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Mo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사람이 죽었을 때 연주하는 서양음악 중에 레퀴엠(진혼곡)이 있다. 15세기부터 그레고리안 성가를 중심으로 작곡됐다. 작곡가들은 레퀴엠이라는 음악 형식을 통해 죽음에 대한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원래 종교적 의미에서의 레퀴엠은 죽은 자를 추모하는 음악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산자를 위로하는 음악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음악애호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레퀴엠 두 개를 비교해 보며 죽음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가 작곡한 레퀴엠은 돈 많은 귀족에게 위촉을 받아 작곡을 시작했지만, 작품을 만들어 갈수록 본인의 죽음이 다가옴을 알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죽음을 위한 곡을 쓰는 것이 되어버렸다. 끝내,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지만, 이 작품은 오늘날 음악애호가들이 사랑하는 걸작품 중의 하나가 됐다. 모차르트는 이미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으며 그의 천재적이고 절묘한 가사처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모차르트는 종교적 가사를 격정의 드라마로 승화시키는 장중한 레퀴엠을 작곡하였다. 곡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영원한 빛을 비춰 주소서라는 부분에서 모차르트는 영원한 천국의 표현에 미약하고 부정적인 표현을 도입한다. 35세 청년 모차르트가 예감하는 죽음은 회의와 우려가 가득한 분노와 저주의 날이다. 죽임을 당한 날 즉, 분노의 날 악장에서는 모차르트의 활화산 같은 에너지가 악장 전체에 실려 있다. 모차르트가 보는 죽음은 극도의 불안정과 터질 듯한 슬픔의 폭발을 나타낸다. 레퀴엠 전체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Lacrymosa 애절한 슬픔 악장은 모차르트가 시작 부분을 작곡하다 죽음을 맞은 것으로 유명하다. 눈물이 떨어지는 장면을 절절하게 음표로 옮겨 놓았다. 이 음악을 듣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음은 모차르트의 애절한 눈물이 우리의 가슴을 적시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포레(1845~1924)는 모차르트보다 200년 후에 활동한 프랑스 작곡가이다. 부친의 죽음 이후 작곡을 시작한 포레의 레퀴엠은 죽음의 자장가로 불렸다. 포레는 죽음에 대한 내 느낌은 서글픈 쓰러짐이 아니라 복된 구원이며 영원한 행복에의 도달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레퀴엠을 가곡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절제와 간결한 표정으로 순수함과 투명함이 돋보이게 하였다. 어두운 먹구름보다는 맑은 시냇물의 청초함과 청량함이 구석구석 가득하다. 그의 레퀴엠에서는 다른 작곡가들이 표현하는 극적인 하이라이트, 처절한 고통, 그리고 비통한 눈물을 찾을 수 없다. 포레는 죽음을 위로와 평안, 그리고 감사함으로 표현하였다. 마지막 악장 In Paradisum 천국에서 죽음이 오히려 평안하다. 그의 음악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 당시 포레와 함께 활동했던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햇살 가득한 그림들을 보는 따뜻한 느낌이다. 우리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멀게 느껴지던 그 마지막 날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우리는 어떤 그림과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죽음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없지만, 영원한 안식과 평안이 있다는 아름다운 확신도 존재함을 이번 코로나19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온 힘을 바친 그분들께 전한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이카루스의 추락, 한 예술가의 소통방식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비대면 소통이 일상화되면서 타인과 이웃에 대한 관심이 자칫 피상화되는 것은 아닐까. 타인들의 삶이나 외부 환경에 대해 서서히 둔감해지는 것은 아닐까? SNS를 통해 펼쳐지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그 정보만으로 외부와 소통하게 되지는 않을지. 하지만, 대면적 소통과 실제의 가치는 더욱더 중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소통방식은 어떨까? 그들은 자신의 작품세계에만 몰두하느라 세태에 무감한 듯하지만 현실을 꿰뚫는 직관과 예민한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들이다. 직설적으로 사회문제에 개입하고 반응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대부분 세태에 무심한 듯 거리를 두면서도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들은 상징으로 우화로 또는 추상적인 어법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16세기 네덜란드 대표작가 중 농민화가로 불리는 브뤼겔은 성서를 소재로 한 작품과 다양한 농촌의 세시 풍속 그리고 속담들을 소박하고 생생하게 그림으로 남겼다. 대표작 중 하나인 이카루스의 추락(1560)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여서인지 일반적인 풍속화와는 다르게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의 특이성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상황임에도 화면 속의 인물들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도 무심히 자신의 일상에 몰두하고 있는 점이다. 많은 화가의 소재가 된 이카루스는 다이달로스라는 전설적인 장인의 아들이다.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명을 받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는 미궁을 건설하게 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아들과 함께 그 미궁에 갇히게 된다. 미궁 탈출을 궁리하던 중 그는 밀랍으로 깃털을 이어붙인 새의 날개를 만들어 공중으로 날아올라 아들과 함께 탈출한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너무 높이 날아오르다가 태양열에 밀랍이 녹는 바람에 날개를 잃고 추락하여 죽고 만다. 이 신화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경계하는 교훈과 불가능에 도전하는 용기라는 이중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브뤼겔은 수평선 위로 기우는 석양을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하였다. 농부와 목동, 어부, 선원들 모두가 바다로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극적인 사건에 대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무심하며 너무도 평온하게 일상에 충실하고 있다. 범선 앞 공중에 흩날리는 깃털들과 수면 위에 허우적거리는 두 개의 다리를 조그맣게 그려놓은 것이 이카루스에 관한 정보의 전부이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는 주인공의 비극적 장면을 처리해 놓았다. 한가운데 그려진 소몰이 농부는 마치 사람이 죽었다고 쟁기질을 멈추진 않는다는 네덜란드의 속담을 상기시키듯 쟁기질을 하고 있다. 이카루스와 가장 근접한 낚시꾼조차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낚시에만 몰두하고 있다. 목동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지만, 바다를 등지고 있다. 작품은 장구한 역사 속에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헛된 욕망을 버리며 묵묵히 자신의 소명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인생임을 웅변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작품 내면에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의 정치, 사회, 종교적 정황들이 우의적으로 담겨 있다. 종종 태양 또는 태양의 제국으로 비유되던 스페인을 기우는 석양으로 상징화하면서 네덜란드 캘빈 교를 탄압하던 스페인의 가톨릭 교회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이카루스의 비과학적 태도의 허망함을 말한다. 기울어가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국가적 염원을 우의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국민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가들의 소통방식은 대체로 비밀스럽고 중의적이다. 김찬동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K-컬쳐와 어린이문학

