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시인대회 하러 가는 날, 고성북측 입국 심사대의 귀때기가 새파란 젊은 군관 동무가 서정춘 형을 세워놓고 물었다. 시인 말고 직업이 뭐여? 놀고 있습니다. 여보시오, 놀고 있다니 말이 됩네까? 목수도 하고 노동도 하면서 시를 써야지. 키 작은 서정춘 형이 심사대 밑에서 몇 번 바지를 추슬러 올리다가 슬그머니 그만두는 것을 바다가 옆에서 지켜보았다.> 파먹고 살 성취도 없는 삶. 이시영의 시인이라는 직업을 조미된 이념처럼 씹으며, 소백산 비로봉에 올랐다. 곧바로 운무가 중북이니 매카시즘이니 하는 뉴스처럼 모호한 백두대간 연화봉 등줄기를 치달렸다. 희방폭포 아래로 취할 듯 싱그러운 신록이 미끄러져 내리는 유월.
일주문으로 들어가는 흙길은 듬성듬성 풀이 돋아나 있고, 극락전 앞 해당화가 수줍게 꽃술을 숨기고 있다. 수많은 참배객들이 무자비하게 산사를 점령했지만 오늘(초파일) 하루만 견디면 상처가 아물 듯 다시 조용해지리라. 성철, 청담, 자운, 우봉 4인의 스님이 올바른 불법을 세우고자 결사정진을 감행한 도량. 그 후 행곡, 월산, 법전 등 20인이 결사에 참여하여 지극한 법도로 참 선원의 근간을 이룬 곳이다. 또한 희양산을 배경으로 한 봉암사의 반경 4km 내에는 사람의 출입을 공격적으로 금하고 있는 절대 환경의 본적지이다. 이곳을 등산하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는데 그래서 일까, 인간을 배제한 생태계는 서슴없이 왕성하고 생동감을 준다.
상주의 오지 한밭도재이 동구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500년 동안 동민들의 그늘이 되어 준 고목이다. 나무는 바로아래 살고 있는 사람의 집이 궁금한 듯 담장 속을 뚫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몇해 전 수해가 나기 전 까지만 해도 이집 부엌을 무단침입 했다고 한다. 나무에게 마당을 내어준 집 주인을 찾았으나 아무도 없고 방금 두부를 끝낸 듯 가마솥의 간수물만 모락모락 김을 냈다. 갑자기 두부가 먹고 싶어졌다. 바로 옆, 마을 회관에 이장님의 아내이자 부녀회 회장이신 마나님이 계셨다. 횟 두부 한모를 처음 보는 나그네에게, 사위에게 씨암닭 대접하듯 내 놓는다. 이런 인심에 느티나무도 월담하여 함께 살고자 한 것일까?
포커쳤다고 까발려 누워 침 뱉은 중. 개 패 죽인 가짜 중. 도덕적 안전지대는 어딜까? 나는 문득 우포늪을 생각해냈다. 난생 처음 KTX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서부터미널로 가서 창녕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영신버스로 우포늪까지 갔다. 대여소에서 빌린 자전거로 풀밭 길을 달린다. 비무장지대나 아마존을 연상시키는 숲과 늪. 자욱한 풀숲에서 왜가리, 청다리도요가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나그네를 무시한 채 눈을 감고 있다. 찔레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산자락에서 뻐꾸기, 꿩, 소쩍새가 제멋대로 까불어 댄다. 건강상의 이유로 누워있는 동식물이 없는 생명의 DMZ, 나는 하이든의 현악4중주 종달새에 맞춰 천천히 자전거 바퀴를 옮긴다.
