선 공공기관의 예술단체들은 더이상 외면받는 그들만의 예술이 아닌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예술을 창작해야 한다. 또한, 지역의 예술가들과 협업을 이뤄내어 공공의 힘으로 현장에서 명맥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역할도 지속적인 프로그램으로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공공단체에 속한 일부 소수의 예술가에게만 평생을 보장하는 직장을 제공하는 형태로서 존재하는 공공의 단체가 된다면 지역과 시민에게 외면을 받을 것이다. 지역의 예술가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교류해 지역의 예술 발전과 저변을 확대하는 데 노력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예술을 교육받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공공의 재원으로라도 지원해 수준 높은 예술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은 소수 엘리트만을 대상으로 하고, 이를 교육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교육 비용이 지출된다. 일반인이 재능이 있다고 해 교육 받을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교육의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공 예술단체가 그간 지역 사회에서 받았던 혜택의 환원 의미로라도 인재 양성에도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또한 예술의 저변을 확장하는 긍정의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건전한 저변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기초가 약한 화려한 건축물과 같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 예술이 가장 독창적이면서 대중적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바로 지금이 시민예술을 장려하고 예술이 시민의 삶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예술의 공공성을 고민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명예와 영광 과거 속으로

야구선수 이대호의 은퇴 투어가 논란이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는 그에게 모든 구장에서 축하받으며 작별을 고하는 이벤트를 허락하느냐를 두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성적과 기여만 보면 만장일치로 찬성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데 그에게 자격이 있느냐?고 묻는 목소리도 드세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승엽과 추신수는 대호가 못하면 앞으로 누가 할 수 있겠나?는 견해를 내놓았고, 이대호 본인은 은퇴 투어는 고사하고 은퇴식도 안 하겠다. 대신 모든 구장을 돌며 팬 사인회를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찬반 여부를 떠나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업적을 기리고 유산을 후대에 전하는 데 유난히 소극적이라는. 지금까지 은퇴 투어를 가진 야구선수는 국민타자로 불릴 만큼 입지가 절대적이었던 이승엽 한 명밖에 없고, 명예의 전당은 부산시 기장군에 건립하기로 결정한 게 2014년이지만 돈 문제로 인해 아직 착공도 못했다. 축구의 경우는 2005년에 명예의 전당을 신설하며 차범근, 히딩크 등 일곱 명을 헌액자로 선정했으나 이후 업데이트는 없다. 미국은 반대다. 야구를 위시한 주요 스포츠는 물론이고 음악, 만화, 게임,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명예의 전당이 존재한다. 매년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헌액자, 수상작을 선정하며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과거의 영광과 추억을 현재로 적극 끌어들여 세대 간의 교점을 만드는 데 열심인 것이다. 이런 노력은 프랜차이즈를 좀 더 공고히 만들어 시장에 선순환을 야기한다. 헌액, 선정 과정은 매우 엄격하지만 소극적이거나 적대적이진 않다. 유산을 만드는 과업이라는 합의 아래 적극적으로 임하고 대중도 함께 즐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20여 년 전 어느 음악원에서 잠시 공부하던 시기의 일화가 떠오른다. 당시 기타를 가르치던 강사가 수업 시간에 아래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신은 기타를 지미 헨드릭스처럼 치는군요!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겠어요? 기분 째지겠지요? 그런 사람은 당장 한국 떠나서 미국으로 가야 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타를 ○○○처럼 치는군요! 같은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나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구닥다리잖아요. ○○○은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기타리스트로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업적과 공헌이 대단한 인물임에도 수업 시간에 이런 이야기가 스스럼없이 오갔고 반박하거나 불쾌하게 여기는 학생은 없었다. 모두 농담으로 여기며 웃어넘겼다. 외국 거장들한텐 어림없지 같은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한국 록을 듣는 사람도 있어? 하며 얕잡아보던 기류도 은근했다. 존경의 정서는 딱히 느끼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한국 사회의 압축판 같다. 과거의 영광과 공헌은 구닥다리, 퇴물로 치부되기 일쑤고 그 가치와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꼰대 소리를 듣는다. 물론 극복하고 떨쳐내야 할 것도 수두룩하지만 그 와중에 기리고 계승할 만한 무언가에는 함께 가치를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엄격한 건 얼마든지 이해하나 소극적이거나 적대적인 분위기는 아쉽다.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대리석 설탕