K방역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드높아진 요즘 한국의 프로야구, 프로축구에까지 세계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일이 우리가 아닌 서구인의 몫이 되는 날이 온 것이다. 한국의 프로스포츠가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물론 그 실력이나 위상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이 크지만 어찌 됐던 결론적으로는 K스포츠의 흥행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BTS, 기생충 그리고 이제는 야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 휴대폰과 현대 자동차로 떠올려지던 한국의 이미지가 음악과 영화, 스포츠 등의 대중문화로 미국을 강타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K컬쳐를 소개하는 이 기사가 놓친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다. 지난 4월에 한국이 세계적으로 빛나던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어린이문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 (ALMA: 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을 우리나라의 백희나 작가가 받은 것이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은 씩씩하고 유쾌하면서도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삐삐의 이야기를 담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이다. 이 외에도 『사자왕 형제의 모험』 등 100여 권의 작품을 집필했으며, 이 책들은 9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오늘날까지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ALMA는 어린이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며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를 옹호했던 린드그렌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린드그렌 사후에 스웨덴 정부가 제정한 국제적인 상으로, 어린이청소년문학의 글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스토리텔러, 독서운동가 등을 대상으로 한다. 상금 500만 크로나(약 6억 원)를 포함한 연간 비용 1천만 크로나가 모두 세금으로 조달되어 공식적으로는 스웨덴 국민이 세상에 주는 상으로도 불린다. 2020년까지 ALMA를 수상한 작가는 단 20명에 불과하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모리스 센닥, 『도착』의 숀 탠,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볼프 에를브루흐 등으로, 어린이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세계적인 작가들이 수상자 리스트에 올려져 있는데, 백희나 작가가 그 대열에 오른 것이다. 볼로냐어린이도서전의 라가치상이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역시 어린이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비교되곤 하지만 단 한 명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점과 상금 액수가 노벨상의 800만 크로나와 맞먹는다는 점이 단연 ALMA를 돋보이게 한다. 백희나 작가의 작품은 ALMA 수상을 통해 더 많은 나라에 알려지고 더 많은 어린이에게 읽힐 기회가 공식적으로 주어진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음악, 영화, 드라마, 스포츠, 문학, 뷰티, 음식 등 세계인의 생활 전반에서 촘촘하게 K컬쳐가 그 자리를 확고하게 잡아나가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어쩌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선진국이 되었고 문화 흐름의 상류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K컬쳐 중에서도 어린이문학이 가지는 가치는 특별하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인이자,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어린이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과 그에 대한 국내외적인 관심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어린이문학계의 세계적인 상을 우리나라에서 시상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K컬쳐의 세계적인 확산을 기뻐하며 우리가 가질 만한 포부가 아닐까 한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오월의 기도

오월은 노동절에 이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그리고 유권자의 날, 5ㆍ18 민주화 기념일, 발명의 날, 세계인의 날, 방재의 날, 바다의 날이 있고 입하와 소만과 윤사월(23일)이 시작되는 날이 든 달이다. 그래서 오월은 버겁다. 버거워서 그런지 오월에는 희망과 기도의 시가 많이 쓰였고 읽게 된다. 피천득 시인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고 노래했다. 오월 앞에서 스물한 살의 나를 떠올리고 금방 찬물로 세수한 청신한 얼굴을 어떻게 연상했는지 읽고 또 읽는다. 하얀 손가락과 비취가락지 앵두와 어린 딸기 그리고 어머니의 젖무덤같이 풍성하고 따뜻한 모란과 무엇보다도 전나무의 바늘잎도 보드랍다는 대목은 더 이상 어쩌지 못할 오월이다. 또 노천명의 시 푸른 오월은 청자 빛 하늘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왠일인지 외롭다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모양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고 했고, 곽재구는 강생원의 뱃삯이라는 시에서 뱃사공 강생원이 뱃삯 대신 진달래꽃 살구꽃 수선화 꽃 조팝꽃을 다발다발 받아 싣고 어 참 꽃 좋다 어 참 세상 이쁘다고 봄을 노래했다. 청자 빛 고운 하늘과 창포 잎을 보고 감미로운 첫여름을 연결시키고 정오의 라일락 숲에서 내 젊은 꿈을 되살리는 푸른 오월이 되레 서럽고 외롭기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자 했던 노천명의 푸른 오월 그리고 곽재구의 뱃삯 대신 진달래 살구 수선화 조팝의 이쁜 꽃을 통하여 세상이 이쁘다고 오월을 노래했다. 사실 시에서 나오는 봄꽃들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신비하고 예쁜지 정말 놀랄만하다. 나뭇가지마다 꽃이 피고 찬란한 햇살이 꽃 떨기에 머물 때 발걸음은 옮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괴테는 오월을 오 대지여, 오 태양이여! 오 행복이여, 오 환희여! 뜨거운 피로 내가 너를 사랑하듯이 내게 청춘을 주고 기쁨과 용기를 새 노래와 새 춤을 출 수 있는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라. 고 노래했다. 나는 올 들어 참기 어려운 몇 차례의 일을 준비 없이 겪었다. 거칠고 공격적인 말투, 이해나 배려는 고사하고 견제의 빛이 역력한 전투태세로 공격해 온 여간 불편한 사건이 서너 차례 연거푸 일어났다. 왜 이리 공격적일까. 왜 이리 부정적일까를 수없이 되뇌었지만, 답 없이 코로나가 왔고 코로나는 재택근무로 나에게 많은 시간을 자연스럽게 베풀었다. 코로나 덕분에 시도 읽고 고전도 뒤적이는 사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재설정 하게 되고 아리고 쓰린 그리운 이름도, 도저히 용서가 아니 되는 이름도 서서히 묽어졌다. 오월은 이틀에 한 번꼴이 기념일인 까닭에 년 중 가장 많은 행사로 분분한 달이다. 그러므로 생각하건대 분분한 오월의 날들은 새 노래와 새로운 춤으로 장식해야 한다. 손에 비누를 쥐고 많은 거품을 내어 오랫동안 씻고 또 씻어내는 동안 오월의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질 것이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아, 살 것 같다. 이것이 오월의 기도문이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자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인해 지구촌이 잠시 멈추었다고 할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정상적인 활동이 지장을 받아 위축되며 전 분야의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전 지구적 위기의 상황은 경제 활동은 물론이고 관광을 비롯해 쇼핑, 공연예술, 교육 등 우리의 삶과 밀접한 분야에서 기존의 관행을 뛰어넘는 다양한 해결책을 찿으며 코로나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새로운 선택과 고민의 갈림길에 서게 하였다. 기업은 재택근무와 원격 화상회의 등 비대면 업무를 위한 다양한 대안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고 언택트(Untact)라는 새로운 비대면 비즈니스 유형이 보편화되며 장기적으로는 직업군의 변화까지도 예측되고 있어 경제활동의 패러다임까지도 변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피해가 가장 극심한 관광, 여행 산업에서도 기존의 가성비 위주의 단체관광에서 가심비 중심의 소규모 그룹여행으로 여행상품의 트렌드가 바뀔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오토캠핑, 차박(차량에서 숙박하는 여행) 등 개인 중심의 새로운 여행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공연예술계에서는 랜선 음악회나 온라인 공연을 통해 오프라인 대면공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고민과 함께 첨단 ICT 기술과의 연계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수익 창출 등의 난제를 해결한다면 온라인 공연은 예술 향유의 기회를 더 많은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제공하며, 공연예술에 대한 시공간적 접근성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영화 및 드라마 등 엔터테이너 산업에서도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주도하던 시대에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 시장의 점유율이 급증하는 등 전통적인 매체들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 학교 교육과 관련해서도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확대됨에 따라 그동안 미흡했던 온라인 교육 인프라 확충과 교육 콘텐츠 개발의 기회가 될 것으로 예측하며 특히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앞으로 교육에서 평생교육의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베이버부머 세대 등 노령인구에 대한 평생교육 인프라와 온라인 교육콘텐츠에 대한 지원과 개발이 요구된다. 정보화시대를 넘어서 4차산업 혁명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온라인 인프라와 기술력을 갖춘 대한민국의 저력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위기상황을 극복하는데 많은 이바지를 하고 있으니, 다양한 정보가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시민들에게 전달되어 막연한 불안감이나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 준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또한, 몇 년 전 있었던 메르스 감염이나 세월호를 통해 재난과 위기관리에 대응하는 국가적 시스템과 사회적인 학습과 공감능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방역 선진국, 위기관리 선진국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위기에 강하며 서로 배려하는 우리의 장점으로 오늘의 이 위기를 극복하고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준비하기 위한 각 분야의 성찰과 연구가 시작된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굳건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연휴가 시작되어 많은 인파가 야외 활동을 하고 여행을 떠날 것으로 예측된다. 몇 달간 답답하게 지낸 보상과 화창한 날씨에 야외활동이 늘어나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이해하지만, 아직은 좀 더 인내하는 자세가 필요하니 손 씻기와 마스크 쓰기 그리고 거리두기를 지속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산에 유의해야겠다. 불편을 감수하는 방역수칙 지키기와 이웃과 주변을 배려하는 자세가 코로나 극복에 가장 필요한 시민의식이라 생각한다.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예술위원

