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비유의 언어

지난 21일에 조계사에서 전국승려대회가 열렸다. 명고(鳴鼓)와 명종(鳴鐘)에 이어 가사를 입은 스님들을 따라 신도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함께 참회하며, 종교편향과 차별을 근절하라는 메시지를 정부와 우리 사회에 제기했다. 겨우 입장료 문제로 이런 행사를 열면 품격이 떨어지고 대선 시기라서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불교 내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이 행사는 종교의 자유를 위시해 우리 체제의 본질과 공화(共和)를 위해서 오히려 이 시기에 다시 생각해볼 유용한 큰 질문이다. 혹시 우리는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를 자부하다가 다른 종교를 경시하거나 그런 결과를 방치하지는 않나. 뿐만 아니라 이 사태의 한 발단이 된 한 정치인의 비유 발언과 그 발언이 야기한 파문을 우리의 정치와 안녕을 위해서 이 기회에 한번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작년 가을 국회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여당의 한 의원이, 가야산 경역에 입장하지만 해인사에 들르지 않는 등산객들도 돈을 내야 한다며 문화재관람료를 통행세, 해인사를 봉이 김선달에 비유하여 물의가 빚어졌다. 해인사는 해인사에 관련된 가야산 일대는 국립공원이면서도 해인사의 소유이고 무엇보다 문화재로서 문화재보호법의 대상이기도 해 그 입경에 지불하는 돈은 통행세가 아니라 그 전체 보존과 유지가 포함된 문화재관람료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곧 여당 지도부가 사과한 대로 그 발언에는 비하의 취지도 함축돼 있다. 사실 비하뿐만 아니라 부당부정의 취지도 내포돼 있다. 이견이 있겠으나 통행세에는 산적과 같은 폭력이 배후에서 강제하는 악세(惡稅)라는 함축이 있고, 봉이 김선달에는 겉은 그럴 듯하나 알고 보면 세속 순진한 사람 등치는 사기꾼이란 뜻이 내포돼 있다고 하겠다. 나아가 교단 전체를 그렇게 비견하는 제유(提喩)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비유의 취지가 초래할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사안에 비유를 적용해 감당 못할 갈등을 야기하고 증폭한 사례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시에서 비유는 리듬과 더불어 본질이지만 비유가 진부하거나 어울리지 않으면 문맥의 의미와 의의까지 저하해 결국 긁어 부스럼이 된다. 현실 정치의 문맥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 의원이 연상을 제어하며 사실만을 따지는 외연 의미의 언어로 문제를 제기했다면 어떠했을까. 후속 논란에서 그 자체의 검증에 그쳐 이번 사태를 촉발하는 주요 단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 나라 정계의 언어에서 비유의 과용과 오용 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조롱과 야유의 비유가 꼬리를 물고 있다. 대중에게 메시지를 쉽고 세게 전달하기 위해 비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인의 행태를 제지할 수 없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해 아예 그래서도 안 되지만, 우리 정치의 격조를 되살리고 갈등을 감쇄하기 위해, 비유 자체와 비유의 취지에 신중하면서 예의를 갖춰 메시지를 제시했으면 한다. 특히 비난의 비유는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정치는 아무래도 갈등 해결의 활동이 아닌가. 대선 시기 여야와 진영의 갈등, 그 갈등에 관련된 국민의 정서 순화에도 크게 조력할 것이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문화카페] 연극과 공간

나에게 연극 작업은 미지의 공간 탐험과도 같다. 이 공간에는 별처럼 많은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도대체 이 공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이기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쉼 없이 토해질 수 있는 것일까? 연극은 어떻게든 공간 속에서 관객과 만나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창조된 공간의 모습이 바로 연극의 모습이다.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창조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공간은 어떤 방법으로 관객과 약속이 이뤄지는지에 따라 연극의 형태가 결정된다.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공간 속에서의 연극이든 간에 그 공간은 바로 허구의 공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현실을 잘 담아낸 연극이라 할지라도 관객이 그 공간의 존재 자체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연극은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연출 작업의 시작은 바로 그 공간을 연구하고 결정하는 데 있다. 연극은 언제나 일정한 가로 세로 높이의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데 그 작은 공간은 연극이란 마술로 우주보다 넓은 공간으로 창조된다.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함을 창조해 내는 것, 바로 이런 점이 연극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일반적인 몇 가지 오류를 생각해보고 싶다. 우선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 예를 들어 큰 창고처럼 빈 공간에 덜렁 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 그림을 보면서 무엇이 보이는지 일반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 의자가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의자가 차지한 공간보다도 창고 전체의 공간이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연극적 가능성은 바로 의자를 뺀 나머지 공간, 즉 비어 있는 큰 공간에 있다. 빈 공간의 가능성을 믿고 공간창조 작업에 접근하는 것이 연출 작업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다음은 편견과 인식의 오류다. 미술 수업 중 거꾸로 된 그림 그리기라는 것이 있다. 대개 피카소가 그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소묘를 보이는 그대로 그리기 연습을 하는데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거꾸로 놓고 보면서 똑같이 따라 그리기 연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상적으로 놓인 그림을 그릴 때보다 거꾸로 놓인 그림을 그릴 때 대상을 더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경험한다. 거꾸로 된 그림 그리기는 오로지 보이는 대로 그리면 매우 쉽지만, 알고 있는 형태를 의식해버리면 자신도 모르게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림 그리기 연습처럼 공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정확하게 공간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식의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내가 공간을 결정할 때 도전하는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결국 관객에게 보여지는 공간을 통해 믿음을 얻고 보이지 않는 무한한 공간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며 바로 그 믿음을 바탕으로 무대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바로 그 이야기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객은 그 질문의 답을 고민하며 극장을 나서게 될 것이다. 분명한 건 내가 추구하는 공간은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대의 공간을 창조해 나가는 일이라는 것. 무엇이 다 정해져 버리면 재미없지 않은가? 아직 정해진 것이 많지 않기에, 그래서 무한하기에 늘 연극은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있으며 열렬한 것이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완벽함이라는 환상