왜 로즈 셀라비는 왜 재채기 하지 않지?(1921)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이다. 마르셀 뒤샹이 누구인가? 전시장에 변기를 출품해 미술계를 경악시켰고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어 미술계를 모독한 인물이다. 셀라비 역시 범상치 않은 작품으로, 새장 안을 각설탕 모양의 152개의 대리석 육면체들로 가득 채우고, 그 위에 의료용 체온계와 오징어뼈를 올려놓은 형태이다. 대중들에게 이해되는 작품을 거부한다는 뒤샹의 선언처럼 이 작품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무의하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묘한 작품으로 1936년 파리의 초현실주의 미술 전시회에 출품돼, 파푸아 뉴기니의 주술 장식물과 푸앙카레 연구소의 수학이론 도해 사이에 전시되기도 했다. 뒤샹은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개념을 전파했는데,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을 뜻하는 것으로 수공예라는 핸드메이드와 반대되는 것이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통해 기존의 미술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시각예술 개념을 정립하고자 했다. 예술작품과 대량생산된 일상 용품의 경계를 허물고 그 경계선상에서 새로운 예술의 유희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뒤샹의 레디메이드인 것이다. 셀라비 역시 레디메이드 작품인데 무게에 대한 암시(대리석), 약속된 달콤함(가짜 각설탕), 저지된 비상(飛上, 오징어 뼈와 새장), 대리석 조각의 차가움을 의미하는 온도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뒤샹의 작품들처럼 이 작품도 수많은 해석과 논란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제목의 셀라비는 뒤샹을 지칭한다. 뒤샹은 여장을 자주 했는데 사진작가 만 레이가 그 모습을 촬영한 뒤 뒤샹에게 보여줬고, 뒤샹은 그 인물에게 로즈 셀라비란 이름을 붙였다. 1920년대 미국 사회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고 뒤샹 역시 그러한 사회적 흐름에 동참한 것이다. 뒤샹의 예술적 의도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편견, 그리고 그 편견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희를 통해 사회와 예술을 새롭게 환기 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무의미하고 또 한편으로 심오한 셀라비에는 왜 설탕이 중심으로 등장한 것일까? 설탕은 사탕수수로 만들어지는데, 사탕수수가 처음 재배된 곳은 남태평양 뉴기니섬이지만 설탕을 처음으로 제조한 곳은 인도다. 인도에서 서쪽 이집트로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전파되면서 설탕은 꿀을 제치고 대표적인 감미료가 됐다. 중세시대 이슬람제국을 통해 서유럽에 전해진 설탕은 초기에는 향신료로 분류돼 비싼 값으로 팔렸다. 특히 종교개혁으로 수도원에서 재배하는 꿀의 양이 줄어들고 서유럽의 차문화가 발전하면서 설탕 가격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서인도제도에서 사탕수수 재배가 시작되면서 서인도제도는 설탕의 공급지가 됐다. 그러나 설탕을 제조하는 과정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또 사탕수수재배는 농업이지만 수확 후 설탕을 제조하는 과정은 플라스틱이나 강철을 만드는 것처럼 분업화 조직화가 필요한 공업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제국들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만들어 중남미에서 설탕을 만들게 했다. 설탕의 달콤함은 꿀의 몇 배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노예들의 눈물,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달콤함이었다. 마르셀 뒤샹은 셀라비에 대해 말했다. 이걸 보시죠. 이것은 레디메이드 새장인데, 이게 설탕이 아닌 대리석이기 때문에 잘 들수가 없습니다. 이 부분이 내가 이걸 만들었을 때 재미있다고 생각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것이 설탕이 대리석으로 변한 레디메이드입니다. 일종의 신화적 효과이지요. 설탕은 달콤하다. 우리가 설탕이라는 달콤함의 관습에 취해 있으면 대리석으로 변한 설탕을 이해할 수가 없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물질을 단순히 물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관점에서 물질을 고찰하고 또는 물질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예술이고 예술에서만 인간은 동물적 상태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래서 뒤샹의 설탕은 달콤하지 않고 차가운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임인년, 호랑이 기운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해가 밝았다. 임(壬)이 검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특별히 흑호의 해가 됐다. 나라의 동물을 따로 정하고 있지 않지만,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호랑이를 영험하게 여기면서도 애정했다. 