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서점은 집이나 다름없었다. 잠자고, 먹고, 꿈을 꾸는 곳이었으니까. 부친이 경영할 때부터 거의 그랬다. 동기생들이 졸업을 한 뒤 직장을 구하려고 애를 쓸 때도 친구는 느긋했다. 서점이 곧 직장이었으니 애써 따로 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부친이 세상을 뜨자 친구는 아예 서점을 집으로 삼아 24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결혼도 서점과 했다.
그랬던 친구가 서점을 그만두었다는 거였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우리 주변의 서점 가운데 문 닫는 곳이 날로 는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친구 역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만 했다. 아주 잘했다고 대답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서점이냐고, 되레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저녁 내내 마음이 우울했다. 문득 지난날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나이쯤 된 이들에게 서점은 책이나 파는 그냥 서점이 아니었다. 도서관도 되었고 휴식처도 됐다. 어디 그뿐인가. 데이트 장소로도 그만이었다. 남의 눈을 피해 우린 좋아하는 여학생과 서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크리스마스 같은 땐 시집이나 에세이집을 사서 건네기도 했다. 서점 주인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때론 슬며시 자리를 피해 주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눈 씻고 봐도 동네 서점을 찾을 수가 없다. 대형 서점에 밀려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더니 이젠 기억 속에서만 찾아야 하는 흑백 필름이 돼가고 있다. 시대가 그만큼 변한 것이다. 우리네 삶에서 골목이 사라지듯 서점도 그렇게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 그건 어쩜 시대의 변천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생각도 든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지 모르겠다. 몇 평 되지도 않는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그곳은 젊은이들의 미래가 숨 쉬는 곳이었고 꿈이 자라던 곳이었다. 여기에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책 한 권을 사이에 놓고 정겨운 대화가 오고 갔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외상 거래도 할 수 있던 곳이었다. 지식과 정보만을 공급하는 기계화된 오늘날의 대형 서점과는 분위기부터가 다른 공간이었다.
살아 보니 현대화되고 모든 일이 편리해지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하되 그렇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자동차 몰이에 피곤해진 자가용족들이 하루쯤 운전대를 놓는 일도 그 중 하나겠다. 그런가 하면 도시에 신물이 난 이들이 어머니의 품속을 찾듯 자연을 찾아 떠나는 일도 그 중 하날 것이다. 우린 이렇게 때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뭔가 찾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 동네 서점도 그 가운데 하나일 터.
나는 며칠 있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 생각이다. 이 더위에 어떻게 지내냐고. 우리 오랜만에 냉면이나 한 그릇 하자고. 난 친구와 시원한 냉면집에서 딴 이야기는 다 접어놓고 저 잣나무처럼 푸르던 우리들의 학창 얘기나 해야겠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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