와, 이 사람은 정말 모든 걸 다 가진 예술가였구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살바도르 달리 전을 보는 내내 이렇게 생각했다. 미술 문외한인 내가 달리에 대해 알고 있던 건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거장이라는 점과 대표작 몇몇 정도가 전부였다. 그의 작품 세계나 삶의 궤적을 소상히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의 예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시를 보면서 내심 부러운 마음을 느꼈다. 넘치는 천재성을 쉴 새 없이 작품으로 생산했고, 경제적 성공은 물론 셀럽으로서의 인기도 누렸으며, 심지어 평생 여신처럼 숭배하며 사랑한 아내도 있었다. 이 셋을 다 가진 예술가가 얼마나 되겠나? 딱히 아쉬울 게 없어 보이는 삶. 아내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보다 이상적인 관계가 있을까 싶을 정도. 아내 갈라는 달리에게 정서적 유대감, 예술적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과 수입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역할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갈라가 없다면 달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오갔을 정도. 그런 아내를 어찌나 사랑했던지 노년이 되어 달리는 중세의 성을 하나 사서 선물하기에 이른다. 갈라의 허락 없이는 출입조차 않겠다는 서약까지 해가며. 이를 두고 달리는 서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관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함께하면서도 존중하는 관계로 보여서 나는 내심 경탄했다. 맙소사! 위 모든 이야기는 절반의 진실이었다. 전시에서 말하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이다. 귀가하는 길에 살바도르 달리의 삶을 검색해보고선 나는 말 그대로 식겁했다. 달리는 평생 갈라만 사랑하며 의지했지만 갈라는 그렇지 않았다. 달리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남자들과의 연애를 병행했고, 달리가 선물해준 성에서도 달리의 출입을 엄금한 채 마음껏 연애를 즐겼다. 달리는 존중에 따른 자발적인 거리 유지처럼 말했지만, 실제론 갈라의 만남 거부였던 것이다. 생의 말미에 이르러 달리는 결국 폭발한다. 아내의 연애를 문제시하다 폭력을 휘둘러 갈비뼈 두 개를 부러뜨리고, 갈라는 달리에게 진정제를 과다 투여해 돌이킬 수 없는 신경 손상을 입힌다. 그리고 파국을 맞았으니 결말은 막장 치정극. 전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거돼 있었다. 거기서 갈라는 일생일대의 사랑이자 뮤즈였고 완벽한 에이전트였다. 왜일까? 이유는 다양하게 추론해볼 수 있다. 작가의 예술 세계를 전달하는 데 딱히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전시에 굳이 내걸 만한 내용이 아니다, 사생활이기에 언급하지 않는 게 예의다 등등. 다 일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좀 아쉽다. 달리의 모든 작품엔 불안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고 사랑, 성, 관계 역시 주요 모티브로 계속해서 활용된다. 두 사람 관계 이면의 이야기를 미리 알았더라면 현장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느끼는 데 좀 더 도움이 됐을 듯해서 아쉽다. 또 너무 완벽한 삶 아냐?라며 괜스레 부러워하지도 않았을 테고. 아마도 내 안에 완벽함을 향한 환상이 있는 모양. 그러나 실제 달리는 생의 마지막까지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며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착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바로 그 흔적. 역시 완벽한 삶을 사는 예술가는 없나 보다. 어쩌면 그런 결핍이야말로 창작의 진짜 동력인지도 모를 일.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음식 없는 저녁 만찬

1979년에 제작된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Dinner Party)는 페미니즘 미술 역사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설치작업으로 400여명의 여성이 동원돼 5년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삼각형의 금색 도자타일 바닥 위에 삼각형의 식탁이 놓여진 형태다. 바닥에는 역사 속의 중요한 인물 여성 999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식탁의 각 변에 13개씩 모두 39개의 자리가 놓여져있다. 저녁 만찬에 초대받은 39명은 여신, 통치자, 과학자, 작곡가, 혁명가들로, 고대이집트의 하트셉수트 여왕,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법정에 선 아르테미지아 그리고 1979년 당시 유일한 실존 인물인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 여성작가 조지아 오키프 등이었다. 또 디너 파티는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의미하는데, 삼각형은 여성의 기호(음부)인 동시에 삼위일체의 상징이다. 각 자리에는 수를 놓은 식탁보, 도금한 술잔, 나이프, 포크, 스푼이 차례로 놓여져 있는데, 특히 접시에 그려진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그림은 전시 기간 중에 계속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주디 시카고는 미국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로 주로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편견을 비판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디너 파티는 그러한 주디 시카고의 역량이 총집결된 작품이다.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페미니즘은 여성의 참정권, 교육받을 권리, 남성과의 동등한 지위를 외치며 유럽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이후 20세기 중반부터 젠더(Gender) 등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으로 발전했다. 페미니즘 미술은 미술사에서 소외된 여성 미술인들을 조망하는 것으로 시작해 문화 전체적인 차원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 나타났다. 유럽의 페미니즘이 정치적인 이슈가 중심이었다면, 미국에서의 페미니즘은 변형돼 문화 전반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나타난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고유의 음식보다는 각국의 음식들이 혼합돼 미국화됐다. 미국 현대미술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초중반 전쟁과 기아를 피해 많은 예술가들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그들 대부분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당시 뉴욕은 떠오르는 세계 무역 금융의 중심지로 각종 첨단 매체가 등장하는 곳이었고, 다양한 담론이 생산되는 장소였다. 미국 현대미술도 미국의 음식처럼 유럽 현대미술을 이식 받았지만 떠오르는 미국과 함께 전혀 다른 스타일의 현대미술이 발전했고, 자본주의와 결합되면서 미국의 현대미술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미국의 페미니즘 미술은 그러한 미국현대 미술의 중심 사조였다. 페미니즘 미술은, 1970년대 당시 미국의 주류 사회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반전운동, 히피문화와 공유되면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생산했다. 최근 한국 정치와 사회문화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뜨겁다. 특히 20대를 겨냥한 다양한 공약들이 판을 치는데, 페미니즘 운동의 시작은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항의였고, 시간의 경과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면서 문화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갑작스럽게 제도와 규정이 변경된다고 해서 세대와 성차별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데, 정치권의 공약도 그러한 세밀한 부분에 신경을 써야 될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2021 미술계 화두, 이건희 미술관

2021년이 이제 딱 하루하고도 반이 남았다. 올해 가장 큰 미술계 화두를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는 이건희 컬렉션을 뽑겠다. 삼성家는 이건희 회장의 사망 이후 상속세를 대신해, 미술품 2만3천여점을 국가에 기증한다는 사실을 올해 4월 공식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부회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을 국민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시실을 주문했는데, 이후 이건희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공개된 기증품의 리스트는 실로 놀라운 수준이다, 국보 수준의 한국 고미술품부터 폴 고갱,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등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까지 정말 대단한 작품들이 포함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겸재 선생의 인왕제색도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뛰게 만들었다. 현재 이 기증품의 일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데, 코로나19 여파로 사전 예약으로만 관람 가능하다. 이건희 컬렉션이기 때문인지, 수준 높은 작품 때문인지,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이건희 미술관은 2021년 최고의 미술계 큰 사건이다. 하지만 몇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이 기증작은 국가의 세금을 미술작품으로 대신 낸 것이다. 사회공헌의 의미보다는 사회 공동체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한 것임에도, 우리는 이것을 이건희 컬렉션, 이건희 미술관으로 불러야 할까? 메세나(기업의 공익활동)라면야, 그 가치를 존중해야 하지만 이번 경우는 메세나로 보기는 어렵다. 컬렉션에 대기업의 이미지를 씌우려는 것은 아닌지, 미술계의 고민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다. 처음에는 전국의 여러 지자체가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집 앞에서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과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오는 관광객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체부는 그런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시 국립현대미술관 옆 송현동에 건립을 결정하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일까? 필자가 있는 평택시는 미술관도 박물관도 없는 곳이다. 평범한 사람은 일년에 한 번 미술관을 가기도 힘든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예술에 관한 관심이 줄어든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지방 사람과 서울 사람의 차이가 정해진다. 지방에 있어보니, 서울에서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도 어려운 것이 많다. 이번 이건희 미술관 건립은 양질의 작품, 국가의 관심과 정책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잘 갖춰진 사업이었다. 아마 2021년 이후 이렇게 수준 높은 대량의 작품이 공공에게 돌아갈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건희 미술관 서울 건립은 매우 아쉽다. 공공의 이익이 서울에서만 실현되는 것일까. 예술의 향유가 소수의 특정 집단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을 이제는 정책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상징적으로라도 이건희 미술관이 지방에 건립됐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2022년에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 분들, 새해에는 기쁜 일만 있으시길! Happy New Year! 이생강 협업공간 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오징어게임’과 ‘죄와 벌’

