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를 지나 도피안사 가는 길가에 그리스 신전 같은 폐허의 구조물하나가 섬떡하게 다가온다. 이념의 푯대가 된 뼈만 남은 건물은 광복 이듬해 새워진 것이라고 하니 일제치하에서 간신히 건져낸 산천을 외세의 신탁에 스스로 동강 내어 동족상잔을 감행한 증거물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개성공단의 폭거는 이념이 민족성을 사멸케 하는 뼈아픈 과오다.
625 전 철원군 노동당사였으나 폭격에 소멸된 철원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러시아식 건물은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진 계획건물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전쟁의 상혼이 근대문화유산이 되는 아이러니는 아직도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의식의 분열을 가중시킨다.
이데올로기라는 무서운 정신의 분단, 무상이 무괴(無愧)로 전환되는 순간의 절벽 앞에 가슴 치며 개탄한다. 가로수를 대신한 노변의 황무지가 연둣빛으로 물든 찬란한 신록의 봄, 드넓은 철원평야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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