한국의 지도가 호랑이의 기상을 닮았다고 하는가 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시작하는 옛 구전 동화 속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전래동화 <해와 달>에서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며 무서운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은혜 갚은 호랑이>에서는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에게 은혜 갚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호랑이가 힘세고 무서운 점을 소설 속에서 권위 있는 자들로 비유했다. 그래서 유독 호랑이가 전래동화 안에서 우둔한 자기 꾀에 넘어가거나, 힘이 없는 토끼나 작은 사물에 혼이 나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회를 해학적으로 비틀어 버리는 조상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미술 속에서는 어땠을까? <맹호도(猛虎圖)>라고 하여, 백성들은 액운을 물리친다는 믿음으로 호랑이를 민화로 그리기도 했고, 궁궐에서는 신비하고 상서로운 기운을 받고자 그려지기도 했다. 많은 맹호도가 남아 있는데,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작품이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다. 작품명에서도 알 수 있듯, 소나무 아래 호랑이라는 뜻이다. 그림 속 호랑이가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기세가 등등하다. 우리의 수묵화는 윤곽선이 뚜렷해야 하는데, 이 <송하맹호도>는 호랑이의 윤곽선 없이, 한 올 한 올 그 털을 재현해 냈다. 거기다가 형형한 눈의 모습이 한국의 호랑이의 그것이었다. 그 호랑이 기백과 잘 어울리는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과하지도 덜 하지도 않은 소나무다. 매우 놀라운 수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떤 미스테리가 있을까? 이 그림에는 낙관이 두 개가 찍혀있다. 하나는 단원의 것인데, 다른 하나는 표암(豹菴)이라 돼있다. 이 표암은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의 호인데, 이 낙관의 필체가 강세황의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는 김홍도의 친구 이인문이 그렸으리라 추측한다. <송하맹호도>에서 소나무는 누가 그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김홍도가 모두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섬세한 호랑이와 거칠면서도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의 기상을 볼 수 있는 작품이 탄생했다. 그 전의 김홍도 작품과는 다른 작품이 탄생했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 김홍도 같은 천재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혹은 협업으로 자신의 전형성에서 탈피해 새로운 작업 스타일을 창조했다. 오미크론이 새해 벽두부터 기승이다. 2022년도 다같이 모이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이와의 만남까지 모두 차단하자는 마음가짐은 어쩐지 쓸쓸해진다. 흑호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상서롭게 여겨지기도 한다. 올해 검은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독자님들이 나쁜 액운은 물리치고 좋은 인연들과 만남으로 새로운 창조의 길을 여시기를 <송하맹호도>로 바라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생강 협업공간 한치각 공동 대표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비유의 언어

지난 21일에 조계사에서 전국승려대회가 열렸다. 명고(鳴鼓)와 명종(鳴鐘)에 이어 가사를 입은 스님들을 따라 신도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함께 참회하며, 종교편향과 차별을 근절하라는 메시지를 정부와 우리 사회에 제기했다. 겨우 입장료 문제로 이런 행사를 열면 품격이 떨어지고 대선 시기라서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불교 내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이 행사는 종교의 자유를 위시해 우리 체제의 본질과 공화(共和)를 위해서 오히려 이 시기에 다시 생각해볼 유용한 큰 질문이다. 혹시 우리는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를 자부하다가 다른 종교를 경시하거나 그런 결과를 방치하지는 않나. 뿐만 아니라 이 사태의 한 발단이 된 한 정치인의 비유 발언과 그 발언이 야기한 파문을 우리의 정치와 안녕을 위해서 이 기회에 한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작년 가을 국회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여당의 한 의원이, 가야산 경역에 입장하지만 해인사에 들르지 않는 등산객들도 돈을 내야 한다며 문화재관람료를 통행세, 해인사를 봉이 김선달에 비유하여 물의가 빚어졌다. 해인사는 해인사에 관련된 가야산 일대는 국립공원이면서도 해인사의 소유이고 무엇보다 문화재로서 문화재보호법의 대상이기도 해 그 입경에 지불하는 돈은 통행세가 아니라 그 전체 보존과 유지가 포함된 문화재관람료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곧 여당 지도부가 사과한 대로 그 발언에는 비하의 취지도 함축돼 있다. 사실 비하뿐만 아니라 부당부정의 취지도 내포돼 있다. 이견이 있겠으나 통행세에는 산적과 같은 폭력이 배후에서 강제하는 악세(惡稅)라는 함축이 있고, 봉이 김선달에는 겉은 그럴 듯하나 알고 보면 세속 순진한 사람 등치는 사기꾼이란 뜻이 내포돼 있다고 하겠다. 