해외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오징어게임 역시 지상의 삶을 반영하는 여러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지만 가장 부각되는 주제는 돈이다. 주인공 성기훈과 등장인물들의 궤적이 다채롭지만 그들의 오딧세이는 한마디로 돈으로 꿰인 파노라마. 사람이 돈 때문에 훼손되고 타락한다. 수모를 감내하면서도 분노하다가 결국 기속되고 급기야 목숨까지 걸며, 분열 배반하며 멈추지 못하거나 멈추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돈에 목숨을 거는 사정은 이미 아이러니가 아니다. 무료한 돈 많은 악덕 군상들이 돈으로 사람을 게임으로 유인하고 본인의 결정에 책임을 전가하는 국면도 등장해 우리를 공분케 하지만 그 여운은 지속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것은 외재 요인이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란 건가. 요컨대 관객들은 처음엔 작중 현실을 자신의 일상과 무관하게 보다가 차츰 그 비슷한 알레고리로 알아차리며 작중 현실과 인물들의 처지에 어느덧 별 이의를 갖지 않은 듯하다. 그리하여 관객들의 전율에 연민과 공포가 발생했다면, 그 연민은 미적 거리가 개재된 작중 인물에의 그것이 아니라, 관객 자신을 대상으로 한 감상성(感傷性) 연민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치관 조사에서 물질 추구와 부유가 가치서열에서 1위였다. 경제 경영 분야의 도서가 올해 교보문고 단행본 판매에서 점유율 1위였는데, 1980년 교보문고 개점 이래 4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이 발표도 우리의 주목을 끌기는 했으나 사회 차원의 후속 음미와 우려는 활발하지 않았고, 기존 황금만능의 확대로도 보지 않았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와 더불어 젊은 세대가 근로소득으로는 집 구입과 재산 증식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라서 그 경향을 비판하기에는 난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소설의 전성시대를 주도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도 비극이나 절정에 해당하는 사건들에 기여하는 주요 모티프도 바로 돈이다. 대표작 죄와 벌도 바로 그 때문에 야기된 불행과 비극을 우선 다루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죄와 벌에서 한 미숙한 인간 라스콜니코프가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다단한 내외 추이를 답사할 수 있다. 돈에서 비롯된 불편과 불만으로 시도한 자기기만, 전당포 노파 살해를 그렇게 합리화한 자신을 통렬하게 회오하는 나와 이웃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돈에 압도되지만 돈 자체에 그저 매몰되는 부류와 결국 삶 자체를 성찰하고 휴머니즘을 회복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을지 모른다. 코로나19 상황이 만 두 해나 계속되고 변종들로 해서 더욱 엄중해진 가운데 자영업자를 위시해 민생이 심각하게 곤란하다. 이러다가 오징어게임의 작중 현실이 그대로 작품 밖으로 뛰쳐나올지 모른다. 대선을 두 달 보름여 남겨둔 이 시점, 민생을 살릴 정책 경쟁은 희미하고 후보 가족의 문제가 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대체 무엇이 우선인가. 우리 모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유명해진 오징어게임의 한 대사, 이러다가 우리 다 죽는다를 다시 음미했으면 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오징어게임의 등장인물이기를 거부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협력하며 그 게임의 매트릭스를 공생의 정치로 해체할 수 있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ㆍ시인

[문화카페] 연극의 재연극화

현대 공연예술은 이전의 세대에서 집중했던 인간 삶의 모방과 재현을 넘어선 인간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인류사를 지배했던 서구의 기독교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 이성 중심주의와 독일의 관념론 철학은 현대 공연예술의 비판의 대상이 됐고 철학과 예술은 인간의 실존의 삶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개념의 폭력에 항거하고 비(非)동일자를 동일화 시키는 이성의 폭력을 비판하면서 포스트모던의 현대 철학의 개념이 생성됐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질서와 가치는 산업화와 양차 세계대전을 겪게 되면서 붕괴했고 총체적 질서의 혼란 속에서 단순히 인간의 삶을 재현하는 고리타분하고 수동적인 예술이 아닌 인간을 사유하게 하고 나아가 행동하게 하는 예술이 필요하게 됐다. 헤겔은 19세기 초 예술의 한계성을 피력했는데 예술로서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로지 종교, 철학, 산문으로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나아가 인간의 모든 것은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주장은 니체에 의해 완전히 전복당하는데 쇼펜하우어에 영향을 받은 그는 새로운 형이상학이론을 설명했다. 그는 모든 것을 이성으로 다 판단할 수 없다고 헤겔의 이성중심의 철학을 비판했다. 헤겔의 이성중심주의 철학을 정신의 제국주의라고 비판했다. 니체에 의해 본질과 본질의 그림자라고 설명된 현존의 세계는 전복돼 다시 해체되고 전통적인 예술철학의 관점인 진선미의 개념을 깨버렸다.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예술이 인정받으며, 전통적인 진선미의 개념을 극복하고 윤리학적인 개념의 예술에 물음을 가지게 했다. 그의 철학은 익숙한 방식의 질문에 집착하는 것을 탈피하게 했다. 현대연극은 사실이지만 주목하지 않았던 개인의 아픔 이야기,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 이야기를 다루어 인간의 다른 모습을 재조명한다. 주변의 인물과 주변의 이야기 그리고 야사를 예술의 중심에서 다루게 된다. 포스트드라마 연극은 그로테스크, 패러디, 공동 창작,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는 구성, 탈 언어, 복합장르의 결합, 공감각적인 연출의 기법에 의해 창조되고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출발점은 타자의 입장에서 소외된 자들의 비동일성을 인정하고, 탈 남성주의, 탈 유럽중심주의, 페미니즘, 탈 식민주의, 문화 상호주의에 있다고 본다. 텍스트의 절대 권력에 현대연극이 회의를 품게 되면서 드라마연극의 탈피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대연극의 주된 흐름이다. 연극은 더 이상 대중매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드라마의 영역에서는 새로운 매체에 그 위치를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연극은 드라마가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하는데 역사적 아방가르드부터 시작된 연극의 재연극화가 고민되기 시작됐다. 다른 어떤 매체로서는 도저히 대체 불가능한 연극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표현방식을 고안하기 시작했고 이런 경향은 최근 미디어 시대에 도래에 더욱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연극을 재발견하고 연극에서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독창적인 표현의 잠재력을 재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극만이 가능하고 다른 매체로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특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연극의 재연극화는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 연극 경계의 확장과 연극 존재의 이유가 될 것이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진심 어린 위로의 힘

