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는 사회 내의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최고의 장치가 정치인데 우리 사회에서 정치가 역할을 상실한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대한민국 정치 일번지인 여의도에는 거수기 정당과 무능력 정당만이 있어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들에게 행복을 주기보다는 갈등과 상쟁이 증폭되기만 했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청와대의 통치뿐이었다.
통치를 정치로 바꾸기 위한 오랜 투쟁이 곧 우리 사회의 민주화 과정이었고 어느 정도 그것이 달성되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오늘 다시 돌아보니 도로 통치만이 남아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청와대는 법치주의를 주장하지만 법치주의란 무조건적인 법에 의해서 통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법 이전에 사회적 합의가 전제된 뒤 그것의 집행과정에서는 법에 의하여 운영된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정치의 영역이 먼저라는 것인데 금년의 정치는 역할 실종이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한 해의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낸 사자성어가 교수들에 의해 선택된다. 금년도의 사자성어로는 ‘도행역시(倒行逆施)’가 뽑혔다. 정치가 순리를 따르지 않고 그에 거역되는 행동만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오자서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죽은 왕의 무덤을 파헤쳐 매질을 했다는 일화에서 나온 성어이다. 아무리 부친의 원수를 갚는 이유라지만 이미 죽은 자를 해코지 하는 행위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로 순리에 역행하는 행동만 한 2013년도의 정치에 대한 냉철한 평가이다.
복지를 주요공약으로 들고 나와 승리한 박근혜 정부는 곧바로 기초노령연금을 후퇴시켰다. 이에 반발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를 보면서 정부의 ‘경제민주화’ 구호 실종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면 지나친 것일까.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점차 실체로 들어나고 있자 그 수사의 총책임자와 수사담당검사를 솎아 내듯이 내모는 모습에는 실망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을 원칙이라는 이름하에 강경일변도로 해결하려는 리더십을 보면서 교수들은 도행역시를 상상했을 것이다.
대학생들이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시냐고 묻고 있다. 학생들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슬픈 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들 젊은이들에게 누가 이런 좌절감을 가져다주었는가. 어쩌다 안녕이란 기쁨의 표현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현이 되었는가 말이다.
무언가 잘 해보려고 했음에도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은 정말로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데 알아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모에 박근혜 정부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즐겁다고 할 정도의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국민들과의 소통을 요구하자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자랑스러운 불통 대통령이 되겠다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외교적 성과로 어수선한 내치를 가릴 수는 없다. 대학생들이 안녕들 하시냐고 묻는 이유를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그것이 리더십이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송구영신하시기 바란다.
임형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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