나아가 교단 전체를 그렇게 비견하는 제유(提喩)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비유의 취지가 초래할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사안에 비유를 적용해 감당 못할 갈등을 야기하고 증폭한 사례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시에서 비유는 리듬과 더불어 본질이지만 비유가 진부하거나 어울리지 않으면 문맥의 의미와 의의까지 저하해 결국 긁어 부스럼이 된다. 현실 정치의 문맥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 의원이 연상을 제어하며 사실만을 따지는 외연 의미의 언어로 문제를 제기했다면 어떠했을까. 후속 논란에서 그 자체의 검증에 그쳐 이번 사태를 촉발하는 주요 단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나라 정계의 언어에서 비유의 과용과 오용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조롱과 야유의 비유가 꼬리를 물고 있다. 대중에게 메시지를 쉽고 세게 전달하기 위해 비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인의 행태를 제지할 수 없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해 아예 그래서도 안 되지만, 우리 정치의 격조를 되살리고 갈등을 감쇄하기 위해, 비유 자체와 비유의 취지에 신중하면서 예의를 갖춰 메시지를 제시했으면 한다. 특히 비난의 비유는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정치는 아무래도 갈등 해결의 활동이 아닌가. 대선 시기 여야와 진영의 갈등, 그 갈등에 관련된 국민의 정서 순화에도 크게 조력할 것이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문화카페] 연극과 공간

나에게 연극 작업은 미지의 공간 탐험과도 같다. 이 공간에는 별처럼 많은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도대체 이 공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이기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쉼 없이 토해질 수 있는 것일까? 연극은 어떻게든 공간 속에서 관객과 만나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창조된 공간의 모습이 바로 연극의 모습이다.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창조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공간은 어떤 방법으로 관객과 약속이 이뤄지는지에 따라 연극의 형태가 결정된다.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공간 속에서의 연극이든 간에 그 공간은 바로 허구의 공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현실을 잘 담아낸 연극이라 할지라도 관객이 그 공간의 존재 자체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연극은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연출 작업의 시작은 바로 그 공간을 연구하고 결정하는 데 있다. 연극은 언제나 일정한 가로 세로 높이의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데 그 작은 공간은 연극이란 마술로 우주보다 넓은 공간으로 창조된다.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함을 창조해 내는 것, 바로 이런 점이 연극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일반적인 몇 가지 오류를 생각해보고 싶다. 우선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 예를 들어 큰 창고처럼 빈 공간에 덜렁 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 그림을 보면서 무엇이 보이는지 일반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 의자가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의자가 차지한 공간보다도 창고 전체의 공간이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연극적 가능성은 바로 의자를 뺀 나머지 공간, 즉 비어 있는 큰 공간에 있다. 빈 공간의 가능성을 믿고 공간창조 작업에 접근하는 것이 연출 작업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다음은 편견과 인식의 오류다. 미술 수업 중 거꾸로 된 그림 그리기라는 것이 있다. 대개 피카소가 그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소묘를 보이는 그대로 그리기 연습을 하는데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거꾸로 놓고 보면서 똑같이 따라 그리기 연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상적으로 놓인 그림을 그릴 때보다 거꾸로 놓인 그림을 그릴 때 대상을 더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경험한다. 거꾸로 된 그림 그리기는 오로지 보이는 대로 그리면 매우 쉽지만, 알고 있는 형태를 의식해버리면 자신도 모르게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림 그리기 연습처럼 공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정확하게 공간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식의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내가 공간을 결정할 때 도전하는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결국 관객에게 보여지는 공간을 통해 믿음을 얻고 보이지 않는 무한한 공간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며 바로 그 믿음을 바탕으로 무대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바로 그 이야기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객은 그 질문의 답을 고민하며 극장을 나서게 될 것이다. 분명한 건 내가 추구하는 공간은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대의 공간을 창조해 나가는 일이라는 것. 무엇이 다 정해져 버리면 재미없지 않은가? 아직 정해진 것이 많지 않기에, 그래서 무한하기에 늘 연극은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있으며 열렬한 것이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완벽함이라는 환상

