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백남준을 오래 살게 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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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상갈동에 가면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을 기념하는 ‘백남준 아트센터(이하 아트센터)’가 있다. 경기도 산하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지난 10월11일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대개 10주년 행사는 매우 뜻깊고 성대하게 치르는 것이 상례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매우 조촐한 내부행사로 치러졌다. 백남준의 명성을 감안한다면, VIP는 아니더라도 주무 장관이나 도지사, 재단 대표 등이 참석하고 역대 관장들과 한국미술계의 중요 인사들의 참여를 기대한 자리였다.

 

하지만 관련 인사들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고 재단의 본부장들과 관장, 그리고 <백기사>라 불리는 원로 몇 분과 아트센터를 거쳐 간 큐레이터들과 직원들, 기념전시에 출품한 작가들과 그들의 동료들이 전부였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야외 기념식은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문화적 관심도와 백남준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재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독일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백남준을 자국의 작가처럼 존경하며 아낀다. 그가 활동하던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선 대중교통 랩핑 광고로 백남준의 이미지를 도시브랜드화하며, 베니스비엔날레의 독일관 대표작가로 출품시켜 황금사자상을 수상키도 하였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엔 아트센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수의 백남준 컬랙션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984년 도쿄도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을 열어 그가 선(禪)사상의 구현을 통해 일본예술의 국제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가로 추앙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거나 무심한 것은 아닐까? 그는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미래의 예술에 대한 새로운 지경을 개척한 거인이다. 이것이 세계가 그를 존중하는 이유이다.

 

아트센터의 별칭은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다. 그의 정신과 예술의 가치를 오래도록 기리며 생동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그를 오래 살게 하려면 그의 작품과 사료를 기반으로 그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재해석 작업이 핵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트센터는 현재 영양실조의 형국이다. 몇 년째 소장품 구입예산이 없어 구입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들어 겨우 4억 정도의 예산을 확보하여 두서너 점 정도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간 작품 가격은 점점 올라 구입예산은 점점 더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할 것이다. 국제적 명성을 가진 예술가의 집이 경기도에 유치된 이유는 그가 ‘수원 백씨’라는 이유로 당시 도지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후 경기도는 이를 지속 발전시키지 못하고 산하재단인 경기문화재단으로 이관하였고, 재단은 뮤지엄 운영에 소요되는 재원의 부담 때문에 오랫동안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재원과 인력이 부족하니 작품 수집은 물론, 전시나 연구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아트센터의 운영은 근본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할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임을 절감한다. 최근 쉔베르크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쓴 백남준의 동경예술대학 졸업논문이 독일미술관의 아카이브에서 개인 연구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수개월간 자비를 들여 이를 필사하여 번역 중이다. 아트센터는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런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세기의 예술의 존재 방식과 의미를 개척한 백남준의 가치와 의미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지만, 조국인 대한민국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백남준만큼의 국가브랜드로서의 경쟁력을 가진 인물이 있을까? 더 늦기 전에 백남준 아트센터를 국립으로 격상시켜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키는 노력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백남준을 오래오래 살게 할 수 있다.

 

김찬동 수원시미술관사업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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