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사건은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이다. 현재 우리 자신을 아무리 해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거나, 반대로 너무나 힘든 고통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은 꿈꾼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모든 것이 변해있기를 말이다. 언젠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드라마의 출생의 비밀이 낯설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된다. 만약 우리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다면 단번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 ‘자신’의 현실을 부정한다면, 기억상실은 ‘타자’의 현실을 부정한다. 기억상실을 통해 자신과 가까운 타자의 삶의 조건을 이상적으로 변화시켜 자신의 삶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지금은 별 볼 일이 없거나 쓸데없는 사람처럼 보이나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게 되면 원래 높은 지위에 있거나 고귀한 출신이었던 사람으로 나타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일시적으로 기억을 상실하지만 언젠가 다시 기억을 회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는 일정한 플롯을 유지할 수 있다.
영국 철학자 로크는 ‘나’ 또는 ‘자아’는 기억의 동일성에 의해 확인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억을 상실한 사람은 과거와 단절되고 동일한 사람이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기억을 상실해도 동일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 동일한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는 기억상실증이나 알츠하이머 등의 병명이 있다. <메멘토>(Memento)라는 영화에는 아내가 살해당하던 날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10분 전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복수를 위해 기억의 편린들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기록하지만 결국 진실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한다. 그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기고 기억하기 싫은 것을 삭제하여 왜곡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경우에도 우리의 기억들이 변형되고 왜곡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사람은 의학적 기억장애나 기억상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나이가 들면 기억에 장애가 생기고 기억을 상실하는 경험을 갖게 된다. 망각이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 나의 죄에 대해 용서를 해주었다고 해도 나 스스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울 때가 있다. 기억이 덫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비록 구원받기는 했지만 남은 죄를 정화해야 하는 사람들이 연옥에서 단련을 받고 마지막에 정화의 산의 꼭대기에 있는 에덴동산에 도착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 레테의 강이 있는데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연옥 영혼들이 가진 죄에 대한 기억을 모두 씻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망각은 일종의 축복이다.
그리스어로 기억상실은 암네시아(amnesia)로 ‘기억(mnesis)이 없다’는 뜻이고, 망각은 레테(lethe)는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이 레테의 평야에서 강물을 마시고 지상에 있었던 일들을 잊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망각’을 뜻하는 레테와 대립적인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리’를 의미하는 알레테이아(aletheia)이다. 망각하지 ‘않는’ 것, 감춰지지 ‘않는’ 것이 바로 진리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이미 진리를 알고 있고 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산파술을 통해 다시 기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스인들은 ‘기억’의 여신(Mnemosyne)이 무사 여신들의 어머니라고 한다. 무사 여신들은 모든 학문과 예술의 신들이다. 따라서 인간의 기억은 일종의 약이기도 하고 독(pharmakos)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도 될 것을 기억하는 것이 문제이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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