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유능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심포니 송은 다양한 작곡가들의 새롭게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낯설지 않다. 팬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신기하게 여기고 감사하다는 인사가 섞인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쪽과 이와는 반대로 불편한 표정과 함께 소음에 가까운 이런 음악들을 극히 혐오한다는 두 부류로 극명하게 나뉘는 것 같다.
나의 연주에서 현대음악이 차지하는 비율은 5%도 되지 않는다. 21세기 청중들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등 수백 년 전에 작곡된 음악을 귀에 익어 친근하다는 이유로 선호한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듣기 원치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편한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산업개발의 목표가 되어왔다. 일부 청중들은 예술활동도 그런 범주에 속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새로운 작곡가와의 최소한의 음악적 만남을 거부하고 소위 ‘자주 들어서 듣기 편한 음악’을 우리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의 귀에 지극히 익숙하며 연주할 때마다 늘 새로운 모차르트와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도 18세기 당시, 새로운 교향곡을 작곡하여 연주하면 그 시대의 현대음악이 되었다. 이들의 음악이 꾸준히 연주되어 오늘까지 전수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음악사는 지금처럼 이어져 가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우리가 연주하지 않으면 이들의 음악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조심스럽게 현대음악을 내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에 넣는 시도는 청중들에게 부담되는 숙제를 주지 않으면서도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오케스트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주요 오케스트라들의 움직임은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재정을 투자한다. 내가 지휘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 등의 방송교향악단들은 현대음악의 녹음과 연주에 적극적인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시도를 하지 않는 오케스트라나 음악인들은 역사적 소명에 소홀한 것이 아닐까?
이런 서양음악의 흐름은 우리보다 음악적 콘텐츠와 기반이 심히 열악한 태국에서 이미 14년 전부터 실행하고 있다. 국가와 각종 음악단체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일체가 되어 자국의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세계적 작곡가와 연주자들을 초청하여 이들을 후원하는 최상의 방법인 신작 연주와 음원을 만드는 축제를 만들었다.
베토벤 한 명이 세계의 역사를 지배하듯, 한 나라의 우수한 작곡가 한 명을 배출하는 것은 실로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국가적 유산이 된다. 같은 맥락의 움직임은 내가 수년간 지휘하고 있는 상하이 국제 음악제에서도 볼 수 있다. 과연 대한민국은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어디에 서 있는가? 축제와 격려는 어렵더라도 우선,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오케스트라들이 의무적으로 한 연주에 그리 길지 않은 현대음악 한 곡이라도 연주하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과연 이들은 누구를 위하여 음악을 울리는가?
나는 이번 방콕 방문을 통해 흔한 관광객의 관점이 아닌 예술인의 눈으로 바라본 태국인들의 꾸미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과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천연적 미소에 감탄하였으며 최첨단 서양예술문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참 곱고 감사했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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