[문화카페] 말러에 열광하다

그의 음악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음악을 듣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는 많은 사람의 고백이다. 1980년대 초, 미국 유학 시 처음으로 경험한 말러의 음악은 필자를 충격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그 이후, 그의 음악적 노예가 되어버렸다. 인류가 코로나19로 인해 황폐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비롯된 정신세계와 19세기(낭만주의)와 20세기(현대주의) 사이의 거친 파도를 극적으로 연결해 준 말러의 정신세계를 보며 그의 음악이 우리에게 남긴 위대함을 살펴본다. 말러는 유대인이었다. 10개의 대규모 교향곡을 만든 작곡가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전업 지휘자였다. 그의 명성은 빈 국립오페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그리고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등을 거치면서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반유대주의를 공표한 19세기 사회적 공세로 빈 국립오페라 음악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의 인생 여정은 거칠고 험하며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말러는 죽음을 근접한 거리에서 겪으며 자라왔다. 딸 마리아 안나는 어린 나이에 죽었으며 같은 때에 자신의 질병이 심장병임을 판명받는다. 그는 죽을 때까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살았다. 사랑했던 19살 연하의 부인 알마의 외도는 말러를 두려움과 분노로 몰아넣었다. 정신분석학의 시조 프로이트는 말러와의 상담을 통해 말러가 지닌 우울증은 어린 시절 형제들의 죽음(13명 중 8명이 성인 이전에 사망)과 아버지의 학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하였다. 꽤 오랫동안 말러의 음악을 가깝게 접하고 공부해온 지금 시점에야 그와 익숙해진 것 같다. 그러나 일반 청중들이 그의 음악을 즐기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말러 작품의 독특한 매력은 인간들이 꺼리는 죽음에 관한 표현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교향곡은 죽음에 대한 방대한 위로 그리고 처절하게 가슴을 저미는 길고 깊은 슬픔으로 시작한다. 외로운 음표 뒤에 숨어 있는 거룩한 체념마저도 아름다운 노래로 흐른다. 말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음악은 우주를 보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그는 태초 이전의 소리부터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소리까지 악보에 채웠다. 하늘을 향하는 부활의 갈구가 오선지에 진하게 깔렸다. 말러는 환상을 추구하는 작곡가였다. 환상은 새로움을 추구하며 고통과 싸워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춘 사람에게만 부여하는 값진 선물이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극장에서 초일류 지휘자로 활동하며 유럽과 미국을 드나들었던 말러의 평소 일정은 연주와 맹렬한 연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은 작은 시골별장에서의 여름 휴가철이었다. 말러는 지휘자에게 닥치는 시련과 도전, 그리고 전쟁터에서 홀로 서 있는 수장의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 말러는 우리와 같은 시선에서 생성된 감정의 언어와 말러만의 극한 감정들을 악보에 깨알처럼 표시해 놓았다. 그의 작품에는 눈물과 기쁨, 불길보다 뜨거운 열정의 사랑과 가슴에 저미는 이별의 슬픔, 소름 끼치는 고요함과 소음에 가까운 엄청난 소리의 극적인 표현이 조화롭게 전개된다. 마치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것 같다.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의 주인공은 어느덧 우주를 아우르는 작곡가로 변신해 있는 것이다. 그의 곡을 연주하며 눈물 흘림은 그의 슬픔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한 한 인간의 위대함 때문이다. 말러의 음악은 인류에게 주는 최상의 헌정이다. 아! 가슴이 뛴다! 진실로, 말러의 곡을 연주할 수 있음은 우리 세대만이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축복 중 하나이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어느 지식인 혁명가의 초상

포스트모던의 기점으로 평가되고 있는 유럽의 68혁명은 계몽주의로부터 비롯된 서구의 근현대의 가치와 제도의 전복을 꿈꾸었다. 이것은 1968년 프랑스의 낭테르 대학에서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출입을 금지하는 규정 등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대학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계기가 되어 촉발되었다. 누적되어온 불만과 혁명의 에너지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파리를 마비시켰고,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신좌파 세력들의 결집이 그 원동력이 되었다.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이즘에 대한 경이,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 등 남미 혁명세력과의 연합, 그리고 후기 구조주의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가들이 연대하였다. 변혁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상상력이 세계를 뒤흔든 것이다. 이들 중 레지스 드브레( Rgis Debray)라는 인물은 좀 독특하다. 알튀세의 전사로서 볼리비아 정글로 들어가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전을 펼쳤던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매우 색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엘리트 학교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공산주의 서클의 열성 멤버로 활동하였다. 1963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사르트르가 주관하던 현대지에 카스트로주의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그는 1968년 봄 볼리비아에서 무장투쟁 중 체포되어 30년 형을 구형받고 독방에 수감되었다. 하지만 교황 바오로 6세, 사르트르 등 명사들의 탄원으로 3년형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왔다. 후일 미테랑 대통령의 외교자문역을 지내는 등 정치 일선에서도 활동했지만 끝내는 이념과 사람과 역사와 정치에 대한 환멸에 떠밀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50대 중반 소로본느 대학에서 미디어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예술이 정치와 같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것으로 인식했고, 이미지가 상품으로서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지는 매혹적인 힘에 관심을 두고 미디어에 대해 깊이 탐구하였다. 이외에도 그는 『지식인의 종말』, 『우리 주님들께 찬양을』 등 20여 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 『지식인의 종말』에서 그는 오늘날 지식인들이 앓는 5가지 중병을 지적했다. 대중과 단절된 집단 자폐증, 변화하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자신들이 사회의 도덕을 선도한다고 자만하는 도덕적 자아도취증, 만성적 예측불능증, 그리고 설익은 견해를 유창한 언변으로 포장하는 순간적 임기응변증이 그것인데, 오늘 우리 지식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주님들께 찬양을』은 800여 쪽에 달하는 그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나는 공적인 삶과 정치가들을 혐오한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실패한 혁명가의 기록이고 변절한 혁명가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을 그토록 부끄러워했던 제3세계주의자가 경멸의 대상이었던 드골적인 프랑스주의자로 서서히 변모하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호메이니나 가다피, 사담 후세인 등과 같은 히틀러의 후예들이 진보의 대의를 독점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적 비관주의를 드러낸다. 그의 삶은 세기의 광기에 오래도록 매혹되어 있었으나 결국 환멸밖에는 챙기지 못한 수많은 불행한 영혼의 한 극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정치나 예술적 혁명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산은 오래가지 못하거나 전혀 예기치 못한 과오일 수도 있다. 특히나 그것이 지독한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일 경우 큰 폐해를 남길 수밖에 없다. 그가 꿈꾸던 진정한 혁명은 무엇일까.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잿빛 시간을 비추는 햇살

