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어느 새터민의 ‘남한생활 충격기’를 듣고 배꼽이 빠져라 웃었던 적이 있다. 남양주 인근의 2차선 국도를 차로 달리다 한 음식점 간판을 보고 어찌나 기겁했던지 얼굴까지 벌벌 떨렸다는 것이다. 새빨간 바탕색의 커다란 입간판에는 ‘할머니 뼈다귀 해장국’이라고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국도를 달리면서 간판들을 눈여겨 보는 습관이 생겼었다. 음식점 입간판들은 위압감을 줄만큼 커다랗고, 왜 색깔은 그토록 자극적인 빨간색을 써야 하는지…. 차도까지 바짝 다가선 돌출간판은 운전에까지 위협을 주고 있다. 우리가 평소 무심코 다니는 길들은 무분별한 입간판, 제대로 뒷정리되지 않은 공사현장, 적재불량으로 도로에 쏟아져 있는 각종 건축부산물·재료, 로드킬(Road Kill)을 당한 불쌍한 동물들의 사체, 축축 늘어져 있는 전선 등으로 오염돼 있다. 여기에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폭주’ 화물차들이 남긴 흉물스런 타이어 자국과 인권문제까지 들먹이게 만드는 ‘착하고 예쁜 베트남 처녀, 도망가지 않는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따위의 플래카드까지 가세하면 더 이상 한적하고 예쁜 시골길, 운치 있는 드라이브 코스가 아닌 난장판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유럽이나 일본 등지를 가보면 거리와 도로가 깨끗한데다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을 받는다. 우선 자극적인 간판이 없기 때문이다. 도로변 간판의 크기, 색깔, 설치 장소 등에 대한 엄격한 규제는 도로환경과 미관에 필수적이며 가장 기초적인 요소다. 길을 되찾자. 아름다운 길은 어느 한가한 휴일의 오후, 가족이나 친구 또는 연인 등과 함께 느긋한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보낸다. 빨리, 편하게, 곧게 가기 위한 기능과 용도로만 도로를 생각해선 곤란하다. “시골길, 과수원길, 고향 가는 길” 등이라고 말할 때의 그 정감(情感)어린 ‘길’을 우리의 도로에 구현해 보자. 당장 그 괴물 같은 간판들만 고쳐도 길의 아름다움은 ‘확’ 살아날 것이다. ‘지나다니기 위한 선(線)’을 ‘달리며 즐기는 풍광(風光)’으로 바꾸기 위해 작은 실천부터 시작해 보자. /박용철 한국농촌지도자 경기도연합회장
오피니언
박용철 한국농촌지도자 경기도연합회장
2007-03-2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