나는 의심이 많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고 믿고, 타인을 향한 배려나 선의에도 어느 정도 자기중심적인 측면이 있다고 여긴다. 그렇다 보니 착한 말, 다정한 말을 많이 하는 이를 잘 믿지 못한다. 오히려 경계한다. 위선적인 사람이 아닐까 하고. 첼리스트 요요 마를 향한 시선도 조금은 그랬다. 프랑스 태생의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휴머니스트다. 언제나 밝게 웃는 얼굴로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설파해왔고 연주하는 레퍼토리 역시 여느 클래식 음악가보다 훨씬 폭넓다. 우리 귀에 친숙한 팝부터 세계 각국의 민속음악까지 경계 없이 연주하며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과 왕성하게 교류한다. 출신부터 행보까지 화합의 메신저 그 자체다. 그런 요요 마가 가을이 한창이던 어느 주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날의 주제는 위로와 희망. 팬데믹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실제로 그는 백신 주사를 맞는 자리에 첼로를 들고 나타나 무료로 즉석 연주회를 치른 적도 있다. 슈퍼스타가 아닌 동네 아재의 옷차림으로 체육관 구석에서 15분간 연주한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널리 전파되며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급기야 그런 메시지를 담은 곡만 추려서 앨범까지 발표했고 이 리사이틀은 그 일환이다. 클래식, 탱고, 민속음악을 아우르는 소품들로 꾸려졌으며 하나같이 따스하고 다정한 멜로디를 품은 곡이었다. 와, 이건 진심이구나. 그의 연주를 듣는 내도록 난 이 생각만 했다. 선율이 부드러웠다, 첼로 소리가 포근했다 같은 차원을 넘어서 모든 곡에서 마음이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클래식 연주자들의 다른 장르 소품 연주에 감명받은 적이 그다지 없다. 원래 자기 분야에 비해 들인 시간과 고민이 확연히 적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따금 무성의하다고 여겨지는 연주를 들을 때면 저 사람은 클래식 외엔 얕잡아보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러나 요요 마에게선 그런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다양한 배경의 곡을 두루 연주했음에도 그 모두에 고유의 정서가 배어 있었고, 그걸 자기만의 깊은 감성으로 풀어서 청중에게 전달하는 역량도 출중했다. 한마디로 연주하는 음악과 듣는 사람을 향한 존중이 느껴졌단 소리. 현장에서 이를 확인하자 그의 이력이 달리 보였다. 그는 20여 년의 시간 동안 마흔 명이 넘는 동서양 음악가들과 실크로드 프로젝트, 애팔래치아 왈츠 프로젝트 등의 대규모 협업을 해온 바 있다. 음악으로 각자의 뿌리를 모색하며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날의 소품 연주 역시 넓게 보면 그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진심이 담긴 위로. 여기저기서 많이 듣는 표현이지만 피부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위로는 대부분 피상적이고 진심 역시 이면에 숨어 있을 때가 많으니까. 그러나 요요 마의 연주 앞에선 내가 가진 모든 의심을 내려놓았다. 그날의 주제인 위로와 희망 중 위로는 확실히 받았다. 어쩌면 희망도 조금은 느꼈을지 모르겠다.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그리스 미술과 포도주

고대 그리스 시대는 예술에 대한 본격적인 이론들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미메시스(mimesis)는 당시의 대표적인 예술론으로서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그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다. 미메시스는 우리말로 모방으로 번역되는데,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시학에서 예술의 근본적인 행위가 자연의 모방이라고 정의하면서 모방론을 정립했다. 모방론에 따르면 훌륭한 작품이란 자연을 잘 모방(재현)한 작품으로서, 재현의 현실성에 따라 작가의 수준을 구분했다. 이러한 모방론의 대표적인 일화가 제욱시스의 포도이다. 당시 그리스 최고 화가의 자리를 놓고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가 경합을 벌이게 됐다. 먼저 제욱시스가 마을 담벼락에 포도나무를 그렸는데, 정교한 그림 때문에 새들이 날아와 그림 주위를 맴돌았다. 기분이 좋아진 제욱시스는 파라시오스에게 당신의 그림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파라시오스는 자신의 작업실로 제욱시스를 안내했다. 작업실에는 그림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커튼이 쳐져 있었다. 제욱시스는 커튼을 걷으라고 했는데, 문제는 바로 커튼이 그림이었던 것이다. 제욱스시는 나는 새들을 속였지만 파라시오스는 예술가를 속였다는 말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제욱시스가 포도를 그린 것은 포도가 묘사하기 힘든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포도는 올리브와 함께 그리스인들에게서 사랑받는 물건들이었다. 특히 포도는 포도주로 만들어지면서 인류 최초의 술이 됐다. 비록 그리스에서 포도주가 발명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인들을 통해 포도주가 전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포도주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디오니소스가 인간들에게 포도나무와 포도주를 전파한 것으로 서술하고, 디오니소스를 술의 신으로 예찬했다. 플라톤은 포도주를 영혼을 겸손하게 만들어주고, 육체의 건강과 힘을 주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고, 히포크라테스는 포도주를 가장 맛있는 약이라고 주장하면서 적당량의 와인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를 물로 희석해 묽게 해서 마셨다. 물을 타지 않은 포도주를 직접 마시는 것은 건강에 해로운 일이며 야만의 종족이 행하는 일이라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술을 절제하기 힘든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기도 하지만 예술의 신이기도 하다. 이성을 대표하는 아폴론이 낮의 신이라면 감성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는 밤의 신이며 쾌락의 신이다. 예술은 이성적인 사고보다 감성적인 사고에서 출발한다. 플라톤은 예술을 저급한 것으로 예술가를 장인 중에서도 하급의 장인으로 취급했다. 플라톤은 영원불멸의 아름다운 세계를 원했다. 우리 현실의 감각적인 사물 대신 눈으로 볼 수 없는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플라톤은 추구한 것이다. 세계를 둘러싼 모든 것은 부서지기 쉬운 허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허상을 모방하는 예술가들은 거짓 진리를 이야기하는 자들이로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프라톤은 역설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상적인 이데아를 비판한다. 관념에 머무는 것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불완전한 현실이지만 거기에는 이데아의 흔적들이 숨어져 있으며 오로지 예술가들만이 그것을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은 단순히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야 진정한 모방이라고 모방론을 정의 내렸다. 예술작품은 단순히 대상을 모방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술은 원본과 모방 사이의 긴장에서 태어난다. 예술은 원본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사된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린 아름다운 밤하늘은 과연 진정한 밤하늘인가? 아니면 우리의 마음이 보고자 한 밤하늘인가? 밤하늘의 모습은 그저 밤하늘이지만 우리가 감동해서 그려놓은 밤하늘은 우리의 마음도 아니고 그저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도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진리를 갈구하는 우리 영혼의 울부짓음이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미메시스이며 예술인 것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어느 신진 예술가의 작품 가격

여기 작품이 있다. 한 작품의 가격은 무려 6억원. 매우 유명한 작가의 작품일까? 아니다. 이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막 2년여가 흐른 신진 작가다. 그러나 누구이기에 작품 값이 비쌀까? 작품의 가격은 누가, 어떻게 매기는 걸까? 미국 대통령의 아들, 바로 헌터 바이든의 이야기다. 헌터 바이든은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시점부터 전업 작가를 선언했다. 그는 첫 전시의 작품 가격을 최저 7만5천달러(8천800만원)에서 최고 50만달러(5억8천700만원)에 책정했다. 우선 전업 작가로 선언한다고 하더라도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첫 개인전을 열기는 정말 어렵다. 다양한 재료를 자신에게 맞는지 고민하고, 연습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잘 맞는 재료를 선택해 작품으로 탄생하도록 수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안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 작품의 메시지를 찾고, 그것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수년의 전시 경험 안에 평단과 다양한 평가에 의해서 작품의 가격이 매겨지고, 인정의 과정을 거쳐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헌터 바이든은 작가로서 연습의 과정, 인정의 과정, 이 두 가지를 프리패스(Free pass)했다. 이 높은 가격은 오로지 바이든이라는 이름 때문에 매겨진 것이다. 이것은 작품의 내용, 수준, 퀄리티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 작품 판매를 하는 갤러리는 전시회 관람을 갑자기 중단했다. 가격도 이렇게 높은데, 관람객을 받지 않으면 누가 작품을 살까? (일반인 말고) 작품을 산다는 소수에게만 팔겠다는 속셈이다. 또 바이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작품은 보지도 않고 앞다퉈 살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백악관에서는 누가 샀는지, 콜렉터의 신원을 작가를 포함해 비밀로 하겠다는 조항을 걸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 있을까? 결국 바이든家로 돈이 흘러간 것을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비단 미국의 대통령 아들뿐 아니라 자신의 특수한 위치, 혹은 인기를 이용해 갑자기 작가로 전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계통에서 쌓아온 커리어를 작품 값에 입히곤 매우 비싼 값을 부른다. 작품의 평가는 빠진 채 작품을 단순히 판매 혹은 뇌물로 사용한다. 자신의 사인을 판매하는 것과 예술작품으로 판매하는 것과의 차이가 있을까? 그림을 그리고 전시한다고 해서 바로 작가가 될 수는 없다. 멀리 바다 건너 미국 대통령 아들의 소식 속에서 작가의 태도와 작품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생강 협업공간 한치각 공동대표

