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문예지의 난립과 신인작가 양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도 가슴 설레는 이들이 있다. 신춘문예를 노리는 작가 지망생들이다. 그들은 1년 동안 준비한 응모작품을 각 일간지에 보내는 일에 거의 목숨을 건다. 그리고 눈이 빠져라하고 결과를 기다린다. 새해 첫 날은 운명의 날. 행운의 여신이 손을 잡아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낙선의 쓰라린 가슴을 안고 또 다음해를 기약해야만 한다.

 

신춘문예와 함께 또 하나의 관문이 문예지의 신인상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문예지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더니 오늘날엔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그리고 이렇게 쏟아진 문예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신인들을 마구 양산하였다. 그 결과 작가의 수는 기학학적으로 늘어난 반면 작품의 수준은 되레 떨어졌다는 불미스런 명예도 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요즘 시인이나 작가되기 참 쉬워졌다. 글 좀 쓴다 하면 각 문예지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등단을 시켜준다. 물론 전통 깊고 양식 있는 문예지들은 예외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문예지 발행에 따른 재정 확보와 함께 양산한 작가들을 문단의 배후세력(?)으로 삼으려는 속셈 때문이다.

 

며칠 전 내가 지도강사로 나가는 도서관 글쓰기반의 수강생 L이 전화를 걸어왔다. 모 문예지 신인상 모집에 작품을 보냈더니 문예지 관계자가 좀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고 했다. 그랬더니 작품이 좋다면서 몇 가지 요구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요구라는 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들이어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헤어졌다면서 나의 조언을 듣고 싶어 했다.

 

요즘의 문예지들이 이렇다. 몇몇 문예지들을 제외하곤 이렇게 해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절차를 거쳐 쉽게 등단한 이들이 시인입네, 작가입네 하면서 활개를 치고 다닌다. 이는 작가 개인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일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을 위해서는 더더욱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등단했던 70년대만 해도 작가 입문이 참 어려웠다. 문예지의 수도 적었을 뿐더러 실력이 안 되면 꿈도 꿀 수 없었다. 특히 이름 있는 몇몇 문예지들은 추천도 한 번이 아닌 3회 추천을 통과해야만 작가의 자격을 주기도 했다. 그게 문예지의 전통이자 자존심이었다.

 

해서 지금도 그들 문예지로 등단한 작가들은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뿐더러 후배들로부터도 존경과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쯤 돼야 문예지요, 문학인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내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청했던 수강생 L이 휴대폰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고민 끝에 저쪽의 요구를 거절하기로 했어요.

남편은 요즘 세상이 다 그러니 어려운 잡지 하나 도와준다 생각하라고 했지만 제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하네요. 아직 제 실력도 모자라고요. 좀 더 공부를 한 뒤에 제대로 대접을 받으면서 떳떳이 등단하려고 해요.” 이에 나도 흐뭇한 마음으로 문자를 보내줬다. 잘 생각했다고. 서둘지 말라고. 늦게 가도 자기 몫은 남아 있는 법이라고. 그리고 그게 알고 보면 멀리 걸어가게 하는 힘이라고.

 

그렇다! 실력을 갖춰서 떳떳하게 등단하는 것, 그게 신인의 올바른 자세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문예지의 책무요 사명이다. 신춘문예가 아직도 문학 지망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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