『프레드릭』이란 이름의 들쥐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있다. 겨울을 앞두고 다른 들쥐가족들이 열심히 일하며 먹거리를 모으는 동안, 프레드릭은 동그마니 앉아 풀밭을 내려다보거나 졸음 섞인 눈으로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 겨울이 깊어지자, 비축했던 먹거리는 다 떨어져 가고 들쥐들은 생기를 잃게 된다. 그때 프레드릭은 잿빛 돌 틈에 웅크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찬란한 금빛 햇살을 보내주며 들쥐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풀밭에 피었던 꽃들을 떠올리며 알록달록한 색깔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들이 추운 겨울을 지치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알게 한다. 그렇다. 프레드릭은 예술가다. 그리고 우리는 이 화창한 봄날에 지독한 바이러스로 인해 잿빛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독일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한국인의 글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공연이 취소되자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허무함에 휩싸였다는 그는 만약 당신이 예술가가 쓸모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자가격리기간 동안 음악과 시와 책과 영화와 그림 없이 보내보기를이라고 쓰인 포스터를 마주하고 힘을 냈다고 한다. 이성적으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어른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자가격리시간은 그야말로 몇 배나 지겹고 어렵기 그지없을 터이다. 거의 모든 도서관이 문을 닫아 책을 맘껏 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세계의 많은 어린이문학가가 SNS 라이브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작가 중에서는 작년에 방한해 한국 그림책독자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맥 바넷이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맥의 북클럽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자신이 쓴 그림책과 챕터 북을 매일 읽어주며 세계의 어린이 독자들과 만난다. 눈에 띄는 점은 시청하는 아이들도 모두 모자를 쓰고 참여하며 온라인 상에서 오프라인의 연대감을 만들어나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맥 바넷은 만화가인 숀 해리스와 의기투합하여 북클럽 모자를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동네서점을 돕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 결과로 15일 만에 약 16만 달러가 모금되었고 171곳의 서점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되었다. 독자와 작가가 사이버상에서 만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 지역 문화의 산소통인 동네서점을 응원하며 코로나19로 인해 무채색이 되어가는 사회에 그들이 모았던 알록달록한 색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출판계에서도 그림책 위대한 아파투라일리아의 지은 작가가 책을 기반한 프로그램으로 SNS라이브방송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과 만나는 등 여러 작가가 이러한 활동에 동참하는 중이다. 더 나아가 국내외 출판사들은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다양한 독후활동지를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며 지금까지 들려준 그들의 이야기를 깊고 즐겁게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출판계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나, 서커스, 오페라 등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문화 예술의 결정체들이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며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국가 간에는 출입을 통제하며 장벽이 높아져 가고, 사람들 간에는 사회적인 거리 두기로 인해 얼굴을 마주하기는 어려운 때다. 하지만, 사이버상에서는 수많은 프레드릭이 모아둔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들로 우리들이 느끼는 마음의 거리를 좁혀지는 요즘이다. 이 잿빛 시간을 잘 견디면 진정한 봄이 오겠지.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또다시 사월은 오고

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 초등학부모는 개학 날짜를 하루하루 손꼽아 센다. 애들 개학만 하면 만나자고 겨울방학 내내 휴대전화기로 주고받았던 그 개학이 사월이 오고 있어도 기미가 심상치 않다. 하루 삼시세끼를 고스란히 챙겨 먹이는 세 아이의 어머니 역할에 이젠 지쳐가고 있다고 투덜거리던 엄마가 사월에 개학을 할까 봐 오히려 개학을 미뤄야 한다고 또 투덜거린다. 사월이다. 사월은 땅속의 온갖 웅크렸던 소리가 저마다 일제히 노랗고 빨갛게 또 푸르게 목소리를 낸다. 잠시 고개를 들어 돌아보기만 해도 일부러 흙을 비집어 살펴보지 않아도 천지간에 사월은 봄을 뿌리고 있다. 사월의 공원 벤치에는 전깃줄의 참새처럼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노인들이 턱을 괴고 졸았지만 빈 의자 앞으로 마스크 쓴 빠른 걸음들만 오간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너와 나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마주 보고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고개를 맞대고 골똘하면 더욱 안 된다. 악수는 주먹으로 맞대고 엘리베이터 단추는 손 등으로 누르고 버스 손잡이는 장갑을 껴야 하고 마주 오는 사람은 미리 거리를 조율하며 비켜가고 말을 할 때는 눈을 보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가 이제 눈으로도 옮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박물관, 미술관은 물론 목욕탕, 극장, 도서관 그리고 소소한 모임에도 절제가 요구되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래가면 우울증 오겠다고 휴대전화 속에서 오가는 걱정들만 풍성하다. 사람이 죽어도 조문을 못 가고 예식을 알려와도 통장으로 송금하며 임산부와 고령자는 재택근무 길어지고 일 년 농사 첫 프로그램은 정한 바 없이 휴강으로 더욱 암울한데 쥐꼬리 봉급과 예산은 삭감하여 코로나19 쪽으로 힘 보태야 한다. 코로나19는 재택 내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사는 동안 좀 쟁쟁 거리기는 했으나 기실은 참 여유로운 자유와 넉넉함이었던 삶이 아니었나 싶다. 생존이 좀 곤하긴 했어도 바로 곁에서 생명을 위협당하거나 경제가 파탄되어 공포나 위기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개인의 삶은 물론 전 세계가 기약 없이 공포 속에서 떨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가고 오는 데 제한 없이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편하게 오가며 소통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제약을 받게 됨으로써 동안 누렸던 풍요가 값진 것임을 새삼 느낀다. 이 봄 코로나19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긴 했으나 몽땅 다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차츰 늘어나면서 켜켜이 쌓인 사용하지 않던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옷가지 신발 책을 앞에 두고 버릴까 말까를 수없이 주저주저하는 참 신기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또다시 사월은 오고 사월의 봄바람은 분분한 아침 뉴스를 실어 나른다. 전 세계가 전염병과 대치하고 방심한 부주위로 개인과 집단 확진자 숫자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남녀노소 안 가리고 나라도 신분도 종교도 돈도 명예도 따지지 않는 코로나19, 재난은 재난이다. 이 어마 무시한 재난을 극복하려는 정부와 함께 우리는 스스로 행동수칙을 지켜야 할 일이다. 봄부터 시작할 일을 여름에 시작하여 가열 찬 연말을 보낸다면 내년 이맘때는 또다시 사월이 오게 될 것이고 그때는 오늘의 이 재난을 따뜻하게 스토리화 될 것으로 희망을 품는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봄의 제전