[문화카페] 물치도 조형물 논란

물치도(勿淄島)라고 하면 어디 있는 섬인지 모르는 인천시민들이 여전히 많을 것 같다. 그 대신 월미도에서 바다를 바라볼 때 영종도 옆에 보이는 작은 섬이라고 알려주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작약도(芍藥島)라고 답할 것이다. 물치도는 작약도의 원래 이름으로, 대동여지도 등 조선 후기에 제작된 각종 지도에 그렇게 나와 있다. 이 물치도가 언제, 어떤 이유에서 작약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1930년대에 어떤 일본사람이 섬을 사들인 다음 이런 이름을 붙였다는 말만 전해져 왔다. 그가 멀리서 이 섬을 보니 그 모양이 작약꽃(함박꽃) 봉오리와 같아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작약도라는 이름은 이보다 수십여 년 전 기록에 이미 나타난다. 한 예로 1896년 9월6일 일본군이 인천항 일대를 조사하고 자신들의 외무차관에게 그 내용을 알린 인천항 정황보고(仁川港情況報告) 문건에 보면 러시아 군인들이 작약도에 상륙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따라서 이 섬의 이름을 작약도라고 지은 것은 그 이전의 누군가 다른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물치는 대개 밀물 때 들어오는 바닷물이 섬을 치받는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 우리말 물치를 한자의 소리만 빌려 쓴 것이 勿淄라는 말이다. 실제로 이 섬 주변의 물살이 무척 거세니 이 해석은 꽤 그럴 듯하다. 하지만 물 + 치라는 단어 구성이 어색하다. 치받다의 치는 위로 향한다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인데, 우리말에서 접두사가 말끝에 붙는 단어 구성은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사연 때문에 인천시 지명위원회가 지난해 5월 작약도라는 이름을 물치도로 바꾸어 공고(公告)했다. 20여 년 전부터 계속된 물치도 이름 되찾아 주기 시민운동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물치도는 아직 시민들에게 그다지 익숙한 이름은 못 되는 것 같다. 한번 굳어진 이름은 이처럼 고치기가 영 쉽지 않다. 강화도 마니산의 원 이름 마리산(머리산)을 되찾아주자는 시민운동이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잘 안 되는 것처럼. 이 물치도에 관할 동구청이 2억원을 들여 동구와 물치도를 표현하는 글자 조형물 설치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물치도가 동구에 있는 유일한 섬임을 알리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도 주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흔한 대규모 조형물 설치보다는 나무가 무척 많아 우디 아일랜드(woody island)로도 불렸던 이 섬의 생태와 환경을 되살리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크다. 어렵게 제 이름을 되찾은 물치도 자신이 가장 좋아할 결론이 나오기를 바란다. 최재용 인천사랑운동시민협의회 사무처장

[문화카페] 또 다시 한글 전용을 위하여

정부24 홈페이지에서 출력한 군 경력이 포함된 주민등록 초본의 첫 주거지 세대주 및 관계 란에 기재된 아버지의 이름, 그립고 선명한 그 이름이 아니었다. 다시 살폈으나 여전히 믿을 수 없게도 낯선 인격이 내 아버지라고 주장하며 당황한 나를 어느덧 비웃는 듯했다. 90년대 초에 지자체가 수기(手記) 한자(漢字) 정보를 한글로 바꿔 입력하며 야기한 오류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죄책감에 붉게 물들어 보완에 인색한 70여년 한글전용 정책을 원망했다. 우리는 그동안 한자의 한글 오기 사례뿐만 아니라 한글전용 텍스트에서 여러 인지오류와 소통장애 사례를 숱하게 겪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국어 어휘의 칠할 가량이 원래 한자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보와 지식의 정확한 전파와 활용을 생산 활동의 기초로 삼는 정보화기반시대를 경과하면서도, 안중근 의사를 병 고치는 의사로 잘못 알고, 안내판의 조선조의 관직 목사에 당시에 웬 교회 목사?라며 의아해하고, 보안과 보완의 뜻을 혼동해도 자타 웃으며 넘겨왔다. 대학의 강의와 수강에서 더욱 문제 돼 한자학습을 애원하듯 권유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아마 재래의 모종 고루한 이념과 관습에 연계된 학습하기 까다로운 문자라는 선입견에다 현실 문헌매체에서 한자가 출현하지 않아 꼭 배워야 할 동기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오해와 기피에 불과하다. 우리 후속 세대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해결방안과 실천은 쉽고, 효용과 편리는 막대하다. 내년부터 당장 초등 6년 국어 수업에서 한자 1천800자를 나누어 가르치고 배우며, 초중등 교과서에 국한해 고전 이외의 글에서도 필요에 따라 한글로 표기된 한자용어 옆에 해당 한자를 아울러 표기하면 문제를 거의 해결할 수 있다. 즉 안중근 의사(義士), 목사(牧使), 보안(保安), 보완(補完)이라 제시하며 동시에 그 훈(訓)으로 조성된 뜻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하자는 오래되고 평범한 방안이다. 그러면 국어사전의 참조 없이도 이후 생애 내내 반복되는 한글표기 한자용어들과 그 뜻을 상기할 수 있다. 오독과 오기 방지는 물론이고, 문장과 문맥 독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학생 시절에는 한자를 학습하고, 졸업 후 사회 직장에서는 한글전용을 철저하게 이행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에서야 드디어 일제 치하 선열 한글학자의 염원을 구현하고, 그동안 유보되어온 실질을 한글전용론이 확보해 그 진정한 효과를 향유할 수 있다. 우리는 한자 발음의 통일과 그 표기도 내포된 세종의 한글 창제의 의도를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한자학습을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참고로 북한은 1948년에 한글전용을 실시했지만 상기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이념화했던 한글전용을 수정해 김일성의 교시로 1968년부터 초중등 교육에서 한자학습을 의무화했다. 대선의 시기, 여러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언어는 인간의 의사와 의식의 근본 질료이면서 모든 생산 활동을 촉진하는 기본 자산이 아닌가. 한글전용을 보완하는 한자 1천800자 의무학습과 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약속하는 후보에게 한 표 드리려 한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문화카페] 팬데믹 시대의 연극

