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멍첨지 세상

돈의 위세가 대단하다. 재물 있는 곳에 마음 간다는 말도 있지만, 오로지 돈만 숭상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돈이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이 있다. 모두들 멍첨지가 되고 싶어 안달인 모양이다. 기업은 돈 놓고 돈 먹기 하고 있고, 사람들은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대박’이라는 말을 아무 데나 내놓고 쓰는 이들이 많기도. 대박이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대박은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행운, 아니 요행이다. 마침내 모두들 요행을 바라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돈 놓고 돈 먹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이 대학에서도 벌어진다.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일까? 철학과는 ‘돈이 안 되니’ 폐과하고, 영문과를 제외한 불문과 독문과 등도 ‘인기 없으니’ 점차 없애고, 기초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의학도 돈벌이 되는 성형의학 계열엔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몰리고, 외과나 산부인과 같은 전공은 막노동이라서 싫다 한다. 그 틈에 정신과는 성업이라 한다. 하긴 다들 미쳐 돌아가니 그럴 만하다.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학기 초에 어느 대학 문예창작과 신입생들에게 특강을 했다. 그 학교 문예창작과는 진즉 문예창작과 앞에 ‘미디어’ 자를 붙였다. 취업을 생각해서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보니 야간이 없어졌다. 문예창작과 같은 곳은 취업률이 낮으니 야간 정원을 빼서 ‘세무과’를 만들었다 한다. 이러다 아예 주간도 없어질 것 같은 예감이 엄습한다. 그런 우려는 전국의 대학 여기저기서 보인다. 무용과는 댄스과로, 체육과는 레저스포츠과로, 문예창작과는 이미 스토리텔링과나 디지털문예창작과 혹은 미디어문예창작과가 된 세상!

연극과의 신세도 마찬가지. 예전엔 흔히 연극영화과라 했는데, 이젠 연극은 떼어내고 영화과만 살아남는 듯. 그나마 영화는 예술보다는 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학의 기능이 이제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직업인을 양성해내는 학원 같은 곳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기초학문과 예술을 말살하고 오로지 자본주의의 부속품인 기계 인간을 만들자는 속셈이다. 기계 인간은 자신이 자본주의의 노예인 줄도 모르고 생각 없이, 무조건 열심히 산다. 기업인이나 위정자들은 그렇게 생각 없이, 무조건 열심히만 사는 사람이 다루기 쉽다.

지금 인문학이라는 말이 아무 데나 붙는다. ‘경영의 인문학’, ‘거리 인문학’, ‘생활 인문학’… 등. 다 좋다. 그런데 인문학이 모든 것에 들러리를 서는 느낌이다. 사실 인문학은 자신의 행위에 적당히 문사철 당의정을 입힌 게 아니다. 또 엉뚱한 말과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하는 데 써먹는 게 아니다.

오만 인간들이 다 나서서 자신의 말과 글 모두를 인문학적 상상 내지는 실천이라고 강변한다. 이러다가는 경찰이나 검찰도 자신들의 맹목적인 충성을 ‘인문학적 충성’이라 할지 모르겠다. 바로 보지 못하고 바로 말하지 않는 건 인문학이 아니다. 나를 따르라! 나만이 옳다! 그건 인문학이 아니고 돌격 명령이다.

나는 인문학은 벌거벗은 임금을 보고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는 ‘동심’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동심을 들먹인다. 진정한 인문학은 실체를 정확히 보는 것. 정확히 본 것을 정확히 말하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도 오로지 돈에 눈이 먼 자들의 돈 놓고 돈 먹는 짓거리 때문에 일어났으리라 여기는 게 나만의 생각일까? 여객선 회사는 물론 관련 기관도 그저 눈앞의 돈에만 매달렸으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을까?

 

박상률 작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