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존립이유는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공공선을 달성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론적인 정의와 달리 국가가 나서서 저지른 폭력적 행위들은 역사의 이면에 점철되어 있었다.
전쟁과 권력남용의 폭력, 사법적 살인, 의문사, 고문과 레드 콤플렉스를 이용한 억압… 그로 인한 고통과 희생의 상처는 시대에 깊은 트라우마가 되어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역사에서의 국가폭력을 살펴보고자 함은 고통스러운 진실을 밝힘으로써 과거청산의 과정으로, 그것이 남긴 트라우마를 넘어선 대화합의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과목은 구체적 사례들을 추적하고 분석하는데 특별히 그 폭력으로부터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행위와 간접폭력으로 인한 피해 등이 포함된다. 이를테면 지난 1970년대의 대표적인 사법살인사건이었던 인혁당 사건과 같은 직접폭력과 컨텍터스 같은 노조파괴 용역회사를 이용한 간접폭력이 해당된다. 모두 국가의 이름으로 또는 국가의 묵인과 방조 하에 벌어진 행위들이다.
그러나 강의의 특성상 우리 현대사의 불편한 진실에 마주한 학생들에게 자칫 국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는 것이 늘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항상 결론은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대화합을 해 나가자는 쪽으로 내고 있다.
국가폭력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여 그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완성해 나가는가를 고민하는 강좌인 것이다. 수업 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폭력보다는 평화이고 분열보다는 화합이고 과거보다는 미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앞에서는 이러한 미사여구가 모두 소용없게 되었다. 분명 세월호의 침몰은 국가가 저지른 직접적인 폭력행위가 아니었다. 사기업의 기업활동 중에 발생한 참사였다. 그러나 사고 발생 이후 드러난 모습들은 거대한 국가폭력 그 자체였다.
해피아도 대표되는 관료집단과 이익집단들의 유착, 이를 전혀 감시하지 않은 감시체제, 사령탑이 부재해 우왕좌왕하는 구조본부, 정부의 발표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언론들이 바로 세월호 참사의 공범들이자 그대로 국가가 저지른 간접폭력이었다.
수장되는 아이들 앞에서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은 아무리 탓해도 이미 늦은 뒤였다. 해경의 이상한 대응과 무대책 그리고 뒤늦은 대통령의 위로도 소용없었다.
온 국민이 지금 정신적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 꽃다운 우리들의 미래가 차디찬 바닷물에 잠기는 동안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다는 무력감이 자괴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국민 모두가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까지 한다.
찬란한 오월.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오월이기도 하다. 이 아픔이 극복되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이번이 제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마지막 폭력이었으면 말이다.
임형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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