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풍 81같은 행사가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기억이 새롭다. 사회갈등이 증폭되던 국정 혼란기에 정통성이 결여된 채 등장한 제5공화국은 집권하자마자 여의도 뙤약볕 아래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열었던 기억이 난다. 이 국풍은 원래, 주남, 소남, 패풍 등 15개국 민요 160편을 수록한, 중국의 고전 ‘시경(詩經)’ 제1편의 제목인데, 신군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희석하고 여론 호도책으로 실시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국가는 예술문화의 지원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경제적 공공재로서의 의미를 넘어 예술문화의 창의적 정신활동이 국가혁신을 이뤄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며 국가 병리적 문제도 해결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의 향상과 복지를 완성하는, 이 세가지를 최후의 종착점으로 보아왔다. 이는 예술문화가 갖고 있는 효용과 기능이지만 국가의 문화정책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 정치논리가 개입시는 이같은 정책 수립이 어렵고 경제적 논리와 맞물려 정책의 우선순위를 달리하는 목표인 국민통합이란 의미나 사회개발이란 목표로 밀려난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정책을 혹자는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이러한 활동들을 바람직하게 하기 위해 정부가 결정하는 공적인 생각 정도로 풀이하면 좋을듯 싶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이제는 국가의 정체성을 문화가 이끌어 가는 근본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지 역대 문화 담당 장관 중 순수한 예술인은 6공 시절의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현 참여정부에 들어 이창동 장관, 지금의 김명곤 장관뿐이다. 프랑스의 앙드레말로 문화부장관이 제2차 세계대전후 10년 동안 재직한 것과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지금 선진국이라고 하면 경제선진국을 일컫는데 경제선진국은 문화선진국과 일치한다는 면이 중요한 현실이 됐다. 현대사회에서 음악이나 미술 분야에서 경제선진국인 미국을 문화선진국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는가 말이다. 우리의 문화정책은 창의성 기반 속에 가치를 가진 문화 경쟁력을 가지고 진정한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국가경쟁력을 갖춰야 함은 자명하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FTA 등 각국의 통상압력을 지역·세대·국제간 균형문화발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혜안과 유연한 지혜도 가지고 있어야겠다. 그러기에, 지금에 ‘문화의 힘’이 절실한 이유가 그 연유이다. /이규찬 장안구민회관 프로그램 운영차장 공연기획자
오피니언
이규찬 장안구민회관 프로그램 운영차장 공연기획자
2007-02-0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