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모든 예술작품들의 묘사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아름다운 이상’과 ‘추악한 현실’로 나눈다면 대다수의 예술작품이 ‘추악한 현실’이지 않을까. 한국 영화 예술의 정점인 작품 ‘기생충’이 ‘추악한 계급 사회의 현실’을 표현하며 오스카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듯 말이다.
필자는 예술사 전반에서 예술에 대한 인식이 가장 크게 바뀌기 시작한 때를 리얼리즘(realism)이 등장한 19세기 중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술 사조인 리얼리즘이 실제로 예술의 폭을 방대하게 확장시켰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주관성이 아닌 객관성이 강조되는 리얼리즘이 어떻게 예술의 흐름을 바꿨다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필자의 답은 리얼리즘이 드디어 그 이전에는 하나의 소시민에 불과했던 인간 본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이것이 예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이다. 이후로 예술은 더 이상 우상적이고 미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인간사와 잔혹한 현실 등 리얼리즘, 문자 그대로 사실적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냉혹한 현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한편 현대에 와서 예술의 대상은 예술가의 주관적인 관점부터 객관적 사실을 넘어 그 어떤 것이라도 가능해졌다. 예술을 향유하는 관람자, 관객, 소비자, 그리고 독자들은 이제 예술에서 아름다운 부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깨우는 것, 찌르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것과 같은 강렬한 어떤 것에 주목한다. 심지어 이의 연장 선상에서 예술은 그 대상으로부터 더럽고 추악한 것이나 공포 같은 감정을 추구하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야 예술적 대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아브젝트(Abject) 아트’가 그렇다. 아브젝트 아트는 예술적 대상뿐만 아니라 대상 주변의 어둡고 버려진 것까지를 포함한다.
불가리아 출신의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1980년 ‘공포의 권력: 아브젝시옹에 대한 에세이’를 통해 아브젝트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아브젝트는 인간의 배설물이나 정액, 쓰레기, 동물의 사체같이 더럽고 추악하거나 공포감을 주는 것이고 그 대상에 의해 느껴지는 혐오적 감정을 아브젝시옹(Abjection)이라고 하며 이 둘은 우리가 인생에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술에 대한 시각과 폭이 넓어진 현대에 와서야 주목받게 된 아브젝트 아트는 바로 이러한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의 예술적 표현인 셈이다.
때마침 현대미술사에서 아브젝트 아트로 독자적인 방향성을 꾸준히 확립해온 독일 출생의 미국예술가 키키 스미스가 선보이는 미술관 개인전 ‘자유낙하’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이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이상적인 인간의 육체나 그로부터 느껴지는 황홀함 따위는 느낄 수 없다. 특히 그러한 이상적인 육체의 흔한 대상이었던 여성이 철저히 파괴된다. 불편하고 적나라한 인간의 자세가, 파편화된 육체가, 그리고 배설물이 예술의 대상에 대한 기득권적인 인식에 질문을 던지며 전시돼 있다.
흔하지 않은 기회의 이번 아브젝트 아트 관련 전시회는 우리도 모르게 자리 잡은 예술적 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파괴하고 그동안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그 너머에 대해 눈을 뜨게 할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자가 아브젝트 아트의 중요성을 논하는 것은 마치 전체적인 예술사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처럼 현대예술의 흐름과 확장에 있어 아브젝트 아트 역시 하나의 돌파구가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예술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로 흥미로운 구조의 외연뿐만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대단한 복잡함에 있으며 그러한 모습이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매력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사소한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가 거대한 담론으로 완성되기도 하는 유연한 확장성에 있으며 관념은 돌고 돌아 결국 나 자신과 연계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자 존재 이유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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