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잿빛 시간을 비추는 햇살

『프레드릭』이란 이름의 들쥐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있다. 겨울을 앞두고 다른 들쥐가족들이 열심히 일하며 먹거리를 모으는 동안, 프레드릭은 동그마니 앉아 풀밭을 내려다보거나 졸음 섞인 눈으로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 겨울이 깊어지자, 비축했던 먹거리는 다 떨어져 가고 들쥐들은 생기를 잃게 된다. 그때 프레드릭은 잿빛 돌 틈에 웅크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찬란한 금빛 햇살을 보내주며 들쥐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풀밭에 피었던 꽃들을 떠올리며 알록달록한 색깔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들이 추운 겨울을 지치지 않고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알게 한다. 그렇다. 프레드릭은 예술가다. 그리고 우리는 이 화창한 봄날에 지독한 바이러스로 인해 잿빛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독일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한국인의 글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공연이 취소되자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허무함에 휩싸였다는 그는 만약 당신이 예술가가 쓸모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번 자가격리기간 동안 음악과 시와 책과 영화와 그림 없이 보내보기를이라고 쓰인 포스터를 마주하고 힘을 냈다고 한다. 이성적으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어른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자가격리시간은 그야말로 몇 배나 지겹고 어렵기 그지없을 터이다. 거의 모든 도서관이 문을 닫아 책을 맘껏 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세계의 많은 어린이문학가가 SNS 라이브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작가 중에서는 작년에 방한해 한국 그림책독자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맥 바넷이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맥의 북클럽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자신이 쓴 그림책과 챕터 북을 매일 읽어주며 세계의 어린이 독자들과 만난다. 눈에 띄는 점은 시청하는 아이들도 모두 모자를 쓰고 참여하며 온라인 상에서 오프라인의 연대감을 만들어나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맥 바넷은 만화가인 숀 해리스와 의기투합하여 북클럽 모자를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동네서점을 돕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 결과로 15일 만에 약 16만 달러가 모금되었고 171곳의 서점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되었다. 독자와 작가가 사이버상에서 만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 지역 문화의 산소통인 동네서점을 응원하며 코로나19로 인해 무채색이 되어가는 사회에 그들이 모았던 알록달록한 색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출판계에서도 그림책 위대한 아파투라일리아의 지은 작가가 책을 기반한 프로그램으로 SNS라이브방송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과 만나는 등 여러 작가가 이러한 활동에 동참하는 중이다. 더 나아가 국내외 출판사들은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다양한 독후활동지를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며 지금까지 들려준 그들의 이야기를 깊고 즐겁게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출판계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나, 서커스, 오페라 등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문화 예술의 결정체들이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며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개되고 있다. 국가 간에는 출입을 통제하며 장벽이 높아져 가고, 사람들 간에는 사회적인 거리 두기로 인해 얼굴을 마주하기는 어려운 때다. 하지만, 사이버상에서는 수많은 프레드릭이 모아둔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들로 우리들이 느끼는 마음의 거리를 좁혀지는 요즘이다. 이 잿빛 시간을 잘 견디면 진정한 봄이 오겠지.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또다시 사월은 오고

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 초등학부모는 개학 날짜를 하루하루 손꼽아 센다. 애들 개학만 하면 만나자고 겨울방학 내내 휴대전화기로 주고받았던 그 개학이 사월이 오고 있어도 기미가 심상치 않다. 하루 삼시세끼를 고스란히 챙겨 먹이는 세 아이의 어머니 역할에 이젠 지쳐가고 있다고 투덜거리던 엄마가 사월에 개학을 할까 봐 오히려 개학을 미뤄야 한다고 또 투덜거린다. 사월이다. 사월은 땅속의 온갖 웅크렸던 소리가 저마다 일제히 노랗고 빨갛게 또 푸르게 목소리를 낸다. 잠시 고개를 들어 돌아보기만 해도 일부러 흙을 비집어 살펴보지 않아도 천지간에 사월은 봄을 뿌리고 있다. 사월의 공원 벤치에는 전깃줄의 참새처럼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노인들이 턱을 괴고 졸았지만 빈 의자 앞으로 마스크 쓴 빠른 걸음들만 오간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너와 나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마주 보고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고개를 맞대고 골똘하면 더욱 안 된다. 악수는 주먹으로 맞대고 엘리베이터 단추는 손 등으로 누르고 버스 손잡이는 장갑을 껴야 하고 마주 오는 사람은 미리 거리를 조율하며 비켜가고 말을 할 때는 눈을 보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가 이제 눈으로도 옮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박물관, 미술관은 물론 목욕탕, 극장, 도서관 그리고 소소한 모임에도 절제가 요구되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래가면 우울증 오겠다고 휴대전화 속에서 오가는 걱정들만 풍성하다. 사람이 죽어도 조문을 못 가고 예식을 알려와도 통장으로 송금하며 임산부와 고령자는 재택근무 길어지고 일 년 농사 첫 프로그램은 정한 바 없이 휴강으로 더욱 암울한데 쥐꼬리 봉급과 예산은 삭감하여 코로나19 쪽으로 힘 보태야 한다. 코로나19는 재택 내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사는 동안 좀 쟁쟁 거리기는 했으나 기실은 참 여유로운 자유와 넉넉함이었던 삶이 아니었나 싶다. 생존이 좀 곤하긴 했어도 바로 곁에서 생명을 위협당하거나 경제가 파탄되어 공포나 위기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개인의 삶은 물론 전 세계가 기약 없이 공포 속에서 떨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가고 오는 데 제한 없이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편하게 오가며 소통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제약을 받게 됨으로써 동안 누렸던 풍요가 값진 것임을 새삼 느낀다. 이 봄 코로나19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긴 했으나 몽땅 다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차츰 늘어나면서 켜켜이 쌓인 사용하지 않던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옷가지 신발 책을 앞에 두고 버릴까 말까를 수없이 주저주저하는 참 신기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또다시 사월은 오고 사월의 봄바람은 분분한 아침 뉴스를 실어 나른다. 전 세계가 전염병과 대치하고 방심한 부주위로 개인과 집단 확진자 숫자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남녀노소 안 가리고 나라도 신분도 종교도 돈도 명예도 따지지 않는 코로나19, 재난은 재난이다. 이 어마 무시한 재난을 극복하려는 정부와 함께 우리는 스스로 행동수칙을 지켜야 할 일이다. 봄부터 시작할 일을 여름에 시작하여 가열 찬 연말을 보낸다면 내년 이맘때는 또다시 사월이 오게 될 것이고 그때는 오늘의 이 재난을 따뜻하게 스토리화 될 것으로 희망을 품는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봄의 제전

