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가을입니다

글을 쓰는 관계로 우리 집엔 우편물이 조금 많이 오는 편이다. 잡지사에서 보내오는 월간지와 계간지, 지인들이 보내오는 신간 서적 등등해서 거의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다. 그런데 그 많은 우편물 가운데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편지다. 그러고 보니 편지를 받아 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나는 두 통의 엽서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작은 판형의 시집을 내고 이를 몇 분에게 보냈더니 그 중 두 분이 고맙게도 엽서를 보내준 것이다.

 

‘보내주신 시집『빈 주머니는 따뜻하다』감사히 받았습니다. 손 안에 잡히는 깜찍한 판형에 로맨틱한 서정성·휴머니즘이 이끄는 단장(短章)들에 시의 별미를 맛보았습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합니다.’ 이는 안양의 시인 김대규 선생의 엽서고,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주옥같은 시들이라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시는 짧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저분하면 안 되지요. 깔끔해야지요. 졸시 보내드립니다. 늙으면/누구나 섬이 된다/섬만 섬이 아니고/혼자 있는 것은 모두 섬이다-『섬』’. 이는 오산의 시인 조석구 선생의 엽서다.

 

우편엽서는 가로 9.5㎝, 세로 15㎝밖에 되지 않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제2종 우편물이다. 앞면은 받는 이의 주소와 보내는 이의 주소를 기재하도록 돼 있고, 뒷면은 용건을 쓰도록 돼 있다.

 

그러니 굳이 봉투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고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참 간편한 우편물이다. 단,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있긴 하나 그 또한 특별한 내용이 아니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니 전에는 엽서를 사용하는 이가 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여행자들이 여행지에서 간단한 안부를 전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그림엽서도 그래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오늘날 엽서는 우체국에서 가장 판매가 부진한 우편물이란다. 그만큼 사용하는 이가 줄었다는 뜻이다. 하긴 이메일, 카톡에다가 핸드폰, 문자 메시지 등 다양한 정보 전달 매체가 있는데 굳이 편지나 엽서를 이용할 이유도 없다 하겠다.

 

그런데 왜 초고속 정보 전달 매체에는 ‘감동’이란 게 없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감동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수고와 정성을 들여야만 비로소 감동은 사람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다고.

 

엽서는 꼭 해야 할 말만 적어야 한다. 한정된 지면 때문이다. 긴 장문의 편지와 구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얼마나 부담 없는 인사요 소식 전달인가. 수다스런 말을 읽어 줘야 하는 수고가 없다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올여름은 무지무지 더웠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렸다. 걸핏하면 찾아오던 태풍도 올해는 어디로 갔는지 꼼짝하지 않았다. 뜨거웠던 계절 덕분에 올가을은 더욱 서늘한 계절이 되리라.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질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우리들 눈앞에 와 있다.

 

이런 날, 엽서 한 장 쓰는 건 어떨까.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보지 못한 먼 곳의 지인에게 묵혀 두었던 마음 한 장 전하는 일은 어떨까. 가을이 왔다고. 결코 잊지 않았다고.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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