아카시아 꽃향기 따라 눈부신 봄 자락을 걸었다. 다랭이 논두렁은 잘박하게 물을 가두어 모내기 준비를 마쳤고, 쟁기로 갈아엎은 밭이랑은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낸 채 또 다른 파종을 기다렸다. 내 심전엔 무엇을 파종할까? 가파른 바위산을 오를 때 아우성치던 종적 시간은 비로소 해체되었다. 황매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철쭉 군락지답게 산등성이 아래로 다홍빛 꽃물결을 흘러내렸다. 요염한 꽃향기에 얼큰해 질 때 심적 내용이 정신 분열을 일으킨다. 안면에 거물을 치고 가는 거미, 몸이 아픈 스님 투병치료 모금함 옆에서 목탁 치는 스님, 잃어버린 안경을 찾겠다고 좌충우돌 뛰어다니는 아저씨. 나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비 탐미적으로 끌어와 정신의 복구를 조용히 기다린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에 갔다. 부소산성에서 낙화암 가는 길은 오월의 햇살과 싱그러운 꽃바람이 동행한다. 천여 년의 세월에도 역사의 길은 지워지지 않아 그 옛날을 가까운 소식처럼 전해주고 있다. 삼천 궁녀가 투신했다는 낙화암에 와서 더욱 믿기지 않는 시간의 전설을 감쪽같이 취득한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꿩 소리도 윤기 있고 새잎 돋아나 왕성한 숲은 청춘의 한 시절 같이 울창한데, 백마강 아래 돛단배는 세월의 속도를 위장한 채 유유히 떠간다. 뒷자락에 돌아앉은 고란사는 아늑하고 귀로에 만난 붉은 연산홍은 거나하게 제 몸을 태우며 못 다한 백제의 꿈을 삭였다. (고란약수 한 잔 물고 봄 하늘 한번 쳐다본다)
돌담위에 널린 옥양목 호청처럼 눈부신 봄이다. 꽃 피고 잎 돋아 쾌청한 봄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학문을 닦는 선비의 뜰 같이 단아하고 정감 있는 선암사로부터 조계산을 오른다. 명주실처럼 고운 햇살이 사선으로 떨어지고 솟구치는 지기(地氣)에 흙살도 부드럽다. 산뜻한 신록은 풀물 든 계곡으로 흐르며 음표처럼 물소리에 실려 간다. 독새풀 쫑긋이 일어선 논두렁 아래서 정사를 끝낸 종달새와 함께 흐뭇한 여운으로 하산한다. 대나무 숲 사이로 삼보사찰 송광사가 엄숙히 나타났다. 지체 높은 국보56호 국사전은 개방이 되지 않아 올려다볼 뿐, 불일암도 멀고 미련이 남는다. 차라리 까마득 떨어지는 적멸의 해우소에서 부질없는 욕망을 내린다. 텅~
며칠 따사로웠던 봄이 잔혹하게 찢겼다. 유예된 시간은 절박한데 거친 비바람은 절정의 꽃을 청춘의 클라이맥스처럼 내렸다. 자연계에 개입한 신의 방종은 상습적으로 인생을 적용시킨다. 짧은 청춘과 봄. 나는 나가수의 인순이가 눈물 삼키며 부른 서른즈음을 속으로 내질렀다. 이렇게 젖은 날, 모주 한잔 의례처럼 걸치고 태조로를 따라간다. 경기전의 어진은 그 어떤 위용보다 강건하고. 한지 뜨는 수제공방은 시간을 거꾸로 돌렸다. 아, 파리바게트가 기와지붕을 덮어쓰고 있는 과거속의 현재, 오늘밤은 외국인들에게 더욱 인기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싶다. 봄비에 젖은 신록이 춘몽처럼 돋아나는 날에.
옛날 중국 산동에서 시집온 처녀가 처음 심었다는 산수유, 그래서 이곳 지명도 산동이다. 실제로 계척마을엔 시목으로 추정하는 수령 1천년의 산수유나무가 존재한다. 지금 지리산 자락은 온통 노란 세상이다. 연약하면서도 강렬한 색. 고흐는 죽기 전까지 노란 정열을 불태웠다. 미치기 위한 몸부림처럼 꿈틀대는 노란 고집은 아를의 여인 배경색에도 사용됐다. 봄은 발라드하고 왈츠라야 좋지만 비제의 미뉴엣 아를의 여인이 지배하는 플루트 소리가 좋다. 나는 아를 여인의 본래인 왕녀를 그리며, 시음용 산수유막걸리를 머리 처박고 퍼먹다가 취했다. 산수유가 남자에게 좋다고 체험학습을 시키지 않아도 행복한 봄날. 아, 유유자적 이곳에 살고 싶다.
섬진강은 초록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르다. 매화는 지기 시작했고, 벚꽃 길은 하얀 꽃그늘을 드리웠다. 피기는 어려워도 지는 건 잠깐인 바니타스적 삶의 표면에 배냇머리처럼 부드러운 봄버들이 늘어졌다. 무성영화의 배경음악이던 옛 노래가 귓가를 스친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나는 남인수의 낭랑한 목소리를 기억해 냈다. 그윽이 술 오른 아버지가 진달래꽃핀 나뭇짐을 지고 오시며 부르시던 노래다. 꽃피는 동네 화개장터를 빠져나와 쌍계사 벚꽃 길을 걸었다. 검은 바지에 하얀 삿갓을 쓴 듯, 벚나무는 박고석의 우직한 그림답다, 봄의 향훈에 젖어 다다른 쌍계사 대웅전 앞에 하얀 목련이 오랜 친구처럼 반긴다.