3월이다. 나뭇가지마다 봉오리가 가득하다. 봄을 알리는 움직임은 올해도 여전하다. 봄은 특별한 영감을 주는 계절인지 봄을 주제로 작곡된 작품이 많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에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가득하다. 비발디의 봄에는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아지랑이 등이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는 매년 이맘때면 연주되는 단골 메뉴이다.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은 봄꽃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지구의 오케스트라들이 어색한 봄을 맞는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모든 연주회가 취소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맞는 음악을 임의로 선택한다면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의 봄의 제전 이 어울린다. 원시시대의 미신숭배에 바탕을 둔 전통적 제례를 묘사한 행사발레 음악 봄의 제전은 1913년에 작곡되어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이르는 음악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2020년 3월, 인류는 기대를 훨씬 넘어선 최첨단 산업시대의 지붕 아래 기대어 살고 있지만, 원인 모를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봄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 우연이지만 가슴 아픈 두 장면이 오묘하게 오버랩 된다. 봄의 제전은 긴 겨울을 이겨내고 대지가 뿜어내는 풀냄새를 신비한 모습으로 묘사하며 시작된다. 마을의 현자와 어른들을 중심으로 조상과 태양신을 위해 희생될 처녀들을 납치하고 그중 한 명을 선택하는 과정의 줄거리가 이어진다. 발레의 하이라이트는 선택된 처녀들의 조상을 부르는 춤판과 최후로 선택된 처녀가 제단에 바쳐지는 마지막 부분의 희생의 춤이다. 처녀의 죽음을 묘사하는 정체불명의 선율과 광폭한 리듬의 조합이 공격적인 분위기로 발전한다. 희생될 처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처녀들이 겪는 극심한 무력함과 자괴감은 악수 대신 팔꿈치로, 맑고 밝은 정겨운 웃음 대신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화해야 하는 현 상황을 반사경으로 비춰준다. 나만은 희생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수척한 공포심이 깃들인 불신과 자기방어가 만연하다. 엘리베이터, 식당, 지하철 등은 실제 온도보다 훨씬 낮고 스산하다. 봄이 멀게만 느껴진다. 이 땅에서 음악가로, 더욱이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연주자들에게 작금의 사태는 침울한 시련의 긴 터널이다. 특히 젊은 음악가들의 생계는 심각하다. 하루의 연주를 통해 생활을 영위해온 그들에게 일자리가 사라지는 슬픈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대다수 연주자가 1회의 연주로 받는 금전적 대우는 척박하기 그지없지만, 그마저도 먼 기억이 되어간다. 한 시간 반 정도 길이의 연주를 위해 연습에 쏟아붓는 셀 수 없는 시간을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렵다. 음악의 완성을 위해 평생의 노력을 인정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한 곡의 연주를 위해 쏟아붓는 시간은 수십 수백 시간을 넘어선다. 음악가들의 연주를 싼값 또는 무료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우리가 아직 문화 후진국에 머물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독일의 연방 문화부 장관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피해를 본 문화기관과 예술가들에게 지원을 약속합니다.라는 문화선진국다운 정책을 먼저 발표하고 당분간 콘서트의 취소를 밝힌다. 후배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어려운 질문이다. 미쳐라!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미쳐라.라는 말로 열정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연주자들에게 미쳐야 한다고 설득할 근거를 상실하여 마음이 아프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문화관계자들은 허기진 청년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육성하지 않으면 선진국 근처에 갈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원하건대, 힘없는 젊은 음악인들의 힘겨운 하루를 위로할 수 있는 고마운 어른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다. 함신익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흑사병과 르네상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초비상이다. 새삼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국가마다 출입국 제한조치가 시행되고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스크 5부제의 생경함과 불편함에 자괴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공포에 외출도 삼가고 있다. 개학도 연기되고 미술관이나 공연장은 장기 휴관에 들어가 있다. 종교집회는 물론, 다수가 모이는 회의도 제한하고 있다. 바이러스로부터의 공격에 일상은 무너지고 삶은 위축되었다. 질병 퇴치 기간이 길어진다면 사회와 삶 전체의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다. 총이나 대포보다 보이지 않게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더 무서운 존재임을 실감케 한다. 14세기 중세의 흑사병은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키며 유럽 전역을 초토화 시켰다. 중국 남부와 중앙아시아에서 촉발된 이 질병은 실크로드를 따라 몽골 군의 서진과 함께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쥐벼룩을 숙주로 한 이 흑사병은 전염이 빠르고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가까워 인구 밀집된 도시는 시체와 악취로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다. 사람들이 이를 막고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성문을 걸어 잠그는 것, 발병한 집에 방역선을 치는 것, 발병지역으로부터 가급적 멀리 피난 가는 것 등이 고작이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채찍을 가하면서 참회의 고행을 하기도 하였다. 병의 원인을 알기 위해 고심했었지만,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했다. 교회나 정치권은 천재의 이변 때문이거나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흑사병의 재앙은 역설적이게도 서구의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고매한 가톨릭 사제들도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목도한 당대인들은 교회의 권위와 신앙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되었고, 점차 합리적 이성에 눈뜨게 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인구의 감소로 수입이 늘어난 중산층이 확대되었는데 부자들은 성당에 성화를 기증하거나 성화를 소장하는 등 좀 더 독실한 신앙심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의 탁월한 대가들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이번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확인할 소중한 기회임에 틀림없다.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 제고와 좀 더 치밀한 방역시스템의 필요를 깨닫게 되었다. 격리시설 지정을 둘러싼 지역주민들의 배타적인 태도나 마스크 매점매석 행위 등 비윤리적 태도도 보았다. 확진자들을 증폭시킨 특정 종교집단의 감춰졌던 문제점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부족한 현장 전문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생업을 접어두고 목숨 걸고 현장으로 달려간 의료진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도 확인했다. 정책수행에서 정치논리보다는 전문가 그룹의 의견을 존중 해야 함도 알게 되었다. 경제 강국임을 자처하던 우리 사회의 수다한 취약점을 확인케 된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사회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소중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은 차분하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 타자의 불행에 동참하는 성숙함도 가져야 한다. 코로나로 모두 정신없고 힘들지만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시간을 담은 책에 대한 단상

서가 안으로 봄볕이 스며든다. 책으로 넘쳐나는 꽉 찬 서가는 겨울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답답해 보였다. 책 정리를 하려고 책장 앞에 서서 찬찬히 살펴보니 최근 몇 년 동안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 수두룩했다. 책에 담긴 내 마음의 무게를 저울질하며 한 권 두 권 골라내었다. 경중은 있지만 늘 끌어안고 왔던 책들이었으나, 이번에는 매정하게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상자 분량의 책을 걸러내자, 빼곡하니 겹겹으로 쌓여 있던 책장에 빈칸도 생기고 덩달아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듯 여백의 한가로움이 전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책보고에 가게 되었다. 2019년에 문을 연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10년간 비어 있었던 한 유통업체의 창고를 공공 헌책방이자 책과 관련한 전시와 특강이 이어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 된 서울책보고는 일반적인 도서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독립출판물과 명사의 기증도서를 열람할 수 있어 도서관 기능도 더하고 있다. 헌책방인 만큼 책을 팔기도 하는데, 공공 헌책방으로서 그 운영방식이 독특하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의 헌책 서점을 비롯한 서울시 소재 29곳의 헌책방으로부터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헌책 12~15만 권을 위탁받아 판매하고 있다. 서울책보고는 단순히 헌책을 판매하는 곳이라기보다는 헌책방과 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서가의 배치도 주제 분류가 아닌 서점별로 되어 있어 도서관이나 기존 서점의 도서분류에 익숙해져 있다면 조금 어수선하게 와 닿을 수도 있는 전시 방식이었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서면 주제 분류가 아니기에 전혀 예기치 못한 책들을 불쑥불쑥 만나게 된다. 내비게이션 없이 떠나는 지적 항해를 원한다면 그 낯설고 둔탁한 재미를 만끽하게 해주는 책의 보물창고인 곳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어떤 서점에서보다도 이 공간에서 헌책을 즐기는 독자들은 편안하면서도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잠실나루역 근처에 지상 1층, 1천465㎡의 웅장한 규모로 자리한 서울책보고를 들어서면 책벌레를 형상화한 아치형 철제 통로를 중심으로 높다란 서가들에 책이 가득 차 있다. 터널과도 같은 철제 통로를 따라 맴돌다 보면, 마치 시간여행자가 플랫폼을 서성이며 떠나갈 시대를 찾아나서는 느낌이 든다. 서울책보고에서는 헌책을 시대 정신과 사람의 체온을 품은 유기체라고 말하고 있다. 1950년대, 80년대, 90년대, 혹은 그 이전에 세상에 나온 이 유기체들은 서가 곳곳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품고 가만히 숨만 뿜어내는 것 같다. 그 숨결은 책의 향기를 더 진하게 만들고 향수와 추억의 온기를 전해 마음을 잔잔히 데워 준다. 체온을 품었다는 말이 맞았다. 불과 얼마 전에 추억의 무게가 가볍다 싶어 내쳐짐을 당했던, 한때 나의 책이었으나 지금은 헌책이 되었을 그 책들이 머릿속에서 스쳐갔다. 그들도 어쩌면 이곳에 와서 누군가에게 자신만의 숨결을 전하며 이렇게 향기를 뿜어낼 테지. 버린 책들에 대한 한 조각의 미련일까? 갑자기 공간의 여유를 누리자고 괜스레 다 버렸나 싶은 생각이 휙 지나갔다. 그러나 누군가는 버린 기억이고 시간이지만 그것이 또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색다른 환대를 받을 수 있음을 경험하고 나니, 떠나 보낸 책들에 대해 실낱같이 일었던 미련 역시 완전히 거두어졌다. 나는 책을 떠나보냈지만, 그 책과 함께했던 수많은 이야기와 나날들은 온전히 내 것이기도 하니까.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면역성에 탁월한 우리 차

