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사월은 잔인한 달

그럼에도, 사월은 또 왔다. 반듯하게 쭈욱 뻗은 길가로 노오란 개나리 자지러지고 벚꽃 잠시 눈부시게 휘날리더니 비 온 뒤 이제 철쭉 진달래, 튤립, 할미꽃 그야말로 만화방창이다. 오래된 집들이 꽃 속으로 묻혀 들어가 얼얼한 겨울도 화사한 봄도 꽃 잔치에 잠시 주춤거린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은 어김없이 풀들이 수북하게 올라오고 질경이, 민들레, 제비꽃들과 함께 피고지고 지고피는 사월은 잔인하게 무쌍하다.

사월 들어서면서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따뜻한 하오의 햇살을 등지고 쭈그려 앉아 풀을 뽑는다. 하얗고 가느다란 실뿌리가 보드라운 흙 속에서 쑥 길게 뽑혀 나온다. 비 온 다음날은 유독 촉촉한 흙을 털어내며 미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풀들을 한쪽으로 모으며 읊조린다. “그래 봄이어서 너희 세상구경 좀 하겠다고 안간힘 쓰며 비틀고 나오는데 머리채 돌리며 뿌리까지 뽑아 내던져 미안하구나. 그렇지만 너희들 도리 없이 뽑혀 나와 봄볕에 말라가면서도 내내 씨앗을 봄바람에 흩날리고 있잖니.”

사월의 안산은 큰 행사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내 일터가 단원고와 걸어서 10여분 거리여서 그런지 조금은 조용하고 조심스럽다. 나만 그러나 하고 주위를 살펴보면 누구랄 것 없이 해마다 이때 쯤은 비슷한 분위기임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사월엔 노오란 저고리와 화려한 옷을 입기가 괜스레 민구하다. 416 기억식에서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한 여성이 7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친구 이름 하나하나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면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눈시울을 적신다.

일 년이 지났어도 지칠 줄 모르는 코로나는 우리네 일상을 계속하여 힘들게 하고 우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살아내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하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일상이 지금은 수시로 조율되고 있으니 학교교육의 추억은 더욱 멀어만 간다. 심지어 올해 입학한 유치원생은 학원운행 버스에 오르면 곧바로 벨트를 매는 전년도 원생들과 현저히 다르다고 사회적응 첫 단추도 익히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사월의 라일락은 향기를 바람에 날리어 곤혹스럽게 하고 꽃피고 난 뒤 무성하게 잎 키우는 목련 그리고 키 큰 살구나무 아래에 심을 꽃씨가 왔다. 방풍, 백도라지, 당귀, 금잔디, 백일홍, 허브 분꽃, 양귀비, 천일홍, 더덕 등 약재에 가까운 씨앗을 동생은 넉넉히 주고 갔다. 시골에서 자란 덕을 야무지게 실천하는 바람에 올여름은 행복예절관이 색다른 꽃들로 한껏 건강해질 태세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사월만 되면 어김없이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948년 노벨문학상)의 황무지를 떠올린다. 제주 4·3사건, 4·19혁명, 4·16 세월호 참사 등은 엘리엇의 황무지와 수많은 생명을 잃은 사월과 겹쳐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죽은 땅에서 수많은 생명이 단단한 뿌리로 내려 밀고 올라와 온 누리에 향기로 꽃 피울 때 사월은 진정 가장 잔인한 달이 되지 않을까. 꽃씨가 자리 잡을 곳을 골라 약간의 흙을 파고 거기 사월의 꽃씨를 후북하게 심어야겠다. 그 위로 봄비는 토닥이며 내릴 것이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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