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그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두개 대륙 이상에서 창궐하여 세계적 유행(pandemic)이라고 부른다. 이 판데믹의 어원을 살펴보았더니 목동의 신(牧神) 판(Pan)과 관련이 있었다.
판은 숲과 들판, 양떼와 양치기의 신으로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거나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한밤 중에 들판이나 어두운 숲을 지나갈 때 괜히 공포스러운 느낌이 드는 건 판의 장난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기에 ‘공포(Panic)’란 말이 생겼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나타났으므로, ‘Pan’으로 시작하는 말은 ‘모두(all)’의 뜻도 갖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역병 판데믹(Pandemic)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그의 외모가 흉측한 이유는 목동과 암염소 사이에서 태어나 반인반수(半人半獸) 종족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상체는 인간이나 하체는 염소이며 이마에는 조그만 뿔이 나 있고 염소처럼 매부리코에다 귀는 뾰족하며 몸에는 털이 무척 많았으므로 혐오감을 주는 인상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 BC 43 - AD 17)가 저술한 변신이야기(Metamorphoses, AD 8)를 보면, 판은 어느 날 들판에서 나무의 님프인 쉬링스(Syrinx)에게 반하여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미 순결을 맹세한 그녀는 무서운 외모를 한 판을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다 강가에 다다랐다. 그가 그녀를 따라잡자 그녀는 자매인 물의 요정에게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그가 그녀를 덮쳐 껴안는 순간 물의 요정이 그녀를 갈대로 만들어버렸다. 실망하기 짝이 없게 된 판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 한숨이 쉬링스가 변신한 갈대 속을 통과하자 아름다운 소리가 났다. 판은 그 소리를 필시 그가 사랑하였던 그녀의 슬픈 목소리라고 생각하여 그는 갈대를 길이를 다르게 잘라 다발로 묶어 피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Syrinx’는 판이 불던 피리 판플룻(pan-flute)을 뜻하게 되었다. 반면에 이 Syrinx가 복수형이 되면 갈대와 같이 속이 빈 주사기(Syringes)가 되므로 신기한 언어의 기원을 볼 수 있다. 음악과 의학에 깊숙이 연루된 판이 오늘날 판데믹의 이름으로 우리를 공포에 떨고 만든다는 사실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이 판을 세계의 문인들이 즐겨 찬양해서 밀턴은 대자연의 화신으로 그렸고 쉴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찬하는 중에 판을 언급하였고 기독교 시인 배리트 브라우닝 부인은 ‘죽은 판(The dead Pan)’이라는 시를 지어 고대 신들의 죽음을 알렸다. 전설에 의하면 판은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나서 올림프스 신들이 암흑세계로 쫓겨날 때 죽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며칠 전 해외 뉴스에서, 각자의 집에 고립되어 있는 중에, 베란다에 나와서 노래를 하거나 플루트를 불어 역병의 공포에 시달리는 이웃들을 위로하는 연주자들을 보았다.
나도 김소월의 작시 ‘엄마야 누나야’를 불러주고 싶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그의 시에 나오는 ‘갈잎’은 ‘갈댓잎’이니 요절한 소월도 생전에 오비디우스의 글을 읽었으며, 강변의 갈대가 스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것을 의심치 않는다.
빠른 시일 안에 치료제 뿐 아니라 시린지(syringes)에 담긴 백신이 개발되어 인명을 구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