근 한 달 동안 실시간으로 뉴스를 달고 산다. 설 명절 지나자마자 터지기 시작한 코로나로 온갖 매스컴에 촉각을 세운 지 한 달여 남짓, 이제 장기전 태세에 든 것 같다. 2월에 진행하는 겨울방학 예절학당은 행복예절관의 명품이다. 초등학교 4ㆍ5ㆍ6학년을 대상으로 읽고 쓰는 사자소학 효행편과 붕우편 외에 한복 입고 절 배우기, 밥상머리 예절교육, 제기차기, 다례체험 등 4일간의 체험위주의 교육은 매년 방학이 시작되면 날짜를 확인하고 대기하는 어머니들의 인기품목이다. 겨울방학 예절학당은 여름학당에 비해 최고의 미끼상품을 준비한다. 학당이 진행되는 동안 젊은 엄마들의 틈새 특강이다. 그 엄마들은 그 해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보는 데서는 자세가 엉망이다. 자꾸만 뒤돌아보며 엄마를 쳐다본다거나 몸을 비틀거나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산만하게 시선을 끈다. 그러므로 수업 마치고 데리고 갈 학부모를 겨냥하여 지루하지 않게 아이들과 똑같이 따로 4회의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아이들이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는 예절관, 예절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현실, 세계의 모든 것이 손안의 휴대전화에 있는데 무엇이 안타까워 굳이 조선시대에나 있음 직하고 고리타분한 예절관을 찾겠는가. 틈새 특강의 포인트는 건강한 자녀교육이 잘 먹혔다. 알면 개인의 부가가치가 무궁히 올라가지만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 바로 예절이다. 우리는 한 가정의 중심에 있으므로 건강한 식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찻자리를 펴 놓고 편안하게 다가간다. 차는 어제오늘 생겨난 것이 아니라 천 년이 넘도록 지탱해 온 명약 중의 명약이요, 당송시대에는 생활 필수품으로 쌀, 소금과 함께 매일 없어서는 안 될 중요 물품이었다며 다양한 차를 다식과 함께 선보인다. 쌀은 밥이요, 3%의 소금이 바다를 이끌고 그리고 우리 몸이 병나면 치료하는 약이 우리가 어제오늘 마신 바로 이 차라고 주지시킨다. 멀지도 않은 정다산을 보자. 그는 1801년에 강진으로 유배 갔을 때 만덕산 기슭에 차나무를 심어 1818년 해배될 때까지 유배생활의 울적함을 차를 이용하여 달래며 200권이 넘는 책을 집필하였고 해배 후 18년을 손만 뻗으면 찻잔을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차를 두고 애음했다. 또한, 정조 때 태어나 고종(3년) 대에 이르러 81세에 입적하신 초의 대선사나 초의와 동갑내기 절친이었던 추사 선생은 71세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오늘날은 일제 36년이 지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차를 사랑하고 애음하는 선배 차인들이 줄곧 백수에 이르도록 육신의 건강과 정신의 맑음을 실제로 보여주고 계신다. 커피에 밀리는 우리의 녹차, 일부 계층만이 선호하는 우리 차, 복잡하여 귀찮다고 소외당하지만, 우리 차는 분명히 세계 십대장수식품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녹차는 마늘과 양파와 함께 최고의 면역성을 지닌 장수 식품인 것을 두드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번 겨울방학 예절학당은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 다례체험과 학부모 틈새 특강이 여름으로 연기되었다. 올여름에는 머리가 맑아지고 탁월한 면역성에 어떤 차가 좋아요, 어떤 다기가 좋아요 등의 질문이 이중으로 쏟아질 것 같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위기에 강한 나라, 대한민국

개학과 개강 그리고 본격적인 봄을 앞두고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더불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이런 위기는 이제 지방이나 국내의 문제가 아니고 전 지구적 상황이기에 무엇보다 철저한 방역대책과 개인의 위생 관리를 통해 확산을 막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게 퇴치하기까지 위기관리 당국의 안내와 방침을 따라야 할 것이다. 불안한 심리에 확인되지 않은 출처불명의 소식에 현혹되거나 이를 전파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특정 지역이나 단체에 대한 부정적인 언행이나 마녀 사냥식 여론몰이를 하는 것 또한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갈등과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따라서 현 상황을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책임 소재나 문제점은 이 사태가 정리된 후에 진행해도 되고 지금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이다.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마찰이 불거지자 항간에 농담처럼 우리 민족은 위기상황과 국난을 극복하는 것이 특기인 위기에 강한 나라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우리는 과거 지역과 정파를 뛰어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파죽지세로 왜군에 패배했던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지배계층만의 노력이 아닌 의병을 일으키고 승병으로 참여했던 백성의 힘이었고, 36년이라는 긴 일제의 식민지 지배 또한 3ㆍ1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백성과 독립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IMF금융위기로 국가부도의 위기가 닥치자 많은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위기를 극복해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가 있지만 여기서 줄이며 공동체를 위한 이해와 배려로 우리의 저력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이 상황을 국민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고 정부기관과 각 지자체가 치밀하게 빈틈없이 대책을 세우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다. 지나친 낙관론도 반대로 지나친 비관론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몸담은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 역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휴관을 결정하며 많은 고민을 했지만 현 상황에서는 과도할 정도로 선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관광객들과 공연장을 찾는 분들이 불편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는 또 다른 피해가 예상되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이기에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제 철저한 방역과 위생관리를 통해 전염과 확산을 방지하는 한편 사회 각 분야에서 손해를 입고 있는 사례들을 조사하고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행정지원책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여행 및 관광과 관련한 기업들은 취소사태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고, 연관하여 숙박 및 요식업계의 피해도 늘고 있다. 지난해 돼지 열병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공연예술계는 축제 및 공연의 취소로 이중고를 겪고 있고 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피해 또한 점점 심해지고 있다. 위기를 돌파하려면 현실을 직관하며 때를 놓치지 않고 대책을 세우고 이를 조기에 집행하는 것이다. 흐트러진 민심을 모으고 모두가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처럼 슬기롭게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위기에 강한 민족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예술위원

