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법없이 살아도 행복한 새해 만들기

▲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매순간 법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법은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부딪히는 많은 경우에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법에 의해서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1. 오래전 일이다. 추운 겨울날, 아이를 업은 젊은 아낙이 아파트의 관리비를 내기 위해서 아파트 동네의 큰길가에 차를 대고 바로 앞의 은행에 급히 들어갔다 나오다가 경찰에게 주차위반 딱지를 떼였다. 젊은 아낙은 위반을 하였지만 사정을 보아 달라고 하소연하였다. 그러나, 열혈의 경찰은 잘못을 하였으면 당연히 딱지를 떼어야 하고 경찰이 요구하는 신분증 제시요구를 거부하였으니 면허제시요청거부라고 하여 더 큰 딱지를 먹였다. 경찰은 소위 ‘법대로’ 한 것이다.

 

#2. 수백만의 비난과 염원이 담긴 탄핵결정 앞에서, 박대통령이 ‘‘법’대로 하자’라고 하여도 당연한 것임은 틀림없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드러난 사항들을 아무리 소화하려고 하여도 법대로 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잘못을 해 놓고 이제 와서 법대로 하자는 것처럼 들린다.

직무태만과 유기 그리고 적법한 절차가 없이 돈과 국정관련서류가 적절하지 않은 사람과의 사이에 오고 가고 하였지만, 개인 사생활의 자유의 영역이고 생각과 행동은 선의로 한 것이니 법으로 한번 따져보자고 하는 셈이다. 아마도 헌법재판소가 ‘법대로’ 잘 판단하여 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법이 도덕성의 방패가 되어야 할 것인가?

 

아득한 원시시대의 가족사회에서는 법이라는 것이 없었을 터이지만 서로 눈빛으로도 염치를 알고 살았다. 그렇지만 별의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오늘날 세상은 한순간도 법을 떠나서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법이 너무 과잉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김영란법’이 국민 대다수를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막상 최초로 법의 판단을 받은 경우는 그저 너무도 보편적인 사람이고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보편적인 사후 감사의 표현, 즉 떡 한 상자의 감사선물이 처벌을 받았다. 법에 의해서 작은 선물이 이제는 개인에게는 느닷없이 폭탄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 경우에도 선의로 한 것이니 괜찮은 것이 아닌가?

 

이번의 탄핵에 대한 헌재의 심판과정에서 아마도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잠재되어 있던 의식의 부조리가 노증될 것으로 보인다. 도덕이 앞서야 하는 사회규범에서, 법을 빙자하여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촛불을 밝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보편적이고 평등함에 대한 열망이 넘쳐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마음이 바로 우리 문화라고 한다면 이것은 바로 ‘빛의 대문(光化門) 앞의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일이다. 그런데 문화혁명은 법과 규정으로 완성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바로 보편적인 행동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가 바로 우리 사회의 누구의 마음 속에 있어서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게 되는 장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사회적인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리, 즉 도덕심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촛불은 헌법재판소의 주변을 돌겠지만 우리의 의식혁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말처럼 들불처럼 번져가서 숨어 있는 나쁜 벌레들을 없애고 새해의 새봄에 새싹이 튼튼하게 돋아나서 냉철하고도 태양과 같이 강한 빛을 발하는 법의 보호 아래 따스함이 감도는 인정어린 사회가 되면 좋겠다.

 

배기동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아시아태평양지역 국제박물관협회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