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지난 대선 때의 공약사항을 아무도 안 지키고 있을 때 안철수 의원은 약속을 지키는 정치가 바로 새정치라며 고군분투했었다. 그가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할 때도 이것은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수차에 걸쳐서 공언을 했다. 그러나 지난 주 또 다시 철수했다는 비난을 감수하며 그는 이 약속을 거두어 들였다.

이것을 두고 정치적 아마추어인 안철수 의원의 패배, 이미 기성 정치권에 물들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예견된 출구전략이었다는 등 말이 많다. 분명 안 의원의 패배인 것은 틀림없다. 기성 정치권의 철옹성 같은 강력한 기득권 사수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정치에서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과 같다고 한다. 한국 정치계의 인물 면면을 보면 별로 존경할 만한, 아니 자녀들에게 귀감으로 삼아라하고 권할만한 정치인이 거의 없다. 그만큼 한국 정치계는 존엄이 상실된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랬기에 지난 대선 때는 후보자들 모두 기초선거의 무공천을 공약으로 내세워 놓고 막상 지방자치 선거가 돌아오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공천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를 확인이라도 시켜 주는 듯이 말이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간에 국민들에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그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어서 죄송하다는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공약을 직접 내 걸고 국민에게 약속했던 대통령이나 야당 후보나 모두 뻔뻔하기는 매일반이었다.

그런 가운데 외롭게 ‘그것은 아니다’라며, 기초선거의 무공천은 민주주의 발전의 시금석이라며 안 의원만이 공약을 지켜야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 마저도 결국 기성 정치와 타협하고 국민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했다.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당장의 6·4 지방선거에서 불 보듯 뻔한 야권 후보의 난립과 혼선으로 인한 여당의 압승이라는 예상 앞에 선 당원들의 거센 항의에 그의 외침은 가녀린 마지막 잎새와도 같았다.

그의 후퇴를 두고 여당의 비난은 평가할 가치도 없다. 대선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한 자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를 동등 반열에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이 확산되는 것이다.

그동안 안철수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특히 젊은층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던 안 의원의 후퇴로 인해 그 역시 마찬가지이니 한국 정치는 희망이 없다는 인식이 정치 무관심층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는 너무난 많은 문제를 앉고 있다. 특히 기초단위로 가면 더욱 한심한 수준이기도 하다. 기초단체 의원들이나 단체장들은 공천비리, 줄 세우기, 지방자치의 중앙예속 등 부정적 측면이 너무나 많았다.

이제 6·4 지방자치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장에 기초선거의 무공천은 없었던 이야기가 되어 여야 간의 불공정한 경기 규칙은 사라졌다.

향후 기초선거의 무공천 문제는 입법을 통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과제로 남겨졌지만 문제는 당장의 선거에 임할 국민의 마음가짐이다. 생각 같아서는 이번 선거에서 무공천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그들을 표로서 심판해야겠지만 여야당 모두가 해당하니 그럴 수도 없다.

그래도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누가 조금이라도 덜 나쁜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정치를 혐오는 자, 결국 그 혐오의 정치를 가질 것이다’라는 토마스 만의 경구를 되새겨 보는 시점이다.

임형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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