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의 매력 ‘판타지’

이규찬 수원장안구민회관 프로그램 운영차장 공연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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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지난 94년 6월 호암아트홀에서 보았던 뮤지컬 첫 작품은 남경주가 출연했던 ‘브로드웨이 2번가’이었다. 출연자들의 경쾌한 탭댄스는 둘째 치고라도 다소 과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연기하다 노래하는 꼴이란 당혹스러움과 얼토당토않음이 공연을 신나게 만들었다. 이후 1년이 지난 95년 5월 영국 런던 웨스트민트 코벤트가든에서 보았던 ‘미스사이공’은 어떠했는가? 머리 뒤통수를 두드리며 날아오는 헬기의 굉음과 그 스케일 속에서도 여주인공의 절절한 “I Still Believe”의 음률은 지금 아직도 달나라에 다녀 온 어린왕자처럼 설렘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마도 공연에서 느끼는 판타지에 빠지려는 관객들의 마음 자체가 그만큼 적극적이었기에 필자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수많은 공연을 접하는 필자에겐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살아있는 자가 꾸는 꿈은 희망”이란 말 속에 그 꿈은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80년대 영국 출신 록그룹 E.L.O의 ‘Ticket to the Moon’ 제목처럼 공연이란 티켓을 들고 달나라로 떠나는 판타지여행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조명이 꺼지고 막이 오르면 자신이 속한 현실에서도 그 판타지를 망치려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무대 뒤의 모습은 사실 가관이지만 극장 안에 있는 많은 관객들은 공연시간 중에는 무대라는 곳이 범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으로 보여 진다. 그러한 판타지에 빠지려 많은 관객들이 기꺼이 스스로를 맡겨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니 말이다. 때로는 이런 판타지에 간섭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눈앞에 보여 지는 모습이 공연이란 것을 끊임 없이 인식하게끔 해주지만 이것은 거의 예외적이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어떻게 하면 공연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눈 앞의 인위적인 환상을 현실로 받아들여 완전히 몰입할 지를 고민한다.

공연을 하는 시간만큼은 나의 판타지가 이뤄지는 시간이다. 그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스스로의 삶을 잃어버린다. 때로는 관객들 스스로 본인의 삶을 공연 속에 오버랩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공연을 통해 후천적으로 자기 스스로의 삶을 객관화하려 한다. 공연 속에서 관객들은 스스로 관조자가 되기도 하고 창조자가 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다. 공연이 비록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관객들의 선택에 의해 보여준 공연 자체만으로도 판타지가 갖는 설렘이고 기쁨이다. 필자 또한 주변에서 느끼는 많은 관객들과 배우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보면서 스스로의 판타지 여행을 즐긴다. 내 스스로 관조자와 창조자가 되는 과정을 공연에서 찾는 게 행복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찬 수원장안구민회관 프로그램 운영차장 공연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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