푸른 바다를 등 뒤에 두고 양광이 온몸을 파고드는 산에 오른다. 잡사에 꾸질 해진 마음을 봄볕에 꺼내 말릴 때, 절망의 절벽위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산새소리가 들려왔다. 언덕위에 걸친 집들은 산토리니보다 아름답고, 나는 사유를 놓아버린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퉁명한 자유를 방목한다. 가파른 설흘산을 타고 내려오다가 다랭이 마을을 보았다. 마늘잎 싱그러운 진초록 밭이랑 아래 노란 유채꽃이 산뜻한 유사대비를 이룬다. 나는 비파나무집과 조약돌집을 거쳐 촌할매 막걸리 집에서 농주 한잔 걸친 후 무슨 이상주의자처럼 바다로 갔다. 파도가 플라톤의 수염 같은 거친 포말을 공허한 열망처럼 흔들며 소리친다. 인생이란 짧은 기간의 망명이다!
따사로이 익은 햇살이 주머니 속을 파고들다가 어느새 마음속 깊이 스민다. 자비처럼, 은혜처럼, 사랑의 전류처럼. 아직 만개하지 않았지만 성급히 피어난 꽃들은 그윽한 향을 흩날린다. 운매가 푸른 허공을 향해 뻗어있고 이끼 낀 바위를 배경으로 날렵한 수묵선 같은 홍매화 한 가지가 여백의 미학을 전한다. 까마득 펼쳐진 매실담은 독 너머로 섬진강이 늘씬한 몸매를 흘리며 모래마당 사이에 드러누웠다. 시금치, 파, 당근, 버섯, 오징어로 버무린 파전을 줄서 기다려 매실 막걸리 한잔 걸친다. 나른한 취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일 때, 화개장터 가는 버스에 오른다. 섬진강의 물결무늬가 은어의 비늘처럼 봄볕에 파닥이는 오후.
땅끝마을에서 카페리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이 섬에 오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삼월의 훈풍이 발라드하게 온 몸을 적시는 뱃전에서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패러디 하며 겨우내 막혀있던 폐부를 연다. 세연정은 고산 윤선도가 이루어 놓은 빛나는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동대와 서대에서 어부사시사에 맞춰 춤추던 무희들의 모습이 마음속에 정연히 그려진다. 터널식 수입구가 있는 인공연못 회수담도 기품있고, 파란 마늘밭이 싱그러운 주변도 봄의 시 같은 서정적 풍경이다. 등산로는 온통 동백 숲, 푸른 바람이 동백꽂 향을 머금고 풍선처럼 내 안을 부풀린다. 전복에 쐐주 한잔이 그립다. 지국총어사와 지국총어사와.
30년 훌쩍 넘겨 찾은 최전방, 내가 근무하던 부대를 회억하며 찾아갔으나 정작 차안에선 선잠 채우기에 바빴다. 금성지구 전투비가 있는 말고개에서 맹렬히 치고 올랐으나 눈에 빠지고 얼음에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무릎 꿇는 즐거움도 이곳에선 치욕이지만 정상에 오르는 기쁨은 여느 산과 달랐다. 바로 앞에 펼쳐진 북한초소들과 오성산으로 시야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등고선처럼 촘촘히 깔려있는 군 보급로와 크고 작은 고지들이 아득한데 나무들이 없다. 봄 되면 또 저들이 산불을 지를 것이라고 한다. 병사들과 점심을 먹으며 좋아진 군대를 실감한다. 우리의 대성산도 믿음직하다. 사랑하는 전우여! 중부전선 이상 없다.
흰 눈이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갓 서물 피어오른 젖가슴처럼 마산봉은 순백의 춘설을 뒤집어쓰고 봉긋 솟았다. 경주마의 등짝 같은 산들이 첩첩이 도열한 백두대간은 마산봉, 진부령을 종점으로 남기고 북으로 뻗쳐 있다. 이렇게 많은 눈을 본지도 오래다. 싸락눈이 목덜미를 파고 든다. 러셀이 되어 줄 산짐승의 발자국도 없는 하산 길 설원이 알프스리조트로 이어졌다. 적설량과 설질이 좋아 한 때 스키어가 붐비던 이곳은 폐장이 된 채 인적마저 끊겨 적막하다. 멀리 향로봉을 두고 진부령으로 발길을 옮긴다. 황태구이에 술 한잔으로 허기를 채웠으면 좋겠다. 제설차가 눈을 밀고 빠르게 달린다. 한 며칠 폭설에 파묻혀 살며 글 고르는 시인이 되고 싶다.