고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힘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인간 고립이 가속화 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대면하는 것은 귀찮고 불편한 일을 넘어서 매우 위험한 일이 돼버렸다. 팬데믹 초기 우리 사회는 비대면의 업무와 일상생활에 준비되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육, 업무, 쇼핑 등에서 비대면의 새로운 플랫폼에 금세 적응했다. 심지어 대학 입학의 실기고사마저도 비대면 영상 시험으로 대체될 정도로 모든 것이 비대면의 상황에 빠르게 적응했다. 학생들도 비대면 수업을 대면 수업보다 더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직장에서도 굳이 일터에 나가서 모여 업무 하는 것보다 재택근무를 통해서도 충분한 업무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비대면에 적응해 가면서 새로운 산업이 부흥하기도 했다. 심지어 공연도 영상 플랫폼으로 제작돼 온라인으로 배포되고 있다. 영상으로 전달되는 공연을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런 현실에서 이제는 단순히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관객이 극장에 오지 않는다. 너무도 많은 서사가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고 그 많은 이야기는 인간의 여가를 채워주는 도구로 전락했다. 앞으로는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가속화 되리라 여겨진다. 굳이 불편하게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원하는 공연과 이야기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시대에 직면한 것이다. 연극은 이러한 현실을 마주해 점차 그 존재의 필요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인간이 인간과 마주하는 일 자체가 원시적으로 보이는 현실에서 연극은 아직도 인간이 인간을 대면해야만 성립되는 원시적인 예술이다. 아무리 연극을 영상으로 잘 담아 전달하더라도 연극의 본질은 현장성이고 의미 생산과 교류를 직접 해야 이뤄져야 성립되는 예술임에는 분명하다. 연극의 본질에는 인간의 만남이 전제된다. 비대면을 넘어서 대면의 전제 속에서 성립되기 때문이다. 이런 연극의 고유한 특성은 극단적으로 고립이 가속화 돼가는 인간에게 연극은 인간 대면의 기회를 만들어 준다. 연극은 고독과 고립에 처한 인간을 구원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것이 연극 존재 이유다. 연극만이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연극이 고독의 시대에서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연극은 어떤 연극이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연극이 살아남아 인간 고립의 구원자로서 역할 할 수 있도록 존재하기 위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할까? 연극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연극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동시대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물음을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나아가 연극 원형을 탐구하고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연극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연극만이 가능한 모든 것을 고민하고 연극의 원형을 탐구하며 연극의 영역을 확장해야만 연극이 동시대에 연극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한다. 팬데믹의 터널을 어느새 나오면 우리는 더욱더 고립돼 있을 텐데 그 터널의 끝에서 연극이 할 수 있는 일과 사명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어느 바보가 구글링을 한국어로 해?”

한때 모 증권사에서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사내 리서치센터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를 감수하고 개선하는 일이었다. 타인과의 협업인 만큼 순조로울 때도 덜컹거릴 때도 있었는데, 그중 가장 피곤한 때가 외래어 표기를 놓고 실랑이를 벌일 때였다. 내가 속한 편집팀이 국립국어원의 지침, 언론ㆍ출판계의 표준안을 권고하면 다른 직원들이 이에 반발하는 구도다. 독일의 자동차 메이커 Volkswagen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어 기준으로 표기하면 폴크스바겐, 영어 기준으로 표기하면 폭스바겐이다. 독일 회사다 보니 엣헴 하는 사람들은 폴크스바겐을 권고하나 대다수는 폭스바겐을 훨씬 친숙하게 여긴다. 실제 국내법인 역시 폭스바겐코리아로 등록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은 나름 절충안을 취하고 있다. 독일 본사를 지칭할 때는 폴크스바겐으로, 국내 법인을 지칭할 때는 폭스바겐으로 쓴다. 한 기사에 둘 다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폴크스바겐그룹 산하 폭스바겐코리아의 폴크스바겐 부문 같은 식.가끔은 자기들도 헷갈리는지 폴크스바겐과 폭스바겐을 마구잡이로 오가거나 반대로 쓸 때도 있다. 피곤하고 소모적인 일이다. 우리 일상 곳곳이 이렇다. 작곡가 Mozart의 표준 표기는 모차르트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모짜르트로 표기한다. 심지어 모찰트, 모짤트로 쓰는 사람도 제법 된다.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역시 도스토예프스키, 도스또옙스끼 등이 두루 쓰인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문제는 이런 탓에 수많은 정보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구글 등 포털에서 검색할 때를 생각해보자. 모차르트로 검색하면 그렇게 작성된 글만 뜨고, 모짤트로 검색해도 역시 그렇게 작성된 글만 뜬다. 만약 정말 중요하고 특별한 정보를 담은 글이 모짤트로 쓰였다면? 대다수 사람은 그런 글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요긴한 글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매번 모차르트, 모짤트 등을 일일이 입력해서 한꺼번에 검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정보의 축적과 교류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또 한국어의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진다. 5천200만명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언어인데 그 안에서도 이런 식으로 정보가 줄줄 새니까 말이다. 실제로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층은 어지간한 검색은 영어로 한다. 애초 정보의 양과 질 모두 영어가 압도적인 와중에 기껏 존재하는 한국어 정보마저 활용하기 애매하다. 어느 바보가 구글링을 한국어로 해?라고 말하는 이도 꽤 된다. 그럴 때면 한국어로 글을 쓰는 한국인 작가인 나는 기분이 묘해진다. 반박하고 싶어도 그럴 명분이나 근거가 없다. 한글의 간결함과 우수함을 예찬하는 홍보물을 봐도 국뽕에 차오르는 대신 지금 저럴 때가 아니지 않나? 하며 갸웃거린다. 독자적인 문자를 가졌다는 건 뿌듯한 일이나 달리 보면 고립되는 측면도 다분하다. 한마디로 양날의 검. 나는 문자보다 정보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뚜렷한 타개책이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것, 실시간 영한 번역 기술이 더 발전하는 것 정도가 현실적으로 보인다.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그리스 미술과 올리브

고대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이자 현대문명의 뿌리로 알려져 있다. 학문과 예술이 정립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와 추론이라는 모델을 통해 과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특히 미술은 기록이나 장식의 수공예적 영역에서 미의식을 통해 예술로 영역으로 상승했고, 기술을 넘어서는 경지에 예술이 올라섬으로써 사회에서 예술은 주요한 분야로 인정됐다. 고대 그리스 미술은 건축, 조각, 회화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회화는 대부분 유실됐고 도자기에 묘사된 그림들로 겨우 그 흔적을 알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당시 도자기들이 대부분 저가의 실용품이었기 때문에 도자기 그림들의 수준은 우리가 기록으로 알 수 있는 회화의 수준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다. 고대 그리스 미술의 소재는 주로 신화의 세계가 중심인데, 신화의 영웅담을 조화, 비례, 균제의 방법을 통해 묘사함으로써 이상적(理想的)인 미의 기준을 확립했다. 미술사학자 빈켈만(J. J. Winckelmann)은 이러한 그리스의 이상미를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으로 정의했다. 그리스 미술에는 신화의 영웅담 외에도 올리브와 포도가 자주 등장한다. 국토의 80%가 산지인 척박한 그리스 땅에는 올리브와 포도만이 자랄 수 있었고, 빵과 더불어 그리스인들의 주식이 됐다. 올리브는 90%가 기름으로 쓰이고 10% 정도가 요리에 활용되며, 올리브 잎을 차로 우려내 마시기도 한다. 그리스 대다수 음식에는 많은 양의 올리브기름이 들어가는데, 그리스인들은 1년에 30㎏ 정도를 소비한다고 한다. 그리스 음식이 건강식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이 올리브유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운동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고순도의 올리브기름을 담은 암포라를 부상으로 줬는데, 올림픽 참가자들은 대부분 나체로 경기에 참여했기 때문에 올리브유를 발라 부상을 방지하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의 올리브 사랑과 자부심은 신화에도 등장한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는 아티카 지역에 위치하는데,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 다툼을 벌였다. 아테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포세이돈은 물을 선물했지만 짠 바닷물은 아테네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아테네 여신이 선물한 올리브 나무는 아테네인들에게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도시의 이름도 아테네로 명명됐다. 아테네는 지혜의 여신이자 평화의 여신이다. 그래서 올리브는 평화의 상징으로 UN기에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올리브는 반 고흐의 그림에도 등장한다.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계속 그림을 그렸는데, 이 시기에 올리브 나무를 소재로 14점의 작품을 남겼다. 고흐 특유의 소용돌이 치는 화면에 펼쳐진 나무들은 무슨 의미일까? 인정받지 못한 불우한 화가는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로부터 안식을 얻었을까? 정신병원에서 나온 고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날아갔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당신의 마을엔 문화예술 향유 공간이 있나요?

