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넘어지더라도 일어서서 다시 앞으로 갈 것. 꽃, 나무, 바다, 하늘, 애인, 햇살 같은 희망적인 어휘는 버리고, 침묵, 허무, 술잔, 절망, 이별, 권태 같은 쓸쓸한 어휘에 익숙해 질 것. 어깨는 바로 펴고 시선은 전방을 향한 채 걸을 것. 닳은 구두 뒤축을 탓하지 말고, 한 벌 뿐인 양복을 탓하지 말고, 양심을 탓하지 말고. 빈주머니를 탓하지 말고 가급적 큰 소리로 웃을 것. 그러다가 불면에 잠 못 이루고 남몰래 술잔을 기울이는 밤이면 그때는 뒤를 돌아다볼 것. -김세완의 ‘불혹’을 부록처럼 살아냈다. 한 번뿐인 인생 뭐 있냐고, 생업을 담보로 술 퍼먹고, 누군가의 피 파먹고, 위태롭게 불혹의 강을 건너왔다. 전란에 불타 재건한 신라고찰 도피안사에 와서 실패한 불혹과 불혹이후의 삶에 대한 반성문을 전설처럼 살아남은 국보 35호 비로자나불전에 올린다. 참회마저 형식의 업보가 되는 그늘진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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