삼한사온처럼 한 며칠 잘 지내고 한 며칠 분란하며 스스로 피폐했다. 삶이 다 그런 걸까? 가끔 세상을 일탈할 피난처를 찾고 싶을 때가 있다. 시외버스를 타고 내 마음의 망명지 고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겨울 산사에 들렸다. 속리산 법주사. 정이품 노송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쪽 어깨를 잃은 채 소침해 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팔상전에 새삼 감탄하고, 국보 5호 쌍사자 석등에 오랜 것에 대한 경외감과 내공을 느낀다. 대웅전 삼존불 앞에 무릎 꿇고 참회할 때 등을 쓰다듬는 부처의 손길이 따뜻이 전해온다. 적요한 산사는 찬바람에 일렁이는 풍경소리만 뗑그렁- 긴 여운을 흔든다. 나무관세음 보살~
북촌한옥마을은 한옥의 향기가 살아 숨 쉬는 실생활지로 여기저기 널브러진 전통한옥의 숨결을 감응할 수 있다. 골목길도 정겹고 군데군데 게스트하우스가 외국여행자를 맞고 있어 더욱 자랑스럽다. 좁은 골목길도 친숙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커다란 기왓장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꿈틀댄다. 그래서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라고 했던가. 추위도 불사하고 골목마다 카메라를 든 외국인이 더 붐빈다.한국을 느끼고 싶은데 고색창연해야 할 오랜 역사의 수도는 전란과 산업화를 겪으며 콘크리트더미에 묻혔으니 그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남아있는 것만이라도 잘 보존하여 쌈지 속 보석 같은 향수를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설도 대보름도 지나고 호젓한 날, 도화지처럼 흰 눈 덮인 태백산을 찾았다. 빈 도화지에 무얼 그릴까? 올 해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나이가 늘면서 모든 것이 조급해진다. 부지런히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흉 없이 마무리해야할텐데. 시간은 수증기처럼 절로 증발한다. 이렇게 많은 타인들은 어떤 심정으로 산을 찾았을까?사람들로 등산로가 메워졌으나 시간은 조금씩 길을 열어 천제단에 설수 있었다. 백두대간 고봉들이 경쟁하듯 어깨를 곧추세우고 있다. 함백산, 두타산, 매봉산, 나는 더 멋진 설경을 보려 문수봉을 거친 후 천천히 하산했다. 눈 축제장과 그로테스크한 석탄박물관을 보고 구수한 시래기 국에 무쇠 솥 보리밥을 먹었다.
55년만의 강추위에 마음까지 얼어붙었다. 그래도 입춘에 비껴선 추위가 한풀 꺾인 오늘, 남산골 한옥마을엔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 왔다. 팽이치기, 굴렁쇠놀이, 투호, 윷놀이 등 민속놀이가 왁자지껄 펼쳐져 아련한 동심으로 돌아갔다. 소원을 적어 달집에 달고 입춘대길, 건양다경도 멋지게 써 본다. 한지 속 깊이 스며드는 수묵의 농담이 대춘을 새삼 꿈꾸게 한다. 다양한 행사에 공연까지 곁들여졌다. 전통타악기공연, 화선무, 난타, 태평무, 한풍에 콧날을 더욱 세운 서양인들이 분주히 사진 찍고 박수치며 흥에 젖었다. 달집태우기 할 생솔가지가 마음을 전할 봉화처럼 세워졌다. 그러나 봄을 위한 퍼포먼스는 무엇보다 내 마음을 대보름달처럼 훤히 밝히는 것이리.
매서운 추위가 칼바람을 대동한 설날 오후, 마지막 달동네 중계동 백사마을을 찾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조악한 집들이 얼기설기 애환의 어깨를 마주하고 있다. 골목길엔 양철 굴뚝으로 새어나오는 연탄가스가 메케하게 폐부로 스며들었다. 수많은 목숨을 채어간 가스지만 밥 짓고, 세숫물 데우고, 아랫목 달궈준 연탄불이었다. 떼떼 옷 입은 아이들이 엄마 손잡고 나들이 가는 언덕길은 가난해도 좋은 정겨움이다. 백사마을은 청계천 개발 때 철거된 이주민들이라고 한다. 고 육영수 여사로부터 국수를 배급받아 먹던 서러운 이들이 이제 또 재개발이란 미명에 떠나야 한다. 그들에게 이곳은 아쉬운 상실일까, 그리운 추억일까, 새로운 희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