3월이다. 나뭇가지마다 봉오리가 가득하다. 봄을 알리는 움직임은 올해도 여전하다. 봄은 특별한 영감을 주는 계절인지 봄을 주제로 작곡된 작품이 많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에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가득하다. 비발디의 봄에는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아지랑이 등이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는 매년 이맘때면 연주되는 단골 메뉴이다.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은 봄꽃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지구의 오케스트라들이 어색한 봄을 맞는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모든 연주회가 취소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는 음악을 임의로 선택한다면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봄의 제전 이 어울린다. 원시시대의 미신숭배에 바탕을 둔 전통적 제례를 묘사한 행사발레 음악 봄의 제전은 1913년에 작곡되어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이르는 음악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020년 3월, 인류는 기대를 훨씬 넘어선 최첨단 산업시대의 지붕 아래 기대어 살고 있지만, 원인 모를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봄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 우연이지만 가슴 아픈 두 장면이 오묘하게 오버랩 된다. 봄의 제전은 긴 겨울을 이겨내고 대지가 뿜어내는 풀냄새를 신비한 모습으로 묘사하며 시작된다. 마을의 현자와 어른들을 중심으로 조상과 태양신을 위해 희생될 처녀들을 납치하고 그중 한 명을 선택하는 과정의 줄거리가 이어진다. 발레의 하이라이트는 선택된 처녀들의 조상을 부르는 춤판과 최후로 선택된 처녀가 제단에 바쳐지는 마지막 부분의 희생의 춤이다. 처녀의 죽음을 묘사하는 정체불명의 선율과 광폭한 리듬의 조합이 공격적인 분위기로 발전한다. 희생될 처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처녀들이 겪는 극심한 무력함과 자괴감은 악수 대신 팔꿈치로, 맑고 밝은 정겨운 웃음 대신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화해야 하는 현 상황을 반사경으로 비춰준다. 나만은 희생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수척한 공포심이 깃들인 불신과 자기방어가 만연하다. 엘리베이터, 식당, 지하철 등은 실제 온도보다 훨씬 낮고 스산하다. 봄이 멀게만 느껴진다. 이 땅에서 음악가로, 더욱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연주자들에게 작금의 사태는 침울한 시련의 긴 터널이다. 특히 젊은 음악가들의 생계는 심각하다. 하루의 연주를 통해 생활을 영위해온 그들에게 일자리가 사라지는 슬픈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대다수 연주자가 1회의 연주로 받는 금전적 대우는 척박하기 그지없지만, 그마저도 먼 기억이 되어간다. 한 시간 반 정도 길이의 연주를 위해 연습에 쏟아붓는 셀 수 없는 시간을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렵다. 음악의 완성을 위해 평생의 노력을 인정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한 곡의 연주를 위해 쏟아붓는 시간은 수십 수백 시간을 넘어선다. 음악가들의 연주를 싼값 또는 무료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우리가 아직 문화 후진국에 머물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독일의 연방 문화부 장관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피해를 본 문화기관과 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약속합니다.라는 문화선진국다운 정책을 먼저 발표하고 당분간 콘서트의 취소를 밝힌다. 후배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어려운 질문이다. 미쳐라!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미쳐라.라는 말로 열정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연주자들에게 미쳐야 한다고 설득할 근거를 상실하여 마음이 아프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문화관계자들은 허기진 청년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육성하지 않으면 선진국 근처에 갈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원하건대, 힘없는 젊은 음악인들의 힘겨운 하루를 위로할 수 있는 고마운 어른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함신익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흑사병과 르네상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초비상이다. 새삼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국가마다 출입국 제한조치가 시행되고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스크 5부제의 생경함과 불편함에 자괴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공포에 외출도 삼가고 있다. 개학도 연기되고 미술관이나 공연장은 장기 휴관에 들어가 있다. 종교집회는 물론, 다수가 모이는 회의도 제한하고 있다. 바이러스로부터의 공격에 일상은 무너지고 삶은 위축되었다. 질병 퇴치 기간이 길어진다면 사회와 삶 전체의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다. 총이나 대포보다 보이지 않게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더 무서운 존재임을 실감케 한다. 14세기 중세의 흑사병은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키며 유럽 전역을 초토화 시켰다. 중국 남부와 중앙아시아에서 촉발된 이 질병은 실크로드를 따라 몽골 군의 서진과 함께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쥐벼룩을 숙주로 한 이 흑사병은 전염이 빠르고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가까워 인구 밀집된 도시는 시체와 악취로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사람들이 이를 막고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성문을 걸어 잠그는 것, 발병한 집에 방역선을 치는 것, 발병지역으로부터 가급적 멀리 피난 가는 것 등이 고작이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채찍을 가하면서 참회의 고행을 하기도 하였다.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고심했었지만,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했다. 교회나 정치권은 천재의 이변 때문이거나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흑사병의 재앙은 역설적이게도 서구의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고매한 가톨릭 사제들도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목도한 당대인들은 교회의 권위와 신앙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되었고, 점차 합리적 이성에 눈뜨게 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인구의 감소로 수입이 늘어난 중산층이 확대되었는데 부자들은 성당에 성화를 기증하거나 성화를 소장하는 등 좀 더 독실한 신앙심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의 탁월한 대가들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이번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확인할 소중한 기회임에 틀림없다.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 제고와 좀 더 치밀한 방역시스템의 필요를 깨닫게 되었다. 격리시설 지정을 둘러싼 지역주민들의 배타적인 태도나 마스크 매점매석 행위 등 비윤리적 태도도 보았다. 확진자들을 증폭시킨 특정 종교집단의 감춰졌던 문제점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부족한 현장 전문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생업을 접어두고 목숨 걸고 현장으로 달려간 의료진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도 확인했다. 정책수행에서 정치논리보다는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존중 해야 함도 알게 되었다. 경제 강국임을 자처하던 우리 사회의 수다한 취약점을 확인케 된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사회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소중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은 차분하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 타자의 불행에 동참하는 성숙함도 가져야 한다. 코로나로 모두 정신없고 힘들지만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시간을 담은 책에 대한 단상

서가 안으로 봄볕이 스며든다. 책으로 넘쳐나는 꽉 찬 서가는 겨울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답답해 보였다. 책 정리를 하려고 책장 앞에 서서 찬찬히 살펴보니 최근 몇 년 동안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 수두룩했다. 책에 담긴 내 마음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한 권 두 권 골라내었다. 경중은 있지만 늘 끌어안고 왔던 책들이었으나, 이번에는 매정하게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상자 분량의 책을 걸러내자, 빼곡하니 겹겹으로 쌓여 있던 책장에 빈칸도 생기고 덩달아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듯 여백의 한가로움이 전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책보고에 가게 되었다. 2019년에 문을 연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10년간 비어 있었던 한 유통업체의 창고를 공공 헌책방이자 책과 관련한 전시와 특강이 이어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 된 서울책보고는 일반적인 도서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독립출판물과 명사의 기증도서를 열람할 수 있어 도서관 기능도 더하고 있다. 헌책방인 만큼 책을 팔기도 하는데, 공공 헌책방으로서 그 운영방식이 독특하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헌책 서점을 비롯한 서울시 소재 29곳의 헌책방으로부터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헌책 12~15만 권을 위탁받아 판매하고 있다. 서울책보고는 단순히 헌책을 판매하는 곳이라기보다는 헌책방과 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서가의 배치도 주제 분류가 아닌 서점별로 되어 있어 도서관이나 기존 서점의 도서분류에 익숙해져 있다면 조금 어수선하게 와 닿을 수도 있는 전시 방식이었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면 주제 분류가 아니기에 전혀 예기치 못한 책들을 불쑥불쑥 만나게 된다. 내비게이션 없이 떠나는 지적 항해를 원한다면 그 낯설고 둔탁한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는 책의 보물창고인 곳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어떤 서점에서보다도 이 공간에서 헌책을 즐기는 독자들은 편안하면서도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잠실나루역 근처에 지상 1층, 1천465㎡의 웅장한 규모로 자리한 서울책보고를 들어서면 책벌레를 형상화한 아치형 철제 통로를 중심으로 높다란 서가들에 책이 가득 차 있다. 터널과도 같은 철제 통로를 따라 맴돌다 보면, 마치 시간여행자가 플랫폼을 서성이며 떠나갈 시대를 찾아나서는 느낌이 든다. 서울책보고에서는 헌책을 시대 정신과 사람의 체온을 품은 유기체라고 말하고 있다. 1950년대, 80년대, 9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세상에 나온 이 유기체들은 서가 곳곳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품고 가만히 숨만 뿜어내는 것 같다. 그 숨결은 책의 향기를 더 진하게 만들고 향수와 추억의 온기를 전해 마음을 잔잔히 데워 준다. 체온을 품었다는 말이 맞았다. 불과 얼마 전에 추억의 무게가 가볍다 싶어 내쳐짐을 당했던, 한때 나의 책이었으나 지금은 헌책이 되었을 그 책들이 머릿속에서 스쳐갔다. 그들도 어쩌면 이곳에 와서 누군가에게 자신만의 숨결을 전하며 이렇게 향기를 뿜어낼 테지. 버린 책들에 대한 한 조각의 미련일까? 갑자기 공간의 여유를 누리자고 괜스레 다 버렸나 싶은 생각이 휙 지나갔다. 그러나 누군가는 버린 기억이고 시간이지만 그것이 또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색다른 환대를 받을 수 있음을 경험하고 나니, 떠나 보낸 책들에 대해 실낱같이 일었던 미련 역시 완전히 거두어졌다. 나는 책을 떠나보냈지만, 그 책과 함께했던 수많은 이야기와 나날들은 온전히 내 것이기도 하니까.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면역성에 탁월한 우리 차