와, 이 사람은 정말 모든 걸 다 가진 예술가였구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살바도르 달리 전을 보는 내내 이렇게 생각했다. 미술 문외한인 내가 달리에 대해 알고 있던 건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거장이라는 점과 대표작 몇몇 정도가 전부였다. 그의 작품 세계나 삶의 궤적을 소상히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의 예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시를 보면서 내심 부러운 마음을 느꼈다. 넘치는 천재성을 쉴 새 없이 작품으로 생산했고, 경제적 성공은 물론 셀럽으로서의 인기도 누렸으며, 심지어 평생 여신처럼 숭배하며 사랑한 아내도 있었다. 이 셋을 다 가진 예술가가 얼마나 되겠나? 딱히 아쉬울 게 없어 보이는 삶. 아내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보다 이상적인 관계가 있을까 싶을 정도. 아내 갈라는 달리에게 정서적 유대감, 예술적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과 수입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역할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갈라가 없다면 달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오갔을 정도. 그런 아내를 어찌나 사랑했던지 노년이 되어 달리는 중세의 성을 하나 사서 선물하기에 이른다. 갈라의 허락 없이는 출입조차 않겠다는 서약까지 해가며. 이를 두고 달리는 서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관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함께하면서도 존중하는 관계로 보여서 나는 내심 경탄했다. 맙소사! 위 모든 이야기는 절반의 진실이었다. 전시에서 말하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이다. 귀가하는 길에 살바도르 달리의 삶을 검색해보고선 나는 말 그대로 식겁했다. 달리는 평생 갈라만 사랑하며 의지했지만 갈라는 그렇지 않았다. 달리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남자들과의 연애를 병행했고, 달리가 선물해준 성에서도 달리의 출입을 엄금한 채 마음껏 연애를 즐겼다. 달리는 존중에 따른 자발적인 거리 유지처럼 말했지만, 실제론 갈라의 만남 거부였던 것이다. 생의 말미에 이르러 달리는 결국 폭발한다. 아내의 연애를 문제시하다 폭력을 휘둘러 갈비뼈 두 개를 부러뜨리고, 갈라는 달리에게 진정제를 과다 투여해 돌이킬 수 없는 신경 손상을 입힌다. 그리고 파국을 맞았으니 결말은 막장 치정극. 전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거돼 있었다. 거기서 갈라는 일생일대의 사랑이자 뮤즈였고 완벽한 에이전트였다. 왜일까? 이유는 다양하게 추론해볼 수 있다. 작가의 예술 세계를 전달하는 데 딱히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전시에 굳이 내걸 만한 내용이 아니다, 사생활이기에 언급하지 않는 게 예의다 등등. 다 일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좀 아쉽다. 달리의 모든 작품엔 불안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고 사랑, 성, 관계 역시 주요 모티브로 계속해서 활용된다. 두 사람 관계 이면의 이야기를 미리 알았더라면 현장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느끼는 데 좀 더 도움이 됐을 듯해서 아쉽다. 또 너무 완벽한 삶 아냐?라며 괜스레 부러워하지도 않았을 테고. 아마도 내 안에 완벽함을 향한 환상이 있는 모양. 그러나 실제 달리는 생의 마지막까지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며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착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바로 그 흔적. 역시 완벽한 삶을 사는 예술가는 없나 보다. 어쩌면 그런 결핍이야말로 창작의 진짜 동력인지도 모를 일.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음식 없는 저녁 만찬

1979년에 제작된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Dinner Party)는 페미니즘 미술 역사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설치작업으로 400여명의 여성이 동원돼 5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삼각형의 금색 도자타일 바닥 위에 삼각형의 식탁이 놓여진 형태다. 바닥에는 역사 속의 중요한 인물 여성 999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식탁의 각 변에 13개씩 모두 39개의 자리가 놓여져있다. 저녁 만찬에 초대받은 39명은 여신, 통치자, 과학자, 작곡가, 혁명가들로, 고대이집트의 하트셉수트 여왕,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법정에 선 아르테미지아 그리고 1979년 당시 유일한 실존 인물인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 여성작가 조지아 오키프 등이었다. 또 디너 파티는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의미하는데, 삼각형은 여성의 기호(음부)인 동시에 삼위일체의 상징이다. 