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의 동의어는 느림의 미학, 안개 낀 새벽에 청보리와 노란 유채가 원색의 대비를 이루며 출렁이는 청산도에 마음을 내렸다. 천천히 옮기는 발걸음이 우주에 온 기분이다. 푸른 바다에 찌든 마음을 토해내어 헹군다. 물질하는 해녀들의 꿈틀거림도 싱싱하고 전복 맛은 더없이 구수하다. 오랜만에 동행한 M이 달래 캐기에 분주하다. 슬로시티 길을 한 바퀴 돌고 햇살을 마당가득 들여놓은 한 할머니 집에 들렀다. 어머니를 닮은 할머니는 난데없는 불청객을 마루에 걸터앉히고 커피를 내왔다. 빈속을 채우는 달달한 맛이 장기의 트랙을 도랑물처럼 천천히 흘러내린다. 장광위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봄볕이 졸음을 몰고 온다.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 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이성복의 숨길 수 없는 노래를 암송하며 봄길을 걸었다. 황사가 지나간 밭에서 나물 캐는 여인, 파릇한 마늘밭도 싱그럽고 주말농장도 분주하다. 이곳으로 이주해 생태습지를 지키고 주민들을 교육시켜온 도토리 교실의 임종길 선생, 그의 노력으로 칠보산은 건강을 잃지 않고 있다. 귀로에 채식 뷔페 집을 들렀다. 봄 향기 물씬한 나물들이 내 안을 가득 채운다.
춘설까지 내린 지루한 추위를 떨치려고 남쪽바다로 간다. 박경리 기념관, 김춘수 유품전시관, 전혁림 묘소 등의 이정표가 예향 통영을 알린다. 윤이상의 그로테스크한 동양의 신비가 한 맺힌 부정형의 음표가 되어 가슴 적시고, 우체국 창문 앞에서 편지를 쓰고 가는 유치환의 환영도 산 매화 흐드러진 언덕위에 지나간 청춘처럼 투영 되었다. 욕지도 가는 뱃길에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이 돌담장에 널어놓은 옥양목 홋청 처럼 눈부셨고, 섬 산길은 봄볕에 익은 갈대들이 사각대며 쑥과 진달래와 정숙한 대비를 이뤘다. 쪽빛 물에 부유한 섬들이 꼬리 흔들며 파닥이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이곳이 진정 꿈의 고향 동양의 나폴리다.
어제 친구가 이르게 갔다. 영안실에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받은 그가 몸을 태울 시각 경주 남산에 올랐다. 혈류를 막은 다량의 알코올이 산행을 무겁게 하지만 죽음을 다녀온 따뜻한 양광은 잊지 않고 봄의 발효를 알린다.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는 음식물처럼 세월은 은밀히 변했고 죽지 않는 석탑들만 장기를 통과한 씨앗처럼 남아 천 년을 버티고 있다.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의 용장사지와 마애불, 석탑들을 지나 금오산 정상에 오른다. 남산을 마주한 망산 뒤편 산들이 신라여왕들의 젖무덤 같은 부드러운 곡선을 봉긋 세울 때, 삼릉을 둘러싼 빼곡한 노송들이 고개 숙인 남자처럼 남아있는 정력의 분출을 애써 갈구하고 있다.
청평 호반을 지나자 물안개 너머로 보이는 여러 겹의 산이 수묵 선처럼 부드럽게 다가온다. 젊은 날의 낭만적 풍경은 아직 변치 않았는데 남이섬 가는 배 위에는 온통 동남아인 일색이다. 개인이 만든 섬답게 홍보지에도 나미나라공화국이다. 잣, 은행, 편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추억의 도시락을 파는 곳이 있다. 계란 프라이를 품은 양은 도시락이 커다란 난로 위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고, 김치 전 맛도 기억의 회로를 타고 빠르게 돌아왔다. 도시락을 흔들어 먹는 옆 자리의 태국 아가씨들이 정겹게 웃는다. 커다란 메타세콰이아 아래 배용준 동상을 안은 중국 아가씨들의 포즈가 행복해 보이는 하루, 이 아름다운 섬이 한류의 메카로 영원하길.