근 한 달 동안 실시간으로 뉴스를 달고 산다. 설 명절 지나자마자 터지기 시작한 코로나로 온갖 매스컴에 촉각을 세운 지 한 달여 남짓, 이제 장기전 태세에 든 것 같다. 2월에 진행하는 겨울방학 예절학당은 행복예절관의 명품이다. 초등학교 4ㆍ5ㆍ6학년을 대상으로 읽고 쓰는 사자소학 효행편과 붕우편 외에 한복 입고 절 배우기, 밥상머리 예절교육, 제기차기, 다례체험 등 4일간의 체험위주의 교육은 매년 방학이 시작되면 날짜를 확인하고 대기하는 어머니들의 인기품목이다. 겨울방학 예절학당은 여름학당에 비해 최고의 미끼상품을 준비한다. 학당이 진행되는 동안 젊은 엄마들의 틈새 특강이다. 그 엄마들은 그 해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보는 데서는 자세가 엉망이다. 자꾸만 뒤돌아보며 엄마를 쳐다본다거나 몸을 비틀거나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산만하게 시선을 끈다. 그러므로 수업 마치고 데리고 갈 학부모를 겨냥하여 지루하지 않게 아이들과 똑같이 따로 4회의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아이들이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는 예절관, 예절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현실, 세계의 모든 것이 손안의 휴대전화에 있는데 무엇이 안타까워 굳이 조선시대에나 있음 직하고 고리타분한 예절관을 찾겠는가. 틈새 특강의 포인트는 건강한 자녀교육이 잘 먹혔다. 알면 개인의 부가가치가 무궁히 올라가지만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 바로 예절이다. 우리는 한 가정의 중심에 있으므로 건강한 식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찻자리를 펴 놓고 편안하게 다가간다. 차는 어제오늘 생겨난 것이 아니라 천 년이 넘도록 지탱해 온 명약 중의 명약이요, 당송시대에는 생활 필수품으로 쌀, 소금과 함께 매일 없어서는 안 될 중요 물품이었다며 다양한 차를 다식과 함께 선보인다. 쌀은 밥이요, 3%의 소금이 바다를 이끌고 그리고 우리 몸이 병나면 치료하는 약이 우리가 어제오늘 마신 바로 이 차라고 주지시킨다. 멀지도 않은 정다산을 보자. 그는 1801년에 강진으로 유배 갔을 때 만덕산 기슭에 차나무를 심어 1818년 해배될 때까지 유배생활의 울적함을 차를 이용하여 달래며 200권이 넘는 책을 집필하였고 해배 후 18년을 손만 뻗으면 찻잔을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차를 두고 애음했다. 또한, 정조 때 태어나 고종(3년) 대에 이르러 81세에 입적하신 초의 대선사나 초의와 동갑내기 절친이었던 추사 선생은 71세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오늘날은 일제 36년이 지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차를 사랑하고 애음하는 선배 차인들이 줄곧 백수에 이르도록 육신의 건강과 정신의 맑음을 실제로 보여주고 계신다. 커피에 밀리는 우리의 녹차, 일부 계층만이 선호하는 우리 차, 복잡하여 귀찮다고 소외당하지만, 우리 차는 분명히 세계 십대장수식품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녹차는 마늘과 양파와 함께 최고의 면역성을 지닌 장수 식품인 것을 두드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번 겨울방학 예절학당은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 다례체험과 학부모 틈새 특강이 여름으로 연기되었다. 올여름에는 머리가 맑아지고 탁월한 면역성에 어떤 차가 좋아요, 어떤 다기가 좋아요 등의 질문이 이중으로 쏟아질 것 같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위기에 강한 나라, 대한민국

개학과 개강 그리고 본격적인 봄을 앞두고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더불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이런 위기는 이제 지방이나 국내의 문제가 아니고 전 지구적 상황이기에 무엇보다 철저한 방역대책과 개인의 위생 관리를 통해 확산을 막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퇴치하기까지 위기관리 당국의 안내와 방침을 따라야 할 것이다. 불안한 심리에 확인되지 않은 출처불명의 소식에 현혹되거나 이를 전파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특정 지역이나 단체에 대한 부정적인 언행이나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를 하는 것 또한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갈등과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따라서 현 상황을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책임 소재나 문제점은 이 사태가 정리된 후에 진행해도 되고 지금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이다.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마찰이 불거지자 항간에 농담처럼 우리 민족은 위기상황과 국난을 극복하는 것이 특기인 위기에 강한 나라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우리는 과거 지역과 정파를 뛰어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파죽지세로 왜군에 패배했던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지배계층만의 노력이 아닌 의병을 일으키고 승병으로 참여했던 백성의 힘이었고, 36년이라는 긴 일제의 식민지 지배 또한 3ㆍ1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백성과 독립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IMF금융위기로 국가부도의 위기가 닥치자 많은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위기를 극복해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지만 여기서 줄이며 공동체를 위한 이해와 배려로 우리의 저력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이 상황을 국민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고 정부기관과 각 지자체가 치밀하게 빈틈없이 대책을 세우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다. 지나친 낙관론도 반대로 지나친 비관론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몸담은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 역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휴관을 결정하며 많은 고민을 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과도할 정도로 선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관광객들과 공연장을 찾는 분들이 불편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는 또 다른 피해가 예상되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이기에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제 철저한 방역과 위생관리를 통해 전염과 확산을 방지하는 한편 사회 각 분야에서 손해를 입고 있는 사례들을 조사하고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행정지원책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여행 및 관광과 관련한 기업들은 취소사태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고, 연관하여 숙박 및 요식업계의 피해도 늘고 있다. 지난해 돼지 열병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공연예술계는 축제 및 공연의 취소로 이중고를 겪고 있고 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피해 또한 점점 심해지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려면 현실을 직관하며 때를 놓치지 않고 대책을 세우고 이를 조기에 집행하는 것이다. 흐트러진 민심을 모으고 모두가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처럼 슬기롭게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위기에 강한 민족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예술위원

[문화카페] 질병과 음악가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야심 차게 준비한 크고 작은 연주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연주를 통해 근근이 생활을 영위하는 연주자들은 생계대책이나 지원이 없어 우울하다. 근심에 가득 찬 프리랜서 연주자들의 표정을 마주하며 마음이 어둡다. 이런 의미에서 오는 23일 베토벤의 최대 역작인 장엄미사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하는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공연은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다. 그야말로 The Show Must Go On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꽃 피우는 음악을 전달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사명이다. 위기라고 생각할 때 포기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음악사를 통해 많은 작곡가가 질병과 싸운 기록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각자의 역할을 다한 덕분에 오늘의 콘서트 홀에서는 품격있는 음악이 풍성하게 이어질 수 있다. 26세에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각장애인 판단을 받은 베토벤은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다했으나 결국 41세에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삶을 포기했고, 54세에는 청각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베토벤이 청력을 잃지 않은 상태로 70년 이상을 살아서 (그는 57세로 생을 마쳤다) 더 많은 작품을 남겼더라면 음악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청각장애는 베토벤에게만 부여된 재앙이 아니다. 프랑스의 낭만파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와 몰다우를 작곡한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1824-1884)도 청각장애로 고난을 겪었지만 출중한 작품을 남겼다. 바흐(1685-1750)와 헨델(1685-1759), 음악인에게는 청각만큼 치명적인 시각을 60대에 들어 잃게 된다. 같은 해에 태어난 대가들의 우연은 불행도 함께 이어져 갔다. 뇌질환으로 고생한 작곡가들도 많다.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1809-1847)은 바흐와 헨델 그리고 베토벤을 전수받았지만 자기만의 진가를 나타냈다. 그러나 38세라는 짧고 행복한 생을 뇌출혈로 마감하였다. 같은 시대의 또 다른 독일 작곡가 슈만(1810-1856)은 브람스라는 대 작곡가를 발견하고 키워냈다. 슈만은 장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판을 통해 클라라와 결혼에 성공하는 열정과 낭만이 가득한 인물이다. 그도 정신착란으로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등 결국 환상과 환청의 정신병으로 46세에 생을 마감한다. 뉴욕출신 작곡가로서 재즈를 클래식에 접목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한 거쉬인(1898-1937)도 39세의 나이에 뇌종양 수술 중 사망했다. 글린카, 베를리오즈, 브루크너,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당대 최고 작곡가들도 우울증으로 고생하였다. 이 중 차이콥스키는 자살까지 시도하였다. 20세기 들어 교향곡의 형태를 진화시킨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50년의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무수한 고통을 겪었다. 심장질환을 앓았으며 형제ㆍ자매들의 죽음을 어릴 때부터 겪었다. 그리고 어린 딸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다. 길이 기억될 영웅 같은 작곡가들도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질병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들이 겪은 질병이 창작에 도움이 되었는지 또는 그 반대인지 알 수 없다. 현대의술의 발달은 질병을 조기 발견하고 더 나아가 완치까지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 연약한 인간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을 이번 중국 우한에서 날아오는 비극적인 소식들을 접하며 새삼 새겨본다. 이런 질병을 벗어나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마음껏 연주 할 수 있는 시간이 속히 오기를 기원해본다. 함신익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지역 공공 미술관들의 딜레마