각 자리에는 수를 놓은 식탁보, 도금한 술잔, 나이프, 포크, 스푼이 차례로 놓여져 있는데, 특히 접시에 그려진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그림은 전시 기간 중에 계속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주디 시카고는 미국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로 주로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편견을 비판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디너 파티는 그러한 주디 시카고의 역량이 총집결된 작품이다.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페미니즘은 여성의 참정권, 교육받을 권리, 남성과의 동등한 지위를 외치며 유럽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이후 20세기 중반부터 젠더(Gender) 등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으로 발전했다. 페미니즘 미술은 미술사에서 소외된 여성 미술인들을 조망하는 것으로 시작해 문화 전체적인 차원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페미니즘이 정치적인 이슈가 중심이었다면, 미국에서의 페미니즘은 변형돼 문화 전반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고유의 음식보다는 각국의 음식들이 혼합돼 미국화됐다. 미국 현대미술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중반 전쟁과 기아를 피해 많은 예술가들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그들 대부분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당시 뉴욕은 떠오르는 세계 무역 금융의 중심지로 각종 첨단 매체가 등장하는 곳이었고, 다양한 담론이 생산되는 장소였다. 미국 현대미술도 미국의 음식처럼 유럽 현대미술을 이식 받았지만 떠오르는 미국과 함께 전혀 다른 스타일의 현대미술이 발전했고, 자본주의와 결합되면서 미국의 현대미술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미국의 페미니즘 미술은 그러한 미국현대 미술의 중심 사조였다. 페미니즘 미술은, 1970년대 당시 미국의 주류 사회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반전운동, 히피문화와 공유되면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생산했다. 최근 한국 정치와 사회문화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뜨겁다. 특히 20대를 겨냥한 다양한 공약들이 판을 치는데, 페미니즘 운동의 시작은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항의였고, 시간의 경과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면서 문화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갑작스럽게 제도와 규정이 변경된다고 해서 세대와 성차별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데, 정치권의 공약도 그러한 세밀한 부분에 신경을 써야 될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2021 미술계 화두, 이건희 미술관

2021년이 이제 딱 하루하고도 반이 남았다. 올해 가장 큰 미술계 화두를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이건희 컬렉션을 뽑겠다. 삼성家는 이건희 회장의 사망 이후 상속세를 대신해, 미술품 2만3천여점을 국가에 기증한다는 사실을 올해 4월 공식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부회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을 국민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시실을 주문했는데, 이후 이건희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공개된 기증품의 리스트는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국보 수준의 한국 고미술품부터 폴 고갱,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등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까지 정말 대단한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겸재 선생의 인왕제색도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뛰게 만들었다. 현재 이 기증품의 일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데, 코로나19 여파로 사전 예약으로만 관람 가능하다. 이건희 컬렉션이기 때문인지, 수준 높은 작품 때문인지,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이건희 미술관은 2021년 최고의 미술계 큰 사건이다. 하지만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이 기증작은 국가의 세금을 미술작품으로 대신 낸 것이다. 사회공헌의 의미보다는 사회 공동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한 것임에도, 우리는 이것을 이건희 컬렉션, 이건희 미술관으로 불러야 할까? 메세나(기업의 공익활동)라면야, 그 가치를 존중해야 하지만 이번 경우는 메세나로 보기는 어렵다. 컬렉션에 대기업의 이미지를 씌우려는 것은 아닌지, 미술계의 고민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다. 처음에는 전국의 여러 지자체가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집 앞에서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과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오는 관광객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체부는 그런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시 국립현대미술관 옆 송현동에 건립을 결정하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일까? 