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 마지막 주에 미국의 네바다 사막은 신기루처럼 한 도시가 탄생했다가 일주일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도시의 시민들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자유로운 사고로 대형 조형 예술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서로의 손재주와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물물 교환으로 생활한다. 단 일주일만 존재하는 예술가들의 블랙 록 시티(Black Rock City) 모습이다.
블랙 록 시티는 네바다 주의 사막 도시의 지명이면서 일주일만 존재했다 사라지는 축제를 위한 가상의 도시명이기도 하다. 일주일의 삶이 끝나면 블랙 록 시티의 시민들은 거대한 인간 조형물을 불태우며 스스로 공을 들인 예술 창작물과 스스로 건설한 집과 관계들을 스스로 파괴한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1986년에 시작되어 36년의 역사를 유지하는 세계적인 축제인 버닝맨 페스티벌(Burning Man Festival) 축제 얘기다. 이 축제는 축제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술 축제로 여겨진다.
한국의 10월, 축제의 계절이다. 전국 곳곳이 다양한 지역 축제로 다채롭다. 형형색색 변해가는 자연은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은 그 자연에 신명나는 집단 문화를 프로그래밍 한다. 10월에 사람들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서의 본성에 충실해진다. 모든 인간은 노는 존재이며 그 원동력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비일상성을 향한 인간의 원초성이라는 이 호모 루덴스 개념을 주창한 요한 호이징가 (Johan Huizinga)는 그 유희적 본능이 문화적으로 표현된 것이 축제라고 했다.
최근에 한국의 축제 현장은 대표적인 호모 루덴스를 잃었다. 한국의 전통을 대중과 밀착시키고 세계화 시킨 한국축제감독위원회 회장인 주재연 축제 감독의 돌연사는 한국의 축제 분야 뿐 아니라 전통예술 분야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특히,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집단성과 현장성을 기반으로 한 축제가 가야하는 새로운 길에 대한 모색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행동했던 전문가였기에 포스트 코로나에서의 한국 축제 분야는 나침반이 흔들린 것과도 같았다. 그런데 한 소셜 미디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주재연 감독에 대한 추억 다지기와 기리기는 최근 들어 온라인 축제의 방향성에 대해 유난히 고심했던 주재연 감독의 죽음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온라인 축제와도 같았다. 누군가 주재연 감독과 함께 한 추억의 사진을 업로드했고 또 다른 누군가 또 다른 추억의 사진을 업로드하며 자연스럽게 주재연 감독과의 동반 사진이 릴레이로 줄을 이었다. 제각각의 추억들 속에서 주재연이란 인물의 인간미와 역사와 업적이 연작 드라마처럼 되살아났는데 지켜보면서 자발적인 크리슈머들에 의한 자연스런 온라인 축제로구나 감탄했다. 버닝맨 페스티벌처럼 흔적도 없이 스스로를 강렬하게 불태우고 떠난 주재연 감독은 그렇게 소셜 미디어 속에서 그를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환생한 것이다.
신명과 놀이에서는 지구상에 따를 자가 없는 우리 민족 기질이 낳은 또 하나의 감동적인 온라인 축제 콘텐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이런 자발적인 집단 기획은 사실 우리 일상 속에서 곳곳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선행 미담을 낳는 업소에 줄줄이 ‘돈쭐내는’ 문화와 신조어의 탄생에서부터 돌아보면 우리는 스스로가 기획하는 축제 속에 살고 있다. 이 가을에 스스로 잊고 지냈던 호모 루덴스로서의 본성을 되찾아 보자.
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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