찬 바람 내리는 마당에 들어서자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고 가랑잎 쌓인 널따란 울 밖 풍경은 겨울 끝의 서정을 더했다. 정암이 식재했다는 500년생 보호수(느티나무)가 두 그루나 있고 뒤란에 380년생 보호수(은행나무)가 한 그루가 더 있는데 각기 다른 품위가 느껴진다. 특히 부동자세로 꼿꼿이 서있는 은행나무는 강직한 조광조의 개혁정신을 닮아 눈 부라리고 범부를 직시했다. 완결하지 못한 개혁은 그가 받은 사약의 담보물이었을까? 불가능한 꿈이 되고만 명현의 이상은 결국 왕을 향한 절명시를 토해낸 채 끝났지만, 지금 서원 앞 야산에 잠든 그의 묘소엔 하루 종일 따사로운 양광이 후세의 칭송처럼 내린다.
피로서 일궈낸 선구자적 삶은 항상 나의 정신(精神)을 전율케 했다. 서른 세 가구가 잿더미가 되고 23인이 제암리 예배당 안에 감금된 채 일본인이 지른 불에 학살되었다. 그날의 현장은 사적지로 지정되어 기념비가 세워지고 31정신 교육관, 순국기념관, 순국자 묘소 등이 성지화되어 잘 단장됐다. 견학 온 한 무리 초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잊혀진 세월처럼 무상해 보였지만 참상을 전시한 기념관 끝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글귀가 나로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흐린 2월의 끝자락, 민족 성지를 돌아 나오는 나의 가슴에 쉰들러 리스트의 테마뮤직 이자크 펄만의 바이올린이 애잔히 흘렀다.
전북 진안군과 완주군에 걸쳐있으며 호남, 노령산맥들과 동거하는 금남정맥의 주봉(主峯)이 운장산이다. 동봉을 거쳐 정상을 정복한 후 다시 서봉을 지나면 연석산을 만나게 된다. 억센 산죽을 헤치며 눈이 정강이를 파묻는 비탈길을 좀 더 치달아 연동마을로 하산한다. 스패츠(spats)를 두고 온 건 가장 큰 실수다. 신발 속으로 들어간 눈이 얼었다가 다시 체온에 녹아 질벅거리고, 허기와 추위는 수미산 코라의 고행을 떠올리게 했다. 삼한 사온을 저버린 혹독한 추위가 좀체 끝날 것 같지가 않다. 버스 안에서 녹은 몸이 스르르 졸음을 몰고 왔다. 영화 닥터 지바고 속 오마샤리프가 되어 라라의 테마를 들으며 눈 덮인 시베리아를 주유한다.
그래도 첫 마음은 잊지 말자고 또박또박 백지위에 만년필로 쓰는 밤, 어둡고 흐린 그림자들 추억처럼 지나가는 창문을 때리며 퍼붓는 주먹 눈, 눈발 속에 소주병을 든 김종삼(金宗三)이 걸어와 불쑥, 언 손을 내민다. 어, 추워 오늘 같은 밤에 무슨 빌어먹을 짓이야, 술 한 잔하고 뒷산 지붕도 없는 까치집에 나뭇잎이라도 몇 장 덮어줘, 그게 시(詩)야!전동균의 시 주먹 눈이다. 시처럼 눈이 퍼붓는 아침, 삼성산에 올랐다. 유난히도 춥고 눈 잦은 올 겨울, 설풍에 묻어오는 상념이 사색의 혈관을 타고 자꾸만 이어진다. 길은 생각의 산파요 예언자 같다. 인생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지. 석구상과 한우물을 지나 다다른 삼막사 명부전에서 절로 두 손을 모았다.