필자가 있는 평택시는 미술관도 박물관도 없는 곳이다. 평범한 사람은 일년에 한 번 미술관을 가기도 힘든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예술에 관한 관심이 줄어든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지방 사람과 서울 사람의 차이가 정해진다. 지방에 있어보니, 서울에서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도 어려운 것이 많다. 이번 이건희 미술관 건립은 양질의 작품, 국가의 관심과 정책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잘 갖춰진 사업이었다. 아마 2021년 이후 이렇게 수준 높은 대량의 작품이 공공에게 돌아갈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건희 미술관 서울 건립은 매우 아쉽다. 공공의 이익이 서울에서만 실현되는 것일까. 예술의 향유가 소수의 특정 집단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을 이제는 정책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상징적으로라도 이건희 미술관이 지방에 건립됐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2022년에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 분들, 새해에는 기쁜 일만 있으시길! Happy New Year! 이생강 협업공간 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오징어게임’과 ‘죄와 벌’

해외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오징어게임 역시 지상의 삶을 반영하는 여러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지만 가장 부각되는 주제는 돈이다. 주인공 성기훈과 등장인물들의 궤적이 다채롭지만 그들의 오딧세이는 한마디로 돈으로 꿰인 파노라마. 사람이 돈 때문에 훼손되고 타락한다. 수모를 감내하면서도 분노하다가 결국 기속되고 급기야 목숨까지 걸며, 분열 배반하며 멈추지 못하거나 멈추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돈에 목숨을 거는 사정은 이미 아이러니가 아니다. 무료한 돈 많은 악덕 군상들이 돈으로 사람을 게임으로 유인하고 본인의 결정에 책임을 전가하는 국면도 등장해 우리를 공분케 하지만 그 여운은 지속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것은 외재 요인이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란 건가. 요컨대 관객들은 처음엔 작중 현실을 자신의 일상과 무관하게 보다가 차츰 그 비슷한 알레고리로 알아차리며 작중 현실과 인물들의 처지에 어느덧 별 이의를 갖지 않은 듯하다. 그리하여 관객들의 전율에 연민과 공포가 발생했다면, 그 연민은 미적 거리가 개재된 작중 인물에의 그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을 대상으로 한 감상성(感傷性) 연민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치관 조사에서 물질 추구와 부유가 가치서열에서 1위였다. 경제 경영 분야의 도서가 올해 교보문고 단행본 판매에서 점유율 1위였는데, 1980년 교보문고 개점 이래 4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이 발표도 우리의 주목을 끌기는 했으나 사회 차원의 후속 음미와 우려는 활발하지 않았고, 기존 황금만능의 확대로도 보지 않았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와 더불어 젊은 세대가 근로소득으로는 집 구입과 재산 증식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라서 그 경향을 비판하기에는 난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소설의 전성시대를 주도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도 비극이나 절정에 해당하는 사건들에 기여하는 주요 모티프도 바로 돈이다. 대표작 죄와 벌도 바로 그 때문에 야기된 불행과 비극을 우선 다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죄와 벌에서 한 미숙한 인간 라스콜니코프가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다단한 내외 추이를 답사할 수 있다. 돈에서 비롯된 불편과 불만으로 시도한 자기기만, 전당포 노파 살해를 그렇게 합리화한 자신을 통렬하게 회오하는 나와 이웃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돈에 압도되지만 돈 자체에 그저 매몰되는 부류와 결국 삶 자체를 성찰하고 휴머니즘을 회복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을지 모른다. 코로나19 상황이 만 두 해나 계속되고 변종들로 해서 더욱 엄중해진 가운데 자영업자를 위시해 민생이 심각하게 곤란하다. 이러다가 오징어게임의 작중 현실이 그대로 작품 밖으로 뛰쳐나올지 모른다. 대선을 두 달 보름여 남겨둔 이 시점, 민생을 살릴 정책 경쟁은 희미하고 후보 가족의 문제가 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대체 무엇이 우선인가. 우리 모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유명해진 오징어게임의 한 대사, 이러다가 우리 다 죽는다를 다시 음미했으면 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오징어게임의 등장인물이기를 거부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협력하며 그 게임의 매트릭스를 공생의 정치로 해체할 수 있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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