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단원들이 종종 있다.
“이 교향곡을 연주해 본 적이 있어요. 이 곡을 잘 알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해 보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음악의 내면적 요소들이 너무 많아 부끄러움이 증가되어 연주를 앞두고는 오히려 두렵고 자괴감이 심해 어딘가로 숨고 싶은 때도 많다. 최근 NASDAQ(나스닥, 미국 장외주식시장)의 가장 핫한 5대 주식을 ‘FAANG’라고 부른다. 이는 Facebook(페이스북), Amazon(아마존), Apple(애플), Netflix(넷플릭스), 그리고 Google(구글)의 첫 자를 모아 만든 합성어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산업형태의 변화는 이전보다 격하다. 이런 현상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라고 한다. ‘기술혁신’으로서 낡은 것을 파괴, 도태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변혁을 일으키는 것이 경제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죠셉 슘페터가 1912년에 발표한 이론이다. 놀랍게도, 위의 회사들은 10여 년 전만 해도 이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예술분야, 특히 음악계에도 Routine, 즉 일상적이며 통상적인 판에 박힌 접근의 방식을 거부한 창조적 파괴자들로 가득하다. 비발디(1678~1741)는 3악장 형태의 협주곡을 새로운 장르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계절의 자연현상을 섬세하게 묘사한 걸작 ‘사계’를 작곡하였다. 베토벤(1770~1827)은 교향곡의 이전의 미뉴에트 Minuet(우아하고 느린 춤곡의 형태)를 파괴하고 템포가 빠르고 격렬한 리듬, 급격한 변화를 투입하는 스케르초 Scherzo를 도입하였다. 차이코프스키(1840~1893)는 2류 음악으로 취급되던 발레음악에 직접 손을 대어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을 남기며 이 분야를 일류로 격상시켰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죽음’이라는 인류의 숙제를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표현하며 기피하는 불편한 주제를 청중석 정면에 던지는 충격을 창조하였다. 스트라빈스키(1882~1971)는 ‘봄의 제전’ 초연 당시 청중들이 야유를 퍼붓고 공연 중 퇴장하는 모욕을 당했지만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표현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에 심포니 송이 연주하는 리게티(1923~2006)의 ‘종말의 신비’는 연주자들이 극한의 악기연주를 포함하여 괴성을 지르고 소프라노가 무대를 뛰어다니며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음역에 도전하는 퍼포먼스를 한다. 당시의 평가는 부정적이었지만 오늘날 그들의 음악에 뛰어난 평가를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대한민국의 음악인들이 이런 세계적 조류에 앞장서는 것을 우리 음악계와 애호가들은 응원의 박수와 애정을 보내야 한다. 익숙함은 자칫하면 게으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노련함은 특별한 재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경험을 자랑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더 아름답게 영입하는 것이 창조의 시작이다. 내일 아침, 나의 하루의 시작을 자극해 줄 모닝커피의 그 진한 향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드는 것이 즐겁고 흥분되는 것을 routine으로 삼는 젊은이들이 많을 때 우리의 미래는 밝다.
예술활동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현상유지’이다. 음악의 고귀한 본질은 엄숙하게 유지하되 그 표현은 열정과 혁신의 정신으로 매번 새롭게 그리고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창조적 파괴이다. 한 번뿐인 인생, 그 짧은 축복의 기간을 현상유지를 하며 보낸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후회할 일인가?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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