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죽살이의 철학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명제의 해답을 제시한다기보다는 하나의 방향은 시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건설적 운영과 시스템 속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의 옛 어른들에게는 삶이란 문제는 죽음의 문제와 함께 생각하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므로 인생(人生)이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생사(生死)라고 답하였다. 그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옮기면 ‘죽살이’라는 표현이다. 

즉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자는 논리다. 진정한 용기,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려는 의지, 이 모든 일들이 죽음 앞에서 흔들린다. 죽음 즉 생사를 뛰어넘으면 그 해답은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면 죽음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살 것을 생각하는 옛 어른들의 참 지혜가 진정한 삶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디 그것뿐인가. 죽음을 생각하는 지혜가 생활 속에 그대로 용해되어 있었다. 옛 어른들의 생활구조에는 4대 선대들을 봉사하는 사당(祠堂)문화가 대단히 발달되어 있었다. 산자의 생활 중심도 집안의 사당문화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들고 날 때도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먼저 고하였다.

 

집안에 4대 봉사하는 사당을 두었다는 사실은 죽음을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집안의 큰 어른은 불천위 제사라고 하여 영원토록 제사를 올리는 이상으로 내세웠으며 가문의 큰 영광으로 여겼다. 그것은 하나의 위계질서요, 욕망의 크기를 줄이는 선인들의 지혜였다. 우리말 ‘죽살이’ 즉 죽었다고 생각하면 욕심이 적어져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닌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며 살 수 있게 된다.

 

죽음이 임박하면 욕망이 없어진다. 욕망의 체계가 탈락하면 진실된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기 인생에 대한 마이너스 손익계산서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음의 철학을 뛰어넘어 삶의 철학 죽살이를 실천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사회의 기여도가 높은 사람은 염라대왕도 어쩌지 못한다. ‘여러분 지옥으로 갑시다!’ 라는 목련 존자가 어머니 구한 이야기는 죽음도 지옥도 두렵지 않는 떳떳한 자기 고백이다.

 

주자(朱子)도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남겼다. “새가 죽으려 할 때는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착하다.”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새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슬프게 우는 것이지만, 사람은 궁색한 처지에 놓이면 본디의 성품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하는 말이 착한 것이다”라고 풀어 볼 수 있는 의미 깊은 글이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까닭은 시작과 끝냄을 신중히 하고, 곤궁함에 처하여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짐승은 죽으려 할 때 소리를 가려서 낼 겨를이 없고, 오직 궁색하고 급박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려 할 때 착하게 생을 마치는 생각을 못 하고 오직 슬퍼하고 두려워할 뿐이라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때문에 ‘인격 있는 사람이 죽으려 할 때에는 정도(正道)를 간직하고 격언(格言)을 잊지 않는다’ 라고 설명하여 사람이라면 죽음에 임해서 착한 말을 할 수밖에 없음을 밝혀주고 있다. 우리도 선업(善業)을 쌓아서 죽음 앞에 떳떳한 삶을 살아야 겠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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