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경춘 고속도로를 느리게 빠져나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해산 터널을 벗어났다. 터널은 스케치북 속에 갇혀 신음하던 정지된 순간의 고뇌 같다. 터널을 빠져나와 해산령쉼터 앞으로 이어지는 긴 내리막 산길이 비수구미 길이다. 완만한 경사라 힘들지 않고 청량한 물소리가 벌레소리를 담아내는 길을 내내 함께 걸을 수 있어 좋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같은 인공 길이 아니라 자갈과 모래와 흙의 기가 탄력적으로 숨 쉬는 자연 본래의 길이다. 원시림에서 품어내는 신선한 공기는 폐부를 깊게 열어준다. 내내 계곡의 물보라를 보며 2시간여를 내려오니 조그만 마을이 보인다. 마을이라야 3가구가 전부다. 이장댁에서 여행자를 위해 산채 비빔밥을 판다. 여섯 가지의 나물과 국으로 구성되었다. 엄나무순, 고사리, 취나물, 곤드레, 병풍취, 미역취 등이다. 질경이가 길섶을 덮고 있는 파라호 가는 언덕에 노란 꽃이 선명하다. 제 혼자 피었다 제 혼자 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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