[문화카페] 질병과 음악가

코로나19 사태로 공연계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야심 차게 준비한 크고 작은 연주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연주를 통해 근근이 생활을 영위하는 연주자들은 생계대책이나 지원이 없어 우울하다. 근심에 가득 찬 프리랜서 연주자들의 표정을 마주하며 마음이 어둡다. 이런 의미에서 오는 23일 베토벤의 최대 역작인 장엄미사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하는 함신익과 심포니 송의 공연은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다. 그야말로 The Show Must Go On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꽃 피우는 음악을 전달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사명이다. 위기라고 생각할 때 포기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음악사를 통해 많은 작곡가가 질병과 싸운 기록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각자의 역할을 다한 덕분에 오늘의 콘서트 홀에서는 품격있는 음악이 풍성하게 이어질 수 있다. 26세에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청각장애인 판단을 받은 베토벤은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다했으나 결국 41세에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삶을 포기했고, 54세에는 청각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베토벤이 청력을 잃지 않은 상태로 70년 이상을 살아서 (그는 57세로 생을 마쳤다) 더 많은 작품을 남겼더라면 음악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청각장애는 베토벤에게만 부여된 재앙이 아니다. 프랑스의 낭만파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와 몰다우를 작곡한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1824-1884)도 청각장애로 고난을 겪었지만 출중한 작품을 남겼다. 바흐(1685-1750)와 헨델(1685-1759), 음악인에게는 청각만큼 치명적인 시각을 60대에 들어 잃게 된다. 같은 해에 태어난 대가들의 우연은 불행도 함께 이어져 갔다. 뇌질환으로 고생한 작곡가들도 많다.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1809-1847)은 바흐와 헨델 그리고 베토벤을 전수받았지만 자기만의 진가를 나타냈다. 그러나 38세라는 짧고 행복한 생을 뇌출혈로 마감하였다. 같은 시대의 또 다른 독일 작곡가 슈만(1810-1856)은 브람스라는 대 작곡가를 발견하고 키워냈다. 슈만은 장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판을 통해 클라라와 결혼에 성공하는 열정과 낭만이 가득한 인물이다. 그도 정신착란으로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등 결국 환상과 환청의 정신병으로 46세에 생을 마감한다. 뉴욕출신 작곡가로서 재즈를 클래식에 접목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한 거쉬인(1898-1937)도 39세의 나이에 뇌종양 수술 중 사망했다. 글린카, 베를리오즈, 브루크너,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당대 최고 작곡가들도 우울증으로 고생하였다. 이 중 차이콥스키는 자살까지 시도하였다. 20세기 들어 교향곡의 형태를 진화시킨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50년의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무수한 고통을 겪었다. 심장질환을 앓았으며 형제ㆍ자매들의 죽음을 어릴 때부터 겪었다. 그리고 어린 딸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다. 길이 기억될 영웅 같은 작곡가들도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질병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들이 겪은 질병이 창작에 도움이 되었는지 또는 그 반대인지 알 수 없다. 현대의술의 발달은 질병을 조기 발견하고 더 나아가 완치까지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 연약한 인간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을 이번 중국 우한에서 날아오는 비극적인 소식들을 접하며 새삼 새겨본다. 이런 질병을 벗어나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마음껏 연주 할 수 있는 시간이 속히 오기를 기원해본다. 함신익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지역 공공 미술관들의 딜레마

국제뮤지엄협의회(ICOM)가 채택한 정의에 따르면, 뮤지엄은 인류가 창출한 문화적 소산들을 수집, 보존, 연구하며 전시와 교육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비영리적이며 항구적인 기구이다. 이러한 공적 기능 때문에 사립 뮤지엄에도 공공재원이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환경 아래 뮤지엄들은 줄어드는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 영역처럼 경영마인드의 도입을 요구받아 왔다. 또한, 과거의 전문가 중심의 뮤지엄에서 관객 중심의 뮤지엄으로 변모되고 있다. 점점 더 새로운 볼거리를 요구하는 관객들로 인해 엔터테인먼트 영역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여건하에서 공립 미술관들은 저마다 새로운 전시콘텐츠 생산에 고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소장품과 재원, 학예직의 전문성이 필수 요건이지만 이런 조건을 제대로 갖춘 미술관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경우, 차별화된 자체기획전은 물론, 소장품을 활용한 다양한 국제 순회전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다. 구겐하임이나 루브르처럼 소장품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 유명 도시들에 분관을 조성하기도 한다. 좋은 소장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미술관 운영의 경쟁력이 되고, 미술관들도 점점 빈익빈 부익부의 양태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공립 미술관들의 경우,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초자치단체의 미술관들은 기본적인 체계조차 갖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소장품, 예산, 전문성 측면 모두 미흡하기 짝이 없다. 연간 소장품 구입 예산은 대개 평균 5억 원 미만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구입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물며 몇 년째 소장품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의 전문 인력인 학예사나 관장은 대부분 2~3년 계약직 신분으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기에 한계가 있다. 2~3년 이상 준비해야 하는 전시콘텐츠 생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개는 전임자가 계획한 전시를 처리하다 떠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미술관의 위상을 높이려고 인기 있고 화제가 될 만한 블록버스터 급의 전시를 유치하도록 요구받는다. 몇 해 전 대구미술관의 쿠사마 야요이전이나 작년도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 전의 성공 사례가 반추된다. 이런 전시들은 대개 외부 기획사나 화랑을 통해 들여온 흥행위주의 상업적 전시들이다. 이런 전시 유치는 부분적으로 필요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미술관 내부의 학예 역량 축적에는 역행되는 전시들이다. 또한 이런 대형 전시는 지자체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외부 기획사와 공동주최를 하게 되고, 기획사는 수익을 맞추려고 높은 입장료를 책정하게 된다. 그나마 수익을 맞출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적자를 감수하며 실적 쌓기에 만족한다. 하지만, 미술관들은 여전히 이런 블록버스터형 반짝 전시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미술관의 정체성 구축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내부의 학예역량을 갖추는 일이 우선이며, 내부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기본적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준 높은 전시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자체 역량을 쌓아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의 공공 미술관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네 번째 스무 살, 아름다운 반짝임

인지도 있는 프로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거의 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 또다시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다. 예전과 다른 점은, 가요계에서 비주류로 평가되던 장르인 트로트, 무명가수, 나라는 날개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주부, 꿈을 잃지 않은 일반인 등이 그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이 무대에 올라오면 일단 친근함이 먼저 다가온다. 뛰어난 성량과 음률을 더해 끼를 발산하며 부르는 노래에는 그들이 살아낸 삶이 함께 녹아 있기에 뭉클한 울림은 더 크게 일렁인다. 그들이 버텨낸 삶은 나의 삶이기도 하고, 내 이웃의 삶이기도 하기에 공감의 눈물과 박수로 더 세찬 응원을 보내게 됨은 당연지사다. 스타라는 소실점을 향해 집중하던 대중의 시선이 나와 내 주변으로 향하는 이러한 현상의 흐름은 출판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빛나는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는 이름하여 순천소녀시대라고 불리는 스무 분의 할머니들이다. 대부분 팔순을 넘긴 이들은 지난해에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책을 펴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2015년까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으나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에서 김순자 선생님한테 글을 배웠고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에서 그림책작가인 김중석 선생님한테 그림을 배웠다는 점이다. 은행 일도 혼자 못 보던 할머니들은 글을 알게 되자 말로 읊조리던 지나온 삶에 대한 소회와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종이 가득 글로 써내려 갔다. 그리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도 그리기 힘들어했던 할머니들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던 장면들을 형형색색 그림으로 그려내었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2018년 서울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미국 뉴욕의 미켈슨갤러리와 필라델피아 등 4곳에서 순회전시를 했으며,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2020년에는 프랑스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이 살아낸 세월은 가난, 차별, 노동이 동반되는 가정 내에서 딸이었다가, 며느리가 되었으며, 엄마가 되었고, 할머니가 된 시간이기도 하다. 긴 삶에서 억눌림 속에 살았던 이들이 글과 그림을 배워 책을 출간하고 나를 찾아가는 모습에 독자들은 큰 박수를 보내고 더 큰 감동을 받는다. 물론 할머니들의 맑고 순수한 글과 그림 실력도 한몫을 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작가가 되어 그 작품들이 국내외에서 전시된다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점은 그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볼 때면 그리고 싶다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그 감정을 일상에서 느끼며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순천소녀시대 할머니들은 절대 특별한 분들이 아니다. 시골 어디에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할머니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 속에서 오늘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의 불씨가 점화된 곳은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시민 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1월에 웃장상인 그림책을 펴냈다. 순천의 전통시장 웃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떡집, 방앗간, 국밥집 등의 상인들이 그들의 삶을 직접 담아낸 그림책이다. 순천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반짝임은 소실점과 원근법을 중요시하는 서양화보다는 개별적인 형태와 색채를 강조하는 우리의 민화와도 결이 닮아 보인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입춘과 대보름을 맞이하며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도 지나고 이제 24절기(節氣) 중 첫째 절기인 입춘(立春)을 맞이하니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물론 아직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본격적인 봄은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부터 봄을 준비하는 기지개가 시작되었고 또한 휘영청 달 밝은 대보름도 이어지니 이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할 때가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지켜지던 절기(節氣)는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의 삶과 멀어지고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활 속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입춘이 되면 한 해의 소망을 담은 입춘첩(立春帖)을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그 내용을 보면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등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입춘 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얹고, 민간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었으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며 겨우내 웅크렸던 몸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대보름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만월을 보며 새해를 맞이하였으니 절식으로는 오곡밥과 나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을 먹으며, 달집태우기를 비롯해 지신밟기, 별신굿, 기세배(旗歲拜), 쥐불놀이, 오광대놀이 등의 제의와 놀이를 즐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준비하기 전 흥겨운 마을잔치로 단합을 도모하고 풍요를 기원하였다. 이처럼 새해를 맞이하며 마을 공동체의 번영과 집안과 개개인의 소원과 다짐을 하며 한해를 준비하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다양한 계획과 다짐을 하며 새해를 시작한다. 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처럼 이를 꾸준히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초심을 잃지 않고 한 해 동안 다짐을 지킨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도에 잠시 멈추더라도 다시 시작한다면 중도에 포기한 사람보다는 좋은 결실을 볼 것이다. 습관을 바꾸려고 21일간의 반복적인 노력과 적응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은 쑥과 마늘을 가지고 어두운 동굴에서 삼칠일을 인내한 곰은 사람으로 변신하고 이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단군 신화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데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내 몸에 체화하려면 인내와 분발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익숙하고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혁신(革新)은 불편함과 동시에 낯선 것이지만 발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통일 수 있다. 상나라의 시조인 탕(湯)왕은 세숫대야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글을 새겨놓고 매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미리 작심삼일을 걱정하거나 중도에 실패했다고 포기하거나 그만둘 일이 아니라 다시 이를 악물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작심삼일이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사와 준비를 거쳐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한다면 시간이 지나 소기(所期)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한 달이 지난 것이 아니라 아직 열한 달이 남았다. 새해의 다짐을 떠올리며 몸과 마음을 리셋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딱 좋은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예술위원

