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에 우뚝 선 독산성 세마대 산문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산등성이에 커다란 정자 하나가 나타난다. 임란 때 권율 장군은 물이 없는 산성에 고립되기를 바라는 왜놈을 물리치려고 쌀로 말을 씻겨 물이 풍부하다는 걸 연출했고, 겁먹은 왜병은 퇴각했다. 이를 기려 명명된 것이 세마대(洗馬臺)이다. 국사 과목도 필수가 아닌 시대에 살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잊혀진 전적지에 관심을 둘까? 보적사를 거쳐 산성을 한 바퀴 산책하는데 밑둥치 잘린 나무가 널브러져 있어 이유야 어쨌든 안타까웠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두고 온 고향 같은 박용래의 시(詩) 한 토막이 앞을 가린다. ‘늦은 저녁에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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