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너 자신을 혁명하라

image
김아타 사진작가

함석헌 선생께서 즐겨 쓴 말이다. 스승 다석(多夕) 선생의 한시 ‘生命(생명)’의 요강이다. 들숨과 날숨처럼 공명한다. 두 종류의 혁명이 있다. 외적 혁명과 내적 혁명이다. 하늘에서 내린 명(命)을 새롭게(革) 하는 것이 혁명의 참 의미이지만, 외적 혁명은 나라를 바로 세우는 명분으로 체제 전복이 목적이기에 폭력적이다. 내적 혁명은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작가로 평생을 혁명하고 파격했다. 언감생심, 닭 모가지도 비틀지 못하는 내가 어찌 세상을 혁명 하나, 대신 나를 혁명하고 파격했다. 하지만, 혁명하고 파격 하는 일은 모든 것을 담보해야 한다. 창조가 존재 이유인 작가들에게 혁명이란 어떤 의미일까? 의식의 진화를 박제하지 않는 일이다. 동물과 다른 인간의 위대함은 창조에 있다. 모든 인간의 정체성은 다르며 독창성은 현대미술의 전부다. 내적 혁명의 주체인 창조적 의식의 진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벽은 ‘쩐의 전장’, 시장이다. 시장은 작가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빵을 제공하지만, 의식의 진화를 박제하는 유리 상자가 되기도 한다. 쩐에 경도되면 시장이 원하는 꼴만 생산하게 된다. 쩐을 초월하면 예술 행위를 계속할 자유의지를 보장받지 못한다. 작품은 세상과 소통하고, 유통해야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삭막한 비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이미 잘 알려진 작품을 계속하지 않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것을 자살 행위라 말한다. 새 작업이 유통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30년 40년, 죽을 때까지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혹자는 이를 두고 무한 반복의 미학이라 미사여구 하지만, 현대미술에서 금기시하는 자기복제의 무한 반복이다. 장인정신으로 전통을 고수하는 무형문화재와 대척점에 있어야 할 현대미술은 창의성이 생명이다. 대단한 화두라도 5년, 10년을 몰입하면 대부분 해체(Deconstruction)된다. 여기서 해체는 새로움의 다른 말이며 이미 해체(Destruction)된 작업의 창의성은 소멸된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듯이 현대미술은 죽은 의식으로 실존을 장식하는 영역은 아니다. 장인정신으로 철갑을 두른 노회한 작가들이 시장을 잠식했다. 피 끓는 젊은 작가들의 파격적인 창의성은 고사됐다. 시장통은 장식의 도가니가 되고 세계의 호구가 됐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뜻하는 심신 상관성의 어원처럼 몸과 마음은 매우 민감한 상호작용으로 연결된다. 몸이 없는 정신은 뜬구름이고 정신이 부재한 몸은 마루타가 되듯이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현상이 실존이다. 작가들은 자의식이 매우 강한 부류의 사람들로서 자존감을 생명의 근간으로 삼는다. 이를 부정할 아티스트는 없다. 하여 예술 행위를 자신의 철학과 의식의 배설로 인식한다. 가혹한 말이지만, 평생을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자신의 똥을 먹는 것과 같다. 세상은 시장에 함몰돼 모른 체하더라도 내 배설이 장식인지 창조인지 자신은 안다. 씨와 DNA는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한다. 햇빛과 온습도 등, 환경의 영향으로 발아하고 생장한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완성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자연법이다. 우주를 통째로 씹어 먹어도 성에 차지 않을 젊음의 자유 의지가 활화산처럼 폭발하게 해야 한다. 그 파편이 세상을 장식하게 해야 한다.

김아타 사진작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