[문화카페] 설날 세배다례

설은 한 해의 첫날 전후에 치르는 의례와 놀이 등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설이 왜 설이라고 했는지 그 유래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일반적으로 첫째, 삼간다(아무 탈 없이 지내고 싶어 삼간다). 둘째, 섧다(해가 지남에 따라 점차 늙어가는 처지가 서글퍼 서럽다). 셋째, 낯설다, 설다(새로운 시간주기에 익숙하지 않다). 넷째, 서다(立歲日:한해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여 해가 서는 날)에서 생겼을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한국문화재보호재단 세시풍속 편)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茶禮)는 글자 그대로 차를 이용하여 예를 올린다는 말이다. 즉, 제사(祭祀)에는 밥과 국이 올라가고 술을 올리지만, 차례에는 밥, 국 대신 명절 음식(떡국, 송편)과 제철과일을 올리고 차(茶)가 중요 제물로 올라간다. 또 제사에는 신위가 있고 돌아가신 영혼이 집을 잘 찾아오시도록 불을 켜고 문을 열어놓으며 자정이 되어야 지내지만, 차례에는 신위가 없으며 이른 아침에 지낸다. 이때 정성껏 차린 차례상에 차는 없고 술만 올라간다면 이는 주례(酒禮)이지 차례(茶禮)라고 하기가 마땅하지 않은 일이다. 현대 대부분의 국어사전에는 차례(茶禮)를 명절날,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조상 생일에 간단히 지내는 낮 제사라 하였고, 삼명절(三名節:임금의 탄신일, 정월초하루, 동지)과 육명절(六名節: 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에는 영희전(永禧殿)에 차례를 올리도록 하였다. 실록에는 차(茶)가 놓인 진설도가 있고 실제로 1천300회 이상 올려진 것으로 나타난다. 설날 대표적 음식인 긴 가래떡(떡국)은 오래 살기를 바라는 장수의 뜻이 있고 어린이 설빔으로 색동저고리는 오방색(五方色)으로 오복을 누리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남자 아이들의 연날리기와 여자들의 널뛰기는 겨우내 움츠린 하체가 튼튼하게 하는 놀이다. 무엇보다 설날의 하이라이트는 가족세배다. 설날 아침에는 집안 어른이나 동네 어른 또는 선생님, 선배에게 새해 인사의 절을 올리고 멀리 계신 분에게는 일일이 세배 드리기 어려우므로 연하장과 안부전화를 드리지만, 가족은 부부맞절과 자손이 어른에게 또는 형제자매끼리 절을 함으로써 서로 우의를 돈독히 하고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가족세배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어른은 자손에게 덕담을 내리고 설음식과 차(茶)를 나누는 의례를 세배다례라고 한다. 세배다례는, 시집와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잘 보살피고 한결같이 무탈하게 살아준 고마움을 서로에게 표현하는 부부맞절(평절)과, 모든 자손들이 다 함께 큰절로 할머니 할아버지께 올리는 세배, 그리고 동서끼리 형제끼리 서로 마주 보고 가족의 화목과 안녕을 나누는 절(평절)은 일품가족이 아닐 수 없다. 아들 형제는 무병장수의 손 편지를 써서 용돈과 함께 부모님께 드리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손자들에게 덕담과 가훈을 내리고 며느리는 차와 다식으로 그 분위기를 북돋우면 이게 바로 진정한 설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번 설에는 조상과 부모와 종가를 찾아 올리는 차례에 반드시 차(茶)가 주인공이 되어 3대가 한자리에서 자칫 소홀히 지내기 쉬운 가족 간의 예절을 익히는 우리 고유의 세배다례로 건강한 가족형성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본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베토벤 250주년

늦은 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을 깨워 피아노로 끌고 간다. 함께 들이닥친 아버지의 친구들도 취한 상태이다. 9살 소년은 그들을 위해 연주를 시작한다. 한 음 틀릴 때마다 내리치는 아버지의 주먹이 소년이 받는 유일한 보상이다. 11살 때부터는 오르간 주자로 가계를 책임지며 전문연주자로 나선다. 13살 때는 아버지가 죽을 지경에 이르는 폭행을 한다. 17살 때, 그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소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유소년 시기를 보낸다. 음악의 삼위일체라고 불리는 바흐,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을 비교할 때 바흐와 모차르트는 신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악보로 신속하게 옮기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들의 원본 악보를 보면 별다른 수정 없이 깨끗하게 남아있다. 신이 그들에게만 선물한 악상을 무리 없이 써 내려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베토벤의 자필 악보에는 지저분하게 지운 잉크 자국 위에 또 고치고, 그 위를 다시 고치는 험난한 작업을 반복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 음 그리고 한 음절을 만들기 위해 격렬하게 씨름한 전쟁터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베토벤은 인류 역사를 통해 이전에 없었던 빛깔로 옷 입혀 기적의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신이 내린 재능보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불굴의 집념을 불태운 베토벤의 음악에는 인간의 땀 냄새가 악보 전체에 흥건히 베어져 있다. 베토벤은 세계사적 음악의 흐름을 혼자의 힘으로 바꾸었다. 고전파 시대의 편안함에 취해 있던 정체 상태의 음악을 새로운 낭만파 시대로 끌어올린 혁명가였다. 그는 참된 휴머니스트였다. 나폴레옹 중심의 프랑스혁명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베토벤은 혁명 이후 스스로 황제에 즉위한 그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고자 작곡 중이던 교향곡 3번 영웅의 악보표지를 난폭하게 찢어버렸다. 당시의 작곡가들이 작곡하던 주요 이유는 왕 또는 부호 군주 등 후원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3번 교향곡 영웅의 초연 후 쏟아진 셀 수 없는 혹평에도 베토벤은 단 한 줄도 수정하지 않았다. 후세에 평가될 작품의 가치를 예견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다. 베토벤을 위대하게 만든 진실은 삶 속에 가득한 그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그는 본인의 예술적 그리고 지적 존재를 증명하려고 끝까지 싸웠으며 인류가 어떤 표현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었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었던 진실들을 음악을 통해 마음껏 표현하게 해주었다. 법규와 관행 그리고 귀족 중심의 폐쇄된 사회로부터 자유를 주었다. 올바르지 못한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적 표현에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떤 이익을 위해서라도 진리를 배반하지 않았다.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 없이 그런 작품을 남길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을 연주하며 늘 떠오르는 질문이다. 베토벤이라는 단어 자체로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음은 진정한 축복이다. 함신익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빈센트, 안녕하신가요?