국제뮤지엄협의회(ICOM)가 채택한 정의에 따르면, 뮤지엄은 인류가 창출한 문화적 소산들을 수집, 보존, 연구하며 전시와 교육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비영리적이며 항구적인 기구이다. 이러한 공적 기능 때문에 사립 뮤지엄에도 공공재원이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환경 아래 뮤지엄들은 줄어드는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 영역처럼 경영마인드의 도입을 요구받아 왔다. 또한, 과거의 전문가 중심의 뮤지엄에서 관객 중심의 뮤지엄으로 변모되고 있다. 점점 더 새로운 볼거리를 요구하는 관객들로 인해 엔터테인먼트 영역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여건하에서 공립 미술관들은 저마다 새로운 전시콘텐츠 생산에 고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소장품과 재원, 학예직의 전문성이 필수 요건이지만 이런 조건을 제대로 갖춘 미술관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경우, 차별화된 자체기획전은 물론, 소장품을 활용한 다양한 국제 순회전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구겐하임이나 루브르처럼 소장품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 유명 도시들에 분관을 조성하기도 한다. 좋은 소장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미술관 운영의 경쟁력이 되고, 미술관들도 점점 빈익빈 부익부의 양태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공립 미술관들의 경우,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초자치단체의 미술관들은 기본적인 체계조차 갖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소장품, 예산, 전문성 측면 모두 미흡하기 짝이 없다. 연간 소장품 구입 예산은 대개 평균 5억 원 미만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구입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물며 몇 년째 소장품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의 전문 인력인 학예사나 관장은 대부분 2~3년 계약직 신분으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기에 한계가 있다. 2~3년 이상 준비해야 하는 전시콘텐츠 생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개는 전임자가 계획한 전시를 처리하다 떠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미술관의 위상을 높이려고 인기 있고 화제가 될 만한 블록버스터 급의 전시를 유치하도록 요구받는다. 몇 해 전 대구미술관의 쿠사마 야요이전이나 작년도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 전의 성공 사례가 반추된다. 이런 전시들은 대개 외부 기획사나 화랑을 통해 들여온 흥행위주의 상업적 전시들이다. 이런 전시 유치는 부분적으로 필요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미술관 내부의 학예 역량 축적에는 역행되는 전시들이다. 또한 이런 대형 전시는 지자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외부 기획사와 공동주최를 하게 되고, 기획사는 수익을 맞추려고 높은 입장료를 책정하게 된다. 그나마 수익을 맞출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적자를 감수하며 실적 쌓기에 만족한다. 하지만, 미술관들은 여전히 이런 블록버스터형 반짝 전시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미술관의 정체성 구축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내부의 학예역량을 갖추는 일이 우선이며, 내부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기본적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준 높은 전시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자체 역량을 쌓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의 공공 미술관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네 번째 스무 살, 아름다운 반짝임

인지도 있는 프로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거의 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 또다시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다. 예전과 다른 점은, 가요계에서 비주류로 평가되던 장르인 트로트, 무명가수, 나라는 날개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주부, 꿈을 잃지 않은 일반인 등이 그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이 무대에 올라오면 일단 친근함이 먼저 다가온다. 뛰어난 성량과 음률을 더해 끼를 발산하며 부르는 노래에는 그들이 살아낸 삶이 함께 녹아 있기에 뭉클한 울림은 더 크게 일렁인다. 그들이 버텨낸 삶은 나의 삶이기도 하고, 내 이웃의 삶이기도 하기에 공감의 눈물과 박수로 더 세찬 응원을 보내게 됨은 당연지사다. 스타라는 소실점을 향해 집중하던 대중의 시선이 나와 내 주변으로 향하는 이러한 현상의 흐름은 출판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빛나는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는 이름하여 순천소녀시대라고 불리는 스무 분의 할머니들이다. 대부분 팔순을 넘긴 이들은 지난해에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책을 펴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2015년까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으나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에서 김순자 선생님한테 글을 배웠고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에서 그림책작가인 김중석 선생님한테 그림을 배웠다는 점이다. 은행 일도 혼자 못 보던 할머니들은 글을 알게 되자 말로 읊조리던 지나온 삶에 대한 소회와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종이 가득 글로 써내려 갔다. 그리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도 그리기 힘들어했던 할머니들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던 장면들을 형형색색 그림으로 그려내었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2018년 서울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미국 뉴욕의 미켈슨갤러리와 필라델피아 등 4곳에서 순회전시를 했으며,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2020년에는 프랑스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이 살아낸 세월은 가난, 차별, 노동이 동반되는 가정 내에서 딸이었다가, 며느리가 되었으며, 엄마가 되었고, 할머니가 된 시간이기도 하다. 긴 삶에서 억눌림 속에 살았던 이들이 글과 그림을 배워 책을 출간하고 나를 찾아가는 모습에 독자들은 큰 박수를 보내고 더 큰 감동을 받는다. 물론 할머니들의 맑고 순수한 글과 그림 실력도 한몫을 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작가가 되어 그 작품들이 국내외에서 전시된다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점은 그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볼 때면 그리고 싶다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그 감정을 일상에서 느끼며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순천소녀시대 할머니들은 절대 특별한 분들이 아니다. 시골 어디에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할머니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 속에서 오늘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의 불씨가 점화된 곳은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시민 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1월에 웃장상인 그림책을 펴냈다. 순천의 전통시장 웃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떡집, 방앗간, 국밥집 등의 상인들이 그들의 삶을 직접 담아낸 그림책이다. 순천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반짝임은 소실점과 원근법을 중요시하는 서양화보다는 개별적인 형태와 색채를 강조하는 우리의 민화와도 결이 닮아 보인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입춘과 대보름을 맞이하며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도 지나고 이제 24절기(節氣) 중 첫째 절기인 입춘(立春)을 맞이하니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물론 아직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본격적인 봄은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부터 봄을 준비하는 기지개가 시작되었고 또한 휘영청 달 밝은 대보름도 이어지니 이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할 때가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지켜지던 절기(節氣)는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의 삶과 멀어지고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활 속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입춘이 되면 한 해의 소망을 담은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그 내용을 보면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등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입춘 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얹고, 민간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었으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며 겨우내 웅크렸던 몸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대보름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만월을 보며 새해를 맞이하였으니 절식으로는 오곡밥과 나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을 먹으며, 달집태우기를 비롯해 지신밟기, 별신굿, 기세배(旗歲拜), 쥐불놀이, 오광대놀이 등의 제의와 놀이를 즐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준비하기 전 흥겨운 마을잔치로 단합을 도모하고 풍요를 기원하였다. 이처럼 새해를 맞이하며 마을 공동체의 번영과 집안과 개개인의 소원과 다짐을 하며 한해를 준비하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다양한 계획과 다짐을 하며 새해를 시작한다. 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처럼 이를 꾸준히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초심을 잃지 않고 한 해 동안 다짐을 지킨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도에 잠시 멈추더라도 다시 시작한다면 중도에 포기한 사람보다는 좋은 결실을 볼 것이다. 습관을 바꾸려고 21일간의 반복적인 노력과 적응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은 쑥과 마늘을 가지고 어두운 동굴에서 삼칠일을 인내한 곰은 사람으로 변신하고 이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단군 신화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데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내 몸에 체화하려면 인내와 분발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익숙하고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혁신(革新)은 불편함과 동시에 낯선 것이지만 발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통일 수 있다. 상나라의 시조인 탕(湯)왕은 세숫대야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글을 새겨놓고 매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미리 작심삼일을 걱정하거나 중도에 실패했다고 포기하거나 그만둘 일이 아니라 다시 이를 악물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작심삼일이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사와 준비를 거쳐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한다면 시간이 지나 소기(所期)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난 것이 아니라 아직 열한 달이 남았다. 새해의 다짐을 떠올리며 몸과 마음을 리셋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딱 좋은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예술위원