새해 일출을 보러 떠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설이다. 성묘 차 대전 국립현충원에 들렀다 찾은 곳이 계룡산 갑사다. 느티나무와 갈참나무, 고로쇠나무와 소나무가 자연스럽게 섞인 아름다운 산문 길은 혼탁한 정신을 맑게 정화해 준다. 풀린 날씨에 쌓인 눈까지 녹아 촉촉한 길이 봄비라도 온 듯 푸근하다. 대웅전 부처 앞에서 잠시 합장할 때, 등 뒤에서 투두둑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삶에 대한 죽비 같아 내심 뜨끔했다. 전해당 추녀에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가 정겨움을 더해, 좁아진 심로를 시원스레 열어준다. 사천왕문 밖에 도열한 나무들도 힘 있고 가지마다 푸른 수액이 올라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억울하게 한 살 더 먹었지만 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동짓달 짧은 해가 뉘엿할 때 400년생 느티나무가 사천왕이라도 되는 듯 긴 가지를 내리고 통과의례를 한다. 신라 때 세워지고 고려왕실의 비호를 받은 대찰이 어이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 다섯 개의 보물 중 원종대사 혜진 탑비 귀부 및 이수는 그리스 조각 같은 이상미를 자랑한다. 비를 지고 있는 눈깔 띠룩한 거북의 발톱이 금방이라도 비천한 중생을 할퀼 듯하여 성급히 혜목산 자락에 올랐다. 국보 4호 고달사지부도의 섬세하고 화려한 자태가 사뭇 엄숙하다. 하얀 억새의 배웅을 받으며 언덕길을 내려올 때 등 뒤로 밀려오는 어둠의 속도가 세월처럼 저려왔다. 귀로에 비운 천서리 막국수 한 그릇이 나그네 미감을 감탄케 했다.
나는 구태여 올랐다. 올 들어 최고 추운 날. 아이젠에 할퀴어 신발 속을 파고든 가루눈에 발이 얼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사람과 뒤엉켜 부딪치는 게 더 지친다. 앞지르기하던 뚱딴지같은 사람이 미끄러져 그만 눈 속에 파묻혔다. 얼마 후 눈사람이 되어 나온 그의 표정은 매우 씁쓸해 보였다. 향적봉위엔 수많은 등산객이 면도날 같은 삭풍을 맞으며 운집해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대피소에서, 뭇 군상들과 선채로 컵라면을 먹었다. 중봉으로 내려오는 길에 스틱을 잡느라 노출된 손이 덕장의 동태처럼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했다. 나의 혹한기 훈련은 끝났다. 이것으로 올 겨울 강추위에 대적할 면역력은 충분하리라.
산자락에 우뚝 선 독산성 세마대 산문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산등성이에 커다란 정자 하나가 나타난다. 임란 때 권율 장군은 물이 없는 산성에 고립되기를 바라는 왜놈을 물리치려고 쌀로 말을 씻겨 물이 풍부하다는 걸 연출했고, 겁먹은 왜병은 퇴각했다. 이를 기려 명명된 것이 세마대(洗馬臺)이다. 국사 과목도 필수가 아닌 시대에 살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잊혀진 전적지에 관심을 둘까? 보적사를 거쳐 산성을 한 바퀴 산책하는데 밑둥치 잘린 나무가 널브러져 있어 이유야 어쨌든 안타까웠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두고 온 고향 같은 박용래의 시(詩) 한 토막이 앞을 가린다. 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새해 벽두에 산사(山寺)를 찾았다. 신앙에 관한한 무적자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산문에 들어서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은 청량감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끗한 자연에 내면을 씻고 새 마음을 들여놓자는 것은 뻔뻔한 중생의 욕심일까? 통도사는 송광사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규모에 압도당할 만하지만 무엇보다 국보290호 적멸보궁과 금강계단, 그리고 석가모니의 사리가 있어 대웅전에 부처가 없는 것은 이채롭다. 올 한해도 마음을 잘 다스리자. 법구경의 한 대목이 나를 깨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출이지만 오늘 만큼은 왠지 활동적이고 싶다. 벅찬 새해를 맞는다는 경건함 때문이리라. 그래서 찾은 곳이 간절곶이다.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새벽 바다는 살을 에는 추위가 폐부를 파고들지만 새해를 맞는 의식을 생각하면 보다 더 혹독하기를 바랐다. 청춘 남녀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새해에는 부디 건강하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이 항상 우리 곁에 있게 하소서! 긴장감을 상실하지 말고 올 한해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 아침 토인비의 잠언이 가슴을 친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도전의 자극에 응전하여 줄기차게 승리의 반응으로서 무한히 응수 한다고 해서 무엇이 나쁘단 말이냐