빈센트 반 고흐의 생을 다룬 영화가 최근 개봉됐다. 미국 신표현주의의 스타작가 줄리앙 슈나벨이 감독을 맡은 반 고흐, 영원의 문에서가 그것이다. 슈나벨은 일찍 세상을 뜬 동료 화가, 장 마이클 바스키아의 삶을 그린 바스키아(1996)로 영화에 입문했다. 그는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이 영화에서 고흐 역을 맡은 윌렘 대포에게 제75회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고흐의 생을 다룬 영화는 러빙 빈센트등 몇 편이 제작된 바 있고, 반전 가수 돈 맥그린(Don Mclean)의 팝송 빈센트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 우리에게 고흐는 생전 단 한 점밖에 작품을 팔지 못했던 무명작가로,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자르기도 하는 등 광기와 정신병에 시달리다 37세 젊은 나이에 스스로 권총으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천재 예술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 중 많은 부분은 신화적으로 가공됐으며 실제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었다는 최근의 연구도 있다. 이번 영화는 고흐가 말년을 보낸 남프랑스의 아를르(Arles)와 생 레미(Saint-Rmy) 수도원에서의 요양 시절의 2년간(1888~1890)을 다루면서 이러한 신화를 걷어내고 고흐의 순수한 인간적 면모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는 생전 무명과 빈곤의 삶을 살았지만, 사후 100년이 지난 시점에선 미화 1억 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작품들을 남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됐다. 그의 조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은 연간 19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방문하는 세계적 미술관이 됐다. 또한,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개발한 문화상품은 수백 종에 달하고 있어 그의 작품들이 가지는 부가가치는 천문학적 숫자에 이른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작가가 되기 전 목사수업을 위해 벨기에 보리나쥬라는 오지의 탄광촌에서 선교사로 일했다. 그의 신앙적 열정은 탄광촌의 빈민들에게 자신의 숙소를 내주고 허름한 창고에서 생활하거나 그들의 생활비를 부담하며 헌신하는 삶으로 구현됐다. 극단적 희생을 보인 이웃사랑의 실천은 결국 지역 교회로부터 신권의 존엄성을 해친 것으로 간주돼 목회중단을 통고받게 된다. 목회 포기라는 큰 좌절을 경험한 후 늦은 나이에 그는 화가가 되어 종교를 대신할 구원의 빛을 그림에서 얻게 된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 역시 동료작가나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그를 깊은 고독과 정신적 장애로 몰아넣었다. 함께 새로운 환경 아를르로 이주했던 고갱과의 트러블은 급기야 그와의 결별을 불러온다. 결별에 대한 심각한 실의와 좌절은 자신의 귀를 자르는 극단적 자해소동을 낳기도 한다. 영화는 말년의 그가 깊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과 열정을 가지고 남불의 건강한 자연풍경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자 노력한 정상인으로서의 예술가였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흐는 자신의 광기나 정신질환을 관찰하여 요양원에서의 퇴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제에게 말한다. 하느님이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화가로 만든 것 같다라고. 예술가 중에는 운 좋게 당대에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대를 앞선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어렵게 살다 사후인정을 받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이러한 작가를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 숨겨져 있던 멋진 작가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그들의 소명이고 기쁨이다. 우리 시대 고흐가 기다렸던 진정한 미래의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지나친 열정이 광기로 몰이해 되는 상황에서 오늘도 고흐처럼 자신의 열정 때문에 좌절하고 고뇌하면서도 묵묵히 미래에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들을 기다리며 작업에 매진하는 미의 사도들은 또 얼마나 될까? 오늘의 고흐를 만나 행복하고 싶다. 빈센트, 안녕하신가요?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새해를 맞으며 쓰는 ‘책’

새롭게 맞은 한 해는 1월 1일로 시작해 12월 31일로 끝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옷깃을 여미는 겨울로 시작해 역시 옷깃을 여미는 겨울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모두 다 안다. 하지만 매일 다가오는 하루가 어제와 같으면서도 새롭듯 새해도 그렇다. 새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백지를 마주한 작가에게 글을 써내려 가고 싶은 마음이 일듯 새해는 백지와도 같은 시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이 시간 위에 있다면 누구나 새해라는 이름을 가진 저마다 책을 쓰게 된다. 한 장 한 장의 백지 위에 채워진 이야기들은 편집의 과정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온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초고를 쓰며 반복되는 퇴고, 그리고 교열과 윤문의 과정을 거쳐야만 책다운 책이 된다. 백지의 시간과도 같은 새해의 하루들은 기쁨으로 눈물로 땀으로 때로는 송곳 같은 날카로움 등으로 채워져 나갈 것이다. 이미 겪어낸 새해였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이는 드물 것이리라. 그 시간을 그저 버텨내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음을 안다. 하지만, 작가가 퇴고하듯 반복되는 다채로운 감정들 틈에서 하루하루를 돌아보고, 편집자의 편집 과정처럼 누군가에게 조언을 들어가며 그 시간들의 페이지를 채워나갈 때 자신이 담긴 오롯한 책이 완성되게 된다. 책 속 이야기에 기승전결의 틀이 있듯 새해 역시 시간적 요소의 틀이 있다. 봄이 오면 지천에 꽃이 필 테고, 녹음과 더불어 매미 소리가 공간을 채우며 여름 한가운데로 밀려갈 터이다. 석양이 지는 어느 때 서늘한 바람에 더위는 잊혀지고 높디높은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은 찬양되겠지. 그러다 눈발이 날리고 그에 첫눈이라는 이름을 더하며 마음의 풍선을 띄울 것이다. 그러나 그 비슷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저마다 다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임을 우리는 안다. 서가 한편에 꽂혀 있는 네모난 책들이 비슷하게 보여도 그 책마다 품은 이야기는 다른 것처럼, 같은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비슷해 보여도 각각의 삶 또한 완연히 다르니까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익숙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들로 자신만의 새해라는 책을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서로 바라보며 각각의 이야기에 공감을 보낼 수도, 호기심이 일 수도 있다. 때론 아주 낯선 책을 보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놀라지는 말자. 우린 당연히 다 다르니까. 책의 탄생에는 그 기여 각도와 정도는 다르겠지만,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 등의 몫이 있다. 우리가 채워갈 새해라는 책도 혼자 완성하지는 못한다. 각자 다른 내용의 책을 쓰면서도 주변인들의 시간에 등장하고 주연과 조연의 몫을 다해가며 한 권의 책을 완성하겠지. 하지만, 내 책의 주인공은 반드시 나 자신임을 잊지는 말 일이다. 그러나 책과 달리, 우리가 써 내려갈 새해라는 책에는 정가가 없다. 그리고 그 어느 곳에서도 살 수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당연히 베스트셀러도 없고 베스트셀러가 아닌 것도 없다. 내가 담긴 나만의 책이다. 그러니 다른 어느 누구의 새해 책과도 비교 따위는 하지 말자. 나는 내 책을 가지고 있고, 그는 그의 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책이 쓰여지고 있는 모두의 새해에 건투를 보낸다. 2020년, 그 첫 장은 시작됐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문화카페] 동지다례와 섣달 납향제