지역기반의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앞서 선행하는 필수요소는 지역주민들과의 인터뷰나 설문이다. 사전조사를 통해 마을의 특성과 구성원들의 경험을 파악해야 수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성격과 맥을 짚을 수 있다. 내가 건네는 질문은 단순하다.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혹은 공연장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는가? 따위의 질문에서 시작해서 방문의 횟수나 최근의 경험을 묻는다. 만약, 대답이 NO라면 설문은 종료된다.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고 내가 만난 주민의 표본에 오차가 있을 수도 있지만 지난 나의 경험을 비춰보면 태어나서 문화예술관련 경험이 전무한 사례도 왕왕 접하곤 한다. 혹자들은 굳이 미술관에 안 가도 된다. 나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예술 따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해보고 싶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원래부터 예술을 좋아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속단하자면 경험해보지 못해서, 기회가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진행하던 예술프로젝트가 끝나면 생강씨 덕에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나이와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듣는 이야기라면, 필자의 대답에 조금이라도 수긍이 갈까. 처음에는 미술예술이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내가 제일 재미있다고 느끼는 문화예술을 그들의 옆에서 소개하고 즐기는 방법을 함께 연구해나가면 개인에게 또 다른 우주가 열리는 것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당신의 집 주변에는 이런 문화예술 공간이 있는가? 도서관이 있을 수도 있고 미술관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운이 좋은 경우에는 수원의 상상캠퍼스처럼 청년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성남시는 구도심 정중앙에 예술가 레지던시를 운영 중이라 바로 집 앞에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런 문화예술 공간을 운영하기에는 자본투여가 필수다. 그렇다보니 보통의 문화예술 공간이 공적자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장점으로는 편리한 시설과 대규모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사용자 입장에서 손쉽게 이용하기에는 여러 가지 규약과 까다로운 절차가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의 집 앞에서, 내 눈앞에서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어떤 문이 필요하다. 그 문은 누가 만들 수 있을까? 다양한 예술의 종사자들,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간다. 공공기관이 해야 할 역할과 책임도 분명 존재한다. 그것뿐 아니라 공공기관이 친근하게 다가가기 어렵거나 하지 못하는 생활 밀착형 프로그램을 운영할 민간의 문화예술 공간도 분명 존재해야할 이유가 있다. 서울시는 현재 서울문화재단을 운영하며, 각 구별로 문화재단이 존재한다. 문화재단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각 구별로 자신들의 동네 특색에 맞춘 문화행사를 운영하는 것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와 내 주변을 이해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속에서 새로운 나를 찾는 경험을 경기도의 각 도시에서도 느끼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마을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생강 협업공간 한치각 공동 대표문화예술 기획자

[문화카페] 호계서원

2019년에 유네스코가 한국의 아홉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하고 보존과 활용에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선언했다. 서원 발생과 존립 근거는 존현양사(尊賢養士), 시대를 초월해 존중해야 할 이념이다. 1541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창설된 이래 전국에 들어선 서원들은 훼손된 유학의 가치 복원에 기여했다. 그런데 18세기 이래 많은 서원들이 통속화되면서 당쟁과 민폐의 소굴이 됐고, 1871년에 대원군 정부는 47개 서원만 남겼다. 지난해 경상북도와 안동시는 양사의 기풍까지 현대화한다는 비전으로 명맥만 잇던 호계서원(虎溪書院: 주향 퇴계 이황, 배향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을 도산면 국학진흥원 근처 산록에 중건하고 고유했다(대산 이상정 추가 배향).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하고 조잡한 정치와 인격들이 세상을 조롱하듯 어지럽히는 이 시대에 유학의 기개와 절제를 어느 정도 회복해야 한다는 의사를 비원처럼 품고 있던 사람들은 크게 고무됐다. 게다가 호계서원은 독립운동 유공 서원이기도 하다. 1907년에 만원 김병식, 동산(東山) 류인식, 석주(石洲) 이상룡, 일송(一松) 김동삼 등 안동의 혁신유림이 교육구국의 일환으로 협동학교(協同學校)를 세우며 호계서원의 재산 대부분을 재원으로 활용했다. 이후 피폐해진 호계서원은 시대의 요구에 과감하게 헌신한 나머지 영광스러운 남루였고, 협동학교의 기맥은 만주의 신흥무관학교로 계승된다. 천만 뜻밖에도 며칠 전에 퇴계 이황 선생의 위패가 철수됐다고 한다. 참담한 심정으로 실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공사 구분이 결여된 공인될 수 없는 처사다. 서원의 위패는 문중의 위패가 아니다. 적어도 시민들에게 여부를 묻는 절차를 거친 서원운영위의 의결이 있어야 한다. 또 위패 철수 이유들도 하나를 제외하고는 무미해 차라리 잘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 그 하나는 네 분의 위패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일렬 배치해서 사제(師弟)의 위상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 했다는 주장이다. 일렬 배치에도 서열이 있고(동쪽 즉, 왼쪽부터 상위) 퇴계의 독자 위상을 양보해 지난 병호시비(서애와 학봉의 동서 위차)를 중창과 더불어 희석시키겠다는 깊은 선의와 겸양의 의의가 내포돼 있다. 그런데 일부 인사들이 퇴계가 제자와 후대 제자와 같은 반열에 놓였지 않았느냐고 굳이 문제제기했다면 운영위는 그 주장을 종내에는 수용했어야 했다. 이제라도 옛 방식대로 조정해 200여년 만의 화합 기회와 미래지향 대사를 그르치지 말기를 기원한다. 퇴계 선생에게 그런 사유로 위패를 철수하겠다고 고유했다면 고개를 돌렸을 것이고, 위패 배치 위 두 방안을 묻는다면 겸퇴의 선생은 다 괜찮다며 미소 지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 수습 과정에서 시민들의 여론에 따라 관련 선현들을 추가 배향해 존현 기능을 확대할 수도 있다. 만약 달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우선해 호계서원을 오히려 이전보다도 못한 상태로 방치하고, 또 의도와 무관하지만 결국 퇴계 선생까지 병호시비 확대에 연루시키는 사태를 지속시킨다면, 당사자들은 선현들과 선열들에게 무책임하며 긴 광음을 회귀해 도래한 유학과 서원 관련 시대의 요구를 외면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문화카페] 베짱이의 시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유명한 우화다. 전 세계인이 모두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 교육에서 이 우화를 통해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개미와 같이 열심히 삶을 살아가라는 교훈이다. 그러나 우리는 창의적 발상을 하고 자신의 삶을 유희하듯 살아가는 이들이 시대를 이끄는 모습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 어린 학생들의 꿈은 대개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는 선생님, 회사원, 공무원, 혹은 사업가 정도였는데 이런 꿈의 유행은 이후 연예인, 스포츠 선수로 바뀌었고 지금은 유튜버로 바뀌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개미는 열심히 일하지만 자신의 삶을 유희하지 못하고 일만 하면서 넉넉하지 못하게 살아간다. 반면 베짱이는 저작권료를 받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유희하듯 일하며 많은 이들에게 동경과 부러움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이렇듯 우리가 직면한 세계는 과거의 절대적인 가치가 더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창의적인 융합과 복합의 발상이 새로운 세계의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과거 세계를 이끌었던 굴지의 기업들은 이제 스마트한 기술력에 무장된 새로운 산업군을 이끄는 IT 기업들에게 경쟁력을 잃고 있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인재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세상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발상과 문화적 가치를 기반한 융합과 복합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교육의 가치도 변화하고 있고 대학의 교육도 융합과 복합을 기반한 새로운 인재교육 패러다임을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새로이 도래한 베짱이의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부지런함의 가치만을 설파해서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융합과 복합의 시대에 실로 능력 있는 베짱이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기반한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체계일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면서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유희하고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베짱이들을 양성하는 것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 됐다. 그렇다면 이런 베짱이를 위한 교육의 기반이 갖춰져 있는지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개미의 덕목만을 강요해서는 베짱이의 삶을 동경하는 많은 학생에게 우리의 공교육은 외면받을 게 분명하다. 문화와 예술을 기반한 창의적 발상을 할 수 있는 인재교육에 우리는 더욱 투자하고 예술교육 현장에서도 경직된 도제식 엘리트 교육을 벗어나야 미래가 있다고 본다. 베짱이의 시대를 인정하고 다양한 학문과 예술이 자연스레 융합과 복합이 이뤄지는 교육환경이 더욱 절실한 지금이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인천대 공연예술학과 교수

