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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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 사진작가

“물하고 비는 무엇이 다릅니까?” 스태프가 나에게 물었다. 한 무리의 백조가 호수를 캔버스 삼아 액션페인팅을 하듯 유유하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에 가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이듬해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에서 예정된 전시 작품 제작에 집중하고 있었다.

 

6년간 심의 끝에 뉴욕 ICP에서 개인전이 결정된 , 세계 사진계의 전설적인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필립스와의 오랜 대화 끝에 동양 사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로 했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존재와 비존재를 극적으로 대비시켜 ‘없음으로 실존’하는 사유와 성찰의 화두였다. 

 

뉴욕은 거대한 오픈세트장이다. 인간의 시지각을 초월하는 8x10인치의 대형 뷰카메라로 뉴욕과 심도있는 대화를 했다. 대화는 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움을 창조한다. 새로움, 그것이 대화의 본질이다. 한 컷의 필름에 8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 움직이는 것은 속도에 비례해 사라지게 했다.

 

미국 근대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의 대표작 ‘5번가’를 비롯해 브로드웨이와 타임스스퀘어 등 수많은 자동차와 인파는 사라졌다. 도시는 선정에 든 듯 침묵했다. 21세기 도시의 아이콘 뉴욕이 묵시론적 배경이 됐다. “오! 마이 뉴욕.” 2006년 6월 많은 뉴요커가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이유다. ICP 전시와 동시에 요시밀로 갤러리에서는 박물관처럼 동시대 인간상을 유리 상자에 설치했던 ‘뮤지엄 프로젝트’를 전시했다. 뉴욕의 메이저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동시에 개인전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뉴욕타임스는 프리뷰에 이어 아츠섹션 두 페이지를 썼다. 뉴욕타임스 리뷰 다음 날, 빌 게이츠가 작품을 컬렉션했다. 생을 담보했던 나의 예술철학이 뉴욕의 화두가 됐다. 하지만 나는 뉴욕의 신화에 안주하지 않고 더 깊은 세계로 갔다. 나를 혁명하고, 나를 파격했다.

 

세계 사진의 역사를 생산하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무명의 아시아 작가에게 문을 연 이유가 무엇일까. 예술철학의 유니크함이다. 이 글을 쓴 이유다. 6년간의 전시 심의 과정도 이념과 지연과 학연, 패거리 문화에 함몰된 우리네 정서와 달랐다. 오직 작가의 철학을 우선했다. 다름, 그것은 예술과 미술관의 존재 이유이자 뉴욕이 예술의 메카가 된 결정적 이유다. “물하고 비는 무엇이 다릅니까”. 그해 가을의 전설로 간다.

 

“물은 비에 젖지 않는다.” “물하고 비는 같은 H2O 아닙니까?” “우리는 같은 인간이다. 그런데 너와 나의 정체성이 같은가?”. ‘젖지 않음’은 정체성의 다름에 대한 은유다. 모든 인간의 정체성이 다르듯이 물과 비의 본질은 같지만 정체성은 다르다. 같은 비라도 이슬비와 가랑비가 다르고, 봄비와 가을비가 다르다. 어제 내린 겨울비와 오늘 내린 겨울비의 정체도 다르다. 자연과 우주에 명멸하는 모든 존재는 실재하지 않더라도 정체성은 살아있다. 호수에 내린 가을비는 곧바로 죽어 물이 되지만 비의 정체성은 살아있다. 살아있는 수많은 정체가 물의 근원 생명이다. 점이 죽어 선을 만들고, 선이 면을, 면이 공간을 형성하지만 공간에 점, 선, 면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다름의 정체성을 창조하고 실존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의지’다. 의지는 물리적 행과 공명하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정체성이 표류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고삐와 같다.

 

청출어람 인공지능(AI) 시대, 창조의 영역이 카오스에 들었다. 카오스는 카오스 속으로 들어가야 해체된다. 인간의 성찰이 빛날 시간이다. 우주는 다름의 총합이다. 우주가 멸하더라도 비는 비고, 물은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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