눈 오는 동짓날 밤 [冬至夜雪]동지가 드는 자시 한밤중(冬至子之半)한 자나 깊이 눈이 쌓였네(雪花盈尺深)만물을 회복하는 봄기운 넘쳐흐르고(津津回物意)천심을 보니 크고 광대하구나(浩浩見天心)관문을 닫고 나그네 금하니(關閉爲禁旅)양기가 생겨 막 음기를 깨뜨리네(陽生初破陰)깊은 시름에 한 선이 더해지니(窮愁添一線)동마주를 정히 마실만하구나(馬正堪斟) 소세양(蘇世讓,1486~1562)『양곡집』권9「동지야설(冬至夜雪)」에 나오는 이 시는 동지의 이치와 여러 상징을 잘 표현하여 널리 인용되고 있다. 동짓날 자정, 천심은 변함없고(冬至子之半 天心無改移)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기운이 바로 동짓날에서 시작되니 동짓날에는 관문을 닫고 행상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며 임금은 지방을 순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땅속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지극히 작은 양기(陽氣)를 보전하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에서 발로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유(馬乳)로 만든 동마주(馬酒)를 기꺼이 마실 만하다는 내용이다. (동마주는 마유(馬乳)로 만든 술인데 위아래로 흔들어서 만들기 때문에 동마주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동지는 고대부터 유구한 시간의 시작이었다. 당나라 때 달력을 만들던 이들은 아득한 옛날 자월(子月,11월) 초하루 갑자일(甲子日)의 한밤중 자정(子正 12시)에 동지(冬至)가 드는 때를 달력의 시작으로 삼았다. 1월 1일이 시작이 아니라 11월 1일이 시작인 것이다. 이날은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현재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이 그에 해당한다. 밤이 가장 긴 것은 겨울의 음기가 가장 극성하다는 의미이지만 한편으로 그 다음 날부터 낮이 점차 길어지므로 양기가 회복된다는 희망을 상징한다. 즉 11월은 세상이 음에 휩싸여 있으나 땅속에서 남모르게 하나의 양이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양이 회복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한겨울 속에 싹트는 생명의 봄을 의미한다. 동지가 한 해의 시작이 된다는 의미 때문에 지금은 동지팥죽을 먹으며 불길한 것을 떨쳐버리는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섣달에 드는 납향제(臘享祭)의 납일(臘日)은 동지 후 셋째 미일(未日)로 1년 동안에 지은 농사나 그 밖의 일어났던 모든 일을 신(神)에게 고하고 무사하게 잘 지내게 해준 데 대하여 감사의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다. 또한, 섣달에는 군사들의 몸을 단련시킬 목적으로 사냥하도록 했는데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납일 고기로 꿩, 토끼, 노루, 사슴, 산돼지만을 잡도록 허락했다. 이 고기로 종묘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납제(臘祭)란 이름이 생겼다. 여기에서의 랍(臘)은 고기를 뜻하는 월(月)자와 수렵을 뜻하는 렵(獵)자를 결합해 만든 글자로 랍(臘)자에는 사냥해서 잡아 온 고기라는 뜻이 들어 있다. 국어사전에는 임금의 탄신일, 정월초하루, 동지를 삼명절(三名節)이라고 적혀 있다. 또 국조오례의에는 육명일(六名日: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에 선대왕의 영정이 모셔진 영희전에 다례를 올렸는데 순조는 실제로 동지다례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탄신일과 동지를 명절로 간주하여 다례(茶禮)를 지낸 것이다. 수원화성 화령전은 순조 원년(1801년)에 세워져 오래도록 그 원형이 잘 보존된 까닭에 국가 보물(제2035호)로 지정되었다. 순조는 화령전응행절목을 개정하여 정기제향으로 탄신제과 납향제를 올리도록 했다. 이제 영희전은 없어졌으나 화령전은 보물이 된 것이다. 동지와 납일이 든 동지섣달을 그냥 팥죽 생각만으로 넘겨야 할 일인지. 동짓날 자정은 길기만 하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문화콘텐츠가 경쟁력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백범 김구, 1947년) 상해임시정부 100주년과 3ㆍ1 독립만세 운동 백 주년이었던 한해를 마감하며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본다. 평생을 국권회복을 위해 애쓰셨던 분께서 정치적 안정이나 경제적 발전보다 문화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며 문화의 시대를 예견하셨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3일 발표한 올해 국내 콘텐츠 산업 통계에 따르면 콘텐츠 산업은 연 125조5천억 원 규모의 매출을 기록했고,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연간 5%의 성장을 기록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103억3천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2% 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러한 성장세를 이어가고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콘텐츠 산업 3대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콘텐츠 산업 모험투자펀드 조성 △4차 산업과 연계한 실감 콘텐츠 육성 △소비재ㆍ관광 산업과의 동반 성장 도모 등의 내용이다. 또한, 문화산업 전반에 대한 정책과 예산지원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도 올해보다 9.4% 증액되어 총 6조4천803억 원으로 최종 확정됐다고 한다. 문체부 출범 이래 최초로 6조 원을 돌파한 역대 최대 수준으로 중점사업인 한류 콘텐츠 육성 및 세계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 분야 혁신성장 기반 마련과 한류 확산을 통한 문화선진국 위상 확립에 주력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판교의 IT 밸리, 부천의 영상 및 애니메이션 산업단지, 그리고 추진 중인 고양의 한류우드와 화성시의 테마파크 건설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문화콘텐츠산업을 통한 고용창출 및 경제적인 부가가치 확대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적극적인 대응과 발전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필자가 일하는 분야인 문화유산 활용과 관련해서는 2020년도 문화재청의 예산이 1조911억 원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문화재청 출범 이래 최초로 1조 원을 돌파한 역대 최대 수준이며, 올해 예산 9천8억 원과 대비해서도 1천903억 원 증액된 규모다. 문화재청은 예산 1조 원 시대를 맞아 문화재 활용과 궁능원 관리 분야 등에 예산을 대폭 증액했으며, 또한 취약계층 문화유산 향유 프로그램, 문화유산 방문캠페인, 세계유산 축전, 궁궐ㆍ지역문화재 활용사업을 확대하고, 세계유산의 등재ㆍ보존관리, 국제교류와 협력 사업을 확대하여 문화유산 보존 선도국가의 위상을 강화할 계획이다. 수원화성, 남한산성, 조선왕릉 등 다수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비롯해 많은 문화유산과 전통문화자원이 소재한 경기도는 그간 문화유산의 보존 계승 및 활용에서 관심이 저조한 편으로 기초지자체가 국비 지원사업을 신청하면 도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 전통문화도 문화산업과 문화콘텐츠라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적극적인 자세로 문화유산 활용사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예술위원

[문화카페] ‘고독’ 연주자의 외로운 여행

한국사람들은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빡빡한 일정 속에도 원근각처를 찾아 즐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연휴기간에는 평소보다 몇 배 걸리는 고속도로에서의 거칠고 도전적인 여정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들뜬 마음으로 출발하는 것은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보상이 크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휴가기간을 이용하여 세계각지로 여행하는 개척자 정신을 발휘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한국관광객을 만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오랜 비행시간, 생각만 해도 피곤이 몰려오는 시차, 공항에서의 지루한 의례적 통과절차와 그 후의 더 긴 기다림에도 여행용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넘친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니 좋으시죠?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연주자로서 많은 도시를 여행하였다. 그러나 질문하는 분들이 생각하는 여행과 연주자들의 그것은 크게 다르다. 일반적인 개념의 여행은 새로운 곳 또는 편안한 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이라면 연주여행은 장소에 차별 없이 청중에게 만족할 만한 연주를 하는 것이 목적이며 보상이다. 미국의 한 오케스트라가 14일간의 일정으로 아시아 순회연주를 한다. 그 중 12일 동안 12개의 도시에서 연주한다. 이동시간을 빼면 하루도 연주를 거르는 날이 없는 셈이다. 중국의 한 오케스트라가 미국의 동부를 순회하는 일정을 보니 23일 동안 20개가 넘는 도시에서 연주하는 강행군이다. 이들에게는 관광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럽다. 전문연주단체 또는 연주자들의 연주여행을 들여다보면 무대에서의 화려한 퍼포먼스 뒤에 숨겨진 숨 막히는 이동의 적응과 이를 뒷받침하는 강인한 체력이 필수조건이다. 지난주 사천성의 청두에서 사천성 심포니를 객원지휘 하였다. 통상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객원지휘자의 한 주간의 일정을 충실하게 이행하였다. 일요일 늦은 밤 공항에 도착하여 호텔로 향한다.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온종일 연습을 한다. 연습 후 간단한 식사를 호텔로 돌아와 나 홀로 만의 식사를 한다. 저녁 시간에는 스트레칭 또는 산책으로 몸을 푼 후 악보를 보며 오늘의 연습을 분석하고 내일 연습을 준비한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의 연습기간을 거친 후 금요일 저녁 연주를 한다. 이튿날 아침 일찍 공항에 나가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연주를 준비하는 기간에 관광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상의 연주를 위해 모든 체력과 신경을 비축한다. 연주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하며 집중력을 모은다. 연주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고독과 외로움은 나의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다. 관광지로 가득한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를 마음껏 다녔지만, 전문연주자의 외로운 일상의 연속이었음을 인지한다. 과연 무엇으로 이런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 라고 자문해본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인간이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라고 하였다. 시인 황동규는 홀로움이라는 단어로 우리를 위로한다. 이 단어의 의미는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이다. 외로움이 없었다면 온 인류를 형제로 바라보는 눈을 가진 베토벤의 합창교항곡과 처절하게 상처받은 영혼을 보석처럼 맑게 해주는 말러의 교향곡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직 연주회를 위한 여행이 가슴에 떨림으로 남아있음은 이 외로움과 고독이 내 음악에 양분이 되어 주기 때문이리라.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꿈은 이루어진다