[문화카페] 설날 세배다례

설은 한 해의 첫날 전후에 치르는 의례와 놀이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설이 왜 설이라고 했는지 그 유래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일반적으로 첫째, 삼간다(아무 탈 없이 지내고 싶어 삼간다). 둘째, 섧다(해가 지남에 따라 점차 늙어가는 처지가 서글퍼 서럽다). 셋째, 낯설다, 설다(새로운 시간주기에 익숙하지 않다). 넷째, 서다(立歲日:한해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여 해가 서는 날)에서 생겼을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한국문화재보호재단 세시풍속 편)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茶禮)는 글자 그대로 차를 이용하여 예를 올린다는 말이다. 즉, 제사(祭祀)에는 밥과 국이 올라가고 술을 올리지만, 차례에는 밥, 국 대신 명절 음식(떡국, 송편)과 제철과일을 올리고 차(茶)가 중요 제물로 올라간다. 또 제사에는 신위가 있고 돌아가신 영혼이 집을 잘 찾아오시도록 불을 켜고 문을 열어놓으며 자정이 되어야 지내지만, 차례에는 신위가 없으며 이른 아침에 지낸다. 이때 정성껏 차린 차례상에 차는 없고 술만 올라간다면 이는 주례(酒禮)이지 차례(茶禮)라고 하기가 마땅하지 않은 일이다. 현대 대부분의 국어사전에는 차례(茶禮)를 명절날,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조상 생일에 간단히 지내는 낮 제사라 하였고, 삼명절(三名節:임금의 탄신일, 정월초하루, 동지)과 육명절(六名節: 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에는 영희전(永禧殿)에 차례를 올리도록 하였다. 실록에는 차(茶)가 놓인 진설도가 있고 실제로 1천300회 이상 올려진 것으로 나타난다. 설날 대표적 음식인 긴 가래떡(떡국)은 오래 살기를 바라는 장수의 뜻이 있고 어린이 설빔으로 색동저고리는 오방색(五方色)으로 오복을 누리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남자 아이들의 연날리기와 여자들의 널뛰기는 겨우내 움츠린 하체가 튼튼하게 하는 놀이다. 무엇보다 설날의 하이라이트는 가족세배다. 설날 아침에는 집안 어른이나 동네 어른 또는 선생님, 선배에게 새해 인사의 절을 올리고 멀리 계신 분에게는 일일이 세배 드리기 어려우므로 연하장과 안부전화를 드리지만, 가족은 부부맞절과 자손이 어른에게 또는 형제자매끼리 절을 함으로써 서로 우의를 돈독히 하고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가족세배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어른은 자손에게 덕담을 내리고 설음식과 차(茶)를 나누는 의례를 세배다례라고 한다. 세배다례는, 시집와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잘 보살피고 한결같이 무탈하게 살아준 고마움을 서로에게 표현하는 부부맞절(평절)과, 모든 자손들이 다 함께 큰절로 할머니 할아버지께 올리는 세배, 그리고 동서끼리 형제끼리 서로 마주 보고 가족의 화목과 안녕을 나누는 절(평절)은 일품가족이 아닐 수 없다. 아들 형제는 무병장수의 손 편지를 써서 용돈과 함께 부모님께 드리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손자들에게 덕담과 가훈을 내리고 며느리는 차와 다식으로 그 분위기를 북돋우면 이게 바로 진정한 설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번 설에는 조상과 부모와 종가를 찾아 올리는 차례에 반드시 차(茶)가 주인공이 되어 3대가 한자리에서 자칫 소홀히 지내기 쉬운 가족 간의 예절을 익히는 우리 고유의 세배다례로 건강한 가족형성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베토벤 250주년

늦은 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을 깨워 피아노로 끌고 간다. 함께 들이닥친 아버지의 친구들도 취한 상태이다. 9살 소년은 그들을 위해 연주를 시작한다. 한 음 틀릴 때마다 내리치는 아버지의 주먹이 소년이 받는 유일한 보상이다. 11살 때부터는 오르간 주자로 가계를 책임지며 전문연주자로 나선다. 13살 때는 아버지가 죽을 지경에 이르는 폭행을 한다. 17살 때,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소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유소년 시기를 보낸다. 음악의 삼위일체라고 불리는 바흐,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을 비교할 때 바흐와 모차르트는 신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악보로 신속하게 옮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원본 악보를 보면 별다른 수정 없이 깨끗하게 남아있다. 신이 그들에게만 선물한 악상을 무리 없이 써 내려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베토벤의 자필 악보에는 지저분하게 지운 잉크 자국 위에 또 고치고, 그 위를 다시 고치는 험난한 작업을 반복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 음 그리고 한 음절을 만들기 위해 격렬하게 씨름한 전쟁터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베토벤은 인류 역사를 통해 이전에 없었던 빛깔로 옷 입혀 기적의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신이 내린 재능보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불굴의 집념을 불태운 베토벤의 음악에는 인간의 땀 냄새가 악보 전체에 흥건히 베어져 있다. 베토벤은 세계사적 음악의 흐름을 혼자의 힘으로 바꾸었다. 고전파 시대의 편안함에 취해 있던 정체 상태의 음악을 새로운 낭만파 시대로 끌어올린 혁명가였다. 그는 참된 휴머니스트였다. 나폴레옹 중심의 프랑스혁명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베토벤은 혁명 이후 스스로 황제에 즉위한 그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고자 작곡 중이던 교향곡 3번 영웅의 악보표지를 난폭하게 찢어버렸다. 당시의 작곡가들이 작곡하던 주요 이유는 왕 또는 부호 군주 등 후원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3번 교향곡 영웅의 초연 후 쏟아진 셀 수 없는 혹평에도 베토벤은 단 한 줄도 수정하지 않았다. 후세에 평가될 작품의 가치를 예견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진실은 삶 속에 가득한 그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그는 본인의 예술적 그리고 지적 존재를 증명하려고 끝까지 싸웠으며 인류가 어떤 표현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었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었던 진실들을 음악을 통해 마음껏 표현하게 해주었다. 법규와 관행 그리고 귀족 중심의 폐쇄된 사회로부터 자유를 주었다. 올바르지 못한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적 표현에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 이익을 위해서라도 진리를 배반하지 않았다.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 없이 그런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을 연주하며 늘 떠오르는 질문이다. 베토벤이라는 단어 자체로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음은 진정한 축복이다. 함신익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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