또 한해가 기울었다. 잔잔한 궁평항 파도는 은빛 비늘을 파닥이고 빈 바다엔 두고 갈 추억만 남겼다. 방파제를 걷는 연인, 매서운 해풍에 굴하지 않고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 고달픈 삶을 이끌어내는 각설이의 질긴 육자배기, 불우 이웃돕기 하는 무명가수의 통기타 앞에서 나는 비장하게 지갑을 열었다. 귀로에 미술관에 들렸다. 입구로 통하는 아르페지오네 카페엔 피셔디셔카우의 겨울 나그네가 감미롭게 흘렀다. 음악과 그림과 커피가 있는 난로 가에서 노 부부 화가와의 담소는 너무나도 따뜻했다. 느리게 살자! 동짓달 짧은 해가 어둠에 묻힌 길에 고은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오늘 M에게 결정적으로 한소리 들었다. 영혼이 허공에 있으니 산문(山門)에나 들라고. 허락 받은 가출이나 갈 곳이 없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적 발로가 결국 여주 신륵사였다. 화를 달래려고 차고 깊은 강심에 마음을 내렸다. 수령600년 은행나무를 스케치할 때 손이 몹시 시렸다. 바로 옆의 동갑내기 참나무가 관심을 주지 않는데 불만인 듯 고슴도치처럼 가지를 세우고 삐쭉인다. 오랜만에 찾은 절에 극락 보전이 사라져 이상했으나 지난 6월 해체복원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곳을 찾았을 땐 극락보전에 이런 현수막 하나가 걸려있어 훈훈했었다. 사랑과 은혜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길 샤함(Gil Shaham)의 바이올린 연주가 마음 언저리에 울려오는 12 월,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듯 회색빛이다. 장대한 소나무들이 좌우로 도열한 채 경배하며 겨울 나그네를 맞는다. 지난 추석무렵 이 고즈넉한 융건릉 숲을 찾았을 땐 태풍 곤파스로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쓰러져 흉측했다. 내가 사도세자와 정조의 묘를 찾는 건 순전히 아름다운 송림과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며 찬란한 햇빛이 좋아서다. 부드러운 흙길을 걷는 감촉, 수북히 쌓인 가랑잎을 밟으며 오솔길을 산책하는 느낌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겨울,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길을 걸으며 우수의 계절을 탐미해 보지 않겠는가!
차가운 겨울바다가 사뭇 고적하고 하얀 포말이 밀려오는 빈 바다에 형체 없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차가운 해풍을 막아선 방풍림(옹진군 지정 천연보호림) 소사나무는 고단한 삶처럼 치열하게 엉켜 하늘을 향한다. 인간을 지키려고 삭풍을 견뎌내는 나무의 밑동에, 부스럼처럼 곪은 상처가 쇠똥같이 덕지덕지하다. 400m의 군락은 방패로 살아온 100여년을 회억하고, 귀로의 대부도 바지락 칼국수가 옛 맛을 증언한다. 언제고 살가운 사람과 동행하여 지친 심신을 내려놓을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새벽 북한산을 오른다. 이 산을 오르고자 했던 것이 30년이 넘었다. 험준한 송추 쪽으로의 등산은 나를 다소 지치게 했지만 태극기 휘날리는 백운대에 올랐을 땐 모든 것이 충만했다. 이 기쁨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힘든 것 감내하며 꼬리를 잇는 것이리라. 준비 없는 자들의 용맹한 목숨을 성급히 앗아간 인수봉이, 식후의 사자처럼 오수에 젖어있다. 구파발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대동사 팻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 있어 속으로 웃었다. 시부모님을 부처님처럼 공경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