인구 5만 명에 불과한 일본의 소도시에 연간 이용자가 100만 명에 육박하는 도서관이 있다. 이 중 40만 명은 외지로부터 찾아온 이용자라 한다. 사가(佐賀)현 다케오(武雄) 시립도서관이 그곳이다. 도서관 안에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스타벅스 매장이 입점해 있고 자유롭게 열람실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일부 열람석에서는 자유롭게 대화도 할 수 있다.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생활과 밀착된 복합적인 커뮤니티 공간인 셈이다. 이 도서관이 이렇게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민간의 파격적 아이디어와 운영 능력이다. 일본 최대 DVD 대여업체인 쓰타야(屋)가 2013년부터 위탁 운영 맡아 평범한 공립도서관을 획기적으로 변신시켰다. 이 탓에 지역의 경제가 20% 상승하고 숙박업소도 늘었다고 한다. 이렇듯 소도시의 변신을 주도한 사람은 히와타시 게이스케(渡啓祐ㆍ49) 시장이다. 도쿄대 출신 중앙부처 공무원이던 히와타시는 2006년 당시 최연소 민선시장에 당선된 후 민간의 힘을 활용해 활기 넘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도서관은 물론, 적자가 누적된 시립병원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새로운 교육정책을 통해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일본 내에서 가장 이주를 원하는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물론, 초기에는 공공영역을 상업화한다는 이유로 반발도 거셌지만, 결과적으로 적자를 해소하고 경쟁력 있는 병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것은 한 젊은 리더의 의지와 비전이 얼마나 세상을 살맛 나게 변화시키는지를 말해주는 사례이다. 지난달 29일 의정부시에는 미술도서관이라 명하는 새로운 공간이 건립됐다. 민락지구 신도시에 조성된 이 도서관은 명칭 그대로 미술전시실과 미술 중심의 도서를 갖춘 이색적인 도서관이다. 총 20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전체면적 6천565.20㎡,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완공된 이 도서관은 조형미가 강조된 건축설계를 자랑하고 있다. 개관식에는 수원 출신의 신사실파 작가로서 말년을 의정부에 거점을 두고 활동했던 고 백영수 화백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타지역의 공립미술관장이 기증한 2천여 점에 달하는 고가의 해외미술 전문서적이 기증실을 장식하고 있고 3층엔 작가들을 위한 창작 스튜디오도 마련되어 있어 미술관과 도서관이 융합된 복합공간이다. 그런데 개관식의 환영사에서 밝힌 시장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 도서관의 건립은 열정적인 의지를 가진 담당 팀장의 노력과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뒷받침한 시장의 시정 철학이 어우러진 결과물이었다. 경기북부 인구 45만의 도시를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하던 중 시장은 일본의 사례를 담은 팀장의 보고서를 접하며 꿈을 키웠다고 한다. 너무도 좋은 계획이지만 담당 팀장으로서는 설계비도 마련할 수 없는 열악한 의정부의 재정으로 언감생심 이런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시장께 우려스런 보고를 하였는데, 시장은 예산을 걱정하는 팀장의 열정을 높이 사며 수년간 재정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이 결과 건립비의 확보는 물론, 도서협동조합 등 관계 기관들이 도서를 기증하고 해외 도서관으로부터도 도서가 기증되는 등 예기치 못한 환상적인 일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주민들의 삶과 밀착된 새로운 기능의 도서관을 조성하는 일에 비전을 가졌던 의정부시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이를 잘 운영하여 지속적으로 한국의 명소로 만들어 가는 일이 여전한 과제로 남지만, 시민들 중심에서 생각하고 끝없이 변화를 도모하는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놓고 주저하고 있는 담당자나, 좋은 아이디어지만 실현불가능함을 미리 예단해 버리는 평범한 리더라면 꿈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자 지금 우리가 꾸는 꿈은 무엇인가?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어른들이 그림책을 읽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어른과 어린이의 합성어인 어른이라는 말이 흔치 않게 보인다. 공중파 TV 프로그램 이름에도 쓰이니 말이다. 출판계에서 어른이들이 많이 보이는 장르 중 하나는 그림책일 것이다. 그림책 세계에서는 0세에서 100세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독자층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서로에게 여백을 주며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장르로 대부분 40페이지 내외의 구성을 갖춘다. 때론 글이 아예 없이 그림만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 본위의 책인 것이다. 그랬기에 글자를 익히지 못했거나 서툰 아이들이 즐겨 보게 되는 책으로 그림책이 받아들여졌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대형서점 역시 유아 섹션에 그림책을 분류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여겨졌던 그림책이 근래에 어른으로 독자층이 확산되고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다 그 그림책에 마음을 훅 빼앗긴 엄마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고 자란 90년대생이 성인이 된 이유도 있을 것이며, 이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럼 어른들은 왜 그림책에 빠지는 걸까? 그림책은 함께 읽기에도 부담이 없는 분량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 모임에 그림책을 가져가서 읽어주는 분이 있다. 아이, 남편, 연예인 이야기를 주로 나누던 친구들한테 자신에게 울림을 주었던 그림책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처음엔 의아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다음 그림책을 기대하고 또 자신들이 다른 그림책을 소개하게도 되었다. 덕분에 책과 함께 일상과 나를 이야기하는 모임이 되어갔고, 은근히 생겨나곤 했던 모임의 피로가 보람과 충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십 분이면 모두 함께 한 권의 책을 읽고 교감할 수 있는 것, 그 또한 그림책의 매력이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뭐 그리 대단한 게 있어서 어른들이 마음을 빼앗긴단 말인가? 궁금하다면 그림책을 한 권 읽어보시라. 십 분이면 된다. 그림책카페를 운영하시는 어느 분은 그곳을 방문하시는 손님께 그림책을 읽어드리곤 한다. 그러던 중,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러 온 40대 중반의 남자분께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반응이 어땠을까? 그는 삶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 자체가 첫 경험이었고, 그게 이렇게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림책이 이런 책이었느냐며 놀라워했다. 활자에 익숙한 어른들은 그림책을 읽으면서도 글을 먼저 받아들인다. 반면 다른 사람이 읽어주면 청각으로 내용을 소화하고 시각은 자연스럽게 그림에 더욱 더 머물게 된다. 그림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책을 받아들이는 폭과 깊이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40대 중반의 남성분은 자신이 속한 업무커뮤니티에 매주 두세 권의 그림책을 꾸준히 소개하는 그림책 전도사가 되었다. 일에 지친 동료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쉼표와 감성 수분을 분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의 멤버들이 그림책카페를 찾는 것으로 그의 활동이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책으로 어떻게 쉼표와 감성 수분을 분사 받느냐고? 궁금하다면 그림책을 한 권 읽어보시라. 그림책은 내면의 어린 나를 마주하게 하게도 하고, 어른이 된 나를 다독이기도 하며 어른들의 세계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아이들만 볼 것 같은 그림책이 어찌 그런 일을 해내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한결같다. 궁금하다면 그림책을 한 권 읽어보시라.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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