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넘어지더라도 일어서서 다시 앞으로 갈 것. 꽃, 나무, 바다, 하늘, 애인, 햇살 같은 희망적인 어휘는 버리고, 침묵, 허무, 술잔, 절망, 이별, 권태 같은 쓸쓸한 어휘에 익숙해 질 것. 어깨는 바로 펴고 시선은 전방을 향한 채 걸을 것. 닳은 구두 뒤축을 탓하지 말고, 한 벌 뿐인 양복을 탓하지 말고, 양심을 탓하지 말고. 빈주머니를 탓하지 말고 가급적 큰 소리로 웃을 것. 그러다가 불면에 잠 못 이루고 남몰래 술잔을 기울이는 밤이면 그때는 뒤를 돌아다볼 것. -김세완의 불혹을 부록처럼 살아냈다. 한 번뿐인 인생 뭐 있냐고, 생업을 담보로 술 퍼먹고, 누군가의 피 파먹고, 위태롭게 불혹의 강을 건너왔다. 전란에 불타 재건한 신라고찰 도피안사에 와서 실패한 불혹과 불혹이후의 삶에 대한 반성문을 전설처럼 살아남은 국보 35호 비로자나불전에 올린다. 참회마저 형식의 업보가 되는 그늘진 봄날에.
오피니언
이해균
2013-04-29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