[문화카페] 바뀌는 시대, 새로운 고전

세대에 따라 오페라를 바라보는 온도가 제법 다르다. 40대 중반 이상은 종합예술의 정점이라며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짙지만 그 아래는 꽤 시큰둥하다. 클래식을 제법 듣는 이들조차 오페라 이야기는 그다지 하지 않는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왜 그럴까? 공부를 적게 해서? 귀가 덜 열려서? 제대로 접한 경험이 적어서? 오랜 오페라 애호가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 모르나 내 생각은 다르다. 서사, 그러니까 이야기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오페라가 종합예술의 맹주로 행세한 건 음악, 서사, 연출 등이 당대 최고 수준으로 어우러졌기 때문인데 그 한 축인 서사가 힘을 잃었단 뜻이다. 주로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의 대부분은 18~19세기 작품이다. 이들을 2021년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면 썩 와닿지 않을 뿐 아니라 여성혐오, 인종차별 같은 요소도 수두룩하다. 얼마 전까지는 옛날 이야기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근래 분위기는 다르다. 젊은 세대, 특히 PC(정치적 올바름)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다. 예술 취향을 넘어 삶에 대한 시선 자체가 바뀐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오페라의 미학을 설파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고루한 아재로 낙인찍히기 십상. 이는 연출가들의 머리를 뻐적지근하게 만든다. 평생 해당 분야에 종사한 이들이 이런 변화를 모를 리 없다. 해서 이야기 전반을 재해석하고 숨은 의미를 찾아내 부각한다. 주요 배경이나 설정을 바꿔서 관점을 비틀 때도 있다. 당연히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대본과 음악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작품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해야 하니까. 연출가의 실력을 가늠하는 지점. 한데 이런 시점에서 난 은근 신기한 흐름을 느낀다. 오랜 고전을 두고선 이런 관점이 점차 확산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 창작되는 작품에선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내용을 보면 고전의 변주, 위인전 등이 주류고 현재에 걸맞은 새 이야기는 드물다. 근래의 시선이 어느 정도 녹아 있는 경우에도 오늘과 호흡한다,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다. 옛날이야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일부는 퇴보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는 오페라를 비롯해 발레, 뮤지컬 등에서 공히 관찰되는 부분이다. 영화, 드라마 같은 영상 장르의 분위기와는 정반대다. 이쪽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근래의 트렌드에 충실한 경향이 있다. 무엇이 논점인지, 어떤 코드가 먹히는지를 파악한 다음 대중의 인기를 끌고 미디어와 SNS에서 주목받기 좋은 쪽으로 빚는다. 심할 땐 현재와 호흡하는 건지 현재에 영합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유용한 전략임은 인정하나 옳은 방향인지는 모르겠다. 모든 예술은 시대와 호흡한다. 당대의 예술 취향은 물론 시대상과 생각까지 담은 작품이 살아남는다. 거기에 소신, 철학, 영향력까지 인정받아야 시간이 흘러 고전의 지위를 얻는다. 어떻게 해야 옛 고전을 넘어 새 고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가볍게 사는 게 장땡인 시대에 혼자 거창한 질문을 던지는 걸까? 정부 지원을 받기 좋은 쪽, 트렌디하게 먹히는 쪽. 예술 생태계가 이렇게 양분되는 느낌이어서 끼적여봤다.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한국에 필요한 리더십은 외교력

일본의 한국에 대한 태도가 돌변했다. 양국현안 문제에 마이페이스이다. 이번 정부 들어 그 기조가 뚜렷해졌다. 일본의 태도 변화는 한국의 성장에 대한 초조함일 수도, 한국의 과거사 처리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시민단체는 한일관계에 상관없이 늘 행동해 왔고, 친일한파가 있다 한들 존재가 미미하여 양국 관계에 영향을 주는 일도 거의 없다. 정부와 방송은 다르다. 한국 정부와 방송은 일본의 부당함을 들어 국민에게 대일감정을 드러내라는 듯 대응하며 일본은 극복할 수 있으며, 이길 수 있으니 더이상 와신상담하거나 발톱을 숨겨야 할 필요가 없다는 대일 메시지이다. 정부는 정통성을 외면하듯 이전 정부가 응하여 맺은 협약이나 합의에 제동을 걸고 분리해야 한다는 과거 문제를 미래 협력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다. 일부 언론은 한일 간 대립이 있을 때마다 일관되게 속죄해야 할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본의 주장은 조명해볼 필요가 없다는 논조를 보이며, 국민의 사고와 정부의 역할을 마비시킨다. 역사문제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방송 수준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은 지 오래인데 한중일 문제 역시 감정적이며 선정적이다. 사인들은 욕하고 비난할지라도 공인과도 같은 방송은 절제된 외교적 수사가 필요한데 사사로운 단체의 대변인 수준이다. 정치편향을 시대적 사명인 양하고 있다는 방송이 대외문제라고 예외는 없었다. 감정에 불을 지피면 이성적 판단은 마비되어 애써 쌓은 화해 협력 무드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용인되던 언행은 비난의 대상이 되며, 자기 성찰은 매국 행위가 된다. 그간 역사 등의 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한일관계는 일정한 선을 유지해 왔는데 지금은 다르다. 양국 모두 양보 없이 치달으며 새로운 응어리를 쌓고 있다. 주변국과의 긍정적인 관계 정립 없이 한국만이 성장 발전하기는 쉽지 않다. 응어리를 풀고 서로 긍정적인 관계로 바꿔나가야 한다. 한국 지도자의 리더십에 외교력이 빠져 있다. 한국 정치판의 비방전처럼, 나는 잘하려고 하는데 상대가 응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정부는 국민 뒤에 숨지 말고 당당히 한일관계의 미래를 조명하며 국익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언론방송 또한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며 상생의 미래상을 그려내야 한다. 모세종인하대 한국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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