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전쟁(A Guerra)을 보고-
그림책 <전쟁>은 일러스트레이터 안드레 레트리아가 글이 없는 그림책으로 기획하였지만 기자이자 시인, 극작가인 아버지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3년 동안 수정하며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다.
시종일관 흙빛이 감도는 배경과 검은 색의 붓 선들, 스멀스멀 소리도 없이 좁혀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와 거미 떼, 어두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떼….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는 불길하고 우울한 감정에 휩싸인다.
‘전쟁은 빠르게 퍼지는 질병처럼 일상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라고 서술된 텍스트는 보는 이에게 다가올 공포에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직격탄을 날린다. 아무도 없는 황량하고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 구석진 방 어둠 속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다. 흐트러짐 없이 각이 잡힌 군복을 입은 병사는 깊은 수심에 잠겨 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위기의 조국일까? 아니면 인간 탐욕의 시작일까? 하지만 독자의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전쟁은 어떤 이야기도 용납하지 않는다’ 는 글과 함께 책들을 산처럼 높이 쌓아 놓고 불을 지르는 이미지에서 정의와 앎에 대한 침묵이 강요되며 절망을 경험한다. 많은 물건 중에 책을 태우는 장면은 단순한 책이 아닌 지성과 깨우침이란 것을 알기에 총칼보다 무서운 보이지 않는 힘이 책에 있음을 다시 느끼게 된다.
전쟁은 끔찍한 결과를 예상하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와 이념, 일상처럼 굳어진 관습과 잘못된 전통 때문에 사람들은 생명을 죽음과 맞바꾼다.
이 책에는 엄청난 폭등이나 저항, 극적인 파괴나 참혹한 장면은 없다. 하지만 시종일관 무겁게 내리누르는 보이지 않는 무게감으로 책을 보는 내내 전쟁의 공포와 아울러 평화와 공존의 소중함을 함께 느낀다. 다소 무겁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인간이 저지르는 최악의 행위를 작가는 담담하게 그러나 깊이 사색하며 감성적으로 서술해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좋은 그림책이다.
전쟁은 무기를 들고 상대를 공격하는 물리적 전쟁도 있지만, 요즘처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경제 위기와 같은 현실적인 삶과의 전쟁도 있을 것이다. 공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치지 않는 극복과 유연한 대처가 어려운 상황과의 전쟁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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